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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41화 (41/135)

41화

헌터 연맹의 대표로 보이는 두 명이 입장하자, 장내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가볍게 목례를 한다거나 반쯤 일어서서 고개를 숙인다거나, 대충 손을 흔든다거나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인사를 보냈다.

특이한 것은 팔란의 감시자들의 리더인 청랑 김어수로, 그는 들어오는 남자를 보더니 마치 연예인이라도 목격한 중학생 같은 반응을 보였다.

‘…별 꼴이구만.’

이제 다 큰 어른이 그러고 있는 꼴은 빈말로도 봐줄만한 꼴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녀석들의 숫자가 꽤 된다는 거였다.

“다들 반가워요! 오랜만에 보는 사람도 반갑고 처음 보는 사람은 더 반갑고!!”

크리스는 크게 손을 흔들면서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그녀를 보자 그 때까지 시큰둥한 모습으로 앉아있던 이소연의 표정이 환해지면서 그녀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네, 크리스. 자네는 언제나 보기가 좋군 그래.”

“흐음― 그러는 아저씨는 저번보다 더 젊어진 것처럼 보이는데?”

“허허허, 늙은이 놀려봤자 별 다른 건 나오지 않을 걸세.”

“에엥, 진짜로 한 말인데~”

황태진과 인사를 나눈 크리스는 그를 지나쳐 구석에 앉아있던 이소연에게로 다가갔다. 이소연은 한동안 못 봤던 밝은 모습으로 그녀를 반기더니 곧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역시 소연이는 밝은 모습이 더 어울린다, 라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하하하, 다들 오랜만입니다. 반갑네요.”

크리스가 지나간 후, 뒤이어 한 남자가 여유있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후우, 오랜만에 밟는 고향땅이건만, 와서 기껏 한다는 게 몬스터 사냥이라니…….”

남자의 머리카락은 흑발이었지만, 연하면서도 선명한 갈색빛이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다.

그는 겉에는 깔끔한 블라우저와 정장바지를 입고 있어 얼핏 단정하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안쪽의 셔츠는 단추 두어개가 풀려있었으며, 얼굴에는 속내를 알기 힘든 애매한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그 또한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나처럼 얼굴을 가리기 위한 물건이라기보다는 패션으로써의 느낌이 더 강한 물건이었다.

‘…상당한 기운이로구만.’

정황상으로도, 느껴지는 기운으로도 그가 S급 헌터 1위의 블러드 레이스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유선에게서 느껴지는 에테르가 차갑게 내려앉는, 마치 겨울의 호수 같은 차분한 냉철함이었다면, 그의 에테르는 언제 날뛸지 모르는 야성적인 폭력이라는 느낌이었다.

들어오다가 문 앞에서 멈춘 그는 오른쪽부터 왼쪽을 서서히 둘러봤다. 그냥 단순히 둘러본다기보다는 전체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듯한 계산적인 시선이었다.

나는 문 왼쪽에 서있었기에, 그가 마지막에 바라보는 건 필연적으로 내가 됐다.

나 역시 그를 살펴보고 있던 중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우리는 눈을 마주친 채로 서로를 바주보고 있는 기묘한 상태가 되었다. 그것도 2m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말이다.

“흐음…?”

그는 다른 곳을 둘러볼 때와 달리, 갑자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어색한 상황이었는데 더더욱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또 에테르가 내 멋대로 새어나간 걸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체크해봤지만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저번에 유선에게 걸렸던 참사를 교훈으로 삼아 민간인과 에스퍼 사이에 애매한 수준의 에테르만 은근하게 노출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으음… 이상하네.”

결국 영문모를 이 어색한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지만, 그럼에도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내 옆모습을 계속해서 쳐다봤다.

“이태현, 자네 안 들어오고 뭐하나?”

잠시 유선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황태진이 이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안, 이 사람 분명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인데…….”

그는 이제 아예 표정까지 구겨가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억지로 기억을 끄집어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누군가 내 옆에서 그러고 있는 상황은,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이 영 좋지는 않았다.

“어휴, 저거 이제는 남자한테도 작업 거는 거야?”

“오빠, 저 분 남자분이시거든요? 이젠 성별도 안 가려요?”

방금 전부터 이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크리스가 한 마디 던지고, 그걸 이소연이 다시 한 번 받아쳤다. 하지만 블러드 레이스로 보이는 남자는 그럼에도 고개를 돌릴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어어?!”

그 때 남자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런 외침에 고개를 돌리니, 구겨져있던 남자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환하게 펴졌다. 그는 쓰고 있었던 선글라스를 살짝 벗은 다음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나를 바라보는 맑은 두 개의 검은 눈동자가 나타났다.

‘…어?’

그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불현듯 묘한 예감과 함께 누군가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분명 기억에 남아있던, 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아크!! 아크지?!”

“…설마 로크냐?!”

우리 둘은 손가락을 내밀어 서로를 가리킨 채, 몸이 굳어버렸다.

잠시 후, 로크의 얼굴에는 ‘실수했다’라는 의미의 표정이 떠오르며 땀 한 방울이 그의 턱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마 지금 내 표정도 그에 못 지는 않으리라.

우리의 목소리가 꽤 컸는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되어있는 상태였다. 회의실의 모두가 입을 다문 채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춰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 그러니까.”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회의실 왼쪽 테이블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던 이소연이었다. 그녀는 조금 놀란 듯한 눈치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이… 아는 사이?”

그녀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와 로크를 교대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로크, 이 미친 새끼야.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면 어떻게 해.]

[아니, 그러는 아크 너도 졸라 크게 말해 놓고선…]

그리고 우리는 굳은 표정 그대로 남들 몰래 전음을 나누고 있었다.

