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흐음, 흥미롭네… 이거 재밌을 것 같아.”
캘커타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은발의 소년이 깍지 낀 손에 뒷머리를 기댄 채로 누워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이기 편하도록 몸에 딱 맞게 맞춰진 흰색의 타이즈 위에, 고급스러운 장식과 수가 놓여진 흰색 자켓을 걸친 소년의 복장은 광택이 느껴질 정도로 선명한 윤기가 흐르는 은발과 굉장히 잘 어울렸다.
그는 순진한 얼굴로 해맑은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있었는데, 살짝 튀어나온 덧니가 그 순진한 소년같은 인상에 마무리를 더했다.
누군가 그 소년을 본다면, 동화를 읽으며 상상했던 천사가 그대로 튀어나온 것이라 착각을 일으킬만한, 그런 선량한 외모의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 소년의 모습에서는 이질적인 요소가 4가지가 있었다.
우선 소년이 있는 곳이 캘커타의 전장에서 십여 km는 떨어져있는 곳이라는 것과,
소년의 몸이 허공에 떠올라있었으며, 그 위치가 육지의 빌딩이 점으로 보일 정도로 높은 상공이라는 것.
그리고, 깃털로 이루어진 한 쌍의 날개가 소년의 등에서부터 뻗어져 나와 소년의 몸을 감싸고 있다는 것과, 그 날개가 검은빛에 가까운 회색으로 짙게 물들어있다는 것이었다.
일곱 대죄의 마왕 중에 한 명, 제 6석 질투의 군주, 불사의 지배자 루시퍼.
그것이 바로 그 소년의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저게 바로 그 소문의 마왕 살해자, 용사 아크라는 거지?”
여전히 그 순진한 미소를 띤 채로, 루시퍼가 캘커타 방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마 그럴 겁니다, 루시퍼님.”
루시퍼의 옆에 서있던 부관, 브락쿠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그는 이 위치에서 아크의 모습을 육안으로는 콧빼기도 볼 수 없었지만, 그의 기운이 어렵사리나마 간간이 느껴지고 있었기에 그렇다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에게는 이 높이까지 올라와 비행하고 있는 것도 그다지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이 정도 거리에서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건, 일곱 마왕인 니들 정도뿐일 거다.’
브락쿠스는 그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적당히 얼버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넌 아크 실제로 본 적도 있었다면서? 근데 왜 대답이 그렇게 애매해?”
브락쿠스는 바르바토스의 휘하에 있었던 공작급의 마족이었다.
섬기던 마왕을 잃고 난 후, 한동안은 마계의 자신의 영지에서 일없이 지내고 있었지만, 지구에 아크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루시퍼가 그를 불러낸 것이다.
‘그러니까 안 보인다고…….’
하지만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루시퍼도 별로 나무랄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내 흥미를 잃고서는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흐음… 데스나이트 20기 정도로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지만… 아크 말고도 재밌어 보이는 녀석들이 잔뜩 있구만. 하하, 쓸 만하겠는데? 쟤들도 언데드로 만들어볼까? 어때?”
불사의 지배자, 루시퍼.
그의 이명 중 하나인 불사의 지배자에는 죽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와 더불어 그의 군대가 수많은 언데드들로 이루어져있으며, 그가 사령술사로써 정점을 찍기도 했기 때문에 생긴 이명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이명답게, 아크와 일행들을 본 순간 ‘언데드로 만들면 상당히 쓸 만하겠다’라는 발상을 먼저 떠올렸다. 루시퍼에게 있어서는 꽤나 큰 칭찬이었다.
언데드는 강력한 녀석을 기반으로 할수록 더욱 강력한 녀석이 나온다.
사령술의 상식이자 루시퍼가 다른 세계를 침략하는 가장 주된 이유였다.
“어때 응? 너도 친한 친구 있으면 좋잖아? 안 그래?”
루시퍼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에는 묵직한 인상을 주는 칠흑의 갑옷의 기사가 조용히 서있었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기사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루시퍼에게 고개를 돌리고 지긋이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나, 그 투구의 틈 사이로 비쳐보이는 것은 공허한 어둠뿐이었다.
갑옷 안에는 아무도 없이 그저 텅 비어있을 뿐이었다.
다시 되살리기 힘들 정도로 시체가 파손되었을 때, 기사의 영혼을 강제로 갑옷에 묶어내어 만들어내는 할로우 나이트(Hollow Knight)였다.
“…….”
그 할로우 나이트는 묵직한 갑옷의 인상에 걸맞게, 루시퍼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지긋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따.
“응?”
“응? 응? 으응??”
