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그래서 원호. 교수님이랑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야?”
“으음… 우리를 프로로 등록시킨다고 했었는데 말이지.”
사실은 기아스에 대한 얘기도 했지만, 그 이야기는 굳이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으니 당연히 생략했다.
나와 미카엘라는, 우리 팀에게 별도로 마련된 동아리 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유선의 교수실을 나온 후, 딱히 갈 곳은 없었고 팀 집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기에 곧바로 동아리 실로 향했다. 그리고 동아리 실 안에는 미카엘라가 먼저 와있었다.
“프로? 그게 정말이야?”
“음? 너도 프로로 활동하는 게 더 좋나봐?”
그녀의 목소리가 짐짓 들떠있는 것처럼 들려왔다.
“물론이지. 프로가 된다면, 지금과 달리 내가 원하는 임무를 선택해서 받을 수 있는 것 아니야?”
“그런데?”
“프로가 되서 원하는 임무를 고를 수 있게 된다면, 보다 까다롭고 힘든 상황에 있는 임무들을 받을 수 있지 않겠어? 그럼,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돕고 구할 수 있다는 뜻이지.”
미카엘라가 말했다. 아무래도 진심으로 하는 소리 같았다.
‘으음… 정의병 말기 환자나 워커홀릭이나 할법한 생각이지만.’
혹은 아스트레아에서 용사병에 걸려있던 시절의 내 자신이나 할법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카엘라는 원래 그런 녀석이었고, 그렇기에 저 말은 정말 미카엘라다운 말이었다.
“난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다른 녀석들 설득하는 건 네가 해.”
“헌터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할 뿐이야. 설득할 필요가 어디있겠어? 모두들 나와 같은 생각일 거야. 여태동안도 그래왔고 말이야.”
“여태동안이라…….”
여태동안 우리 팀은 미카엘라의 움직임에 따라 행동해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미카엘라의 행동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가장 먼저 뛰쳐나가버리기에 어쩔 수 없이 팀이 그녀의 행동을 뒤따르거나, 어차피 그녀를 설득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그냥 얌전히 따라주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거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미카엘라는 같은 팀에 있으면 피곤한 성격이었다.
미카엘라에 대해 콩깍지가 씌워진 지금의 내가 봐도 그렇게 보일 정도라면 말 다한 것이다.
‘뭐, 그게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지만 말이지.’
마치 시대에 뒤쳐진 기사도처럼 보이는 미카엘라의 행동지침은, 따르면 피곤하고 비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고 대의라는 것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뜻대로 따르며 토벌을 마치고나면, 뭔가 2배로 일을 한 피곤한 느낌이기는 했지만, 헛고생을 했다는 느낌은 없었다.
일을 마치고나면 그래도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을 했다는 만족감과, 성실하게 임무에 임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남는 것이다.
일을 하는데 만족감과 성취감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어쩌면, 팀이 이렇게 의욕이 넘치고 빠른 성장을 보이는 건, 미카엘라의 억지를 따라왔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갑자기 생각났는데 말이야.”
“응?”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미카엘라를 불렀다.
“너 요새 ‘미스터 호~’라고 안 부른다?”
“…엥?”
예전에는 그렇게나 부르지 말라고 징징거렸는데도 꿋꿋이 ‘미스터 호~’라고 불러대더니, 최근에 들어서는 들어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근래에 그 사실을 새삼 깨닫고서,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둘만 앉아있는 기회가 온 김에 물어본 것이다.
“그, 그야 뭐…….”
그녀는 말을 얼버무리더니, 갑자기 얼굴이 조금씩 빨개지기 시작했다.
“…괜히 미움 받게 되면, 내가 곤란하니까…….”
“…?”
그녀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며 시선을 피하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덕분에 정작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듣지 못했다.
“호, 혹시 그 미스터 호라고 부르던 게 더 좋았던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엄청 싫어했는데.”
그 호칭이 내 마음에 들었다면 애초에 그만둬달라는 말도 지겨울 정도로 꺼내지 않았겠지.
“엄청… 싫어…?”
“…어?”
내 말을 듣더니 미카엘라는 갑자기 낙심한 듯한 표정을 짓고서는 어깨와 고개가 축 처졌다.
뭔가 말실수라도 한 걸까, 싶어 내 말을 정정하려던 순간, 동아리실의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는 우리 팀의 남자 셋, 이세형과 전민호 박서준이 차례대로 들어왔다.
“오, 둘이 먼저 와있었군.”
“원호, 너 요즘 들어서 유난히 성실해진 것 같다? 그래도 훈련 참가는 여전히 안한다만…….”
“아니, 만약 그가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훈련기재들이 남아나질 않게 되겠지.”
훈련기재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박서준의 말에, 남자 세 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니들은 나를 무슨 괴물로 알고 있는 거냐?”
아무리 그래도 훈련이나 몸 푸는 것처럼 간단한 상황에서는 힘조절을 한다.
하지만 녀석들은 잠시 동안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다시 한 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괜히 조금 짜증이 나는 광경이었다.
“아앗!! 오빠랑 미카엘라 언니가 여태 단 둘이 동아리 실에 있었어!!”
그리고 그 뒤를 이소연과 김세율이 따라서 들어왔다.
“오빠, 미카엘라 언니랑 단 둘이서 뭐했어요?”
“아니, 그냥 같이 앉아있기만 했을 뿐인데…….”
“흐음―”
소연이는 웃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의 안에는 나도 모르게 두려움이 느껴지는 뭔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딱히 감출만한 일도 없었기에,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정말 같이 앉아있기만 했으니까.
“그럼 미카엘라 언니처럼 저도 오빠랑 같이 앉아있을래요.”
