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38화 (38/135)

38화

나는 자식이 없다.

부모가 하는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질이 나쁜 농담이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동환이네 아주머니는 그런 농담을 좋아하는 분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 목소리에 장난 끼 같은 건 담겨있지 않았다.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랬다. 일부러 외면했을 뿐.

우지지직.

“꺄아아아악!!”

나는 현관문을 잡아당겼다. 현관문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뜯겨져나갔다.

필시 지금 내 몸에서는 하얗게 에테르가 뿜어져 나오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나는 다짜고짜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곧바로 동환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자주 놀러가서 함께 콘솔 게임을 즐기곤 했던 곳이다. 내가 찾아가면 웃으며 게임패드를 하나 더 꺼내면서 게임기를 키는 그의 모습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방문을 열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낯선 풍경이었다.

침대가 있던 곳에는 적당한 크기의 가정용 책상이, TV가 있던 곳에는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는 책장 두 개가 놓여있었다.

문득 책상 위 스탠드가 놓인 쪽으로 눈길이 갔다. 그리고 스탠드 밑에는 가족사진으로 보이는 사진이 들어간 작은 탁상용 액자가 놓여있었다.

“…….”

천천히 걸어가 그 액자를 들고서 사진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동환이네 부모님 두 분이 미소를 지은 채 다정히 서계셨다.

나도 본 기억이 있는 사진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내가 봤었던 사진에는 두 분 사이에 동환이가 서있었다는 점이다.

“…아주머니.”

“아, 아 네.”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그녀가 답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몸이 굳었는지 내가 집에 들이닥쳤을 때 있던 모습 그대로 서있었다.

“동환이, 어디 갔어요?”

나는 억지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동환이. 이 집 아들 동환이 어디갔냐고요.”

하지만 그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에.

죽은 용사들은 그 존재자체가 사라져버린 거다.

이 세상에서.

깔끔하게.

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 모든 게, 그 엿 같은 모든 짓거리들이 다 헛고생이 되어버렸다.

아니, 애초에 처음부터 다 헛짓거리였던 것이다.

내가 쫓아온 희망은 그야말로 보잘것없이 작은 것에 불과했지만, 그 작은 희망을 무턱대고 뒤쫓은 대가는 한없이 거대한 절망이었다.

분노가 끓어 넘칠까?

아니, 가슴은 오히려 추락하듯 가라앉았다.

슬픔이 북받쳐 오를까?

아니, 내 마음은 고요히 침묵했다.

나는 나를 짓누르는 절망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한 때 동환이의 방이었던 곳에 주저앉아버렸다.

어쩌면.

어쩌면 이미 이런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단지 그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애써 부정하고 싶어서 여태 달려왔을 뿐.

그저 단순하게 ‘나는 그래도 속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라는 속 좋은 변명을 하기 위해서 달려왔을 뿐인지도 모른다.

마왕을 죽이기 위해 움직일 때만큼은 분명 죄책감이 덜했으니까.

그것이 비록 잠깐에 불과하더라도, 나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넣을수록 죄책감은 줄어들었으니까.

그 의심은 나의 절망을 더욱 크게 만들었고, 나를 짓누르는 절망은 오히려 날 공허하게 만들었다.

“…?”

그 때 뭔가가 내 눈가를 훔쳐냈다.

멍하니 흐려져 있던 눈의 초점을 맞추고 나서야, 어느새 아주머니가 내 앞에 쪼그려 앉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서 내 눈가를 훔쳐내고 있었다.

“무슨…?”

난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여 내 눈가를 더듬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어린 젊은이 같은데,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수건을 들고 내밀었던 손을 거두면서 그녀가 말했다.

“전 그쪽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무슨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네요.”

그녀가 특유의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 무섭습니까?”

다짜고짜 문짝을 뜯고 들어온 강도에게 보이는 태도치고는 상당히 기가 막히는 모습이었기에, 나는 무심결에 그렇게 묻고 말았다.

“무섭죠. 당연히.”

“신고 안하십니까?”

나는 그녀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말했다.

“뭐, 처음에는 핸드폰부터 찾은 게 사실인데, TV에서 강도를 섣불리 자극시키는 건 오히려 좋지 않은 행동이라는 걸 본 기억이 문득 떠올라서…….”

그녀는 다시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리고 내 오른쪽 눈가에 다시 맺혀가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학생 나이 쯤 되는 사람이 울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약해져서 말이에요.”

“하,”

문득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머니를 처음 만났던 때였다.

대낮부터 술에 취한 아버지를 피해 밖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을 때, 그녀는 지금처럼 생판 처음 보는 내 눈물을 닦아줬었다. 그 때와 똑같은 말을 하는 아주머니를 보니 뭔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하하하.”

메말라있기는 했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건 분명한 웃음소리였다.

왜 웃음이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주머니의 모습이 너무 황당해서일까, 아니면 이 상황 자체가 단순히 웃겨서일까.

어쩌면 드디어 미쳐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주머니.”

“왜, 왜요??”

아무리 아주머니라도 곧 죽을 것처럼 눈물을 흘리다가 이제는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사람이 무서웠는지 조금 말을 더듬었다.

“…평범하게 산다는 건. 어떤 겁니까.”

“뭐, 그야…….”

그녀가 약간 무서워하고 있다는 건 무시한 채로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매우 간단한 질문이라는 듯 즉시 답하려다가, 생각보다 어려운 질문인지 조심스럽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에도 성실하게 대답을 해주려고 고민하는 모습이 정말 아주머니다운 모습이었다.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건, 저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겠죠. 자기가 평범한 삶이라고 느끼는 게 누군가에게는 사치스러운 삶일 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삶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죠.”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론은… 저도 모르겠네요. 평범한 삶이 뭔지는, 남들처럼 살아가다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살아가다보면…?”

