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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44화 (44/135)

44화

“하하, 하…….”

“…….”

이태현의 부자연스러운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조금 어색하게 끝인 났다.

한참 즐겁게 오고가던 이야기가 끝이나고, 폐건물 안에는 폐건물에 어울리는 적막한 침묵이 다시금 찾아왔다.

오래 묵은 먼지의 습기와 쾌쾌한 냄새가 새삼스럽게 코끝에 맴돌았다.

이야기 거리가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새삼 말을 아끼게 된 것일까.

짙게 깔린 침묵 속에서, 나와 이태현은 쌓여있던 먼지를 털어낸 의자에 걸터앉고서 조용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봐, 아크.”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에게 말했다.

“아크가 아니고, 조원호.”

“…킥킥, 그래. 원호야.”

어이가 없다는 의미의 실웃음을 살짝 내뱉고서, 이태현은 입을 열었다.

“네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까 전에도 말했듯,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녀석은 살짝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6년의 나이를 더 먹은 외모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그에게서 연장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연륜이라고 불리는 뭔가가 느껴졌다. 그에게서 이런 걸 느꼈다는 사실이 조금은 우스웠지만 말이다.

“시간축이 뒤틀려있었다. 확실히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니, 아예 없지는 않겠군. 레온하르트와 애던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단서 정도는 던져줄 수 있겠어.”

이태현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 끼가 전혀 섞여있지 않은, 그에게서는 꽤나 찾아보기가 힘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뿐이다. 바뀌는 건 없어. 아무것도 말이야.”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이태현은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도 알고 있던 것 같지만… 죽은 용사들은 이 세계에서도 죽었다. 아니, 죽었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지. 그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알고 있어.”

그는 잠시 나의 눈치를 보더니, 마저 입을 열었다. 겁을 내며 살피는 눈치가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조금은 따뜻한 그런 눈치였다.

“시간축이 뒤틀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어. 바꿀 수 있는 것도 없어. 죽은 사람들은 죽은 거야.”

“…알고 있다고.”

사실 나는 이야기가 부자연스럽게 멈추고, 이 공간에 침묵이 감돌게 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다름이 아닌 나 때문이었으니까.

나와 이태현은 아스트레아에서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아스트레아에서 있었던 일들에는,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슬픔이, 그리고 그리움과 고통이 빠질 수가 없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이후 나는 점차 말이 줄어들어가다가, 입을 다문 채로 시선을 내리 깔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용사들의 시간축이 뒤틀려있었다는 새로운 정보를 토대로 혹시나 선생님이 살아있을 수 있는, 혹은 구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 답은, 이태현이 말했던 대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내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을 것이고, 대화 상대를 잃은 대화는 힘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태현은, 로크로 지내던 시절부터 눈치가 꽤나 좋은 편이었다.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정도는 간략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는 나도 알아. 이미 알고 있다고. 다만…….”

다만.

다만, 나는 이럴 수밖에 없는 놈이다.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건,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을 따라해봐도, 평범한 사람이 할법한 선택들을 선택해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표로 삼는 것들을 무작정 뒤쫓아봐도 나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라는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있었기에.

“후우…….”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태현 역시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잠시 동안의 고요함이 건물 안에 맴돌고, 내가 뱉었던 한숨에 떠올랐던 먼지들이 다시 가라앉을 때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그냥 내버려둬 줘.”

나는 아직도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것이 결코 돌이킬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것이라고 해도.

아직도, 아직도 말이다.

* * *

“…그럼, 먼저 간다.”

이태현은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네 걱정하는 건 꽤나 주제넘고 웃기는 꼴이겠지만… 그래도 내일은 꽤 큰 전투가 될 것 같으니까, 컨디션 조절은 해둬라.”

그는 그 말을 남기고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에 손을 흔들어 준 다음,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끼이이이익― 텅.

오랫동안 방치되어있었던 문이어서 그런지,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세게 들려왔다.

기분 나쁜 금속음이 건물 안에 울려 퍼졌지만, 나는 그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태현이 폐건물 밖으로 나서자, 2층 주위에 갈려있었던 안티 디택팅과 안티 파인딩의 기운이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법들을 다시 복구해둬야 하나. 하지만 여기에 오래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서서히 사라지게 방치해두기로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여전히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나는 이태현에게 꽤 중요한 사실을 말 안하고 넘어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김세율에 대해서는 말도 안 꺼냈네.”

지금이라도 뒤를 쫓아가서 말을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뒤늦게 쫓아가기에는 좀 이상하기도 했고, 다음번에 말하면 될 것이다.

