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똑똑.
“조원호입니다, 교수님.”
나는 문을 가볍게 노크하고선, 문을 살짝 열고서 말했다.
“들어와.”
교수실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고, 나는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입니까? 교수님.”
“…교수님이라는 호칭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지.”
내가 그녀를 부른 호칭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책상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던 유선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볍게 짚으며 불만을 표했다.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일단 앉지?”
그녀의 말에 나는 손님용으로 마련되어있는 의자 하나를 그녀의 책상 맞은편에 놓고서 그 위에 앉았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그녀와 만나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의 일이었다.
데모닉 게이트가 있던 것이 대략 한 달 전의 일이었고, 그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 그녀나 내가 피했다고 하는 쪽이 맞을까…….’
유선 쪽에서 지시나 부탁을 할 일이 있는 경우에는 언제나 그녀의 비서 류환이 전해줬었다. 애초에 유선이 현역으로 다시 복귀하면서 바빠진 탓이기도 하겠지만.
“어… 음료는 됐습니다.”
책상 옆에 놓여있는 미니 냉장고의 문을 열려고 하는 그녀에게,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을 표했다.
그녀의 냉장고 안에 있는 건 오직 맥주뿐이라는 사실을 난 알고 있었고, 나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준 대냐? 거 사람 무안하게 그러네. 내가 먹을 거거든?”
“무안할 것까지는 없잖겠습니까. 하여간.”
유선은 책상위에 캔맥주를 올려놓고서, 예의 그 숙련된 동작으로 캔맥주를 따냈다.
손가락 두 개만으로 맥주 캔을 따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인 겁니까? 직접 부르기까지 하시고.”
담배 한 개피를 꺼내서 손에 쥐고 있던 유선은, 담배를 입에 물더니 불을 붙였다.
왼손에는 대낮부터 열어재낀 맥주 한 캔과, 오른손에는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불을 붙인 담배.
어린아이에게는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교육에 악영향을 미칠 법한 막장 어른의 대표적인 예시를 보여주고 있는 그녀는, 담배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인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긴. 해지된 기아스에 대한 얘기지.”
“기아스에 대한 얘기라면… 다시 기아스를 맺자는 이야기입니까?”
유선과 맺고 있었던 기아스는 데모닉 게이트 사건 때 해지했었다.
그녀에게 퍼지기 시작했던 기아스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아니, 그럴 생각은 없는데.”
유선이 말했다.
“원래는 네가 헌터일은 죽어도 안할 것 같으니 잠시라도 써먹자는 생각으로 했었던 건데… 지금에 와서는 굳이 기아스까지 맺을 필요가 있을까 싶네. 사실상 지금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헌터 중 한 명이잖냐. 그리고…….”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면서 말을 머뭇거리다, 혀를 한번 차고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보다 강한 녀석도 못 알아볼 만큼 동태눈깔인 것도 아니거든.”
“…….”
그 말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거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선의 말에 나는 약간은 기분이 좋았고, 약간은 부끄러웠다. 왠지 모르게 죄책감도 조금 느껴졌다.
그렇기에 미안하다고 말할 상황도 아니었고, 잘난 척 뻗댈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럴 때는 그냥 조용히 다물고 있는 게 서로에게 이롭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흐음…….”
조용히 흐르던 침묵 속에서 담배 한 개피를 전부 태워낸 유선은 옆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 꽁초를 비벼 끄면서, 낮게 콧소리를 울렸다.
“어쨌거나, 내가 널 부른 이유는 저번 기아스에 대한 이야기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기아스에 걸려있었던 조건들의 이행에 대한 이야기지.”
“조건? 무슨 조건이요.”
“너는 대학생활 동안 헌터학과의 실습 동아리 일원으로써 활동하고, 나는 너 졸업하면 5급 공무원 자리에 앉혀준다고 했었잖냐. 그 계약 조건 말이야.”
“아, 말 그대로 계약이 이행되었을 때의 조건을 말한 거군요.”
1항부터 4항까지의 조건을 생각해두고 있던 나는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원한다면, 원래대로 계약을 되돌리는 것도 상관없어.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예전과는 네 모습이 좀 달라진 것 같거든. 내 착각이냐?”
“…헌터가 되기 싫어했던 걸 말하는 거라면, 맞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평범한 삶이 있고, 나에게는 나에게 어울리는 평범한 삶이 있다.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 소중한 존재를 되찾는 것으로 완성시킬 수 있었다.
내가 헌터로써 새롭게 얻어낸 일상 속에서, 헌터로써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유선에게 대답했다.
“공무원… 이 되려고 했었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별 의미 없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제 모습은 거짓된 모습이었으니까요. 없던 계약으로 해주셔도 상관없습니다.”
사실 이미 깨져있는 계약이기도 했고 말이다.
유선은 나의 대답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좀 자연스러워 보이네. 진심으로 보이기도 하고.”
“…예?”
그녀는 오른손으로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그 미소는 좀 더 선명해져 있었다.
“예전의 너는 뭐랄까… 보는 사람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런 게 있었다고나 할까. 겉과 속이 따로 놀고 있는? 뭐 지금도 그런 느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때만큼의 답답함은 안 보이네.”
“아, 예…….”
칭찬인지, 욕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선이 지금 그녀답지 않게 뭔가 감성적인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어쨌건 간에, 믿을만한 헌터가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은 굉장히 기쁜 일이지. 하물며 너처럼 실력 좋은 녀석이라면 더더욱 말이야.”
그녀는 다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고서는 불을 붙였지만, 담배를 피우지는 않았다.
