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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65화 (65/135)

65화

얽매여간다

[조심하세요!! 저 녀석에게서는… 저번의 그 바리트라는 남자와 같은 기운이 느껴져요!!]

“뭐라고…?”

소연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보내온 통신에, 크리스의 몸이 굳으면서 동시에 힘이 들어갔다. 불이 꺼졌던 그녀의 대낫에는 다시 파란 빛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가 봐도 바짝 긴장한 상태로 하늘에 떠있는 마족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직 지구에 마족이란 존재는 단 한명밖에 나타나지 않아 마족이란 개념이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였고, 미지의 상대라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법이었으니까.

게다가 지구에 나타났던 유일한 마족은 바리트라는 백작급의 상급 마족이었다. 그리고 크리스는 그 바리트 백작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겪은 경험이 있었다.

‘너무 긴장한 것 같은데…….’

하지만, 저기 있는 마족은 그럴 필요가 없는 상대였다.

작위도 없는, 좋게 쳐줘봤자 중급 마족쯤에나 겨우 해당될 잔챙이로, 바리트랑 비교하면 바리트한테 미안할 정도로 허접한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야, 이 싸가지 없는 마족 나부랭이 놈아. 그렇게 싸가지 없게 전음 날리는 법은 어떤 놈이 가르쳐 준 거냐?”

나는 사소한 짜증으로 땡겨오는 뒷목을 왼손으로 가볍게 주무르며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잔챙이나 다름없는 녀석이 얄팍한 힘만 믿고 까부는 것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족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무, 뭐라고 지껄인거냐, 인간? 감히 인간주제에 이―”

“일단은… 내려와서 이야기 하자, 응?”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내며 지껄이는 녀석의 말을 가로막고서, 난 짐짓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감히 내 말을 자르다니!! 그 죄는 네 목숨으로 치루거라!! 다크―”

“내려와라.”

저런 녀석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을 끝까지 들어줄 생각은 없었고, 하물며 같잖은 마법을 펼쳐내는 걸 지켜볼 생각은 더더욱 없었기에 나는 강제로 기아스를 부여해 녀석을 땅으로 떨궈냈다.

“컥, 나, 날개가? 으, 으아아아악!!”

그 순간, 펼치고 있던 날개가 접히면서 녀석은 볼품없는 모양으로 땅바닥에 곤두박질 쳤다.

“크아악, 으윽… 감히…!! 이 몸을! 용서할 수 없다!!”

“너희 마족들은 어차피 나중가면 싹 다 버리고서 빌빌거릴 거면서 그놈의 자존심은 오질라게 세워대더라.”

그 마족은 땅바닥에 얼굴을 쳐박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나에게 무슨, 무슨 짓을 한 거냐!! 용서 안 한다 네놈!! 요, 용서 안할 거란 말이다! 지금이라도 물러선다면 또 모르지만!!”

녀석이 곤두박질 친 곳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녀석의 목소리가 점차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몸통을 지그시 밟아주고서 날개를 뜯어내도록 할까.’

기왕이면 뿔까지도 뽑아버리자.

도망칠 수 있는 수단도, 힘도, 자존심도 모두 뽑아버리고 나면 추잡하고 역겨운 마족의 실체가 살살 드러나겠지. 그 광경은 개인적으로 싫어하지는 않는 광경이었다.

[대단해요, 오빠!! …멋있어요.]

“원호, 방금 어떻게 한 거야?”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바닥에 힘없이 축 늘어져있는 날갯죽지에 손을 내뻗다가, 소연이의 통신과 뒤쪽에서 들려온 크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이쪽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고 손을 멈췄다.

그래, 나는 지금 아스트레아에서 아크로 날뛰던 시절처럼 혼자 멋대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에테르로 이루어진 작은 단검들을 여러 개 형성시킨 다음, 녀석의 날개에 쏘아내 박아 넣어 녀석을 땅바닥에 고정시켰다.

“크아아아아악!! 이, 이 무슨 잔인한 짓을!! 죽여 버리겠다―!!!”

‘녀석, 이것도 많이 낮춰준 거구만 엄살을…….’

머릿속에서 생각해둔 것의 심의등급을 18세에서 12세로 낮춰준 수준이었음에도, 고통에 날뛰면서 이쪽을 노려다보는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발로 차줬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마족한테 잔인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좀 묘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나는 걷어차여 부어가는 입술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녀석의 앞에 살포시 쭈그리고 앉았다.

[아까부터 너무 시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냐? 안 닥치면 니 몸에 꽂히는 단검 하나씩 더 늘어날 줄 알아라.]

녀석의 앞에 쭈그려 앉아, 다른 일행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직접 얼굴을 쳐다보며 전음을 날려주니 녀석은 동공까지 떨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에 꽂히는 것도 날개에 꽂힐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어디에 꽂힐지는… 뭐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도록 하자. 그게 더 재밌지 않겠냐?]

그러자 녀석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이게 끄덕여야 되는 상황인지 아니면 저어야 되는 상황인지 혼란이 온 모습으로 이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번에 그 녀석이랑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약한 것 같은데?”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는 듯, 어느새 옆에 다가온 크리스가 말했다.

그리고 미카엘라와 김세율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크리스의 뒤를 따라왔다.

“뭐… 녀석들에게도 급이 있다는 거겠지.”

한동안 마족의 정체에 대해서 내가 직접 나서서라도 설명을 해줘야하나, 고민을 해왔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젠 말해줄 녀석이 따로 생겼으니 말이다.

