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우리, 되게 한가하네요.”
옆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이소연이 말했다.
“내일 있을 전투는, 사람 목숨도 숱하게 왔다 갔다 할 전투인데.”
“…역경을 앞에 두고 주저앉는 건 삼류고, 웃는 건 일류다. 뭐 이런 거 아니겠어?”
조금 알맞지 않은 인용인 듯 했지만,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되는대로 지껄여봤다.
“하하하하.”
딱히 웃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이소연은 작은 소리로 웃었다.
“…근데, 뭐 물어볼 게 있는 거 아니에요?”
조용히 밤하늘을 바라본 채로 고요하게 시간만 흘러가던 와중, 이소연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하늘에 있었다.
“아니, 뭐… 그렇긴 한데.”
내심 옆에서 말을 걸어볼 타이밍을 재보고 있었던 나는, 정곡을 찔린 기분에 잠시 말을 흐렸다.
“물어봐요. 괜찮으니까. 뭐든 간에.”
“음… 그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뭘 물어볼지 이미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손이라도 시려운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너는 어째서… 못된 사람인 척을 하는 거야?”
“하하하, 뭐에요 그게. 질문이 너무 유치한데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그녀에게 가지고 있던 의문은 바로 이거였다.
학교에서 봤었던, 그리고 함께 팀으로써 활동했었던 그녀의 모습과 회의장에 앉아있던 s급 헌터 이블아이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너무나 달랐다.
학교에서의 그녀는, 가끔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고 대충대충 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간혹 순진하게 보일 정도로 언제나 밝은 모습을 보였고, 모두에게도 친근한 인상으로 다가갔었다.
팀원들 사이에서 맴돌던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아마 모두가 그녀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회의장에 앉아있던 이블아이는 내가 알고 있던 그녀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 눈빛은 냉소적이었으며, 시선은 마치 모든 일에 무관심한듯 보였고,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적대적이었다.
그 때문인지 다른 사람들 역시 그녀를 꺼려하고, 또한 두려워하는 분위기였다. 이블아이는 언제나 구석에 앉았으며, 그녀의 옆자리는 비어있거나 마지막에나 채워졌다.
나는, 지극히 주관적인 시점이었지만 학교에서 보았던 그녀의 모습이 그녀의 본모습에 더 가까우리라고 생각했다.
내 사람 보는 눈이 딱히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뒤떨어지는 편도 아니었다. 그리고 회의장의 구석에 앉아 창가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블아이를 보았을 때, 나는 그녀가 조금 괴로운 것처럼 보였다.
“못된 사람인 척, 인가요…….”
이소연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들었다.
손가락 세 개로 담배를 가볍게 쥐고 있는 자세가 꽤나 자연스러웠다.
“맞아요. 척이에요. 굳이 말하자면… 연기 쪽에 더 가깝겠죠.”
손에 쥔 담배를 천천히 입가로 가져가던 그녀는, 도중에 손을 멈춘 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기 좀 길게 해도 괜찮아요?”
그녀는 내 쪽을 올려다보면서 동의를 구했다.
나는 살짝 고개를 틀어 그녀를 마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7년 전부터 헌터 생활을 시작했어요.”
“7년 전이면…….”
게이트가 막 오픈된, 2017년이다.
“당시의 헌터 생활은 정말 힘들었어요… 아니, 헌터라고도 할 수 없나? 헌터라기보다는 그냥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던 때였죠. 눈앞에 들이닥친 몬스터한테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도망치기 위해 싸우고, 나중에는 먹을 것과 잘 곳을 얻어내기 위해서 대신 싸워주고…….”
기억을 되짚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조금의 그리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씁쓸한 표정일 뿐이었다.
“지금도 그런 면이 없지는 않지만… 당시에 헌터들 사이에서는 얕보이면 그냥 끝이었어요. 하물며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옵저버인데다가 몸집까지도 땅딸만한 꼬맹이는 말할 것도 없죠. 지금도 작잖아요? 그 때는 콩알만 했어요, 진짜로.”
“…….”
“그래서 연기를 한 거죠. 살아남기 위해서. 잔인한 연기, 악랄한 연기. 거는 시비 막지 않고, 원수는 절대로 잊지 않으며 반드시 10배로 되갚고. 뭐랄까, 되도록이면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 같은. 그런 연기…….”
