69화
과거의 잔상
“선, 생님…?”
희미하게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내가 알고 있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세계, 아스트레아에 넘어와서 2년 동안을 함께한 소년의 목소리를.
그리고 비록 몇 년은 어린 모습이었지만, 한 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사람의,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를.
아크.
조원호.
꼬맹이의― 그의 목소리였다.
사실은 이제 그만 모든걸 놓고서 쉬고 싶은 기분이었다.
너무 힘들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에, 나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선생님!!!”
나와 눈을 마주치자, 그는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앞도 발밑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서, 말 그대로 정신없이.
심지어 눈앞에 널부러져 있던 리자드맨의 시체를 밟고서 꽤나 아파보이는 자세로 자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일어서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자신만을 바라보며 달려오는 그의 표정이, 조금 처절하게 보였다.
당장이라도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의 표정이었다.
자신을 향해서 저토록 급하게 달려오고 있다는 것이.
저런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지만.
너무나도 미안했지만.
조금은 기뻤다.
그 사실을 나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를 맞이하러 가야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움직이지 못하게 막혀있었다.
고개를 밑으로 숙이자, 곳곳이 깨져나가고 형편없이 찌그러진 갑옷이 보였다.
레지스터 가문의 가주에게만 착용이 허락되는 가보, 심연의 갑옷이었다.
수백 년 동안 레지스터 가문의 가주를 지켜온, 흠집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강도의 갑옷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족들의 미스릴제 무기까지 막아내지는 못했다.
가문의 자랑이었던 갑옷은 형편없는 몰골로 박살이 나있었다.
그리고, 그런 박살난 틈 중 하나를 거대한 철창이 꿰뚫고 있었다.
그 철창은 자신을 꿰뚫은 상태로 땅바닥에 꽂혀있는 상태였다.
뒤쪽에 쓰러져있던 오우거가 아직 살아있었다는 것을, 창에 내리 찍히기 바로 직전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탓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꼴이었다.
결계 안에 있던 마족들은 다 죽여 놓고서, 정작 다 죽어가던 오우거 한 마리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아서 죽어가고 있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꼴이었다.
심판의 결계가 해지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적이 남아있다는 뜻이었는데, 자신은 그 사실을 간과하고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었다.
오랜 싸움 끝에 마지막 마족을 쓰러트리고서 안일해져있었던 탓이리라.
‘허윽…….’
자신이 지금 창에 꿰뚫려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직시하자, 다시 한 번 전신을 관통하는 것만 같은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그야말로 그대로 기절해버릴 것 같은 고통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이대로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싶게 만드는 고통이었다.
그 고통으로, 무심결에 신음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저 꼬맹이가 지켜보고 있는 한, 자신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그런 추한 모습을, 그의 눈앞에서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미친놈… 좀 천천히 와라. 누가 죽기라도, 쿨럭. 죽기라도 한 대냐…?”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그를, 조금이라도 안심시켜주기 위해 최대한 평소처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도중에 울컥 뿜어져 나온 핏물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
안 그래도 찌그러들 것처럼 울상을 짓고 있던 꼬맹이의 표정이 더욱 심각하게 찌그러들고 있었다.
“오다가 자빠지기나 하고 말이야. 쪽팔린 줄 알아야지. 큭큭, 쿨럭.”
나는 태연한 척 계속 말을 이으며, 그를 달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문득 떠올린 생각에 도중에 손을 멈춰 세웠다.
자신은 이제 곧 죽을 것이다.
지금 창에 꿰뚫린 채로 바닥에 피를 쏟아내고 있는 이 상황을 본다면 누구나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었고,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일이었기에 더더욱 확신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제 홀로 남게 될 그에게 정을 남기는 것은, 앞으로 남겨질 그에게 너무 잔인한 처사가 아닐까.
그 생각이, 자신의 손을 멈추게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바로 앞까지 다가온 소년은 내가 내밀다 멈춘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아주었다.
그 사실이 조금은, 아니 너무나도 기뻤다.
차가워지는 손 너머로 느껴지는 그 따뜻한 감촉이 너무나도 기뻤다.
울상으로 잔뜩 얼굴을 구기고 있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길 정도로 말이다.
나는, 끝까지 철가면을 벗지 않고 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지구로 돌아가 또 다른 자신을 만날 그에게 자신의 정체를 감출 수 있어서’ 같은 계산적인 목적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분명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엉망진창인 미소를 짓고 있을 자신의 얼굴을 들키고 말았을 테니까. 그저 그 뿐이었다.
그래. 나는 도저히 이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게 오히려 그에게 잔인한 처사가 될 것임을 깨닫고 있음에도, 그럴 수가 없었다.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세계, 아스트레아에 와서 처음 그와 만났을 때.
설마 했던 과거의 원호의 모습을 보았을 때, 모른 척 지나갈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 * *
“허윽…….”
잠자리에 누워있던 미카엘라는, 마치 바람이 새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꿈속에서 넘어온 감정들이 마치 널뛰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슴 속을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날뛰는 호흡을 잠시 동안 진정시켰다.
다행히 늘 그렇듯, 꿈속에서 넘어온 감정의 여파들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으음.”
