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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43화 (43/135)

43화

재회

방 안에는 침묵이 맴돌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깨달은 충격적인 정보에, 우리 둘 모두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갑자기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는 깊게 생각해봐야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이 새로운 정보가 가져올 변화는 무엇인가. 그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인식들과는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가. 그런 것들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잠깐… 그렇다면?”

잠시 동안 깔려있던 침묵을 깨트리면서 이태현이 중얼거렸다.

“아크, 너…!!”

그는 나를 가리키면서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뭇 진지한 그의 분위기에 나도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 바라봤다.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라.”

그 진지한 모습 그대로 그는 그렇게 말했다.

“…죽고 싶냐 진짜?”

나는 그 대답으로 에테르를 활성화시켜 오른손에 끌어 모았다.

“아하, 아하하. 장난이지 장난. 너한테 형이라고 불리는 건 나도 싫다, 임마.”

순식간에 형성된 백색의 검을 바라보며 이태현은 손사리치면서 물러섰다.

“하여간 너란 놈은… 지금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냐?”

오른손에 쥐어져있던 에테르 소드를 다시 흐트러트리면서 나는 말했다.

“못할 건 또 뭐냐… 신기하긴 하지만, 너무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도 좋지는 않다고.”

내 손에 일렁거리던 검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의 얼굴에는 억지로 지어낸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그는 심경이 복잡할 때면 억지로 미소를 짓는 경향이 있었다.

“일단은 뭐, 상황을 정리해보자고. 넌 2021년에 소환됐었고, 난 2015년에 소환됐었다. 귀환도 마찬가지로 동일. 그렇지?”

“그래. 그리고 나는 지금 21살이고.”

“너 젊은 건 충분히 알겠으니까 이제 더 이상 자랑할 필요 없다. 그리고… 음…….”

이태현은 턱을 짚은 채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도, 그도, 이미 이 상황에 대한 결론은 나왔다. 하지만 그는 ‘혹여 또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해 신중히 탐색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네가 시간이동까지 할 수 있거나 크로노스의 축복이라도 받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아무리 아크라도 그건 힘들겠지. 그렇다면 답은 결국 하나 밖에 없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

끄덕.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살짝 긴장감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나는 굳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입을 열었다.

“용사 소환이 시간 축을 왜곡시키는, 혹은 무시하는 소환이었다. 라는 거겠지…….”

“그래, 그것뿐이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고, 이태현은 나의 말에 동의했다.

용사들은 서로 다른 시간에서 소환되었다.

어째서 나는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 황당할 정도로 충격적인 사실에 말을 잊었지만, 곧 납득하게 되었다.

용사들 사이에는 개인의 정보를 터놓고 이야기할만한 신뢰가 없었다.

물론 용사들에 대한 몇몇 정보들, 특히 공적으로 알려진 정보들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제국 새벽의 기사단장 레온하르트가 용사출신이라는 정보 정도는 적당한 뒷골목 싸구려 정보상한테서도 얻어낼 수 있는 정보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들은 구하기 힘들기 마련이었고, 더군다나 용사들의 원래 세계에서의 정보 같은 건 스스로 말하기 전에는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정보는 알아도 별 쓸모가 없었고, 때문에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놈들은 다 <혼자서도 잘해요>를 추구하는 놈들이었고…….’

그리고 그 <혼자서도 잘해요>를 가장 철저히 지켰던 녀석이 나였다.

펠로스 평원의 전투 이후, 로스릭 왕국의 멸망과 함께 용사들은 아스트레아의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넓은 세계에서 각지로 흩어진 50명도 채 되지 않는 용사들이 서로 마주친다는 것은 정말 희박한 확률이었다. 용사들 간의 교류라는 것 자체가 형성될 수 없던 상황이었다.

각자 이리저리 떠돌던 용사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서로 연락이 오고가게 된 것은 몇몇 용사들이 아스트레아에서 나름대로의 입지를 쌓은 후에나 가능한 일이었고, 그건 소환 이후 약 8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로스릭 왕국 이후 처음으로 용사들이 모인 것은 그 당시 제국의 부기사단장을 하고 있었던 레온하르트가 그나마 최근 소식이 알려져 있던 용사들에게 연락을 보냈을 때였다.

그 때 연락을 받았던 9명의 용사들은 제국 수도 아스틴으로 전원 모였었지만, 그 때까지 살아남았던 용사들에게는 이미 타인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이 깊숙이 박혀있어서 서로 간에 정겨운 대화나 친목을 다지는 모습 같은 건 찾아볼 수도 없었다.

우리들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라 단순히 ‘뭔가 괜찮은 정보라도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모였을 뿐이었다.

그런 녀석들이 살아남았던 것일까, 아니면 살아남다보니 그렇게 바뀌게 된 것일까.

그곳에 모인 녀석들 중에 같은 용사출신이라고 함께 옛 추억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녀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 자체를 피하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기도 했고 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애초에 레온하르트가 용사들을 불렀던 이유도 용사들을 제국 기사단으로 회유해보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우리들은 다른 용사들에 대한 사적인 정보는 그다지 관심도 필요도 없었다. 원래 세계에서 뭘 하면서 지냈는지 따위는 더더욱 말이다.

물론 로스릭 왕국의 왕궁에서 함께 지냈던 초기에는 100명의 용사들이 함께 모여있었지만, 당시는 왕국에서 개인 별로 붙여준 기사와 마법사들과의 개인 수련에 가까운 일과를 보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왕궁 기사들과 궁정 마법사들을 개인 교사로 붙여준 파격적인 대우였다.

