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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51화 (51/135)

51화

“요엘… 이… 빌어먹을, 새끼가…….”

이소연은 전기충격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도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마찬가지로 몸을 떨고 있는 크리스를 꼭 끌어안은 채 고개를 빳빳이 들고서 요엘을 노려봤다.

하지만 이블아이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그 안광은 이미 불이 사그라든지 오래였다. 거기에 남아있는 건 18살의 힘없는 소녀일 뿐이었다.

“하하, 아직도 버티고 있는 거야? 끈질기네, 정말.”

요엘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는 여전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 그 미소에 담긴 것은 평소의 장난 끼가 아니라 설렘이었다.

그는 크리스마스를 앞에 둔 아이처럼 설림에 가득 담긴 해막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미친놈 같아 보였다.

“피곤해 보이는데, 이제 좀 쉬는 그래. 응? 이블아이.”

요엘이 이소연의 앞에 쭈그려 앉으면서 말했다.

“하나만 물어보자.”

“물론, 괜찮지.”

“왜 이딴 짓을 하는 거야?”

이소연은 적대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인류의 구원자라고까지 불렸던 그는 더 이상 아군이 아니었다.

“하하, 왜 이런 걸 하냐고? 뭘 새삼스럽게. 언제나 말해왔잖아, 이블아이. 이번에 인터뷰해간 기사 제목이기도 한데?”

하지만 그녀가 드러낸 적대적 분위기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인류의 무한한 발전 뿐이다.”

“…뭐라고?”

“말 그대로야. 과장도, 왜곡도 없이 말 그대로라고.”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소연에게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인류의 가능성을 믿어. 하지만 그 가능성이 발휘 되는 건… 역경과 고난 속에서지.”

“…….”

“인류는 평화 속에서는 성장하지 않아.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게을러져. 그리고 도태되어버리지. 인류가 위대한 발견과 발전을 이루었던 순간은 모두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였어. 전쟁, 전염병, 굶주림… 인류는 언제나 고난 속에서 성장해왔다고.”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2017년, 인류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재앙을 맞이하게 됐지.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튀어나왔다고. 내 참, 몬스터라니, 이게 말이 돼? 말이 돼는 일이야?”

“…….”

“근데, 근데 말이야. 여기서 엄청난 반전이 일어났어. 인간들 중에 에스퍼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야!! 인류는 역경에 맞서서 다시 한 번 성장을 해냈어. 아니, 어쩌면 이건 진화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는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한참동안 떠들고 있다가, 갑자기 풀이 죽어버렸다.

“하지만… 하지만 그걸 내가 망쳐놨지… 내가 요새도시를 개발하고 난 이후로, 세계는 평화를 되찾아버렸어. 지금 상황을 봐. 심지어 헌터를 단순한 돈벌이로 여기는 녀석들까지 있다고. 이게 도태가 아니면 뭐냔 말이야? 안 그래, 이블아이?”

“…….”

“인류의 구원자?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나는 인류의 가장 놀랍고도 중요했던 변혁의 순간을 망쳐놓은 병신― 아니, 쓰레기에 불과해.”

지랄병이 나도 심하게 났다.

이소연은 고함을 치며 욕이라도 한 바가지 내뱉어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힘도 아껴야하는 상황이었기에 말을 아꼈다. 어차피 자기 혼자서도 잘 떠들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녀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척하며 계속해서 크리스에게 에테르를 공급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떠들고 있는 동안에는 저기 바리트인가 뭔가 하는 뿔 달린 녀석도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건지, 관음증 환자라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건 기회였다.

그녀에게, 아니 자신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기회.

“그래서?”

그가 슬슬 말을 끝낼 것 같은 낌새가 보이자 이소연은 말을 걸었다.

더 이상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나는 속죄의 의미로, 내가 만들어낸 요새도시를 다시 파괴하고, 내 자신이 새로운 역경이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거지.”

“…뿔 달린 수상한 아저씨까지 불러내면서?”

“자기 힘이 부족하면 남에게 도움이라도 구해야하는 법이지. 안 그래?”

“그러다가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인류가 아예 멸망해버리면?”

그녀의 말에, 요엘은 잠시 벙 찐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하, 하하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블아이.”

그러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라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좀 더 인류를 믿어보라고. 이 정도 역경에 인류가 멸망할 리가 없잖아?”

요엘의 목소리는 한없이 진지했고, 또한 그만큼 순수했다.

비록 그 순수가 왜곡되어 뒤틀린 흉측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하.”

이소연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원래 사람은 너무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하하하하하하!!”

이소연은 요엘을 싫어했지만, 자신도 그 이유를 잘 몰랐다.

하지만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됐다. 그에게는 본능적으로 거리감을 두게 되는, 핀트가 어긋난 뒤틀림이 있었다. 녀석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간에서는 이런 그의 모습을 천재의 독창성 같은 걸로 해석하고는 했었다.

독창성은 개뿔. 또라이는 또라이다.

그리고 또라이가 천재일 때, 이런 문제가 발생해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또라이일 수가 있나.”

이소연은 제자리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끝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말이다.

