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새로운 일상
“근데 말이야, 우리도 이제 사실상 프로 헌터라고 봐야 되는 거 아니야?”
테이블 바깥쪽에 앉아서 컵에 꽂은 빨대를 조용히 빨고 있던 전민호가 말했다.
“안 그래? 지금 우리 팀이 웬만한 프로 헌터 팀보다 훨씬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잖아. 실적도 훨씬 높고.”
“흐음… 내가 프로로 활동하던 시절보다 요즘이 바쁜 건 사실이니, 굳이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필요 이상의 자만은 독이 된다네. 자만심이 아예 없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야.”
전민호의 말에 김세율이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뭐, 헌터 숫자가 많이 줄어들기도 했고, 최근에 갑자기 몬스터가 나타나는 빈도도 늘어났으니까요.”
“바빠서 나쁠 게 뭐가 있겠나. 나는 당당하게 수업을 빼먹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다만.”
앞에 놓인 커피 잔을 휘젓고 있던 이소연과, 가만히 앉아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이세형이 말했다.
“억, 이세형 너는 수업 듣는 거 되게 좋아하지 않았냐?”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한 거지?”
“그야… 너 땡땡이 깐 적도 한 번도 없고, 수업 시간에 졸지도 않고…….”
“다른 건 몰라도, 대학교 이론 수업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만.”
이야기는 점차 길어지기 시작했고, 곧 잡담이 되었다.
데모닉 게이트 사태가 마무리 된 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대한민국은, 어비스 게이트 때보다도 훨씬 심각했던 이 대재앙을 견뎌냄으로써 다시 한 번 에스퍼 강국으로써 그 위용을 전 세계에 떨쳤으나 그에 걸맞은 피해를 입었다.
물론 민간에서의 피해는 기적적으로 조금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속해있던 헌터들의 숫자가 너무 많이 줄어버렸다.
데모닉 게이트가 열리기도 전에 타국과 계약을 맺고서 한국을 떠나 국적을 옮긴 헌터의 숫자가 이미 2할을 넘긴 상태였으며, 전투에 참여한 나름의 정예 인원들 중에서 또다시 약 2할에 해당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더군다나 데모닉 게이트 전투에서 중상을 입어 한동안 전투를 치룰 수 없는 헌터들의 숫자 또한 무려 1000여명에 달했다. 전투 참여자의 6할 가량에 해당되는 숫자였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전투가 끝난 후에도 헌터 협회 측에 지원부대를 요청해야만 했다.
‘데모닉 게이트 전투에서 사력을 다한 대한민국은, 이제 점차 쇠락의 길에 들어설 것이다.’
대한민국의 위기상황을 바라보는 대다수 국가들의 시선이었으며, 여타 관련 전문가들 역시 이와 비슷한 전망을 예측했다.
하지만 그 이후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그런 부정적인 관측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헌터의 숫자가 부족하더라도, 남아있는 헌터들은 데모닉 게이트 전투에서도 살아남았을 정도의 정예들이었으며, 흩어져있던 S급 헌터들 역시 하나 둘 씩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부상으로 입원해있었던 S급 7위 마탄사 고은소가 복귀했으며, 호주에 발이 묶여있었던 S급 10위 광폭의 레이크 역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또한 학교에서 업무를 본답시고 한동안 사실상 은퇴상태에 있었던 유선 또한 다시 토벌활동을 개시함으로써, 단숨에 S급 헌터 3명이 추가된 셈이었다.
거기에 S급 1위 블러드 레이스, 이태현이 한동안 소속을 협회에서 대한민국으로 옮기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함으로써, 대한민국에는 S급 헌터만 4명이 활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6명인가…….’
나는 내 맞은편에 앉아 카페모카를 마시고 있는 소연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실은 아니었지만, 한 달 전쯤에 협회에서 온 제안을 받아들였기에 나 역시 S급 헌터로 등록되어있는 상태였다.
‘뭐, 그래도 인원수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에 있는 헌터들의 숫자가 많이 줄어들은 건 사실이었고, 아직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병실에 누워있는 중상자들의 숫자도 많았다.
