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어이, 저기 봐. 저 사람들이 그 소문의 1학년 헌터 팀이라는 것 같은데.”
“나 데모닉 게이트 사건 때 직접 봤어. 저 여자애가 이블아이야…….”
“우와, 저 금발 봐봐. 나 염색 말고 진짜 금발은 처음 봐.”
“야야, 뭔가 저기 있는 사람들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것 같은데?”
“우와… 말이라도 걸어볼까?”
카페 안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은 물론, 테이크 아웃을 위해 잠시 들렀던 사람들조차 발걸음을 멈추고서 카페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한 테이블을 지긋이 바라보거나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
“… 일이 조금 커진 것 같네만.”
“내, 내 탓인 척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 테이블은 바로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이었다.
처음에는 조은대 학생으로써 관심을 받고 있었을 뿐이었고, 그 관심을 주는 사람들조차 옆 테이블의 여대생 그룹이 전부였었다.
하지만, 그러다 카페 안으로 일련의 헌터무리들이 들어왔고.
‘오, 저번 레드급 토벌 때 뵈었던 헌터학과 분들 아니세요? 그 때는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야, 역시 소문대로의 실력이시더군요.’
그들은 우리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저번 일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다.
굳이 아는 척을 해오면서 감사를 표해온 것은 참 고마운 일이었다만, 덕분에 카페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들에게 집중되었다.
이번 데모닉 게이트 사태로 헌터라는 직업의 위험성이 대두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헌터는 일반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으니까!!
그렇게 점점 인파가 모여들다, 지금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저기 여자애들 진짜 이쁜데??”
“저 금발, 진짜 이쁘다. 내 취향인데? 음… 번호라도 따볼까.”
‘뭐, 꼭 헌터라서만 관심이 모이고 있는 건 아닌 것 같구만.’
방금 금발 쪽을 취향이라고 제멋대로 지껄인 녀석에게 충격파를 쏘아 보내며, 나는 내려뒀던 레몬에이드 잔을 들어올렸다.
잠시 후 충격파를 쏘아냈던 방향에서 사람 머리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팀의 여자 인원들은, 주관적으로 봤을 때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외모가 꽤 뛰어난 편이었다.
약간 어른스러운 느낌을 갖고 있으면서도 청초한 느낌의 품격을 동시에 지닌 김세율.
전체적으로 귀엽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반전적인 매력을 감추고 있는 이소연.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선명한 금발과, 밸런스 잡힌 몸매의 미카엘라.
‘이것만으로도 남자들의 시선은 모일 만 하지…….’
아름다운 여자가 있으면 무심결에 발걸음이 멈추고 눈길이 간다.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남자의 본능에 가까운 것!!
“그럼 슬슬 일어날까요.”
“…그러는 게 좋겠군.”
방금 전에 우리 팀 여자들을 두고서 평가하듯 자기들 멋대로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모두가 짐을 챙기며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놈의 과잠 좀 집어 넣으라구욧!!”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눈에 불붙이고 쳐다보지 좀 마… 그거 진짜 무섭단 말이야.”
보다 못한 소연이의 눈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일렁거리기 시작하자, 전민호가 기겁하며 들고 있던 과잠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이제 정리도 끝내고,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그 때, 우리 테이블 옆에 미세한 공간의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어머, 카페야? 나도 느긋하게 커피라도 한 잔 하면서 쉬다 가고 싶네.”
공간의 틈에서 빠져나온 은발의 여성이 반갑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했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는 크리스가 나타났다.
“뭐야, 저 사람 갑자기 나타났어… 마술이야?”
“아니, 저건 말로만 듣던 텔레포트인 거 같은데. 우와, 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저 사람도 이쁘다… 염색으로 저런 색이 나올 수 있나?”
“나, 저 사람 S급 헌터 특집 기사에서 본 적 있어. 워프 마스터야.”
그 결과는, 안 그래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몰려있던 시선들이 더욱 부담스럽게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제는 커피를 내리고 있던 알바생들까지 나와서 우리들을 흘깃거리는 지경이 되었다.
“하아… 크리스, 이번엔 무슨 일이야?”
“내가 갑자기 찾아오면 임무겠지 뭐겠니?”