“몰라요. 평범한 건 평범한 거지. 안 그래요?”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동의를 구했다.

나는 그런 아주머니를 두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미스틸테인의 아공간을 열어, 그곳에 넣어뒀던 보석들 중에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 세계,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보석은 꺼내봤자 의미가 없었기에 에메랄드들 중에서 적당한 크기를 하나 꺼내들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는 되는 녀석이었다.

“문 수리비와, 제 감사의 표시입니다. 신고는… 하시고 싶으시다면 하세요.”

“아니, 무슨 이런 걸. 아니, 문 수리비는 필요하지만, 그래도…….”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내가 건넨 에메랄드를 받아 손에 쥐었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는지 내 얼굴과 보석을 번갈아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앙.”

“…깨물어서 확인하는 건 금입니다.”

가만히 에메랄드를 바라보던 그녀는 에메랄드를 깨물었다.

“어머, 그래요? 호호호. 만져본 보석이라고는 결혼반지에 붙어있는 게 전부라.”

“갑자기 폐를 끼쳐서 죄송했다는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가보겠습니다. 다음부터는 모르는 사람은 좀 경계하시면서 사시고…….”

나는 잠시 망설임이 느껴져 머뭇거렸지만, 이윽고 다시 말을 이었다.

“오랫동안 건강하세요. 그동안, 그동안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아주머니.”

일방적인 기억에 대한 감사를 뱉은 후, 그녀의 대답은 듣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왔다. 문이 박살난 채로 뻥 뚫려있었기에 간단하게 즉시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움직였으므로, 그녀에게는 내가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이리라.

그대로 아파트의 옥상에 올라서서, 나는 잠시 서울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도시의 풍경도, 시가지의 활기도, 그리고 저 멀리서 보이는 게이트의 암운도.

바뀐 것은 조금도 없다. 내가 기억 속에서 떠올리던 서울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그 사실이 조금 안타까웠다.

‘네가 그냥 평범하게 살아갔으면 하는구나.’

망연자실한 상태로 주저앉아 있을 때, 갑자기 선생님의 유언 중에 한마디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게 나에게 정말 마지막으로 남은 목표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옛날부터 말이다.

지구에서 보냈던 삶은 밑바닥 인생이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적에도 끼니를 걱정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 바빴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니던 학교까지 그만뒀었다.

아스트레아에서의 삶은, 지나치게 험난했다. 한 때는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만 했고, 나중에는 사지에 제 발로 걸어가는 이해받지 못하는 삶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겐 혼자서 마왕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었고, 재화 역시 아마 평생 부족할 일은 없을 만큼은 가지고 있었다.

‘평범하게 살아갔으면, 인가…….’

평범한 삶이란 무엇인가.

아주머니는 남들처럼 살아가다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라 말했다.

“선생님은, 죽었다.”

그녀는 다시 만날 수 없다.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선생님은… 죽었어.”

냉정한 현실을 다시 한 번 되뇌이자 오히려 별 느낌이 없었다. 내 감정이었지만 정말 의외의 반응이었다.

감정이 이미 메말라있는 탓일까, 아니면 이미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사실이었기 때문일까.

코어가 뒤틀리는 고통 역시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견딜 수 없는 정도도 아니었다.

하지만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막힘없이 솟구쳐 올라온 눈물들은 그대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윽… 흑…….”

나는 아파트 옥상 난간에 걸터앉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이젠 더 이상 선생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 속죄는, 내 바람은 완전히 실패한 채로 끝난 것이다.

정말로 한심하지만.

지금만큼은 울어도 괜찮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 * *

나는 다시 미스틸테인의 공간을 열어, 그곳에 넣어뒀던 보석들을 모두 꺼냈다. 쌓아놓고 보니 대략 중소형 정도 주머니가 채워질 정도의 양이 나왔다. 약한 놈이면 모를까 나정도 되는 녀석이 돈 좀 들고 다녀서 나쁠 일은 없다면서 카를라 왕녀가 챙겨줬던 보석들이었다.

그것들이 정확히 얼마 정도의 가치를 지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 비싸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적당히 하나씩 꺼내면, 들고 다니기 부담스러울 만큼 많은 돈이 나왔으니까.

“흡!!”

그리고 난 그것들을 하나씩 전부 파괴했다. 손에 에테르를 최대한 두르고 세게 움켜쥐면, 맑은 파쇄음과 함께 보석은 가루가 되어 공기로 흩어졌다.

보석 하나하나가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안에 있던 뭔가도 함께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쉬움과 동시에 안타까움, 그리고 왠지 모를 해방감 또한 느껴졌다.

가지고 있던 보석들을 전부 파괴한 후, 나는 따로 빼놓았던 두꺼운 금화 한 닢을 주워들었다. 금은 언제든 어디서든 환전이 용이한 귀금속이었다.

‘금화 한 닢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최소한의 자기합리화를 끝마치고서 금화를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이 정도면 다시 이 세계에 적응할 시간 정도의 생활비는 될 것이다.

“그럼 어디…….”

옷에 묻은 보석가루들을 털어내고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아보자고. 평범하게.”

평범하게 사는 것. 그것이 뭔지는 몰랐지만, 일단 움직이고 보기로 했다.

우선 남들이 살아가는 대로, 무턱대고 쫓아가보자.

너무 앞서가지도 않게, 그렇다고 지나치게 뒤쳐지지도 않게.

선생님의 말은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학교였다. 에스퍼가 아닌 이상 내 또래들의 목표는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는 거였으니까.

‘일단… 검정고시부터 준비해볼까.’

그렇게 결심하고 나는 옥상을 내려갔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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