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또다시, 과거
“하악… 하악… 헉…….”
신전 한 가운데에 뻗어있는 남자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해냈다…….”
차가운 돌바닥 위에 넓게 깔려있는 핏물은 작은 호수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호수의 중간쯤에 누워있던 남자는, 천장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전 내에는 핏물이 방울져 떨어지는 소리만 간간히 들려올 뿐, 그 어떤 잡음도 없었기에 남자의 목소리는 그 크기에 비해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신전 내에 잔잔하게 울리던 목소리가 사라질 때쯤, 남자는 다시 한 번 말했다.
“해냈어, 해냈다고!!”
방금 것이 힘없는 혼잣말에 불과했다면, 이번 것은 외침에 가까웠다. 남자의 목소리가 신전 안에 메아리치며 울려 퍼졌다.
“하하, 하하하하!!! 쿨럭, 쿨럭. 으윽.”
하지만 그 직후 남자는 고개를 돌린 채 격한 기침을 내뱉었다.
또다시 피를 쏟아냈는지 입안 가득히 기분 나쁜 피비린내가 퍼졌다. 다만 피를 뱉어낸 바닥은 이미 피바다라고 불러도 좋을 지경이었기에, 자신이 얼마나 각혈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뭐, 내 피는 거의 없지만…….’
피바다 위에 누워있던 남자, 원호는 조심스럽게 상반신을 일으키고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앞에는 사룡 니드호그의 사체가 볼썽사납게 널브러져 있었다.
“하하, 고작 파충류 따위가 주제넘게 신전 따위나 지어놓으니까 그런 꼴이 나는 거야, 이 병신 같은 자식아.”
세 마왕과도 견줄 수 있다는 사룡 니드호그의 최후는 꽤나 비참했다.
마신에게 직접 축복을 받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니드호그는, 그가 날개를 펼치면 한개 군단이 그늘에 가려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강력한 드래곤이었다.
니드호그의 힘은 그 마왕들과도 견줄 만하다.
세간에 나돌고 있던 니드호그에 대한 소문이자 평가였다.
하지만 그 소문은 틀렸다.
니드호그는 오히려 어지간한 마왕들보다도 강력했다. 그의 힘은 순수한 폭력이었으며, 또한 압도적이었다.
세 마왕 중 두 명, 발자크와 포르네우스가 아크에게 소멸된 이후이자 그가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다.
그 때 인간들은 아스트레아에서 마왕군을 몰아내자며 아스틴 제국을 중심으로 뒤늦게 토벌군을 결성했었다.
전쟁의 승기가 보이는 듯하자 각자의 이득을 위해서 급하게 모인 군대에 불과했지만, 그 규모와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단순한 수치상으로는 아스트레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라고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니드호그는 그 토벌군을 순간에, 그야말로 한 순간에 격퇴시켜버렸다. 그것도 단신의 힘으로, 단 한 번의 전투에서 말이다.
사실상 이미 이긴 전쟁이라고 판단하여 숟가락이라도 얹어보려는 심산으로 뭉쳤었던 토벌군들은 그 허무한 패전에 토벌의지가 전부 꺾여버렸고, 그들은 다시 각국으로, 그리고 각 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마왕군 토벌의 시기는 다시 한참 멀어진 것이다.
흑빛 산맥에 오랜 시간 잠들어있다 깨어난 그는 그 즉시 다시 한 번 세상에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은 신전의 옥좌에서 단 한명의 인간에게 패했다.
사실상 드래곤 레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 니드호그의 신전은, 섬세함은 없었지만 그 규모와 웅장함에 있어서만큼은 최고신의 신전보다도 한 수 위에 있는 거대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전장으로서 니드호그에게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분명 거대하고 웅장한 신전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니드호그의 본체가 자유롭게 날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또한 온갖 귀금속과 흑빛 산맥 일대의 드워프들을 총동원하여 지어진 신전은 메테오가 직격으로 내리꽂히더라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게 설계되었고, 결국 신전은 아크와의 싸움에서 그를 가두고 움직임을 봉하는 결계가 되어버렸다.
결국 그의 신전은 그대로 그의 무덤이 되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천장에 브레스를 뿜어냈지만, 천장이 뚫리기 전에 그의 코어가 꿰뚫리는 것이 먼저였다.
“개 같은 놈. 내가 여기 숨어들어오겠다고 고생한 걸 생각하면… 쿨럭. 크윽.”
마나가 역류하는 느낌에 원호는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코어를 살폈다.
기아스 수십 개를 동원하고 코어 또한 한계까지 가동시킨 탓에 회로가 뒤틀리고 마나가 고갈되어 있었다. 이대로 사인(死因)으로 등록되더라도 부족함이 없는 현상이었다.