어두운 방 안의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미카엘라는, 습관적으로 시계부터 먼저 찾았다. 그녀는 시계의 불을 켜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항상 시계를 두던 위치에 손을 내뻗자, 위로 튀어나와있는 시계의 스위치에 손이 닿았다.
스위치를 가볍게 누르니, 곧 시계에 불이 들어오면서 어두운 방 안에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시.
시계의 바늘은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자리에 누운 게 12시였으니, 2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깨어난 셈이었다.
‘…또, 이 꿈인가.’
몇 주 전에 처음 꾸었던 꿈이자, 요즘 들어 자주 꾸는 꿈이었다.
요새 잠을 설치게 하는 가장 큰 주범이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판타지 세계에서, 조원호와 함께 여행을 다니는 꿈.
꿈속의 조원호는 실제의 조원호보다 서너 살쯤은 어려보이는 앳된 모습이었지만, 조원호 본인이 확실했다. 그리고 꿈속에서 자신은 원호를 아크라고 불렀다.
그리고 꿈의 내용은 다양했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자신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그 끝은, 언제나 막연한 슬픔과 막연한 안타까움, 그리고 약간의 행복함을 남겼다.
행복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결말이었지만, 그 꿈속에서 죽어가는 자신이 느끼고 있던 수많은 복합적인 감정 중에는 ‘행복하다’라는 감정이 분명하게 포함되어있었다.
왜 이런 꿈을 꾸는 것일까.
일반적인 꿈이라고 보기에는 감정들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꿈에서 깨어나고 난 후에도 한동안 그 감정들이 남아 날뛰고 있을 정도로.
“조원호…….”
미카엘라는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중얼거려봤다.
“…으음.”
그 단순한 행동만으로, 그녀의 머릿속은 곧 그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 차올랐다.
지금 자신의 얼굴에 홍조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것을 그녀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들어 얼굴이 빨개지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그 때는 항상 조원호가 관계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된 것은 데모닉 게이트 사건 때 심판의 결계에서 정신을 잃고 난 후부터였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자신은 조원호의 품안에 안겨있었다.
그걸 알아차렸을 때,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정색을 하고 발버둥을 쳐서라도 그 품에서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런 부끄러운 모습은 레지스터 가문의 일원으로서도 어울리지 않았고, 평소의 자신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때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
그의 품안에 안겨 얌전히 의무대까지 옮겨졌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행여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말이다.
너무 피곤해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그 높이에서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소중히 껴안고 있는 그의 마음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지금 생각해봐도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만약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때와 다르게 행동할 자신이 미카엘라에게는 없었다.
어쨌거나, 그 이후로 이 모양이었다.
툭하면 그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있는 게 일상이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시선은 그에게 가있었다.
그가 곁에 있으면 가슴이 뛸 것처럼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한 켠이 답답하기도 했다. 특히 그와 이소연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답답함은 훨씬 커졌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창문을 열어 밤바람이라도 쐬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한동안은 잠에 들기 글렀다는 것을, 그녀는 근래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닫아뒀던 커튼과 창문을 열자, 미지근한 밤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차가울 정도로 시원한 밤공기를 기대했었기에, 미카엘라는 미지근한 그 미묘한 온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편의점이라도 갈까.’
그러고 보니, 막 실습 동아리가 생기고 첫 실전을 치뤘던 날, 새벽에 편의점을 나갔다가 조원호와 만났던 일이 있었다.
그 사실을 문득 깨달은 미카엘라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뒤로 돌아서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딱히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편의점에 가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한 동안 잠은 안 올 테니까, 밤 산책이라도 다녀올 겸 해서 말이다.
물론, 밤 산책을 나갈 준비를 하며 자신이 설레고 있다는 사실은, 볼 사람도 딱히 없는데 괜히 입고 나갈 옷을 고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도 부정할 수 없었다.
* * *
미카엘라가 창가를 열고서 밤공기를 쐬고 있을 때, 밖에서 그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
칠흑의 갑옷으로 이루어져있는 할로우 나이트는, 안 그래도 밤하늘에서 찾아내기 힘든 칠흑빛의 갑옷에 어두운 기운으로 이루어진 안개까지 두르고 있었다.
오늘의 밤하늘은 짙은 구름이 끼어 달빛조차도 제대로 비춰지지 않았기에, 하늘에서 할로우 나이트의 모습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는 조용히 하늘에 떠오른 채로, 미카엘라가 있는 기숙사를 뚫어질듯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다만, 그의 시선에서는 몇 가지 감정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는 텅 비어있는 갑옷에 불과함에도 말이다.
누군가에 대한 실망, 그리고 혐오.
하지만 그는 그 감정을 표출해내지 않았다.
아니, 표출 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에게는 분노의 고함을 질러낼 성대조차 없었으니까.
소리를 낼 수는 있었지만, 그건 그저 전음을 음성화시키는 마법에 불과했다.
[야, 어디야? 외출도 적당히 하고 와줬으면 하는데?]
[…]
그러던 중, 할로우 나이트에게 전음이 들려왔다.
자신을 만들어낸 루시퍼가 보낸 전음이었다.
녀석의 말을 듣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각인이 새겨진 이상 그 지시를 끝까지 거역할 수는 없었고, 어쩌면 자신이 지금 있는 위치를 추적해올 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이 지금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봤자 좋을 일은 결코 없었기에, 할로우 나이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허공에 귀환의 룬을 맺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