[언니, 부탁드려요…]

이소연은 마지막으로 크리스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녀의 전음을 받은 순간, 크리스는 눈을 뜸과 동시에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이소연에게 받은 에테르와 마지막으로 코어에 남아있던 에테르를 쥐어짜낸 마법이었다.

크리스에게 텔레포트 정도는 마치 발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마법이었지만, 망가져있는 지금의 몸으로는 그마저도 힘겹게 느껴졌다.

빠드득.

크리스는 이를 악물고서, 강제로 공간의 틈 속으로 몸을 쑤셔 넣었다. 그녀가 겨우 만들어낸 기회였다. 그걸 자신의 어리광 때문에 무산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분명 그녀가 견디고 있을 고통은, 이것보다 클 것이기에.

잠시 후 크리스가 있던 자리에는 푸른 잔상만이 남았고, 이소연은 만족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 잔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

그녀는 성공적으로 연기를 끝마친 것이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조원호는 네트워크 디바이서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어디까지나 비전투원으로, 유선의 비서로써 이곳에 왔던 것이기 때문에 디바이서가 지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실을 떠올린 이소연은 크리스에게 전음을 보냈다.

조원호에게 가서 지금의 상황을 전해달라고.

그리고 그녀는 남아있던 모든 에테르를 전부 크리스에게 양도했다.

그녀는 자기가 떠올린 가능성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냈다.

“그럼 이제…….”

엔딩롤이 올라갈 시간이야.

바리트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녀석의 손에 검은 에테르가 모여 번개의 형상이 만들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연극은 아쉽게도 열린 결말이었다.

* * *

“하하하, 이거 한 방 먹었군. 지금 상황에서도 도망간다, 이건가.”

바리트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보게, 요엘.”

“예, 바리트 씨.”

“내가 그대를 내버려둔 것은, 동족에게 배신당한 사실을 깨달은 소녀가 죽어가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일세.”

바리트의 목소리에는 잔잔한 분노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장면은 끝에 몰린 사냥감이 서서히 삶을 포기해가는 모습이지, 하찮은 잔꾀 따위나 부리는 장면이 아니었네. 그 잔꾀가 성공하는 꼴은 더더욱 말이야.”

그는 손을 들어 올려 마나를 끌어 모았다.

검은빛의 에테르가 순식간에 모이고, 다크 볼트(Dark Bolt)가 완성되었다.

별로 대단한 기술은 아니었지만, 기절한 인간 여자아이 하나 정도 끝내기에는 충분한 마법이었다. 그는 그걸 곧바로 이소연에게 내던졌다.

하지만 검은빛의 화살이 그녀를 꿰뚫는 일은 없었다.

순식간에 펼쳐진 3겹의 방어막이 다크 볼트의 앞을 가로막았다.

황금빛의 에테르로 이루어진 그 방어막은, 단숨에 2겹을 돌파 당했지만 마지막 한 장의 배리어를 남겨두고 다크 볼트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허허… 오늘은 신기한 일이 겹치고 겹치는구나.”

바리트는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리고, 슬슬 짜증이 나.”

바리트는 더 이상 분노를 감추지 않은 채 마나가 느껴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금발의 한 소녀가 겨우 몸을 지탱하고 서있는 상태였다.

“저 년은 또 무엇이냐?”

“저건… 제가 모르는 헌터입니다만.”

요엘은 한 번 본 사람은 결코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본 기억은 전혀 없었다.

지금 퍼진 마비 독은 날뛰던 멧돼지도 잠재울 수 있는 강도의 것이었다.

그걸 맞고도 아직까지 버티고 있을 정도라면 분명 뛰어난 헌터이리라. 그러나 그는 그녀가 누구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헌터학과의 1학년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아직 프로 헌터도 아니라는 것을 요엘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카엘라 레지스터, 여기서 레지스터 가문의 검으로써 맹세할지니…….”

미카엘라는 땅바닥에 꽂아 넣은 검에 의지해 몸만 겨우 일으킨 상태에서, 나지막이 주문을 외웠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들의 목숨을 한 데 묶어 내 목숨의 무게추로 삼아 함께 심판의 저울대에 올릴 지어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로 황금빛의 에테르가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허어…….”

바리트는 그 광경을 흥미롭다는 듯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끓어 넘치던 분노마저도 잠시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열려라, 심판의 결계여. 나와 저들의 생과 사가 엇갈려 저울이 기울 때까지, 이 심판은 끝나지 않음이라―”

그녀의 말을 마지막으로, 주변 일대는 터져 나오는 황금빛에 휩싸였다.

그 범위는, 후방라인 전체를 뒤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고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그녀와 바리트는 그곳에서 모습을 감췄다.

둘 뿐이 아니었다. 요엘도, 쓰러진 헌터들을 짓밟고 있던 오크들도, 수많던 해골 병사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곳에는 황금빛을 발하는 결계막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일정 공간을 압축시켜, 범위 내의 적들과 자신을 함께 가둬 외부와 단절시키는 절대계약의 결계.

레지스터 가문의 비전인 전장 봉인 결계, 심판의 결계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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