S급 헌터가 아무리 절대적인 힘을 자랑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구역을 일일이 담당할 수는 없었다. 질보다는 양으로 해결해야하는 문제도 있는 법이었다.
덕분에, 어디까지나 학생에 불과한 우리 팀도 발바닥에 땀이 마를 일이 없을 정도로 뛰어다니게 된 것이다.
“요 일주일 동안 요새도시에 안 간 날이 없다고… 이젠 그 쪽에 있는 임시 쉼터가 기숙사보다도 마음 편하게 느껴질 지경이야…….”
전민호가 책상에 몸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그의 손에 밀리는 컵을 옆으로 치우면서, 이소연의 표정이 조금 찡그러졌다.
“이럴 거면 그냥 졸업시켜주고 프로 헌터로 등록시켜 달라고…….”
“오빠, 어차피 프로 헌터랑 똑같이 혜택받고 있고, 마석배당금이랑 포상금도 프로 헌터들이랑 똑같이 받으면서 뭘 그래요?? 오히려 학교에서 지원금까지 받는 상황이라 프로 헌터보다 더 상황이 좋은 것 같은데.”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소연의 말에, 전민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난 프로 헌터가 되는 게 꿈이니까… 프로라고 불리면 뭔가 달라 보이잖아? 솔직히 돈은 이제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이 모였지. 나는 이 돈 평생 다 쓸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프로에 대한 가벼운 생각에는 동의하기 힘들지만… 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모였다는 부분에는 동의하도록 하지.”
“아아, 나는 이제 통장 잔액을 확인하는 것도 두려울 지경이다…….”
전민호의 말에, 박서준과 이세형이 동의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우리 팀은 옐로급 토벌은 물론 레드급 토벌에까지 심심찮게 투입되기 시작되었다. 물론 나와 이소연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둔 유선의 짓이었다.
미카엘라와 김세율을 제외한 다른 3명의 팀원은 아직 레드급 토벌에 참가할 실력이 되지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소연이의 옵저빙과 서포팅은 장난이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내가 직접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는 것으로, 우리 팀은 어찌저찌 레드급 토벌도 무난하게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레드급 토벌 전적이 추가될 때마다 우리들 통장에 입금되는 돈도 쌓여만 갔다.
비록 데모닉 게이트 전투에서는 공헌도가 낮았기에 큰 보상을 받지 못했다지만, 이후 헌터의 숫자가 부족한 상황 탓에 하루가 멀다 하고 임무를 수행해온 결과 우리들의 통장에는 억 단위의 돈이 쌓이게 되었다.
통장에 찍혀있는 액수에는 최근 3번째 반점까지 찍히게 되었다.
백만장자(Millionaire)가 억만장자(Billionaire)로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만약 열심히 월급을 모아가며 살아가는 사람이 내 통장의 입금 내역을 보게 된다면, 아마 단숨에 노동 의욕을 상실하겠지.
“처음에는 돈 모이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의욕이 생겼는데… 요샌 그렇지도 않단 말이지. 별 감흥이 없어.”
“배부른 소리 하지 말아요. 제대로 돈 써본 적이 없어서 할 수 있는 소리에요. 돈은 모을 수 있을 때 모아둬야 하는 거라구요.
“아니, 꼭 그런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네만…….”
“다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때, 가만히 앉아 다른 사람달의 말을 듣고 있던 미카엘라가 입을 열었따.
“헌터라면, 힘없는 사람들을 구하고, 더 나아가 이 사회를 지켜나갈 생각을 해야지!! 그 보상은 어디까지나 다음의 이야기야. 안 그래?”
“…그래. 미카엘라, 네가 옳아.”
언제나처럼 대화는 미카엘라의 발언으로 끝났다.
여기서 대화를 이어가봤자 미카엘라의 의견은 굽혀지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흐뭇하기 짝이 없었다.
‘선생님의 옛날 모습인가…….’
옛날이었다면 허울 좋은 이상에만 빠져 현실을 볼 줄 모르는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녀가 선생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된 지금은, 그 모습이 뭔가 순수하고 정열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색안경을 써도 단단히 썼다고 지적해도 상관없다. 사실이었으니까!!
