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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64화 (64/135)

64화

인도의 캘커타 도시의 외곽.

그곳에서는 지금 필사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필사적인 전투는 수비 쪽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공격 측이 압도적으로 수비 측을 유린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크하하하하하!! 내 앞에서 꺼져라, 인간들이여―!!!]

[불사의 군대 앞에, 남는 것은 없을 지니…]

[베여라, 죽어라, 전부― 사라져라!! 캬하하!!]

약 20여기로 이루어진 데스나이트의 군대는 계속해서 방어선을 밀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나이트’라는 호칭이 무색하게, 그들의 진격은 뿔뿔이 흩어져 자기들 멋대로 달려드는, 마치 야만인들과도 같은 진격이었다. 하지만, 그 규율도 전술도 없는 엉망진창의 진격에 담긴 파괴력은 수비대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을 요격하기 위해 방어라인 밖으로 배치되었었던 인도의 정예 헌터들은 전부 몰살당한 상황이었고, 데스나이트들은 전방의 방어선들을 모조리 격파하고 시가지까지 얼마 남지 않은 최후의 방어선에 도달한 상태였다.

“물러서지 마라!! 아직 마지막 방어선이 남아있다!! 우리들이 물러서면 저 괴물들이 일반인들에게 들이닥친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렇게 말해봤자.”

“죽기는 싫다고…….”

방어선은 아직 붕괴되지 않고 버티는 중이었지만, 이 방어선도 돌파당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간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기는 이미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방어선 전열의 상황이 점차 난전상황으로 바뀌어가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데스나이트의 숫자가 아직까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남아있는 군인과 헌터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줄어드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본래 수비 측이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의 전투는 공격 측이 불리한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오히려 데스나이트의 군대는 처음 상태에서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은 채 계속해서 진격해오고 있었고, 반면에 방어선은 차례대로 격파당하고 있었으며 인원피해도 막심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지나가던 꼬맹이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간단했다.

압도적인 전력 차.

불과 20여기에 불과한 적이었지만, 헌터들은 몬스터를 상대로 싸울 때 수적 우세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를 알고 있었고, 저 데스나이트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헌터들이 느끼고 있었다.

“쏴라!! 쏴!!”

투두두두두두두둣!!

전장에 화약병기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조금의 피해라도 줄 수 있을까 싶어 배치되었던 기관총들이 불을 뿜었으며,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 역시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나약하구나… 나약해…]

하지만 옐로급 몬스터만 되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 기존 병기의 공격들을, 레드급에 해당되는 데스나이트들이 막아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총탄들은 데스나이트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검은 기운의 안개에 닿는 순간 급격히 속도가 줄어들더니, 곧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데스나이트가 나타나기 전의 몬스터들에게는 기존 병기들이 잠시 경직을 주는 정도의 도움이라도 됐었지만, 데스나이트들에게는 그야말로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키햐하하하하!! 불사의 군대에 영혼을 바치거라!!]

[죽음… 죽음을 선사하마…]

“이젠 틀렸어, 틀렸다고!!”

“물러서지마!! 대열을 유지해라!!”

“웃기지마, 나는 살고 봐야겠어!!”

데스나이트가 코앞까지 들이닥치자, 패닉 상태에 빠진 헌터 한 명이 전선을 이탈하여 등을 보인 채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주변의 다른 헌터들도 동요를 하기 시작했다.

푸우욱.

“아…아?”

하지만,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헌터를 에테르의 화살이 꿰뚫었다.

남자의 등을 꿰뚫은 화살은 그대로 폐를 관통하여 반대편으로 튀어나왔고, 남자는 땅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해내면서 그 자리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물러 서지마라!! 우리가 살기 위해 물러서면, 시가지의 일반인들이 저 괴물들에게 유린당할 것이다. 그래도 좋은가? 그래도 좋냔 말이다!!”

에테르의 화살로 탈영자에 대한 즉결처분을 내렸던 그 에스퍼는 일반 군인들의 사령관이자 인도의 B급 헌터로 등록되어있는 자였다. 그는 호소하는 목소리로 주변의 헌터들에게 외쳤다.

