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싸움이 끝나고
배후에 있을 엘라보르까지 처치하고 나서 아공간을 빠져나온 나는, 먼저 미스틸테인을 뽑아 아공간으로 회수시켰다.
그 다음, 바닥에 눕혀뒀던 미카엘라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서 작전 지휘부 건물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치료 마법으로 회복은 끝낸 상태였지만, 그래도 의무대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걸어가는 도중 주변에 의식을 잃은 채로 쓰러져있는 수많은 헌터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일단 과감히 무시하기로 했다.
이 주변에 나타났었던 마왕군은 전부 죽었으니, 이젠 위험한 일도 없었다.
엘라보르가 룬 마법을 쓰는 척하며 수작을 부렸을 수도 있었으니 감지망을 펼쳐내 주변을 한 번 확인해봤지만, 아직 숨이 붙어있는 녀석 몇몇도 바닥에 쓰러져 헉헉거릴 뿐이었지 제대로 살아있는 놈은 한 명도 없었다.
요엘이 썼다는 독도 몸이 굳고 점차 의식을 잃게 될 뿐이었지 목숨에 치명적인 독은 아니었기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막말로 이대로 방치해둔다고해도 시간만 지나면 모두 멀쩡히 일어나겠지.
그래서 나는 별 동요 없이 그들을 지나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투의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는 현장의 구석에서 홀로 쓰러져있는 소녀를 발견했을 때, 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소연이…….’
그러고 보니 크리스가 그녀에 대한 걱정을 유독 많이 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크리스는 소연이가 자신에게 모든 에테르를 쥐어짜내 준 덕분에 겨우 텔레포트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소연이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있는 상태였다.
얼마 전까지 이블아이로써 회의장 안의 모든 헌터들을 분위기로 압도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초라하고 또한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를 차마 못 본 척하고 지나갈 수가 없어, 그 옆에 미카엘라를 살며시 내려놓은 다음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기로 했다. 단순히 의식을 잃은 것 치고는 그녀의 상황이 좋지 않아보여기 때문이다.
‘마나가, 전부 메말라있어…….’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현재 심각한 에테르 탈진 증상에 놓인 상태였다.
심지어 코어까지 말라붙은 상태로 정지해있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그녀는 코어가 과부화되어 폭주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에테르를 끌어올려냈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모든 에테르를 쥐어짜냈다는 크리스의 말은 과장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였던 모양이다.
이대로 방치된다면 메마르다 못한 코어가 깨져버려서 다시는 에테르를 사용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아무리 독에 당한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S급 헌터나 되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될 리는 없었다.
그러다 문득, 배틀필드 네트워크 시스템이 작동을 멈춘 상태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지휘체계도, 서로간의 연락수단도, 그리고 전장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도 전부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런 다수와 다수의 전투에서 그것은 곧 파멸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고 주위를 둘러봤을 때, 후방의 상황은 지나치게 멀쩡했다.
헌터들이 전부 전투불능 상태가 되어 쓰러져있는 전멸상태이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요엘의 마비독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고 전선이 붕괴되거나 밀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도중에 S급 헌터인 크리스가 합류하여, 전력상으로 크게 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걸 감안하더라도 난전 상황으로 번지지 않고 계속해서 방어선이 유
S급 헌터인 크리스가 도중에 합류했다고는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난전 상황으로 번지지 않고 계속해서 방어선이 유지되었다는 건 누군가 계속 지휘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래… 혼자서 전부 유지해온 거구나.’
네트워크 시스템이 망가진 상황에서, 시스템을 대신하여 그녀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했던 거겠지. 나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그녀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닌 척하지만 사실은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목뒤에 손을 얹고서, 내 회로와 그녀의 회로를 잠시 연결시켰다. 에테르를 흘려보내 코어를 직접 활성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원래 타인의 에테르를 직접 받아들이는 건, 이물감과 거부감이 느껴지는 상당히 기분 더러운 일이라 꺼려졌지만, 멈춰버린 코어를 깨우는 건 이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래도 그런 부작용들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나는 에테르를 최대한 가다듬어서 그녀의 회로에 흘려보내 코어를 자극시켰다.
“으음…….”
이윽고 내 에테르의 자극에 깨어난 그녀의 코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코어가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에테르가 다시 자체적으로 생성되기 시작했다.
“원호… 오빠?”
그 때, 그녀의 반쯤 떠진 그녀의 눈이 나를 바라봤고, 나는 당황한 나머지 말을 잊었다
코어를 회복시킨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깨어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에테르를 흘려보낸 것 때문에 깬 건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오빠… 맞아요? 원호 오빠에요?”
“어, 맞는데… 음, 안녕?”
마치 잠이라도 덜 깬 듯한 몽롱한 목소리로 물어보는 그녀에게,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잠시 후, 반쯤 희미하게 떠있었던 그녀의 눈이 놀라기라도 한 것처럼 동그랗게 떠졌고, 그곳에는 점차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회로에 부작용이라도 생긴 건가!!’
그 모습을 눈앞에서 생생히 지켜보며, 나는 혹시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싶은 생각에 내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는 나를 부둥켜안았다. 그 바람에 나는 조금 뒤로 몸이 밀려나버렸다.
“오빠, 오빠…….”
“어, 그래. 나이긴 한데…….”
“오빠, 흐윽. 오빠…….”