“그런 것 치고는, 최근에 찾아온 빈도수가 좀 쓸데없이 많은데…….”
나는 이틀 전에도 보드카랑 토닉워터를 들고서 내 기숙사 문을 두드리던 상황을 떠올리며 말했다. 내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언니, 이번에는 무슨 일인데요?”
“이번에는 인도 쪽이야. 캘커타에 카오스 게이트가 열렸어.”
“음… 요즘 너무 자주 열리는 것 같네요.”
데모닉 게이트 사태가 벌어진 이후, 데모닉 게이트처럼 단기간에 차원 에너지를 전부 소모하여 몬스터들을 쏟아내는 게이트들이 세계 곳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존의 게이트와 달리 오픈 시간을 예측하기가 힘들고, 단기적으로 폭발적인 물량을 쏟아내는 이런 게이트들을 협회 측에서는 카오스 게이트(Chaos Gate)라고 명명하였으며, 카오스 게이트는 각 국가들의 요주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카오스 게이트들이 데모닉 게이트처럼 역대급 규모로 열리는 건 아니었기에 데모닉 게이트 때와 같은 악몽이 전 세계에 열리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요새도시 외부에 몬스터 무리가 느닷없이 출몰한다는 건 이미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사실 캘커타에 열린 카오스 게이트는 이미 오픈이 끝나서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야. 문제는 갑자기 대량의 데스나이트가 쏟아져 나와서 협회 쪽에 긴급하게 요청이 들어왔어.”
“데스나이트… 데모닉 게이트 이후로 언데드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네요.”
데모닉 게이트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언데드 몬스터가 지구에 나타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 이후로는 꾸준히 나타나고 있었다.
언데드 몬스터의 특징은 상대하기 꺼림칙하다는 것과, 마석을 주지 않는 다는 점.
그 특징 때문에 언데드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상황에서는 용병대를 고용하거나 토벌 팀을 모집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상 무보수로 하는 일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한 기 한 기가 레드급 몬스터에 해당되는 데스나이트 무리를 막기 위해 나설 헌터 팀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과연 그런 실력을 가진 헌터 팀을 찾을 수 있을 지는 둘째치더라도 말이다.
때문에 헌터 협회 측에서는 이런 국가들의 요청을 받아 토벌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물론 협회 측도 무료 봉사를 하는 단체는 아니었고, 인원 또한 한정되어있었기에 레드급 이상의 몬스터 토벌만을 수행했으며, 긴급 요청의 경우에는 해당 국가의 정부로부터 별도의 의뢰비를 걷었다.
크리스가 이곳으로 텔레포트 해온 것은, 해당 임무에 나와 소연이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나와 소연이는 S급 헌터였고, S급 헌터는 기본적으로 다른 국가에 소속되기 이전에 협회에 소속되어있는 형태였으니까.
“덕분에 인도 쪽에서 투입시켰었던 헌터들은 박살이 나거나 줄행랑을 친 상황이야. 방어라인만 겨우 유지되고 있지.”
크리스의 말에 따르면 인도는 지금 사실상 은퇴 상태에 놓여있던 기존 군대들까지 총동원시켜서 몬스터들을 막고 있는 듯 했다.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한 방어전이었다.
“요즘 들어 갑자기 생겨나기 시작한 카오스 게이트나 언데드 몬스터들도 그렇고, 레드급 몬스터가 나오는 빈도가 2배 정도로 늘어난 것도 그렇고… 뭔가 예전보다 상황이 심각해진 것 같은 느낌이네요.”
소연이는 아까 전부터 고개를 숙이고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레드급이 많이 나와 봤자 삼일에 한 번 꼴이었는데… 요새는 한국에서만 하루에 2~3마리씩은 나오고 있어요. 저번의 그 뿔 달린 남자도 아직 뭐하는 녀석인지 모르겠고…….”
최근 언데드 몬스터들이 나타나고 몬스터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마족들에게 지구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동네였다.
에스퍼, 즉 마나 유저의 숫자도 극히 희소하며, 마왕군의 침략을 제대로 막아낼 국가는 별로 없다.