하지만, 그 짧은 연설의 결과는 오히려 역효과로 나타났다.

“웃기지마!! 빌어먹을, 네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헌터를 쏴 죽여?”

“난 어디까지나 돈 받고 고용된 몸이라고!! 그렇게나 국민을 지키고 싶으시다면, 혼자서 열심히 지키란 말이야!!”

“뭐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너희들이 그러고도 헌터란 말이냐?”

다른 헌터들은 오히려 그에게 반발하기 시작했고, 그 남자 또한 그런 헌터들에게 비난을 삼가지 않고 퍼부었다. 다툼은 점차 커지기 시작했고, 그러는 와중에도 전선을 이탈하는 도망자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내분!! 우리들을 앞에 두고 내분이라니, 여유가 넘쳐나는 모양이로구나, 크하하하하!!]

물론 그 와중에도 데스나이트들은 계속해서 방어선을 돌파해오고 있었다.

조원호 일행이 도착한 것은, 그 혼란스러운 상황이 한참 벌어지고 있는 도중이었다.

* * *

“우와… 이거 개판이네.”

포탈을 타고 건너편으로 빠져나왔을 때는 이미 마지막 방어선까지 데스나이트들이 도달하여 점차 난전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이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바였다.

한국이야 최정예 헌터들이 다수 포진되어있어 레드급 몬스터 정도는 그나마 무난하게 해결되는 편이었지만, 다른 국가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데스나이트 20여기면 어지간한 국가는 파멸에 이르기에 충분한 재앙이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버틴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전열의 인원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와중에 후열의 인원들은 자기들끼리 다투며 내분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아예 몇 놈들은 전선에서 등을 돌린 채 전장을 이탈하고 있었다.

“사력을 다해도 버틸까 말까한 상황에서 내분이라니… 자기 목숨 소중한 거야 이해한다만.”

“뭐 사실 이게 정상이죠… 데모닉 게이트 때 한국의 모습이 이상했던 거에요, 오빠.”

“하긴… 그 때는 네가 있기도 했으니까 말이지.”

한국에서도 데모닉 게이트 사건 때 시스템이 마비되고 다크 포탈이 열렸을 때, 전선이 붕괴될 조짐이 있었다. 사실 협회 소속을 제외하면 헌터라는 것들은 대부분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특히나 강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그 심각한 상황에서도 소연이가 이블아이로써 혼자 전장의 상황을 분석해내고, 상황에 맞게 개개인을 적절히 통솔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 무슨… 비행기 태워줘도 뭐 안 나오거든요?”

“누가 뭐래니.”

“잡담도 좋지만, 이제 슬슬 움직이지? 너무 느긋한 거 아니야? 인도에 원한이라도 있는 거라면 모를까.”

그 때 뒤에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던 크리스가 말했다.

뒤를 돌아보니, 미카엘라와 김세율도 약간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미카엘라는 더더욱 그랬다.

“좋아, 그럼 가자고.”

뒤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니 왠지 뻘쭘한 기분이 들어, 나는 약간 과장된 액션을 취하며 우리가 서있던 4층 건물의 옥상에서 뛰어올랐다.

하늘로 뛰어올라 상공에서 바라봤을 때, 데스나이트들은 방어선의 전열을 파고들어 붕괴시키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다. 데스나이트들이 한 부분에 뭉쳐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실상 난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일도양단…은, 쓰면 안되겠지.’

여기서 범위가 넓은 기술을 썼다가는 데스나이트는 물론 헌터들까지 전부 휩쓸려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저기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헌터들을 갑자기 대피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광역 기술은 봉인해둬야 했다.

‘이래서 혼자 싸우는 게 편하긴 한데 말이야.’

과거 아스트레아에서 아무 걱정 없이 내 멋대로 휘젓고 다니면서 홀로 싸우던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허공에 발판을 만들어 다시 한 번 하늘로 도약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순수한 백색의 에테르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을 만들어, 데스나이트들이 뭉쳐있는 부분을 조준하여 바닥으로 내리 꽂았다.

