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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46화 (46/135)

46화

데모닉 게이트

“…이건.”

갑작스럽게 느껴진 위기감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니, 심상치 않은 기운이 주위에 맴돌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직후였지만, 나는 코어를 활성화시켜 감지망을 최대한 넓게 펼쳐냈다.

덕분에 세밀함과 정확성은 형편없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이 기운이 게이트가 있는 방향으로부터 퍼져 나오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평소 내 감지능력으로는 감지해낼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였다.

내 감지 능력이 닿지 않음에도 기운의 근원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딱히 내 감지능력이 느닷없이 강화되었다거나 기적처럼 우연히 감지해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이렇게나 먼 거리에서도 충분히 느껴질 정도로 그 규모가 거대했을 뿐이었다. 엄청난 양의 에테르가 한곳에 집중되며 뿜어 나오는 기운은 여기에서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게이트가 벌써 오픈된 건가…….’

당연한 소리였지만, 이토록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것은 데모닉 게이트가 오픈된 것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데모닉 게이트는 어비스 게이트와도 버금갈 정도의 거대한 출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정도 규모의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빨라.’

나는 고개를 돌려 벽에 매달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 시간은 새벽 4시 25분이었다.

데모닉 게이트가 열린 시간은 너무 일렀다.

게이트가 언제, 어디서 생성되기 시작할 지는 예측할 수가 없었지만, 일단 생성되기 시작하면 그 뒤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게이트가 열릴지는 거의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워낙 그 규모가 크고 규칙적으로 변화가 나타나기에, 일단 확인만 되면 오픈 시간을 예측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픈 예정시간이 나오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일반적인 경우에 오차 값은 20분을 넘어서지 않는다. 예외적인 경우라고 하더라도 여태동안 오픈 예정시간이 제일 많이 어긋난 것은 1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

심상치 않았다.

나는 기존의 예절들이 격하게 뒤틀려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리리리리리링―

그 때 호텔 안에서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스피커를 타고 건물 전체에 격하게 타종음이 울리자, 잠들어있던 사람들이 그 즉시 깨어나 조금 다급하게, 하지만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과연, 에스퍼 강국이라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걸터앉아있던 침대에서 일어섰다.

‘…뭐 일단은, 미리 출발해두는 게 좋겠지.’

사람 눈을 피해 방어라인을 거쳐 게이트 안쪽까지 진입해야하는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출발해서 좋을 것이 전혀 없었다.

나는 베란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과연 봄 날씨라고 하더라도 31층에서는 꽤나 매서운 새벽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꽤 어마어마하구만…….”

베란다에 서서 바라본 하늘에는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보이는 보랏빛 기운들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들은 한 지점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었고, 그곳에 가득 모인 보랏빛 기운들은 마치 먹구름처럼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몇 발자국 더 내딛어, 베란다의 난간 앞에 섰다.

그 때, 옆방에서 강렬한 에테르 기운이 깨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유선일까. 유선이겠지.

하지만 그녀가 뿜어내는 에테르 기운의 크기는 단순한 기상체조라고 치부하기에는 꽤나 격렬했다.

‘아, 그렇군.’

나는 그녀가 쓸데없이 에테르를 낭비하고 있는 이유를 잠시 생각하다, 문득 그녀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녀는 이제 코어를 활성화시키고 뛰어내릴 준비를 할 나의 에테르를 감춰주기 위해서 이런 낭비를 하고 있는 거였다.

“안티 콜드(Anti Cold).”

나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우선 매서운 새벽바람을 보다 쾌적하게 맞을 수 있도록 방한 마법을 걸어두었다.

그리고 코어를 개방시켜, 잠들어있던 에테르들을 끌어올려 활성화시켰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회로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에테르가 조금은 따뜻하게, 그리고 기분 좋게 느껴졌다.

―신체 강화, 각력.

오랜만에 개방된 에테르들은 흘러넘치듯이 온몸을 맴돌았고, 나는 그 에테르들을 조금 강제적인 방법으로 다리 쪽에 밀어 넣었다.

잠시 후, 하얀빛의 에테르가 넘실거리듯 일렁거리는 두 다리를 확인함과 동시에, 얼마든지 높이 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함이 두 다리에 맴돌았다.

“헤이스트(Haste).”

