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시작의 전야
“스노우 화이트님, 어서 오십시오.”
정장에 가까운 검은색 블라우저를 입고 있는 남자가 우리들을 맞이했다.
특이한 점은 깔끔한 겉옷과 달리 머리와 얼굴이 꽤 오래 씻지 못한 것처럼 꾀죄죄했다는 점이었다. 두 눈가에는 짙은 다크 서클이 내려앉아있었다.
다시 유심히 바라보니 넥타이에가려 잘 보이지 않는 안쪽의 셔츠 역시 꾸깃하게 구겨져있었다. 정황을 보건데 대략 이틀 밤은 꼬박 새운 듯한 모습이었다.
“…류환.”
“예, 유선님.”
“나 이번에야말로 이명 좀 바꿔달라고 진지하게 영감탱이한테 전해둬.”
“이명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고… 저번에도 안 됐잖습니까.”
“닥쳐.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승부를 본다.”
유선과 류환이 중얼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남자는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저는 관리국 서울지부 제 7구역 담당관 이영수라고 합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스노우 화이트님을 보게 되어―”
“유선.”
“…예?”
“유선이라고 부르라고.”
이영수를 바라보는 유선의 눈빛이 꽤나 날카로웠다. 꼴을 보아하니 은근히 에테르도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아 예.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유선님.”
당황한 표정으로 한걸음 물러서며 남자가 답했다. 하여간 저 양반도 유치한 양반이다.
“그래서, 나는 어디로 가면 되나?”
“작전 회의는 연맹 쪽 인원이 도착한 이후로 예정되어있습니다. 우선 숙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남자는 공손한 손짓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한 때 호화로웠을 것 같은 고층 호텔이 서있었다.
“헤에, 호텔 하나를 통째로 징발한 건가. 스케일이 맘에 드는구만. 헐리웃 느낌이야.”
“징발이 아니고 재활용이라고 하시는 게 더 맞는 말 같지만… 맘에 드신다면 된 거겠죠.”
게이트가 열린 후, 주인의 행방이 묘연하고 상속인도 찾을 수 없는 부동산들은 모두 국가 소유로 돌아갔다. 그리고 게이트 관리국은 이런 건물들을 간혹 헌터들 숙소로 개조하여 활용하곤 했었다.
애초에 이런 외곽 쪽에 있는 건물들의 가치는 이제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때문에 관리국이 이런 건물들을 사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건물주들은 별다른 협상 없이 제시하는 조건대로 건물을 넘기곤 했다.
“류환, 너는 가서 다른 교수들한테 내일 대비해서 애들 데리고 전투구역이나 한 바퀴 구경시켜주고 오라고 해라. 혹시 모르니까 네가 쫓아가서 주변 좀 살펴주고.”
“알겠습니다.”
유선이 류환에게 지시를 내리자, 류환은 살짝 고개를 숙인 다음 뒤로 돌아 걸어갔다. 류환을 보내고 나서 유선은 호텔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우리는 지금 데모닉 게이트를 막기 위해 구축되고 있는 방어라인의 지휘부에 와있었다.
서울에 열린 역대규모의 게이트에는 데모닉 게이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네이밍 센스가 여간 구린 사람이 아닐 것이다.
서울의 외곽이라고 해도 게이트가 열리기 전까지는 서울에서 나름 번영하던 동네들이었기에, 곳곳에는 요새나 거점으로 구축하기에 용이한 건축물들이 즐비했다. 눈앞에 있는 호텔 역시 그런 예시들 중에 하나였다. 덕분에 방어라인 구축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호텔 입구에 들어서기 전, 나는 살짝 뒤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소란스럽게 사람들이 움직이는 너머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이세형과 비교적 태연하게 보이는 미카엘라가 눈에 들어왔다.
저번 회의에서 말했던 대로, 조은대학교의 헌터학과 학생 팀들 역시 이곳에 와있었다.
다만 아직 풋내기에 불과한 학생 팀을 무턱대고 투입할 정도로 유선이 정신 나간 양반은 아니기에, 학생팀들은 최후방에 만약을 대비한 팀으로써 대기할 예정이었다.
그마저도 일정 기준을 넘는 팀들에게만 참가자격이 주어졌고, 그중에서도 참가하겠다는 팀만을 데려온 거였다.