그녀는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면서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이블아이였을 때의 모습에서 독기가 빠져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저 옛날에는 배우가 꿈이었었거든요. 나름 열심히 해서 실제로 출연했던 적도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는 어린애의 막연한 동경 같은 거였지만… 어쨌든, 덕분에 연기는 조금 자신 있어요.”
하아.
이소연은 잠시 말을 멈추고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오빠는 왜 못된 사람인 척을 하냐고 했지만… 전부 연기인 거예요. 이블아이도, 그리고 헌터학과 실습 동아리 팀의 옵저버 담당 이소연도, 오빠한테 달라붙는 이소연도. 전부 다.”
“음…….”
그리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옆에 서있을 뿐이었다.
“이미 다 알고 있었겠지만, 제가 들어갈 이유도 없는 헌터학과에 들어갔던 건 오빠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였어요. 유선 언니가 시켰었거든요.”
“그래… 알고 있어.”
“그래도…….”
그녀는 잠시 망설이듯 말을 흐렸지만,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학교에서 그 사람들이랑 함께 지내는 건, 조금은 즐거웠네요.”
그녀는 서툴게 미소를 지었다.
순진한 듯 보이는 밝은 미소도 아니었고, 차가운 냉소도 아니었다. 그녀는 우스울 정도로 서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보고,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게 된 기분이었다.
말을 마친 그녀는 그때까지도 손에 쥐고 있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꺼냈고, 나는 그녀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앗았다.
“…뭐에요?”
“나는 내 옆에서 담배 피는 거 싫어해.”
물고 있던 담배가 사라지자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아까는 상관없다면서요. 뭐에요?”
“그건 그렇지. 아까 말했듯 싫어하는 사람이 담배냄새까지 풍기는 거지같은 상황만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싫어하지는 않아.”
“근데요?”
나는 손에 든 담배를 반으로 접고, 에테르로 발화시켰다.
강철도 녹이는 푸른빛의 불꽃은 담배를 말 그대로 증발시키듯 순식간에 태워버렸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담배를 피고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또 싫거든.”
“…풉.”
내 말에 이소연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뭐에요, 그게. 지금 폼 잡는 건가? 그런 말 하면 안 부끄러워요?”
“…네가 그러니까 부끄러워졌다.”
딱히 폼을 잡는다던가, 멋진 말을 한다던가 하는 의도는 전혀 없던 행동이지만, 바로 옆에서 저렇게 대놓고 웃고 있으니 괜히 멋쩍어져 나는 괜스레 머리를 긁적였다.
꽤 오랫동안 웃고 있던 그녀는, 조금 웃음을 진정 시킨 후에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 얼굴 빨개진 것 좀 봐. 오빠 지금 지갑도 떨어트린 거 알아요?”
“뭐?”
그녀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고서 주변 바닥을 살폈다.
그러다 지갑은 방 안에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였다.
쪽.
오른쪽 뺨에서 약간 부드러우면서도 살짝 촉촉한 감각이 느껴졌다.
잠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생각이 잘 돌아가지 않아, 허리를 펴고서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녀는 어느새 내 앞에 서서, 선명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두 뺨에는 흐릿하지만 불그스름한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무슨…….”
“하하,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다니다가는 내일 죽을지도 몰라요, 오빠.”
그녀는 대답 대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뒤, 뒤로 걷기 시작했다.
“전 이제 자러갈게요. 산책 치고는 너무 오래 걸렸으니까.”
“그, 그래. 조심히 들어가…….”
“하하, 뭐라는 거에요. 바로 코앞인데. 오빠나 정신 차려요.”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서, 뒤로돌아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호텔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왠지 기분이 좋아보이는 뜀걸음이었다.
“…뭐였지, 대체.”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선채로 오른쪽 뺨을 더듬었다.
약간 촉촉한 감각이 손가락 끝에 맴돌았다.
* * *
“영수야, 가서 눈 좀 붙여라.”
“여훈이냐… 아니, 괜찮아.”
그 방은 수많은 모니터가 사방을 둘러싸다시피 설치된 곳이었다.
방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테이블에 앉아있던 영수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의자를 뒤로 돌려 입구 쪽을 바라봤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피곤해서 뒤지겠다고 머리 위에 쓰여 있구만.”