“안티 에어 레지스턴스(Anti Air Resistance).”

“스트렝스(Strength).”

비거리를 보다 향상시켜줄 몇 가지 마법들을 추가적으로 시전한 후, 나는 베란다 앞에 섰다.

“―이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는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본격적인 소환이 시작됐는지 데모닉 게이트에서는 방금 전보다 더욱 강렬한 기운을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거대한 규모의 차원 에너지를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소모하는 일반적인 게이트와 달리, 마치 단번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원호가 알고 있던 방식이었다.

‘아스트레아에서 봐왔었던 마왕군의 게이트 오픈과 비슷해…….’

그건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광경에 약간의 불길함을 느끼며, 눈앞의 밤하늘을 향해 힘껏 도약했다.

나를 위해 존재감을 무리하게 드러내고 있던 유선의 에테르가 뒤쪽으로 빠르게 멀어져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밤하늘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갔다.

얼핏 바라본 지상에서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누가 봐도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다급한 움직임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아마 돌발 상황 대기조로 편성되어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이리라.

하지만 그들도 곧 빠르게 뒤쪽으로 밀려났다. 나는 아득한 상공 위에서 그들을 넘어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밤하늘을 가르며 쇄도해나가던 나의 몸이 슬슬 포물선을 그리려 할 때 쯤, 나는 내 앞에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 크기의 배리어를 형성시켰다.

나의 에테르로 형성된 얇은 배리어가 허공에서 은은하게 하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딛고서, 다시 한 번 앞을 향해 도약해나갔다.

이렇게 된 이상 단 한 번에 게이트 앞까지 도달할 작정이었다.

* * *

이미 한밤중이었지만, 그곳의 하늘은 보랏빛 기운으로 가득 차 한층 더 어두웠으며 또한 한층 더 불길하게 보였다. 오늘밤에는 분명 평소보다도 훨씬 더 환한 보름달이 떠올랐을 터였지만, 그곳에서는 달빛 한줄기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하늘의 밑에서는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이 차원의 틈을 찢으며 나타나고 있었다. 동그랗게 뚫린 거대한 차원의 균열, 즉 게이트가 그 중심에 있었고 그 주변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며 앞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이미 그 주변은 몬스터들로 가득했지만, 마치 게이트에 쌓여있는 차원 에너지들을 단기간에 전부 끝장내버리겠다는 듯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리고, 원호는 그 광경을 뒤쪽에 있는 빌딩 옥상에서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앞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몬스터들은 평소와 달랐다.

물론 그들이 보이는 행동 패턴이 평소와 다르다는 뜻은 아니었다. 차원 이동을 마치자마자 무작정 어딘가로 달려 나가고 보는 그 모습은 여태동안 지구에 나타난 몬스터들이 보여 온 행동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원호는 그 몬스터 무리를 구성하고 있는 몬스터들의 종류가 마음에 걸렸다.

“오크에 언데드… 정말로 마왕군이었군.”

무리를 이루고 있는 몬스터들의 대부분은 오크와 언데드들로 구성되어있었고, 오크들은 허접하게나마 중장갑의 무장을 두르고 있었다. 어디 부족에서 떨어져 나온 떨거지나 야생에서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전이되어온 녀석들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언데드는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나타나지 않는 몬스터였다. 그리고 언데드를 만들어낸 그 누군가가 작정하고 보낸 게 아닌 이상, 언데드는 게이트 너머로 나타날 리가 없었다.

그러나 몬스터 무리에는 스켈레톤과 좀비들과 같은 기본적인 언데드부터 구울이나 데스 솔져 같은 녀석들까지 다양한 종류의 언데드들이 군데군데 섞여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호는 다시 한 번 유심히 주위를 살펴 마족이 나타나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마족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 이 상황에서 지휘관격인 마족들까지 소환된다면 사태는 더더욱 심각해지리라.

하지만 마왕군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상, 마족들 역시 함께 소환될 가능성이 농후했기에 원호는 긴장을 늦추지 않기로 했다.

‘뭐, 사실 전부 목을 따버리면 끝나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야.’

원호는 마지막으로 이 주변에 감시시설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하긴, 있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에테르 농도가 짙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는 안심하고서 옆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검신과 검날, 그리고 폼멜까지 전체적인 모습이 일반적인 롱소드와 거의 동일한 그 검은, 개인 장비를 따로 챙기지 않은 헌터들에게 국가에서 보급해주는 일종의 대여무기였다.