그녀는 불붙은 담배를 다시 입에서 땐 다음, 손에 가볍게 쥔 채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말이야. 너희 팀을 프로 헌터 팀으로 정식 등록 시킬까 하는데 말이지.”
“…프로 헌터 팀으로요?”
“그래. 물론 헌터학과에서는 헌터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준 다음에 프로활동을 시키자는 게 목적이지만… 뭐, 3학년 팀들 정도에서도 이미 프로 헌터로 활동하고 있는 녀석들이 있으니까.”
유선의 말에는, ‘너희 팀의 수준은 이미 최소한 3학년 팀 수준은 뛰어 넘는다’라는 뜻이 숨어있었다.
하긴, 단순히 수치상으로만 본다하더라도 우리 팀에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S급 헌터가 무려 2명이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3학년이라고는 해도 아직 풋내기에 불과한 헌터 팀에 밀릴 리가 없었다.
게다가 김세율과 미카엘라는 A급 최상위권에 넣어도 부족함이 없는 딜러와 탱커였으며, 다른 팀원들에게 묻히는 경향이 있었지만 전민호와 이세형, 박서준 셋 또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헌터들이였다.
어쨌거나 옐로급이나 레드급 토벌에 쫓아다닐 수 있다는 건 나름대로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었고, 미카엘라만큼은 아니었지만 토벌 전적이 쌓여갈 수록 그들의 실력은 빠르게 성장해갔다.
전민호의 발화 특성을 살려낸 순간화력은 잠시나마 김세율을 뛰어넘을 정도였고, 박서준은 블링크 능력을 활용하여 어떤 상황에든 빠르게 지원하고 대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세형의 일발필중의 능력은 피니셔로서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쏘면 반드시 맞춘다는 조건은, 단순하면서도 엄청난 메리트와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 반드시 명중한다는 것은, 엄청난 요소였다. 더군다나 그의 실력이 향상되고 코어의 에테르 용량이 점차 커져감에 따라 그의 사격 위력 역시 강해지고 있었다.
나를 제외하더라도, 우리 팀은 탱킹도, 화력도, 정보력도 그리고 마무리 능력까지 모두 갖춰진 팀이었다.
이정도 실력을 가진 헌터 팀은 A급으로 뽑히는 최상위 헌터 팀 중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위기 대처능력도 뛰어나고 말이야.’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지만, 갑자기 마왕이라도 튀어나지 않는다면 어지간한 상황은 전부 커버 쳐줄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위기상황에 내가 나설 경우까지 생각하며, 나는 우리 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마쳤다.
‘전민호 녀석이 좋아하겠군.’
며칠 전, 카페에서 프로로 활동하고 싶다고 징징거리듯 말했던 전민호를 떠올리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로서도 나쁠 일은 없었다.
정식으로 프로 헌터가 된다는 것은, 소속되어있는 국가와 협회에 등록되어 본격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임무가 주어지는 지금 상황에서, 이제는 프로헌터로써 우리들이 직접 임무를 선택할 수 있었다.
‘미카엘라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임무들을 택할 수 있다는 뜻이지.’
여태동안 꽤 많은 레드급 토벌을 진행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들의 가장 주된 토벌 대상은 그린급이나 옐로급이었다. 학교 측에 의뢰되는 임무들의 수준 자체가 낮은 탓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동경했을… 내가 되고 싶어 했던, 하지만 결국은 포기했었던. 그런 모습, 그런 이상…….’
‘도중에 꺾여버렸던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네가 생각하던 모습과는 많이 다를지도 몰라.’
선생님은 죽어가던 순간에,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선생님의 과거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그 꿈을, 아니 미카엘라의 그 꿈을 이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했다.
지금보다도 더욱 빠르게 성장해야했다.
적어도, 내가 그녀를 지켜봐줄 수 있을 때까지는.
“대답이 좀 많이 늦다?”
“아…….”
나는 유선이 보채고 나서야 내가 여태동안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있는 상태였다는 걸 깨달았다.
“좋습니다. 나쁠 건 없죠.”
“그래, 다른 녀석들한테도 물어봐야 되기는 하겠지만… 다른 녀석들이야 당연히 수락할 테지.”
유선은 내 대답을 듣고서는 고개를 숙이고 서류에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그녀가 뭔가 사무적으로 일같아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꽤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아, 근데 저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뭔데.”
“저 진짜 기아스 지키면 5급 공무원 앉혀주실 생각이었습니까?”
“뭐?”
그녀는 들고 있던 볼펜을 내려놓고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표정은 약간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내가 기아스에 있는 내용까지 어겨가면서 네 뒤통수라도 칠거라고 생각했냐?”
“아니, 뭐 그런 생각은 아니었지만… 5급 헌터 공무원이라던가… 그런 가능성도 있기는 하겠다라고 뒤늦게 생각했었죠.”
“5급 헌터 공무원… 그런 방법이 있었나… 흐음, 너 똑똑하구나.”
그녀는 깍지 낀 손에 턱을 얹으며,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햐, 그건 상상도 못하고 있었네. 그러면 기아스도 깨트리지 않은 상태에서 헌터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상황이네? 천재적인데?”
꼴을 보아하니, 그녀는 생각조차도 못하고 있었던 발상인 듯 했다.
“하긴 뭐, 뭔 필요가 있겠냐. 어차피 끝난 기아스고 끝난 이야기인데. 그리고.”
후우우.
그녀는 들고 있던 담배를 한 모금 피운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시발년은 아니에요. 앞통수를 쳤으면 쳤지 뒤통수는 안친다고.”
유선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