남자를 바라보는 영수의 모습에는 며칠 밤을 야근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오랫동안 갈아입지 못한 셔츠는 여기저기 구겨진 흔적이 보였고, 가슴 쪽에는 마시다가 흘렸던 커피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머리를 감지 못해 떡이 진 머리는 자기 멋대로 뭉쳐 지저분한 인상을 주었고, 얼굴 전체에 두껍게 발린 개기름은 세수 한 두 번 정도로는 닦아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아직 생기를 잃지 않아 또릿한 상태였다. 물론 그 밑에는 진한 다크서클이 두껍게 매달려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피곤해서 뒤지면 업무상재해로 처리되니까, 괜찮아.”
“누가 너 보험금 못 탈까봐 걱정해서 그러냐? 너 뒤지면 내일 내가 두 배로 일해야 되잖아.”
영수와 오랫동안 함께한 직장 동료, 8구역 담당관 윤여훈은 그의 옆에 비어있던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다른 녀석들은?”
“잠깐 쉬고 오라고 보냈지. 지금은 한 명만 지켜보고 있어도 되니까.”
영수는 간지러운 목을 긁으며 길게 하품을 내뱉고선 그렇게 말했다.
“…병신 같은 새끼.”
잠시 할 말을 잊은 여훈은, 그냥 떠오르는 욕설을 내뱉고서 방 내부를 둘러봤다.
방 안에는 크고 작은 모니터들이 곳곳에, 그리고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것들을 관리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치들도 여기저기에 배치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방 안에는 오로지 이영수 한 명만이 앉아있었다. 윤여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윤여훈은 그를 무리하게라도 재울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어차피 이 녀석이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아니, 애들을 재워둬야 내일 일 열심히 할 거 아니야? 이게 다 큰 그림이야, 큰 그림.”
“닥쳐, 등신 같은 놈아. 듣고 있으면 짜증나니까.”
윤여훈은 짧게 한숨을 내뱉고서, 팔짱을 낀 채로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말과는 달리 그다지 짜증난 것 같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이 흘렀다.
긴 침묵 속에서, 상황실에는 기계들의 전자음만 잔잔히 울려퍼지고 있었다.
“…옛날 생각나네.”
“옛날? 언제.”
“그냥 전체적으로.”
윤여훈은 지금처럼 매일 밤 둘이서 밤을 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 때는 정말 툭하면 비상상황이 터졌기에, 매일 지금처럼 밤을 새곤 했었다. 그 때도 결국에는 이렇게 둘 만 남고는 했었다.
‘아니, 셋이구만. 태준이 형도 있었으니까.’
윤여훈은 지부장이 된 이태준을 깜빡했다는 걸 깨달으며,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앞에 놓인 커다란 모니터를 바라봤다.
화면에 떠올라 있는 것은, S급 헌터 이블아이가 직접 구축한 배틀필드 네트워크 시스템과 관리국의 레이더망이 겹쳐있는 화면이었다. 지금은 그녀가 시스템을 꺼둔 상태였기에, 레이더망의 탐지 결과로 현재 방어라인의 전체적인 배치들만이 나타나고 있었다.
“…응?”
그 때, 화면에 붉은 점이 떠올랐다.
윤여훈은 잠시 눈을 비볐다. 그의 등을 타고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지금 시간은 새벽 4시였다. 예정 오픈 시간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레이더망에서 붉은 점이 의미하는 것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그리고 화면에는 그에게 확신을 심어주겠다는 듯 다시 한 번 붉은 점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그 숫자가 늘어나있었다.
“영수, 화면 돌려.”
윤여훈이 말하기 전에 이영수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중앙 모니터에는 확대된 해당 위치의 영상이 큼직하게 떠올랐다.
“…….”
키리리리링―
영상을 확인하자마자 이영수는 안전장치를 들어 올리고 안쪽의 붉은 버튼을 눌렀다. 격렬한 타종음이 스피커를 타고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원래는 울릴 예정이 없던 타종음이었다.
“네 말 듣고 자러 갔으면 괜히 헛걸음 할 뻔 했다야.”
굳은 표정으로 이영수는 윤여훈에게 말했다.
농담을 내뱉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진지했다.
“…그러게.”
윤여훈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서 그의 말에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미 자신의 자리에 앉은 그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현재 시각 오전 4시 27분.
게이트는 오픈 예정시간보다 3시간이나 일찍 열려버렸다.
역대 최악의 사태라는 말에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