[애초에 네가 사람을 무슨 동물원 펭귄새끼 쳐다보는 것 마냥 꼬라보니까 이렇게 된 것 아니야.]

[아니, 오랜만에 만난 용사 동지한테 너무하는 거 아니냐…]

[용사 동지는 개뿔, 뭐 해준 것도 없으면서.]

이후로도 침묵은 꽤 오래 지속되었고, 그동안에도 우리 둘은 서로를 조용히 마주 보고 있었다.

““이야아…….””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들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아크… 아크론 엔터테인먼트!! 거기 콘서트에서 뵀었던 분 맞죠?”

“예, 로크… 로큰롤 페스티벌이었죠. 이야아, 이런데서 뵈니까 또 반갑네요…….”

“그럼 다음번에 또 뵙도록 하고, 하하.”

“예, 고생하십쇼. 하하하.”

우리는 우리가 봐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연기톤으로 상황을 적당히 마무리 짓고서, 각자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즉,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출입구 옆에 서있었으며, 로크 역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당당하게 걸어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

“뭐야…?”

물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눈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 *

“―따라서, 고급 인력들을 다음과 같이 최전선부터 순차적으로 배치하여, 인원은 균등적으로 배치하되 전체적으로 전진 배치의 느낌이 나도록 나누고자 합니다. 혹시 또 반대의견 갖고 계신 분?”

회의실의 스크린 앞에 선 요엘이 지도의 곳곳을 가리키며 직접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하면서 질문까지 답변해내고 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게이트 분석과 요새도시에 대한 전문가였기에 그가 브리핑을 한다는 말은 조금 의아하게 받아들여졌지만, 그에게는 전술적인 이해와 분석능력 역시 뛰어난 듯했다.

그는 각 방어라인과 지형의 특성, 그리고 각 지점들의 중요요소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헌터들의 배치에 대한 질문과 반발들이 나오더라도 모두 능숙하게 대답해냈다.

처음에는 질문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인선에 대한 불만도 자주 나왔다. 사소한 실수나 오류에도 자신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요엘은 그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할만한, 혹은 납득할만한 이유와 설명을 안겨주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선만큼은 계속 뭔가 불만이 있는 듯한 표정으로 요엘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럼, 반대 의견은 이제 없으신 걸로 생각하고, 배치를 마치도록 하지요. 배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최전선… 이라기보다는 게이트 앞에서 날뛰어주실 스노우 화이트와 블러드 레이스,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로머 처리 담당으로는 워프마스터와 두란 용병대 여러분―”

[10시 30분에 호텔에서 남쪽 건물 2층.]

회의가 적당히 마무리되어가려고 할 때쯤, 누군가가 전음을 보내왔다. 로크였다.

그는 정면의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로 나에게 전음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글쎄, 오면 알아서 알게 되겠지.]

내가 그를 바라보자, 그 또한 내 쪽을 살짝 흘겨보았다.

[울프 용병대의 블러드 울프는 언제 어디서든 밀회를 가질 수 있던 걸로 유명했다구.]

[…]

‘자랑이다 이 미친놈아…….’

나는 문득 녀석의 아스트레아 시절 생활을 떠올렸다.

녀석은 내 또래의, 즉 고등학교 2학년의 얼굴을 하고서 제국 수도 내 거의 모든 창관을 뻔질나게 돌아다녔었다. 창관 이름만 대면 각 창관의 No. 1부터 No. 10까지 줄줄 나올 지경이었다.

심지어 창관에 다니는 걸로도 모자라 용사들에 대한 환상에 빠져있던 귀족가의 순진한 영애들도 후려치고 다녀서 한 때는 현상금까지도 걸리는 병신 같은 해프닝도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그래, 녀석은 나와 동갑이었다. 게다가 출신도 같은 한국이었다.

아스트레아에서 막 귀환했을 때, 나는 정보를 나눠보기 위해 잠시 다른 용사들을 찾아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 가장 먼저 찾아봤던 것이 로크였다.

내가 알고 있는 로크의 정보는 같은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것과, 아스트레아에 오기 전에는 나처럼 에스퍼가 아닌 일반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로크의 본명은 몰랐지만, 대한민국 고등학생에 대한 데이터를 몰래 빼돌려 일일이 얼굴들을 확인해보기도 했고, 중앙 데이터에 등록이 안 된 학교는 직접 행정실에 숨어들어가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대한민국에 로크는 없다.’였다.

그가 헌터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을가, 라는 가능성 역시 생각해봤다. 로크는 S급 헌터도 가볍게 해먹을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었고, 그렇다면 다른 나라로 넘어가 헌터 활동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굉장히 높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2021년, 내가 귀환한 이후로 활동을 시작한 헌터들을 전부 조사해봤고, 그 중에서도 내 또래의 녀석들, 혹은 나이가 공개되지 않은 녀석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얻어낸 결론은 ‘로크는 헌터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였다.

그런데 녀석은 지금 저 앞에 앉아서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게다가 S급 1위의 블러드 레이스가 바로 저 녀석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저기에 앉아있는 로크는 누가 봐도 내 또래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랬지만, 내 또래 치고는 굉장히 삭아보였다.

‘…사칭인가.’

아니,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는 나의 아크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고, 에테르의 기운 역시 지금 생각하면 예전에 느꼈던 로크의 것과 굉장히 흡사했다.

‘로크… 얼마나 고생을 해온 거냐…!!’

나름 고생했다고 생각했던 나보다도 삭아있는 옛 동료― 동료는 아니군. 어쨌든 그를 바라보며, 나는 잠시 안타까운 기분에 빠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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