선생님에 관한 일에서 만큼은, 나는 얼마든지 색안경을 쓸 수 있다.
‘마을 사람의 부탁? 그딴 거 들어주면 뭐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냐? 정신 좀 차려라, 꼬맹아.’
옛날, 선생님과 함께 모험을 다니던 시기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 감상은 더더욱 극대화 되었다. 그 때의 선생님은 뭔가 산전수전 다 겪은 전사 같은 이미지였다.
‘선생님도 순수하던 시절이 있었구나~’
“…원호 오빠, 또 이상한 표정 짓고 있거든요?”
“무, 뭐, 뭐가?”
소연이의 지적에 나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앞에 놓아뒀던 레몬에이드 잔을 들어 올려 입에 댔다.
“에휴, 하여간…….”
“그건 그렇고, 민호. 그 옷은 뭔가?”
“아, 이거요? 누나?”
김세율이 전민호가 걸치고 있던 외투를 가리키며 묻자, 전민호는 외투를 벗은 다음 등짝 부분을 활짝 펼쳤다.
그곳에는 ‘Jouen University Hunting(조은대학교 헌터학과)’라 크게 박힌 글자 밑에, 24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누나, 이게 바로 과 잠바라는 겁니다! 줄여서 과잠!!”
전민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외쳤다.
“대학생이라면 역시 과잠이죠!! 안 그렇습니까?”
“흐음, 우리 학과에도 과잠이라는 게 있었나…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전민호가 내민 과잠바를 천천히 살펴보며, 김세율이 물었다.
“없어요!! 아무도 과잠 만들자는 소리를 안 하고, 만들자고 해도 별 반응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 것부터 일단 만들어 본거죠! 어때요? 괜찮죠?”
“…못 살아, 진짜. 다른 헌터들은 되도록이면 자기가 헌터라는 사실 안 밝히려고 숨기는데, 아예 대놓고 광고를 하려고요?”
“그래, 나도 이 일은 조금 철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군.”
소연이가 전민호에게 뭐라 한 마디 하자, 이세형이 옆에서 거들었다. 박서준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조은대인걸? 명문대인걸? 조금은 자랑하고 싶잖아? 주변이 알아봐 줬으면 하잖아? 철없는 소리인 건 나도 알지만, 다들―”
“어머, 저기 봐, 조은대 학생인가봐.”
“와, 나 조은대 과잠은 처음 봐―”
그 때,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대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흐름이 바뀌었다.
“크흠.”
“흠, 흐흠.”
“내 생각에는 말이야. 이번 데모닉 게이트 사태에서 우리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범국가적 전략으로써는 선택지가 한정되어있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갑자기 헛기침을 내뱉은 박서준과 이세형은, 시키지도 않은 데모닉 게이트 사태 분석을 시작했다. 옆 테이블까지 들리기에 충분한 목소리로.
“와, 난 무슨 소리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얘.”
“역시 조은대 학생은 다른가봐.”
“야, 헌터학과라는 거 진짜 있나봐? 난 헛소문일줄 알았는데―”
여대생 그룹은 여기까지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로 소근거리듯 말하고 있었지만, 에스퍼로써 단련된 우리들에게 그 소리는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 선명히 들려오고 있었다.
생생하게 들려오는 그 말들을 들으면서, 그 박서준과 이세형 사이에 앉아있던 전민호는 팔짱을 낀 상태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은, 마치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은 무명 장인의 것과도 비견될만한 것이었다.
“…….”
“…….”
김세율과 이소연, 미카엘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의 관점은 조금 미시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 여기선 좀 더 거시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헌터 협회의 블러드 레이스로 익히 알려져 있는 이태현의 말에 따르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자신들도 모를 것이 분명한 그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들어보고 싶었다.
명문대 학생 소리.
지금 만큼은 과잠을 입고 다닌다는 선구적 발상을 해낸 전민호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줄 수밖에 없었다.
“…오빠까지.”
이쪽을 바라보는 소연이의 눈빛을 견디면서도, 우리들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