그녀는 나를 부둥켜안고서 아예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다가, 천천히 그녀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어가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무리를 했었던 상황이었으니, 아마 그녀는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살아서 눈을 뜬 것이다.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은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일종의 작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흐윽, 흐아아아아앙―”
“그래, 그래…….”
나는 조용히, 울고 있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껴안고 있었다.
역시 그녀는 이블아이 같은 어설픈 악역보다는, 이런 소녀 같은 모습이 더 어울린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 * *
시간이 지나고 울음을 그친 그녀는, 이제 본부로 갈 예정이라는 내 말을 듣더니, 자기도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마무리로 뒷정리를 하기위해 본부로 가야하니 함께 가자고 했다.
그리고 그걸 딱히 거부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던 나는 그걸 허락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소연과 함께 본부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난 계속해서 미카엘라를 안아들고 있는 상태였지만, 소연이는 한동안 빤히 미카엘라를 쳐다보았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근데, 오빠는 대체 정체가 뭐에요? 은퇴하고 숨어있던 S급 헌터라도 되나?”
그러던 와중,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소연이가 물었다.
옆을 바라보니 소연이가 답을 재촉하려는 듯 뒷짐을 지고서 상체를 살짝 숙인 채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음… 이젠 사람 말 좀 제대로 할 수 있나봐?”
나는 한참동안 우느라고 퉁퉁 부어버린 목소리로 말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그,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잊어주시죠, 오빠.”
“하하하하!!”
그녀는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솔직하게 터져 나온 웃음을 거리낌 없이 터트렸다. 왠지 정말 오래간만에 웃어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 어쨌든!!!”
이소연은 툴툴거리다가 딱 떨어지는 목소리로 외치듯이 말했다. 갑자기 돌아가 버린 대화의 화제를 다시 돌리려는 것 같았다.
“오빠 정체가 뭐냐고요. 뭐 어디 동화 속에서 뛰쳐나온 용사님이라도 되는 거에요?”
“…어,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이 나올 수 있니?”
용사님이라는 상당히 익숙한 그 단어에 나도 모르게 움찔해버렸지만, 나는 최대한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를 연기하며 대답했다.
“아니… 솔직히 크리스 언니한테 오빠를 불러와달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건 오빠가 그 막막한 상황을 어떻게든 풀어주겠지―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오빠뿐이어서 그랬던 거거든요. 바리트라는 녀석은 진짜 괴물이었고…….”
‘바리트… 괴물이긴 괴물이었지.’
물론 징그러운 괴생명체라는 의미에서의 괴물이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바리트라는 녀석의 이미지는 마지막 모습으로만 남아있었다. 덩치 큰 몸뚱이로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던 모습 말이다.
“근데 제가 아직 살아있고, 오빠도 멀쩡하게 제 옆에서 걷고 있다는 건, 오빠가 바리트라는 그 녀석을 이겼다는 거잖아요? 맞죠? 그쵸?”
“그래, 맞아. 근데 어디다가 소문내면 안 된다.”
“와, 전 솔직히 블러드 레이스 정도는 돼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 아, 오빠 같이 가요! 왜 이렇게 발이 빨라요?”
“내 생각에는 그냥 네가 느린 것 같은데…….”
그런 잡담을 하면서, 우리는 작전 지휘부를 향해 걸었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그녀는 왠지 기뻐보였다.
‘뭐, 죽다 살아났으니 뭔들 안 기쁠까…….’
이윽고, 우리는 작전 지휘부가 설치된 호텔에 도착했다.
밖에서 봤을 때는 조용해보였지만, 안쪽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요엘이 배신하면서 작전 지휘부의 인원들을 모두 죽이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오빠, 저는 여기서.”
호텔 안 로비에 들어선 우리는 각자 볼일이 있는 방향으로 흩어졌다.
소연이는 환한 미소와 함께 가벼운 목례를 건네고, 시스템실로 뛰어갔다.
그 뒷모습에 잠시 손을 흔들어준 후, 나는 의무대를 찾았다.
조금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기는 했지만, 의무대는 거의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듯했다. 하긴, 요엘이라는 녀석의 목적은 인류의 파괴가 아니라 인류가 발전하도록 시련을 주는 것이라고 했으니 의무대까지 파괴할 것 같지는 않았다.
‘뭐, 그렇다고 요엘이란 놈이 또라이가 아닌 건 아니지만 말이지.’
한 때 인류의 구원자로 불리던 남자의 평가를 마치고서, 나는 의무대 안으로 들어갔다.
“아, 환자입니까? 소속이?”
“어… 조은대 헌터학과 1학년 미카엘라입니다만.”
“미카엘라? 한국인 치고는 특이한 이름이군요. 남자 이름도 아닌 것 같고.”
…??
아, 내 이름을 물어본 거였나.
“아뇨, 환자 이름이 미카엘라입니다.”
“아, 예… 그럼 보호자분은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어, 저는…….”
나는 그 순간 정체를 감춰야한다고,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여태동안 수많은 삽질을 해왔고, 이 작전에 참여할 때도 유선의 비서라는 위장신분으로 들어왔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곧 ‘그럴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해왔던 평범한 삶은, 나에게 평범한 삶이 아니었으니까.
막연히 다른 사람의 행동과 소망들을 따라하는 것이 결코 평범할 리가 없었다.
나는 해답을 찾아냈다는 만족감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같은 조은대 헌터학과를 다니고 있는 1학년 조원호입니다.”
그리고, 나는 새롭게 찾아낸 나만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