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대단하구나.”
왕좌에 앉아있는 그 자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죽어가는 사람의 중얼거림에 가까웠지만, 그 목소리에는 근엄함이 담겨있었다.
“설마, 세 마왕이 단 한명의 인간에게 당할 줄이야. 큭큭.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도 네가 차원의 틈 속에까지 숨어들어갔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원호가 품속에 넣어뒀던 투박한 모양의 아티팩트를 꺼내면서 말했다. 니드호그의 용심에 봉인되어있던 차원석이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차원석을 니드호그한테 넣어뒀을 줄이야. 아주 훌륭한 판단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쓸데없이 고생만 더 했잖아?”
“하하, 사룡은 우리들도 꺼려하는 존재인데 말이야. 설마 인간 따위가 마신님께 직접 축복을 받은 드래곤을 죽일 줄은 꿈에서도 몰랐네. 이거야 원…….”
마왕 바르바토스의 복부는 검에 꿰뚫려 있었고, 그 검은 그가 앉아있는 왕좌에까지 꽂혀있는 상태였다. 꿰뚫린 복부에서는 피가 줄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꿰뚫고 있는 검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미스틸테인이로군. 신살검이라니. 리리스 녀석이 쓸 데 없는 짓을 했구만.”
“그래, 그 빌어먹을 년이 나에게 선사해준 물건이다.”
원호는 처음으로 리리스에게 강제소환 당했던 때를 떠올렸다. 다짜고짜 소환된 그곳은 살아 돌아온 모험가가 없다는 고대 황제의 유적이었다. 카눌의 보물고를 털었던 것으로 유명했던 트레져 헌터, 빌 루딘이 죽음을 맞이한 유적으로도 이름 높았다.
그곳에서 수호 골렘과 마주친 원호는 영락없이 죽을 뻔했지만, 우연히 그곳에서 미스틸테인을 발견한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미스틸테인은 그의 애검이 되었다.
이 검이 없었다면, 일개 인간 따위가 마왕과 맞설 수가 없었으리라. 미스틸테인 덕분에 그는 마왕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얻었고, 지금 그 결실이자 끝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하하하, 빌어먹을 년이라니. 참으로 그 년에게 어울리는 말이로구나.”
“됐고, 시끄러우니까 이제 그만 꺼져.”
길게 유언을 들어줄 의리 따위는 없었고,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원호는 그의 복부를 관통하고 있던 검을 뽑아들고서, 마지막 남은 마나를 둘러 그의 목을 베었다.
오랫동안 많은 피를 흘렸음에도 목이 날아간 자리에서는 핏물이 한참동안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핏줄기가 멎을 때 쯤, 바르바토스의 몸은 허물어져 왕좌에 힘없이 늘어졌다.
원호는 얼굴에 튄 핏방울들을 닦아낸 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마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근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바르바토스는, 이제 단순히 의자 위에 늘어진 시체 한 구에 불과했다.
죽인 지 이틀 만에 부활해서 다시 나타났던 포르네우스의 사례가 있었기에, 원호는 바르바토스의 시체의 코어에 칼을 꽂아 넣고 에테르를 흘려보냈다.
잠시 후, 코어로부터 각 회로로 흘러간 에테르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바르바토스의 시체는 말 그대로 파편이 되어버렸다. 혹시나 그에게 부활의 권능이 있다하더라도 마신이라도 돌아오지 않는 이상 그는 이제 부활할 수 없다.
“…이제, 정말로 끝이다.”
원호는 다리에 힘이 풀리듯 제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정말 다리에 힘이 풀렸던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일어서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는 너무 지쳤다.
“끝이에요, 선생님.”
공허한 분위기가 맴돌던 마왕성 안에 그의 목소리만이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한 세계를 위협하던 세 마왕을 혼자서 모두 죽인 상황이었지만, 그 위대한 업적을 축하하는 팡파레도, 클리어를 축하하는 메시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축복을 내리기 위한 천사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원호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그딴 시덥잖은 축하나 받자고 마왕을 죽인 게 아니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 앉은 채로 기다렸다.
‘마왕들을 죽이면, 죽었던 용사들이 살아난다.’
