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60화 (60/135)

60화

작전에 참여한 헌터 총 1742명.

중상자 및 전투불능 총 1027명.

사망자 총 321명.

피해 추정액―

“…쯧.”

병실 침대의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로 보고서를 훑어보고 있었던 유선은, 혀를 차면서 다음 장으로 보고서를 넘겼다.

다음 장에는 참여자들 가운데 A급과 B급 등으로 나뉜 등급별 참여자의 비중과, 각 등급에서의 사망자 숫자처럼 좀 더 세부적으로 정리된 인원 분석들이 적혀있었다.

데모닉 게이트 사태가 발생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어비스 게이트 이상의 출력을 가진 게이트가, 고작 몇 시간 만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몬스터를 소환해내고 심지어 추가로 다른 게이트까지 열려버렸던 전대미문의 사태.

한국은 그 부조리할 정도로 최악인 사태를, 민간 피해를 조금도 내지 않고서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에스퍼 강국이라는 말이 결코 허황된 말이 아니었음을 스펙타클한 방식으로 스스로 증명해낸 것이다.

하지만, 그 피해는 치명적이었다.

당장에 천여 명의 헌터들이 입원신세를 지고 있었고, 참여자중 대략 2할의 사망자가 나와 버렸다. 덕분에 당분간은 헌터 협회의 지원을 받아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요엘, 그 개 같은 자식.’

이게 다 그 병신 같은 놈 때문이다.

사망자나 중상자들의 대부분은 녀석의 독이 작용하기 시작했을 때 발생했다.

그 뒤의 보고서는 대충 빠르게 훑어만 보고서, 유선은 들고 있던 보고서를 옆에 있는 탁자 위에 던져두었다.

원래 그녀가 보고서를 읽는 걸 굉장히 싫어하기는 했지만, 보기 싫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읽고 있으려니 조금 기분이 착잡해져 도저히 읽을 기분이 안나 잠시 멈췄을 뿐이다.

저기에 적혀있는 321명 중 대부분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자신의 지시나 권유에 따라 작전에 참여한 헌터들이었으니까.

게다가 저 321명중에는, 나름 오랫동안 얼굴을 트고 지내왔던 현검 황태진도 들어있었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죽고 나면 얼마든지 쉴 수 있으니 은퇴는 나중으로 미루겠다고 지껄이던 영감이었다.

만약 죽는다면, 의미 있는 곳에서 의미 있는 죽음을 맞고 싶다고.

전방에 배치되었던 황태진은 마비독이 퍼진 후에도 쓰러지지 않고서 끝끝내 다른 헌터들을 지켜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거짓말처럼 몬스터들이 전부 쓰러지기 시작했을 때, 그 때 함께 쓰러졌다고 한다.

…나름 자기가 바라던 대로의 죽음을 맞이했으니, 영감에게 후회는 없으리라.

크리스는 다친 몸을 이끌고서 그의 무덤에 술 한 병을 헌주함으로써 전투 이후로 미뤄뒀던 그와의 술 약속을 지켰다. 크리스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엉망진창이었지만.

유선은 이번 전투가 사망자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전투임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각오를 마친 일이라고해도 태연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건 좀처럼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새삼 자신의 정신력이 그다지 튼튼하지도 않다는 걸 느꼈다.

“또 대충 읽고 던져두신 겁니까?”

“…환이냐?”

병실 문을 열고서 들어오는 남자에게, 유선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몸 괜찮냐? 벌써 움직여도 되는 거야?”

유선이 알기로, 류환은 학생을 지키다가 오크의 도끼에 옆구리를 찍히는 중상을 입었다고 알고 있었다.

“유선님이 지나치게 많이 다친 겁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지금 다 돌아다니고 있어요.”

“…너 밑에 붕대 삐져나와있는데?”

“에엑? 그럴 리가 없는데?”

류환은 고개를 숙여 유선이 가리킨 부분을 살펴봤다.

하지만 붕대는커녕 삐져나온 실오라기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흠.”

“또 무리하면서 나대다가 병가 내지 말고, 치료받을 때 확실히 받아둬라.”

유선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류환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탁자 옆의 의자를 꺼내앉아 보고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보고서 확인도 못하는 상사를 위에 두고서 어떻게 편히 쉬란 말입니까? 일 할 수 있을 때 일 해둬야 서류 폭탄을 피할 수 있는 법이죠.”