그러더니 소연이는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옆으로 의자를 끌어오더니, 그 위에 앉아서 내 왼팔을 꼭 끌어안았다.
‘으음…….’
팔소매 너머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과 살결의 감촉이, 조금은 난감하게 느껴졌다.
“아니, 이런 모습은 ‘미카엘라처럼’이라는 말과는 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데…….”
“원래 해석에는 주관적인 견해가 첨가되기 마련인 것이죠.”
“…….”
그 모습을 보더니, 미카엘라도 조용히 내 옆으로 의자를 끌고 와서는, 내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살며시 대고서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미카엘라의 얼굴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새빨개지고 있었다.
“뭐, 뭔데. 왜 이러는데.”
그 사이에 낀 나는, 솔직히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난감한 기분이었다.
“…젠장. 신은 불공평해.”
“그 말에 대해서는, 동감할 수밖에 없군.”
“…….”
그 사이에 끼여서 난감해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남자 세 명은 내 속마음도 모르고 적대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나는 그저 곤란할 뿐이라고…….”
“그건 제가 싫다는 뜻인가요, 오빠?”
“내가 방해가 된다는 뜻이야? 원호?”
“…아니, 꼭 그런 것도 아니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왠지 흐뭇한 표정을 짓고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김세율의 시선이 짜증나게 느껴졌다.
* * *
상황이 좀 진정되고 모두가 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유선에게 들었떤 이야기를 다른 팀원들에게도 말해줬다.
“와!! 그럼 이제 우리도 공식적으로 프로 헌터가 되는 거야?”
역시나 전민호가 가장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 이제는 우리가 원하는 임무를 골라서―”
“그럼 헌터 협회 뱃지는 언제 나와? 프로 헌터 등록증은?”
“…….”
내가 할 말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말을 자르고, 전민호가 신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너라면 왠지 그것부터 관심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전민호의 저런 반응이 나쁜 건 아니었다.
자기 일에 대해서 프라이드를 갖는 것은 의외로 꼭 필요한 일이었다.
자기가 자랑스럽게 여기지도 못하는 일에서 대체 무슨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
다만, 그게 지나치게 오만적인 모습으로 발달되고, 단순히 겉멋에만 치중되게 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민호는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뱃지… 그거 되게 디자인 촌스러워서 달고 다니는 사람 거의 못 봤는데요. 심지어 협회장님도 안 달고 다녀요. 애초에 그거 끼고 다니면 대놓고 헌터라고 광고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라고요.”
“하지만… 멋있잖아.”
전민호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으면서 말을 이었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날 토벌을 끝마치고, 전투복에 뱃지를 단 상태로 단골 바에 가는 거야. 그러고선 ‘오늘 하루도 힘든 하루였군.’ 이라고 중얼거리면서, 킵 해뒀던 술을 한 잔 걸치고서 다시 쓸쓸히 밤거리로 나서는 거지. 어때? 멋있지? 로망이지?”
“으음…….”
전민호의 말이 끝나고, 잠시 동안 동아리 실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건 좀 아닌 것 같군.”
“아니라고 본다.”
“드디어 정신이 나간 게 틀림이 없네요.”
“으음, 내 생각에도 좀 이상한 것 같구나.”
팀원들은 전민호가 길게 내뱉었던 개소리에 대한 저마다의 감상을 자유롭게 말했다.
아무리 전민호래도 자신의 로망이 부정당하는 말을 연속으로 듣는 건 좀 타격이 컸는지 잠시동안 시무룩해졌다.
“어찌됐거나, 곧 너희들도 따로 불러서 프로에 관한 내용을 물어볼 거라고 생각해. 일단은… 반대는 없는 거지?”
확인 차 팀원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야 애초부터 프로였으니까요. 근데, 이 팀은 계속 유지되는 거죠?”
“맞아. 이 팀 그대로 프로로 올라갈 거야.”
“그럼 저는 좋아요.”
소연이는 만족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임무를 골라서 맡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드는군… 나는 금요일이 공강이니, 앞으로는 월화수목 중에 임무를 고르도록 하자.”
이세형이 조심스럽게 안경을 고쳐 쓰면서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엑, 너 수업 듣는 거 좋아하지 않았냐?”
“…어째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
“왜냐면… 너랑 미카엘라는 수업 중에 단 한 번도 딴 짓하지 않고 수업에만 집중하잖아? 필기도 열심히 하잖아? 그러니까 수업을 좋아하는 줄 알았지.”
“그건 그냥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하자는 생각일 뿐이다.”
전민호의 말에 이세형이 기겁하는 목소리로 답했다.
“학교 수업을, 그것도 이론 수업을 좋아하는 사람은 내 생각에는 없다고 보는데. 게다가, 실전을 어느 정도 겪어본 지금은 수업 내용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서 말이지.”
“그건 그렇지… 교수님들이나 강사들이 헌터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다들 은퇴하신 분들이니까.”
‘게다가 우리 팀보다 약하기도 하고 말이지.’
나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아마 지금 모두가 동시에 떠올리고 있을 내용을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축하할 일도 생긴 것 같은데, 오랜만에 다 같이 회식이나 하러 가죠?”
“전혀 오랜만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음, 삼일 만에 하는 회식을 오랜만이라고 하지는 않지.”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소연이의 말에, 박서준과 이세형이 덧붙이듯 말했다.
“아니, 흥 깨지는 소리 할래요? 오늘은 강제참가에요 강제참가!!”
“저번 회식은 강제참가가 아니었다는 듯 말하지 말아줄래?”
하지만 곧 저녁에 있을 회식에 대한 이야기로 모두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딱히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하지 못한 팀원들은 저번처럼 소연이가 원하는 메뉴를 먹기로 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