선생님을 잃고 난 후 폐인처럼 생활하던 시절에 우연히 듣게 됐던 정보였다.
그 이후 나는 전설 속 용사들의 정보를 찾아 온 세계를 돌아다녔고, 이윽고 아스틴 제국의 왕실 도서관에서 나는 용사를 소환하는 의식에 대한 내용이 적힌 문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용사 소환은 기본적으로 세계에 마왕이 군림했을 때 거행되지만 그 외의 목적으로도 소환할 수 있으며, 그 목적은 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제한된다. 불러낸 목적이 달성되었을 경우 용사들은 자동적으로 원래 세계로 송환된다.>
<만약 다수의 용사가 소환되었고 거기서 사망자가 발생했을 경우,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 소환된 목적을 달성한다면 달성되는 순간 사망자들은 부활하여 함께 송환된다.>
<이는 다른 세계의 인간을 불러오는 용사 소환이 기본적으로 세계와 세계간의 계약이기에 전부 죽거나 전부 원래대로 돌아가거나 둘 중 하나의 이중택일이기 때문이다.>
문서에 적힌 용사 소환에 관한 내용은 그 세 줄이 전부였다.
왕실 도서관 내에 있던 자료라고는 하지만, 그걸 간단히 믿기에는 내용이 너무나도 빈약했다. 근거도 없었다.
하지만 원호는 거기서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희망만을 바라보며 그는 이곳까지 도착한 것이다.
진격해오는 마왕군을 전멸시키고, 제국의 황녀를 도와 암살을 행하며 지원을 받아냈다.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마왕성을 찾아 해매이고, 차원석 하나를 얻기 위해 사룡까지도 죽여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명의 마왕을 모두 죽이고 자신은 이곳에 앉아있다.
원호는 피에 절어있던 가죽장갑을 벗고 자신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처음 이 세계에 소환된 이후로 성장이 멈춰버린, 벌서 20여년을 함께 해 온 손이다. 곳곳에 박힌 굳은살과 흉터들을 제외하면 그 때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용사들의 신체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나이를 먹지 않았다. 그 사실은 축복이기도, 저주이기도 했지만 원호는 이를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덕분에 선생님이 자신을 못 알아볼 일은 없을 테니까.
선생님을 다시 뵙게 되면,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애초에 부활한 용사들은 어떤 상태로 부활하게 되는 걸까.
눈을 감았다가 눈을 뜨니 갑자기 이 곳이었다― 같은 느낌으로 부활하는 걸까?
아니면 기억을 잃은 상태일까? 나는 예전에 읽었던 소설의 전개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 소설 속 주인공의 동료들은 처음 소환 됐던 그 상태로 부활했기에 그동안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선생님께 모든 걸 천천히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의 헛소리에 차갑게 반응하겠지만, 그래도 내심 고민하고는 끝내 진심을 눈치채줄 것이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알고 계실 수도 있다. 영혼이 되어 남은 사람들을 지켜보는, 나름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만약 그렇다면 선생님은 나의 모든 행적을 지켜보셨으리라. 그녀는 아닌 척 은근히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내심 마지막의 전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만약 그렇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원호는 기둥 하나에 등을 기댄 채로 멍하니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작은 희망 하나만을 기다리면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정말 끝났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끝마쳤으니까.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다.
문득 물밀듯 밀려오는 졸음에 원호는 잠시 눈을 감기로 했다.
아주 잠시만.
조금 늦게까지 잠에 들더라도 선생님께서 깨워주시겠지.
‘해가 중천이다, 정신 빠진 녀석아.’
그래, 그런 식으로. 예전처럼.
* * *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그리운 느낌이 드는 천장이었다. 그렇기에 낯설었다. 천장에는 둥근 모양의 형광등이 달려있었다.
“…….”
덮고 있던 이불에서는 살짝 쾌쾌한 먼지 냄새가 났다. 은근히 두꺼운 겨울용 이불을 살짝 걷어내고서,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내가 눈을 뜬 곳은 몇 평 되지 않는 조막만한 원룸이었다.