류환은 툴툴거리듯이 말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친근한 배려가 느껴졌다.

“…시끄러우니까, 일할 거면 다른 데 가서 일해.”

“싫습니다. 혼자 있는 거 은근히 싫어하시잖습니까?”]

묵묵히 일을 시작하면서, 류환이 평소대로의 목소리로 말했다.

“…흥.”

유선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새침한 콧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리고는 리모컨으로 TV의 전원을 켰다. TV에서는 한참 화제가 되고 있는 데모닉 게이트의 의문의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하긴, 요즘은 어딜 틀어도 이 얘기뿐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영웅은 필요한 법이니까.

<제가 직접 봤다니까요!! 그 결계가 탁하고 사라지더니, 몬스터 시체가 우루루루― 쏟아져 나와서 이게 뭔 일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거기서 키 크고 멋진 남자가 탁 하고 서있는 거에요!! 크으, 막 뒤에서 후광 같은 것도 막 났구요―>

<제 생각엔 그 분이 블러드 레이스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 분이 한국인이라는 말도 있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오셨던 거죠!! 드래곤까지 때려잡으셨던 분인데 몬스터 무리 몇 개 정도가 대수겠어요?>

<쓰러지기 전에 봤어요. 다들 착각하고 계시는데, 그 사람은 남자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금발을 휘날리는 미녀였어요!! 그 사람이 뭐라 중얼거리더니 결계가 펼쳐지면서 사라지는 걸 봤단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정말 한 번만 만나보고 싶―>

<헌터덕후를 자처하는 제 의견으로는, 그 황금빛의 결계라는 건 S급 헌터 4위, 마슈가 선보인 적이 있는 심판의 결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전투에 헌터 협회에서 지원을 왔다는 S급 헌터 중에 마슈가 있었던 거겠죠… 이런 젠장 나도 마슈 실제로 보고싶―>

“허.”

TV에서 나오는 인터뷰들을 바라보며, 유선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저 정도면 거의 간증 수준이다.

‘소문이 불어나도 정도가 있지.’

하긴, 후광은 그렇게 틀린 말까지는 아닐지 모르겠다.

조원호가 싸우는 모습을 봤을 때, 그의 주변은 선명한 에테르의 빛으로 휘감겨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외에는 환각에 가까운 헛소리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목격자라는 놈들이 죄다 신경 독에 몸도 마비되고 의식도 해롱해롱한 상태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리라.

저 영웅이라는 녀석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유선으로써는 꽤나 볼만한 볼거리였다.

<하하, 의문의 영웅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그 와중에 새로운 S급 헌터가 뽑혔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헌터 협회 측에서는―>

“아, 환아.”

“예.”

TV를 보고 있던 그녀가 부르자,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던 류환이 답했다. 그의 고개는 여전히 보고서를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맥주 좀 사다줄래.”

“…? 안 됩니다.”

“흐음…그래?”

“에, 에테르 쓰시면 안 된다는 말 못 들었습니까? 의사 선생님 불러옵니다?”

“의사 양반이 빠를까, 내 마법이 더 빠를까.”

“이…이이익!! 술 마시면 안 된다는 말 벌써 잊은 겁니까?”

“그 말, 그냥 감기 걸려서 병원 가도 듣는 말인거 알지?”

잠시 후, 결국 류환은 투덜거리며 지갑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 * *

“이야아― 그건 그렇고, 소연이가 S급 헌터였을 줄은 몰랐어.”

“…!!!”

“!!!”

옐로급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호출을 받고 요새도시로 이동하고 있던 중, 무신경하게 던져진 전민호의 한마디에, 차 안에는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소연이가 감췄던 건 이유가 있을 테니, 우리들은 조용히 하자.’

불과 몇 시간 전에 나눴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저 멍청한 놈이 대놓고 그걸 언급해버린 것이다.

주변의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하, 하하… 그러고보니 이번에 S급 헌터 한 명 더 뽑혔다던데, 다들 그게 누구라고 생각하나??”

“그, 그러네. 내 생각에는 그 의문의 영웅이라는 사람이 가장 확률이 높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세형이 말을 돌리자 미카엘라가 멋지게 토스를 받아냈다. 하지만,

“저 이블아이 맞아요. 그동안 감춰서 미안해요.”