이번 전투에서 죽을만한 놈이라 다시는 못 볼 가능성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태현은 그렇게 쉽게 죽을 놈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김세율에 대한 걸 말해주면, 녀석은 그 즉시, 이 한밤중에 김세율을 찾아갈 것이다.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고보니, 김세율도 나와 시간차가 있을까.’

잠시 고민해봤지만, 답은 ‘아니다’였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런 모순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귀환하자마자 헌터 생활을 그만뒀다고 말했었고, 그 이후로 3년이 지났다고 말했었다. 그 말은 즉 3년 전에 귀환했다는 뜻이었고, 그녀는 나와 같은 2021년에 소환되었고, 귀환했을 것이다.

‘뭐, 세부적인 날짜까지 들어가면 달라지겠지만 말이야.’

나는 그 뒤로도 몇 가지 잡다한 생각들을 떠올리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힘이 빠진 걸음으로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오자, 폐건물 2층에는 안티 디텍팅과 안티 파인딩 만이 의미 없이 남아있었다.

* * *

폐건물 밖으로 나오자, 아까보다도 쌀쌀해진 날씨가 나를 반겼다.

하지만 그래도 이미 완연한 봄 날씨였고, 낮에는 가끔 덥다고 느낄 정도였다. 봄의 밤은 춥다곤 해도 산책하기에 적당한 쌀쌀함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기분 좋게 밤바람을 느끼며 밤길을 걸어, 호텔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이었다.

“어.”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근에 많이 들어본,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어’라는 반응은 예상치 못한 뭔가를 발견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었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조금 키가 작은 여자가 건물에 등을 기댄 채로 담배를 물고 서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어두운 밤에, 폐건물의 벽에 등을 기댄 채로 담배를 물고 있던 것은 이소연이었다.

그녀가 물고 있는 담배의 불빛이 주황빛의 희미한 점처럼 돋보였다.

“…원호 오빠?”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담배를 든 손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당황해하고 있었다.

“소연이야?”

그리고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몇 시간 전 회의장 안에서도 그녀를 만났었지만, 왠지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생소한 느낌이었지만, 그녀를 보고서 ‘반갑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녀가 당황하는 기색은 더 커졌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앞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그녀는 한숨을 탁, 내쉬더니 말했다.

“그래요, 저 담배 펴요. 어쩔래요?”

그녀는 마치 숨어서 담배를 피다가 걸린 여중생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무도 뭐라고 한 적 없는데?”

“흥.”

그녀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리더니, 피던 담배를 마저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옆에 서서, 마찬가지로 등을 기대어 섰다. 차갑게 식은 벽의 감각이 등을 타고 전해졌다.

“…담배 냄새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요?”

“좋아하지도 않지만, 막 일부러 피하고 그러는 정도는 아닌데… 누가 그래?”

“유선 언니요. 오빠 담배냄새 싫어한다고 하던데.”

이소연이 살짝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말했다.

“뭐 그건 사람도 싫은데 담배연기까지 뿜어대니까 그렇지.”

“흐음―”

그녀는 다시 앞을 바라보더니, 다시 담배를 물었다.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온 거에요?”

왠지 조금 기분이 좋아진 것 같은 목소리로 그녀가 그렇게 물었다.

“뭐, 산책이라도 좀 하려고…….”

나는 어디까지나 몰래 나왔던 것이었기에, 일부러 말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너, 크리스랑 같이 나가지 않았었냐?”

화제를 바꿔서 말을 돌리기 위해, 나는 문득 떠오른 기억을 말했다.

회의장에서 나에게 한 잔 하겠냐고 물었던 크리스는 옆에 있던 크리스와 함께 떠났었다.

“하… 뭐, 한 잔 하려고 가긴 했었는데, 도심 쪽도 정신없더라고요.”

그녀는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이더니, 길게 연기를 내뱉으면서 다시 말을 시작했다.

“소문 퍼지는 거 막는다고 막았었는데, 뛰는 말보다 발 없는 말이 더 빨리 뛴다고. 이미 퍼질 대로 다 퍼져있었나 봐요. 문 연 곳도 별로 없고, 동네 분위기도 기분 좋게 한 잔할 분위기는 아니라서, 그냥 돌아왔어요.”

그녀는 내 얼굴을 옆에서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녀를 마주보고 있기에는 조금 낯간지러운 정도의 거리였기에, 나는 일부러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오빠랑 마찬가지로 산책. 잠도 잘 안 올 것 같아서. 뭐 그런 거죠.”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 또한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피던 담배는 이미 꽁초가 된지 오래였다.

나도 그녀도, 낡은 건물의 벽에 등을 기댄 채 조용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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