그 흔한 전기장판도 없이 이불만 깔려있는 바닥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채로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자그마한 창문으로 아침 햇빛이 방안에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내가 아는 곳이었다.
그리고 한 때는 그리워하기까지 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한없이 공허할 뿐이었다.
용사들의 부활 따위는 없었다.
내가 여기서 눈을 떴다는 건 그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시발…….”
나는 두 손으로 눈가를 감싸쥔 채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시발!!”
그것 말고는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극도의 허무함과 실망감이 몰아쳤다.
그러다 잠시 후, 나는 내가 지금 이곳에서 눈을 뜬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이 세계는 내가 소환된 이후, 조금도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옆을 바라보니 역시나 피자박스가 놓여있었다. 안에는 피자 두 조각이 남아있었다. 소환되기 전날, 오늘 아침밥으로 먹으려고 남겨뒀었던 근처 싸구려 피자가게의 치즈 피자였다.
나는 급하게 옷을 챙겨 입었다. 문득 사라진 체인 메일 대신 안에 무엇을 덧대 입어야하나 고민하다가, 이 세계에서는 그러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오랜만에 입는 현대인의 복장은 오히려 불편한 느낌이었다.
적당한 청바지에 펑퍼짐한 후드티 하나를 입고서, 나는 밖으로 나섰다.
내가 향하는 곳은 함께 아스트레아에 소환됐었던, 그리고 펠로스 평원 전투에서 허망하게 죽어버렸던 친구의 집이었다.
너무 쉽게 죽어버렸던 친구를 다시 만난다는 설레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원래 세계로 돌아온 용사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지금 그 친구를 만나면 현실에 돌아온 용사들이 어떻게 된 상태인 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그 세계에 소환 됐었다는 기억 자체를 잃고 평소처럼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죽었던 시점까지의 기억은 가지고 있을까.
혹은, 그대로 죽는 것일까.
그 물음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나는 달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에테르까지 활용되어, 세 정류장 거리에 있는 그곳에 5분 만에 도착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달린 탓인지 살짝 가빠오는 숨을 가다듬고서,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아, 어머니. 저 동환이 친구 아크… 아니, 원호입니다.”
초인종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지극히 평온했다. 최소한 아들을 잃은 부모의 목소리는 아니다. 나는 그렇게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그게 누군데요?]
“어머니, 급한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장난치지 마시고 동환이 좀 잠깐 볼게요.”
동환이와는 중학교 생활과 고등학교 생활을 같이 보낸 나름 친한 친구였다.
동환이의 어머님 역시 내 집안 환경이 불우하다고 차별하지 않는 좋은 분이셨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원룸으로 집을 옮긴 후에는 가끔 반찬까지 해주시던 분이셨다. 단점은 가끔 이런 장난을 치신다는 것 정도.
나는 어머니가 장난을 치시는 모습에 추억을 자극하는 그리움을 잠시 느꼈지만, 그와 동시에 괜히 조바심을 느꼈다.
[집을 잘못 찾으신 것 같습니다.]
“…….”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솟구치는 짜증을 막을 수가 없었다.
지금 감히, 너 따위가 이 순간에 나를 막는다고? 그것도 단순한 장난으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정신을 차렸을 땐 하얀빛을 내뿜는 오른팔이 이미 문고리를 붙잡고 있었다.
“후우…….”
활성화 되어있던 마나를 거둬들이고서, 날카롭게 서있는 정신상태를 심호흡으로 조금이나마 진정시켰다.
아스트레아에서 내가 여태동안 이겨낸 역경의, 버텨온 삶의 성과를 확인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이토록 예민해져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하지만 조금은 진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곳은 아스트레아가 아니었으며, 그리고 조바심을 낸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동환이의 어머니는 나의 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분이셨다.
다시 한 번 심호흡을 내쉬면서 갈무리를 끝마친 나는,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어머니, 동환이 좀 불러달라니까요.”
[…또 당신이에요?]
이것 참 장난이 끈질긴 어머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저희 집에는 자식이 없어요. 동환이라는 친구를 찾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쪽 또래 나이의 사람은 저희 집에 없답니다.]
어머니는 초인종 너머에서 상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