“…!!”

“!!!”

“그렇지? 하하, 이블아이라는 사람을 봤을 때 내가 딱 눈치 챘다니까? 눈에서 불이 나고 있어도… 어, 어라. 왜 다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이소연의 선언에 분위기는 다시 한 번 급변해버렸고, 또다시 자신이 눈치가 없음을 증명해내고 있는 전민호를 모두가 죽일 듯이 쳐다봤다.

“하아, 그러지 마요. 진짜 괜찮으니까.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대해줘서 고마운 걸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지만, 다들 할 말을 잊고서 뻘쭘하게 창가를 바라봤다. 전민호도 이제 슬슬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입을 다물었다.

“으음, 그렇다면, 지금 인사를 건네도 상관없겠군. 이블아이라는 사실을 감추는 것 같아 다음에 이블아이로 만나게 됐을 때 하려고 했다만.”

그리고 김세율은 이소연에게 목례하며 말을 이었다.

“그대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네. 정말 고맙네.”

“아니, 뭐. 그냥… 아이 그러지 말아요, 언니!!”

“그렇지. 네 덕분에 살았다, 이소연.”

“고생했어, 소연아. 이제와서 말하지만 진짜 멋있었어.”

“이… 다들 일부러 그러는 거죠?”

뭔가, 굉장히 무난한 분위기였다.

‘이거… 나도 말해도 되는 건가.’

그리고 지금, 나는 내 정체를 밝혀도 되나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평범하다’라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은 지금, 나는 무작정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뒤쫓던 과거의 모습을 고집할 필요도 이유도 없어졌다.

그 때문에, 나는 헌터 협회 측에서 S급 헌터를 제안해왔을 때도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여기서 정체를 굳이 밝히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것도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것도 뭔가 어색하고 유치한 짓거리이지 않겠는가.

―나는 사실 힘을 숨겨왔고, 너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단다!! 그 마족을 때려죽인 것도 나고, 미카엘라를 구한 것도 나야!! 그래, 바로 내가 바로 그 의문의 영웅이야!! S급 헌터도 달았다고!!

…이 정도면 관심병도 말기에 달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고, 미카엘라가 영국에서 온 줄은 알았지만 그 레지스터 가문이었다니, 대체 누가 알았겠어.”

그 와중에 전민호가 다시 들뜬 목소리로 말햇다. 팀원들이 다시 모인 건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오늘만 3번째 듣는 소리였다.

“그 말 좀 그만해라. 아까도 말했지만, 미카엘라는 처음 자기소개 때부터 자신을 레지스터라고 말했다.”

이세형이 귀찮음이 담긴 목소리로 전민호에게 답했다.

“…그건 그렇고, 미카엘라에게 질문이 있는데.”

그 때까지 조용히 있던 박서준이 말을 꺼냈다.

“그 결계가 심판의 결계고, 심판의 결계를 펼친 게 너라면, 요즘 떠들썩한 의문의 영웅도 너라는 것 아니냐?”

그의 질문에, 이소연과 김세율이 갑자기 내 눈치를 살폈다.

뭐야, 그러지마. 괜히 수상해보이잖아.

“…그래, 심판의 결계를 펼친 건 나야. 하지만 마무리를 지은 건 내가 아니야. 왜냐면, 나도 도중에 정신을 잃었으니까.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의무대에 누워있었다고.”

미카엘라가 손을 살살 저으면서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리야? 의문의 영웅?”

그 때, 전민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는 뉴스도 안보나. 이번 사태를 홀로 마무리한 걸로 추정되는 인물이잖나.”

“아, 혹시 그, 결계가 사라지고 나서 혼자 걷고 있었던?”

“그래, 그 사람 말이야. 그 사람을 의문의 영웅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세형이 말했다.

“아무도 못 봤어? 그거 원호였잖아.”

“…?”

“아니, 미카엘라 안아들고서 걷던 거. 그거 원호였잖아. 아냐?”

전민호는 나를 쳐다보며,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이소연과 김세율은 당황감으로.

이세형과 박서준은 충격으로.

미카엘라는 부끄러움으로.

저마다 눈동자에 담긴 의미는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그…….”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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