궁니르(Gungnir).

신성계 최상위 마법으로, 슬라임 자이언트 때도 사용했었던,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순수 마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이었다.

그리고 신성계 마법의 특징은, 바로 언데드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것!!

[크아아아아아!! 뜨겁다, 뜨거워어어어어―!!]

[캬아아아악!!]

궁니르에 직격으로 얻어맞은 세 놈은 그 자리에서 증발하듯이 사라져버렸고,

범위에 휩싸인 데스나이트들이 꼴사나운 비명을 사방으로 내질렀다.

[네노오오오옴! 이리로 내려와 나의 검을 받아라아아!!]

‘여전히 시끄러운 놈들이구만.’

딱히 그 말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발판을 박차 공중에서 가속하며 땅바닥으로 내리꽂히며, 단번에 두 녀석의 목을 날려버렸다.

‘흠… 그러고 보니 데스나이트의 목이 날아갔으니 이젠 듀라한이 되는 건가.’

갑작스런 궁금증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쓰러지는 두 데스나이트를 지켜보았지만, 듀라한이 되지는 않는지 그 자리에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새삼 실망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앞에 이쪽을 덮쳐오는 데스나이트가 보였다.

[빈틈을 보인 대가… 톡톡히 치르게― 키아아악!!]

덮쳐오는 데스나이트의 검을 쳐내기 위해 손이 움직이기도 전에, 그 데스나이트는 대각 방향에서 날아온 번개의 창에 꿰뚫려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아직 옥상에 남아있던 김세율의 지원사격이었다.

그녀는 구석에 쳐박힌 데스나이트가 다시 일어나기도 전에 또 하나의 번개의 창을 쏘아 보내 완전히 끝장을 냈다.

크리스는 전장 한복판에서 말 그대의 의미로 사방팔방에 참격을 휘두르면서 데스나이트들을 제압하고 있었고, 미카엘라는 황금빛의 보호막을 펼쳐 위기에 처한 다른 헌터들을 돕고 있었다. 그녀다운 행동이었다.

‘…이건 뭐, 내가 굳이 나설 필요까지도 없겠구만.’

“뭐, 뭐지. 저 사람들은…….”

“오, 오오!! 협회 측의 지원부대다!! 지원부대가 도착했어!!”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어!!”

갑작스럽게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하자,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던 헌터들이 다시 무기를 부여잡고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전장에서 사기라는 것은 정말 영향력이 크고, 또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였다.

* * *

“깔끔하게 마무리 된 것 같구만.”

들고 있던 보급형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수고했어, 원호. 그리고 소연이랑 미카엘라, 세율이도.”

“아뇨, 언니랑 원호가 거의 다 처리했죠 뭐.”

“본인은 간간이 지원사격을 가한 것이 전부인 것 같다만.”

크리스의 말에, 세율이랑 미카엘라는 A급 최상위 헌터에 버금갈 활약을 펼쳤으면서도 겸손을 차리며 말했다.

“일단 이걸로 일은 마무리 된 거지?”

“그래. 적어도 인도에는 우리가 나설만한 일은 더 이상 없어. 바로 돌아갈래?”

“그게 좋겠지. 깜빡하고 있었는데 다른 세 명도―”

돌이켜보니 남자 팀원 삼인방에게 인사 한 마디 없이, 사실상 카페에 방치해두고서 온 상태였다. 그걸 뒤늦게 깨닫고서, 크리스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있을 때였다.

[감히 루시퍼님의 불사의 군대를 건드린 것이 누구더냐!!!]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불쾌하게 울려 퍼지는 불친절한 전음.

그 기분 나쁜 전음에, 나는 표정을 찡그리며 전음의 방향을 추적했다.

그 전음을 추적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서는 날개를 활짝 편 마족 하나가 당당한 모습으로 팔짱을 끼고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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