[네가 아는 거, 전부 다 털어놔라.]

“히이익!!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전음을 보내자, 녀석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전음을 보냈다는 사실을 모르면 굉장히 뜬금없게 여겨질 상황이었기에, 다른 일행들의 시선이 녀석을 따라 내쪽으로 집중되었다.

[하아… 전음으로 물었으면 전음으로 답해야지, 이 쓸모없는 놈아.]

“히이이이― 읍!!”

에테르로 단검 하나를 더 형성시키면서 다시 전음을 보내자, 녀석은 다시 비명을 내지르려다가 가까스로 두 손으로 입을 막아냈다.

[알겠, 알겠습니다!! 저는 가펫트라 불리는 마족으로, 고트 백작님의 밑에서…]

[나한테 말고, 저 녀석들한테 마족에 대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싹 다 대답해줘. 아마 기나긴 질의응답 시간이 될 거다.]

[지…질의응답 시간이라고 하심은… 아무리 그래도 그런 배신 행위는…]

[굳이 빠른 죽음을 택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는데 말이야.]

[아니, 아닙니다!! 저 말하는 거 굉장히 좋아합니다!!]

나는 전음에 계속해서 에테르를 압축시켜 담아내 녀석을 압박시켰고, 녀석은 이제 완전히 굴복하는 태도로 바뀌었다. 이제 크리스를 통해 가펫트라는 저 마족 녀석을 협회 측에 넘기면, 알아서 마족에 대한 정보가 헌터들 사이에 풀리게 될 것이다.

“크리스, 나중에 이 녀석을 협회로 데리고 가서, 얘네가 뭐하는 놈들인지 알아내도록 해.”

“으음… 협회는 수사기관이 아니라구…….”

크리스는 부정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시스템을 활성화 시켜서 협회 측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일단 처리할 건 해두도록 할까.’

크리스가 협회 측에 연락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이제 얌전히 바닥에 누워서 이쪽의 눈치를 살피는 마족을 바라보며 아공간에서 차원석을 꺼내들었다.

무슨 변덕인지는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지만, 리리스는 내가 바르바토스의 마왕성에 두고 갔다는 차원석을 챙겨서 나에게 갖다 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미스틸테인의 아공간에 차원석을 함께 넣어놓고 다니고 있었다.

‘역시… 믿는 구석이 남아 있었구만.’

차원석을 발동시키고 주위를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마계와 이어져있는 연결망이 보였다.

가펫트라는 녀석의 표정은 겁에 질려있기는 했지만, 절망에 빠진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직까지도 녀석의 눈동자 깊은 곳에는 잔잔히 분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속으로 복수를 다짐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인간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겨놓은,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 충분히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복수심에 타오를 만큼의 여유를 챙길 수 있다는 것은,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확보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 저 연결망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마계에 알리고 지원군을 불러낼 작정이었겠지.

나는 차원석을 역수로 가볍게 쥔 다음, 실처럼 이어진 형태로 희미하게 보이고 있는 연결망을 내리쳐 끊어버렸다. 연결망은 소리 하나 나지 않고 맥아리 없이 끊겨 사라졌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 방금 끊어졌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의 눈 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복수심이 은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저 복수심을 이뤄질 일은 결코 없으리라.

녀석의 희망이 사라졌다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꽤나 같잖은 모습이었다.

“오빠, 지금 뭐한 거에요?”

어느새 건물 밑으로 내려온 소연이가 내 옆에서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로 물었다.

“뭐… 별건 아니고, 그런 게 있어.”

나는 말을 대충 얼버무리면서, 아공간을 열고서 차원석을 집어넣었다.

“흐음… 그 개인 아공간, 정말 편리해 보이는데. 나도 만드는 법 알려주면 안 돼?”

“그러니까 이건 내가 마법으로 만든 게 아니라 내 검에 딸려있는 기능 같은 거라니까…….”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할래? 저쪽에다가 인사라도 하고 갈래? 아니면 그냥 돌아갈래?”

“으음…….”

나는 대답을 하기 전에 저쪽의 상황을 대충 살펴봤다.

역시나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다.

우리들이 앞에 있으니 더 이상의 추태는 부리지 않으려는 듯 다툼을 멈춘 상태였지만, 어느새 나뉘어진 두 무리 사이에 흐르는 냉전의 흐름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아니, 됐어. 그냥 집이나 가자고.”

굳이 저 어색하다 못해 뒤틀린 분위기 사이에 걸어 들어갈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인도는… 아직까지 헌터를 강제로 뽑는 국가였지.’

중국과 인도는 자국민의 숫자가 워낙 많았고, 그에 비례해 에스퍼의 숫자도 엄청났던 국가였다. 그렇기에 초기에는 두 국가가 가장 많은 헌터를 확보하고 있었고, 또한 가장 많은 정예 헌터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이 헌터들의 희생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해주기 시작하고, 자국 헌터의 유출을 막기 위해 각종 혜택을 부여할 때, 두 나라는 강제적인 헌터 징집을 고수했다.

어차피 에스퍼의 숫자는 많으니 굳이 대접해주면서까지 자국에 붙잡아둘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실력 있는 헌터들은 당연히 목숨을 걸고서라도 타국으로 빠져나가고, 높아봤자 A급 중간에서 B급 정도의 헌터들만 남은 것이다. 결국 오늘날에 와서는 부족한 헌터들을 용병을 고용해서 메꿔야하는 수준까지 되었다.

아마 이 나라는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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