그리고 그 중에는 유일하게 1학년 팀도 하나 섞여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내가 속해있는, 김세율이 멘토로 이끄는 팀이었다.
난 지금 이소연과 함께 대구에 파견 나가있는 것으로 되어있었기에 팀원들은 내가 이곳에 와있다는 걸 모른다.
거리가 꽤 멀어져있었기에 그들이 날 알아볼 확률은 없었지만, 나는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다시 한 번 고쳐 썼다.
지금의 난 머리를 뒤로 쫙 넘긴 채 알이 큰 선글라스를 끼고, 나름 비서답게 보이는 깔끔한 정장 슈트를 빼입은 상태였다. 거울을 보고서 내가 느낀 건 왠지 안주머니에서 권총 한 자루 정도는 나올 것 같다는 거였다.
문득 미카엘라가 이쪽을 바라봤다.
왠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이 거리에서 날 알아볼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작전실과 상황실은 저쪽의 1층 식당과 연회실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뭐, 덕분에 룸서비스는 기대할 수 없게 됐습니다만.”
호텔 내부에 들어서자, 이영수가 가벼운 농담을 던지면서 안내를 시작했다. 호텔 입구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군인 둘이 우리에게 경례했는데, 유선이 손을 휘휘 저어 집어넣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경례를 거부하는 손동작이 꽤나 익숙해보였다.
“오오!! 유선이잖아?”
이영수의 안내를 따라 로비 안을 걷고 있을 때, 누군가가 유선에게 아는 척을 했다.
“넌 나한테 친한 척 하지 말랬지, 요엘.”
“하하, 자네는 여전히 까칠하구만.”
요엘이라 불린 남자는 순진한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과연 스노우 화이트라는 이명에 어울려.”
“오… 너 사망보험 좀 들어뒀나 보다?”
흰색의 가운을 걸친 그는 얇은 금속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어딘가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연구원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의 오른손에 굳은살이라고는 중지의 왼쪽부분에 살짝 박혀있는 게 전부인 것을 보고, 내가 느낀 그의 첫인상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잠깐, 요엘? 어디서 들어본 듯한…?’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는 이름이다. 꽤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설마, 요새도시 개발자 요엘??”
“음, 그렇네만. 그런데 자네는 누구지? 초면인 것 같은데.”
“내 비서다. 적당히 관심 끄지?”
요엘의 물음에 유선이 빠르게 답했다. 행여 내가 말실수라도 할까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유선의 비서라면… 류환이 아니었나?”
“걔는 업무담당, 얘는 잡일 담당.”
거짓말을 술술 내뱉으면서도 유선의 얼굴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았다.
“오오, 과연. S급 헌터 2위 정도나 되면 비서도 둘씩이나 필요한 건가.”
유선의 말에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요엘은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유선의 비서라면, 자네도 한 몫 하는 사람이겠군. 잘 부탁하네.”
요엘은 능숙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내 쪽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아니, 그냥 단순한 잡일 담당입니다만…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유선과 말을 맞추면서 내민 손을 마주잡자, 그가 가볍게 목례를 건네며 마주잡은 손을 흔들었다. 나도 함께 그에게 목례를 건넸다.
요새도시 개발자 요엘.
처음으로 요새도시라는 개념을 떠올리고, 이를 설계해낸 인물이었다.
초기에 그가 내놓은 요새도시 계획은 실현 불가능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기존의 설계를 다시 실용적인 영역으로까지 다듬어내고, 실제 연구와 개발, 적용까지 해낸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뤄낸 업적들을 모두 무료로 전 세계에 공개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인류의 무한한 발전뿐이다.’라는 말과 함께.
처음에는 요새도시의 실제 효과에 대한 의심이 많았고, 섣불리 도입하는 국가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대한민국이 요새도시를 과감하게, 그리고 전격적으로 도입하였고, 그 성과는 빠르게 드러났다. 몬스터로 인한 민간의 피해는 급격하게 줄어들었으며, 헌터들의 활동 역시 훨씬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됐다.
요새도시의 효과가 분명해지자, 이후 요새도시를 도입한 국가의 숫자는 빠르게 늘었고, 미국, 독일, 인도, 영국 등의 국가에서도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많은 국가들이 안정기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 이후 세간에서 그를 부르는 호칭은 ‘인류의 구원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개발해낸 요새도시가 이 세계에 가져온 결과를 생각한다면 그 호칭은 결코 과한 게 아니었다.