활성화시켜뒀던 에테르를 검에 불어넣자, 검은 그의 에테르 빛에 물들어 하얀빛을 은은하게 뿜어내기 시작했다.

에테르 빛의 색깔은 그 개인의 에테르가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느냐를 나타냈으며, 하얀빛은 어떤 것도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에테르를 상징했다.

그는 자신의 검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희미하게 지었다.

원호는 들고 있는 검이 보급용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마음에 들었다. 임시로 쓰는 검 치고는 품질이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던 것이다.

그는 허공에 검을 몇 번 휘둘러 본 다음, 옥상을 박차고서 그 밑으로 뛰어내렸다.

때마침 그 밑에는 오우거가 차원의 틈을 찢고 나오면서 이제 막 땅에 발을 내딛으려 하고 있었다.

원호는 그대로 오우거의 머리통에 검을 박아 넣었다.

“쿠워어어어어억!!”

거대한 오우거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거렸다.

하지만 머리통에 칼날 하나가 박힌 것 정도로 그 거대한 몸체가 쓰러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오우거는 자기 머리에 달라붙은 성가신 인간을 떨궈내기 위해서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흡!!”

그러나 오른손이 머리 위로 올라오기도 전에, 원호는 검을 비틀어서 그 안에 담겨있던 에테르를 폭발시켰다.

터져 나온 하얀빛의 에테르는 순간적으로 오우거의 상반신 전체를 뒤덮을 정도였다.

달빛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어두운 공간에서 터져 나온 눈부신 빛의 폭발은 주위에 있던 몬스터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어둠 속에서 눈부시게 터져 나왔던 빛의 폭발이 사라지자, 그곳에는 상반신이 넝마조각처럼 갈가리 찢겨나간 오우거만 남아있었다.

내부로부터 터져 나온 에테르가 오우거의 몸통을 비집고 안쪽에서부터 찢어놨던 것이다.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서 즉사한 오우거의 몸통은 천천히 앞으로 기울었고, 이윽고 거대한 진동음과 함께 땅바닥에 그 몸을 뉘였다.

원호는 이미 넝마조각이 되어있던 오우거의 머리통에 칼을 박아 넣은 채로 몸통이 쓰러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몸통이 땅바닥에 부딪혀 그 충격이 올라오기 직전에 다시 한 번 앞으로 도약했다.

몸이 하늘로 떠오르고, 떠오른 몸이 포물선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 원호는 공중에서 에테르를 끌어올리고 검에 집중시켰다.

갑작스럽게 집중된 에테르는 검의 내구도가 버틸 수 없는 양이었지만, 에테르들은 검을 그 매개체로 삼아 새롭게 확장된 검신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잠시 후, 에테르로 감싸인 그의 검은 형형하게 하얀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그 검신은 비정상적으로 길게 확장되어 있었다.

원호가 착지할 지점에는 한 개 무리의 오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검을 쥐고서, 공중에서 크게 횡으로 검을 휘두른 다음 바닥에 착지했다.

“취이이이익!!”

위에서부터 얕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쇄도해오는 그를 막기 위해 오크들은 글레이브를 들어 올려보았었으나, 글레이브들은 그가 휘두른 검에 두 동강이 날 뿐이었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원호는 휘둘렀던 반대방향으로 다시 한 번 횡으로 검을 그었다.

“취익…?”

그의 전방에 있었던 오크들은, 자신들의 글레이브가 단 일격에 전부 잘려나갔다는 것에 대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의 검에 베여나갔다. 어설프게 차려입은 중갑은 그 참격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하얀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선밖에 남지 않았다.

후두둑― 철퍽, 털썩.

잠시 후, 그의 참격에 절단된 것들이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크들의 머리와 내장, 때로는 상반신 전체가 통째로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수십은 되었던 오크 무리가 단 한 번의 참격에 전멸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주위에 있던 몬스터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그리고 원호는,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허리를 뒤로 젖힌 채로 웃었다.

즐거웠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사실이었지만, 그는 싸우고 있을 때 즐거웠다.

그 상대가 마왕군이라면 더더욱.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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