루시퍼는 계속해서 할로우 나이트에게 대답을 재촉했지만, 그 할로우 나이트는 조금의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입이 달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 할로우 나이트는 루시퍼가 나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었기에 영혼의 존재만으로도 음성을 낼 수 있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할로우 나이트는 그냥 묵묵히 루시퍼와 시선을 마주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너한테 말 건 내가 잘못이지. 내가 잘못했다, 야.”
루시퍼는 이후에도 한참동안 할로우 나이트를 바라보다가, 이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다시 브락쿠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저기 붙잡혀간 녀석, 고트 놈 밑에 있는 녀석이랬지??”
“예, 그렇습니다. 아직 작위는 없고… 그냥 중급 정도 되는 가펫트라는 녀석입니다.”
루시퍼의 질문에 브락쿠스가 대답했다.
“그럼 별 쓸모도 없는 놈이겠네. 그냥 지금 코어라도 터쳐서 보내줘라. 곱게라도 죽여줘야지.”
“알겠습니다.”
루시퍼의 지시를 받은 브락쿠스는 허공에 룬을 그리기 시작했다.
엘라보르가 그었었던 것과 똑같은 룬으로, 대상의 코어를 과부하시켜 망가뜨리는 지시를 내리는 룬이었다. 이윽고 룬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룬은 작동하지 않았다.
브락쿠스는 곧 난감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눈앞에 있는 상관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였따.
“저, 루시퍼님…….”
루시퍼는 자신의 재미와 기분해소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수하도 죽이는 걸로 유명한, 일곱 대죄의 마왕 중에서 성격 더럽기로 소문난 마왕이었다.
물론 자신은 이번 침략에서 루시퍼의 부관이라는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었고, 공작의 작위를 갖고 있는 최상급의 마족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루시퍼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무슨 꼴이 날 지를 모른다는 공포심을 브락쿠스는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비굴해졌다.
“저, 각인 연결망이 끊어져있는 것 같습니다만…….”
“…뭐라고?”
아니나 다를까, 루시퍼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 자신을 쳐다봤다.
‘하하, 브락쿠스 공작!! 아주 그냥 고생길이 활짝 열렸구만!!’
이쪽으로 파견을 나오기 전, 다른 공작급의 마족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 던졌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것이 바로 주마등이란 말인가?
“…흐음, 아니야.”
하지만 루시퍼는 턱에 손을 짚더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래, 이게 더 재미있겠어. 일방적인 유린보다는 아무래도 반항하는 맛이 있어야 더 재미있는 법이지.”
“…그렇습니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브락쿠스는 루시퍼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브락쿠스는 자신을 굽어 살피고 있을 것이 틀림없을 마신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보냈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이정도면 사실상 마나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수준인데?”
허공에 손을 저으면서 루시퍼가 말했다.
처음에는 리리스 녀석이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지구의 존재를 감춰둔 줄 알았지만, 실제로 이 세계는 마나가 거의 고갈되어있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지금 느껴지는 마나들도 대부분이 게이트에서 넘어온 다른 세계의 마나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쓸 만한 녀석들도 꽤 보이는데.’
캘커타의 전장 쪽을 바라보면서 루시퍼는 생각했다.
그 전까지 방어선을 구축하고서 버티고 있던 녀석들은 말 그대로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녀석들이었기에 중급 언데드 정도나 나올까 말까한 녀석들이었지만, 포탈을 타고 아크와 함께 나온 녀석들은 꽤나 강력한 녀석들이었다.
“저 년은 정령의 가호까지 받은 것 같고…….”
봐줄만한 위력의 라이트닝 스피어를 난사하듯 쏘고 있는 계집을 바라보며 루시퍼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외에도 자기도 놀랄 정도로 엄청난 활용 능력을 보이고 있는 공간술사와, 막대한 잠재력이 느껴지는 금발의 계집.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니 뭐니 해도 아크였다.
용사 따위한테 마왕이 세 명이나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제 마왕도 갈 때까지 갔구나 싶었지만, 저 녀석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마왕 살해자라는 녀석으로 언데드를 만들면, 대체 뭐가 나올까? 큭큭큭.”
루시퍼는 입 꼬리를 잔뜩 올린 채로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케이크에 마지막 남은 과일 토핑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순진한 소년이나 다름없는 외모를 가진 그의 미소는 얼핏 해맑아보였지만, 거기에서는 본능 자체에 경고를 울리는 듯한 사악함과 섬뜩함이 물씬 묻어나오고 있었다.
“…….”
“…….”
그 뒤에 선 할로우 나이트와 부관 브락쿠스는, 그 뒷모습을 조용히 잠자코 지켜볼 뿐이었다.
한 명은, 자신에게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신세 한탄을 담아.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그에 대한 끝없는 분노와 증오를 담아.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