그런데 지구에 있는 인구수는, 게이트가 열린 초반기에 많이 줄었다고는 해도 40억을 넘겼다. 아스트레아에와 지구를 제외한 다른 세계의 인구수가 어떨지는 몰라도, 40억이라는 숫자에 담긴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아스트레아라는 세계에만 마왕이 3명이 침략했었다. 그 뜻은, 아스트레아에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으리라.
하지만 아스트레아에 비교하면 지구는 몇 십 배라 해도 좋을 정도의 인구수를 가졌다.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혼이 목적인 마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말하자면, 지구는 아직 아무도 손을 안 댄 노다지 광산이었지만, 거길 지키고 있는 수비 병력은 허접하기 짝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때문에, 나 역시 일단은 헌터 협회 측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일단은 가자고. 크리스.”
“다행이네. 혹시 거절당할까봐 조마조마했었는데. 아, 저번처럼 다른 사람들도 데려갈 거야?”
원래는 이소연과 나만 움직이는 게 기본이지만, 최근에는 미카엘라와 김세율도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김세율은 화력만큼은 S급 헌터에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고, 미카엘라는 레드급을 상대로라면 에이스급으로 활약할 수 있는 실력까지 성장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위험한 상황에까지 둘을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대답을 미루고,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데스나이트 무리가 상대이고, 카오스 게이트는 데스나이트 무리를 마지막으로 차원 에너지를 전부 소모하고 닫힌 상황이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둘을 데려가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나는 그렇게 결심을 내렸다.
“좋아, 미카엘라랑 세율 누나도 같이 가자. 둘이 괜찮다면 말이지.”
“잘 모르겠지만, 인도 쪽에 카오스 게이트가 열렸다는 거지? 협회의 다른 분들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힘이지만… 그래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나 또한, 굳이 몸을 빼지는 않겠네. 함께 가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둘에게 물어봤지만, 역시나 둘은 그 자리에서 즉답을 내렸다.
“뭐… 그 주변은 제가 옵저빙을 담당하게 될 테니, 큰 문제는 생기지 않겠죠. 만약의 경우에는 원호 오빠도 있고.”
소연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사실 그렇게 걱정할만한 실력들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김세율과 미카엘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김세율은 한 때 프로 헌터로써 이름을 날리던 시절보다 몇 배는 강력해져있는 상태로, 이미 A급 헌터 상위의 수준에 도달한지 오래였다.
그리고 미카엘라는, 과연 선생님의 과거 모습이라 그런지 터무니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을 보였다.
그녀는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슬라임 자이언트의 탱킹도 힘겨워하던 모습을 보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레드급 몬스터의 탱킹도 가볍게 해내는 수준이었으며, 위험하기는 하겠지만 잠시 동안이라면 크림슨 레드급의 탱킹까지도 가능할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크림슨 레드급 토벌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내가 막을 테지만.
“자, 결정됐으면 빨리 출발하자. 내가 좀 가볍게 말했지만, 지금 캘커타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아서 말이지.”
말을 마친 크리스는 사람 하나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 크기의 워프포탈을 열었다.
포탈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들어간 것은 소연이었다. 소연이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포탈 안에 곧바로 발을 들이밀었다.
미카엘라와 김세율은 아직 포탈을 이용하는 게 어색한지 조심스럽게 발을 집어넣었고, 나 또한 그 뒤를 따라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 * *
“으음.”
“…….”
“흠.”
전민호와 박서준, 그리고 이세형은 엉겁결에 카페에 방치된 꼴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조용히 창가를 바라보거나 빈 커피 잔을 괜히 만지작거리면서 자리에 앉아있었다.
워프 포탈이 열리는 것으로 정점을 찍었던 사람들의 관심은, 이후 빠르게 식어버렸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길 정도로 북적거리던 카페 안은 이제 한산하다 못해 한가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할까.”
“…그래.”
그들은 이미 정리해뒀던 짐들을 챙기고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던 것은 결코 자신들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그 사실을 조금 잔인한 방법으로 깨달아버렸다.
‘…조금은, 가슴이 아프군.’
‘나도… 관심 받고 싶다고.’
‘…….’
1학년 실습 팀의 남자 3인방은, 쓸쓸한 발걸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