그들은 마지막 희망이었던 우리 용사들을 정말 남아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서 최대한 성장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덕분에 용사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식사시간 정도였으며, 그마저도 약간의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에서 지인들끼리 따로따로 모여 있는 느낌이었다.

나 또한 다른 용사들에게 말을 붙여볼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동환이랑 둘이서만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어색한 분위기가 풀릴 낌새가 보이기도 전에 펠로스 평원의 전투가 벌어졌고, 용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그 때 시간축이 뒤틀려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용사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런 녀석들은 모두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아니, 혹은 그 사실을 감추고 지내다 나중에 죽었던가.

‘어찌됐건… 쯧, 그래서 그토록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던 거로군.’

나는 한 때 로크를 찾으려고 정보를 뒤지고 직접 돌아다니기까지 했던 때를 떠올렸다.

로크를 제외한 다른 용사들에 대해 내가 추측할 수 있던 것들은 귀환한 이후 갑자기 엄청난 능력의 성장을 보이거나 특이한 행동을 했을 거라는 것. 이 두개뿐이었다.

반면 로크에 대해서는 세 가지의 단서가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었고, 나와 같은 고등학교 2학년으로 동갑이었다.

‘그래, 그래. 아스트레아에 왔으니 이런 힘도 생기고 말이야. 정 나쁘기만 한 건 아니잖아? 이건 마치 슈퍼히어로 같은 힘이라고!! 좋게 생각하자고. 안 그래? 아크.’

그리고 소환되기 전에는 마나, 즉 에테르가 없었던 일반인이었다는 것.

그렇기에 나는 아스트레아에서 생존한 4명의 용사들 중에서도 로크를 가장 먼저 찾아보기로 했었고,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활용하여 탐색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나름 고생한 끝에 내가 얻어낸 결론은 ‘로크를 찾을 수 없다’였다.

‘시간 축이 뒤틀려있었으니까 당연히 찾을 수가 없지…….’

블러드 레이스는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 초반부부터 활약했던 대표적인 1세대 헌터였다.

나는 로크 역시 나와 같은 시간에 귀환했으리라고 생각했었고, 그렇기에 2021년 이전부터 활동해왔던 헌터들은 전부 목록에서 제외했었다.

블러드 레이스는 거의 가장 먼저 목록에서 제외해놨었던 헌터들 중 한 명이었다.

“하, 그것 참 당황스럽구만. 왜 이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지.”

당황스럽다고 말하는 것과 달리 이태현은 개운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오랫동안 끙끙 앓던 수수께기를 해결해낸 듯한 모습이었다.

“이래서 그렇게 찾아다녔어도 다른 용사들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던 거구만.”

“너도 찾아다녔었냐?”

“그랬지. 애초에 헌터 연맹에 들어갔던 이유 중 하나가 그것 때문이기도 했고 말이야.”

하긴 저 녀석 성격에 다른 녀석들을 찾아다니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 의도가 자신의 재미와 호기심 때문이기는 했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과 오지랖 하나는 꽤나 넓었으니까.

“근데 ‘너도’라는 건 아크, 아니 원호. 너 역시 다른 용사들을 찾아다녔다는 뜻인가?”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정확히는 로크 뿐이었지만.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말을 할지 말지 잠시 고민했었지만 굳이 감출만한 내용도 아닌 것 같았다.

“하하하, 그건 좀 의외인데?”

이태현은 나를 바라보며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뭐가 의외인데.”

“아니, 너는 너 말고 다른 용사들한테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잖아. 뭐 다른 녀석들도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너는 조금 심했지.”

“아니…….”

이태현의 비난에 나는 잠시 아스트레아에서 아크로 지내던 생활 방식을 돌이켜봤다. 하지만 내 자신을 변호할만한 건덕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으음… 할 말은 없구만.”

“그렇지? 다른 녀석들은 그래도 모임 열면 꼬박꼬박 나와 주기라도 했다고. 반면에 너는 툭하면 빵꾸였지. 간혹 가다 나타나면 정떨어지게 용건만 보고 나가려 했고 말이야.”

녀석은 살짝 핀잔을 주는 듯한 어투로 과거의 일들을 말했고, 나는 그걸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에 대해 갖고 있던 녀석의 불평은, 점차 아스트레아에서 있었던 다양한 일들로 화제가 옮겨져 갔다. 정말 의외인 사실이었지만, 나는 이 대화가 상당히 즐겁게 느껴졌다.

아스트레아의 이야기는, 그토록 끔찍했던 그곳의 이야기는 어느새 추억 비스무리한 것이 되어있었다. 이야기는 어느덧 니드호그의 신전을 둘이서 끝장냈었던 부분까지 전개되었고, 이후 로크 혼자서 신전의 보물고를 찾아 털어냈다는, 나는 잘 모르고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럼, 보물고에서 나온 재화의 7할을 전부 카를라 왕녀한테 맡겨뒀다고?”

“그래, 임마. 너랑 연락하려고 해도 연락할 방법이 있어야 말이지. 네가 예전에 뭐 맡기거나 전할 말 있으면 1왕녀에게 맡기라고 했던 게 기억나서, 그냥 그 쪽에게 연락 넣었다.”

이태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 아까웠지…….”

“그렇게 아까워 할 거면서 왜 7할이나 넘긴 거야?”

“야, 내가 아무리 용병으로 굴러먹던 놈이래도 내 몫 이상까지 탐내지는 않거든?”

그는 웃으면서 당시의 이야기를 말했다. 원래는 양심 있게 1할만 챙길 예정이었지만 보물이 너무 많아 옮기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기에 운송비용으로 1할, 수고비로 1할을 더 챙겼다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들은, 나는 아스트레아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면서 웃을 수가 있었다.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서 억지로 웃는 미소가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놀랍게도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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