게이트에서 흩어지던 몬스터들을 요새도시에 가둬 발을 묶어둔다.
이걸로 헌터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몬스터들을 추적할 필요가 없게 됐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바다낚시에서 물고기를 낚는 것과 양식장에서 물고기를 낚는 정도의 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민간인들 역시 안심하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게이트가 나타나기 전처럼 태평한 삶을 보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느닷없이 붕괴되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사라진 것이다.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삶을 꾸려나가는 것과, 쌓아올린 것들이 오랫동안 지속되리라 믿는 삶을 꾸려나가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열정도, 애정도, 노력도, 전부 말이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게이트가 열리기 전과 비슷한 사회를 다시 꾸려나갈 수 있었고, 다른 국가들 역시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하하, 두 분이서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건 이해하겠습니다만―”
이영수가 접대용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대충 안내하고서 빠질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길어지니 답답한 모양이었다. 하긴 방 하나 안내해주는 것 치고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반갑기는 개뿔. 난 이 녀석 마음에 안 들어.”
“으음, 어쩌다가 미움을 사게 된 걸까…….”
이영수의 말을 자르고서 유선은 손을 내저으며 거부를 표했다.
“이 찾기도 힘든 녀석을 대체 무슨 수로 구해온 거야?”
“요엘님이 먼저 저희 쪽에 연락을 해주셨습니다. 이번 사태를 꼭 근처에서 지켜보고 싶으시다고.”
유선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이영수가 답했다.
“그래, 유선. 이 정도 규모로 열리는 게이트를 언제 또 볼 수 있겠어? 이런 때에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전부 얻어둬야 한다고.”
그리고 요엘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나만큼 게이트 현상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데모닉 게이트 예상 오픈 시간도 내가 계산한 거라고. 솔직히 나만큼 도움 되는 사람 찾기도 힘들 거다. 그렇지?”
“예? 아, 마, 맞습니다. 요엘님이 오시고 나서 저희 측 작업 속도가 현저히 빨라졌지요.”
요엘이 이영수를 바라보며 갑작스레 동의를 구하자, 그가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하, 넌 그냥 데이터 수집하러 온 것뿐이잖아.”
유선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 그건 그렇지. 하지만 결국 그게 다 모두를 위한 것 아니겠어?? ‘내가 원하는 것은, 인류의 무한한 발전뿐이다!!’ 이거 최근에 인터뷰해간 기사 제목인데, 혹시 읽어봤나?”
“알 게 뭐야, 이 빌어먹을 자식아.”
“아, 요엘님!!”
그 때 관리국 소속으로 보이는 사람이 요엘을 급히 찾았고, 한참 동안 대화를 이어나갈 기세였던 요엘은 그제야 자리를 비켰다.
“유선!! 그럼 이따 작전 회의 때 봐!!”
“꺼져, 미친놈아. 네 밑에 다른 놈으로 보내.”
마지막까지 시끄럽게 떠들며 요엘은 사라졌다.
요엘이 사라진 후, 이영수는 몰래 한숨을 내쉬고서는 다시 안내를 시작했다.
왠지 아까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 이영수를 따라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 그는 2층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혹시 내 숙소가 2층이냐?”
“예, 그렇습니다만.”
그의 대답에 유선은 잠시 고민하듯 턱을 짚은 채 잠시 고개를 숙였다.
“31층으로 바꿔줘.”
엘리베이터가 2층에 도착해 문이 열릴 때쯤, 그녀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숙소 말씀이십니까?”
“응.”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엘리베이터 버튼으로 시선이 갔다.
31층이면 이 호텔의 최고층이었다.
“왜, 31층에는 방이 없어?”
“아뇨, 있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지…….”
“그냥. 뷰(경치)가 좋은 곳이 좋아서.”
“…….”
잠시 말문이 막혔는지, 이영수는 가만히 선 채로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닫힐 뻔한 엘리베이터 문을 발로 막아서 멈춰 세웠다.
“뭐… 안될 건 없겠죠. 혹시 몰라서 청소는 다 해뒀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귀찮네요. 그것도 존나게.”
솔직하게 말을 마친 그는 작게 한숨을 내뱉고서는 31층을 눌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