누가 보면 자살행위라고 간주했을 법한 행동들이었지만, 니드호그가 신전의 천장을 뚫고 빠져나가기 전에 그의 용심(龍心)을 깨트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신전이 아무리 견고하게 지어졌다지만, 니드호그가 본격적으로 발휘하는 힘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브레스를 계속해서 내뿜었다면 1분도 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브레스에 직격당한 천장부분은 용해되어 부글부글 끓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남겨뒀었던 마나를 전부 쏟아 붓고도 모자라 코어를 쥐어짜냈을 무렵에야 겨우 니드호그의 용심을 꿰뚫을 수 있었다. 힘이 조금만이라도 부족했다면, 아니 니드호그가 천장을 뚫는 시도를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했다면 비참한 결말은 저 도마뱀이 아니라 자신이 맞이했으리라.
“시발… 연료가 떨어지면 얌전히 전원만 꺼져야 정상인 거 아니야? 왜 지 멋대로 작동해서 폭주하고 지랄이야.”
원호는 점점 커져가는 통증에 불평을 토해냈다. 그러나 이미 그 불평에 대한 답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나회로는 이미 정상이 아니다. 자신의 마나회로는 이미 갈가리 찢겨지고 뒤엉켜버린 잔해에 불과했다.
다만, 그걸 수십 개의 기아스로 강제로 이어놓고 땜질하듯 붙여뒀을 뿐.
원호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문득 눈알이 돌아갈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지만, 겨우 참아내고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앞에는 니드호그의 사체가 놓여있었다.
니드호그의 사체 앞에 도착한 원호는, 형체만 겨우 유지되고 있던 니드호그의 용심에 자신의 검을 박아 넣었다.
그토록 강력한 힘이 담겼던 용심이었지만, 이미 박살나기 직전이었던 상태였기에 마나가 담기지 않은 단순한 물리적 타격에도 용심은 간단하게 산산조각이 났다.
그와 함께 니드호그의 사체는 재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곳에는 투박한 모양의 보석 하나만이 남았다. 바르바토스의 마왕성이 숨어있는 차원의 틈과 연결되어 있는 차원석이었다.
이것 때문에 사룡과의 혈투를 벌인 거였지만, 차원석을 보고 원호는 성취감보다는 막막함을 느꼈다.
“하하, 하…….”
자신은 이미 한계다.
힘들 때 흔히들 내뱉곤 하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 말은 엄살에 불과하다. 한계라는 건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원호는 자신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이미 깨닫고 있었다.
몸은 이미 폐인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모든 것이 고갈되어있었고, 말라붙어있었다. 몸의 절반이 마비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보다 자기 몸에 이질감을 느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몸은 상관없다. 아직은 움직이면 어떻게든 움직이는 몸이다. 달려 나가야 할 때 달려 나갈 수 있고, 베어야 할 때 벨 수 있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정신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녀가 눈앞에서 죽어갔던 그 날, 자신의 꿈이 꺾여버렸던 그 날.
아마 그 때 그의 정신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던 것이리라.
그에게는 이 고통을 버텨내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목표도, 지키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있었지만 전부 사라졌다.
남은 것은 마왕을 죽인다는 지나치게 막연하고 지나치게 절망적인 목표와 실 날 같은 희망 하나 뿐.
대체 무엇을 위해. 대체 누구를 위해.
나는 그저, 나는 그저…
“야아, 정말 해냈네? 역시 아크님이라 이건가.”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전으로 숨어들어오는 동안 밖에서 시선을 끌어두기 위한 목적으로 고용했던 울프 용병단의 블러드 울프, 로크였다. 그 역시 한바탕 날뛴 듯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로크. 생각보다 빨리 왔군.”
원호는 차원석을 챙겨 넣은 후, 방금 전까지 엉망으로 일그러져있던 얼굴을 진정시킨 다음 뒤로 돌아 로크를 바라봤다.
감정을 읽어내기가 힘든, 평소 그가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는 얼굴이었다.
“설마 했다. 정말로 사룡을 죽이다니.”
잠시 쭈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핏물을 찍어보며 로크가 말했다.
“설마라고? 넌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는 의뢰를 받은 거냐?”
원호가 조금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자, 로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야 뭐 용병 나부랭이라 돈 받았으면 따라와야지. 솔직히 진짜로 해낼 줄은 몰랐다. 시신이라도 수습해주려고 쫄래쫄래 따라와 본건데, 허이구.”
로크가 특유의 장난 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레온하르트 아저씨가 알면 되게 분해할 것 같은데?‘
“레온하르트? 그 녀석 이름이 왜 나오는 거지?”
“그 아저씨 자기 기사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잖냐. 저번 토벌군에 새벽의 기사단도 참전 했었거든. 아저씨는 빠졌었지만.”
그리고 그 토벌군은 니드호그와의 단 한 번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고 급하게 퇴각했다. 원호는 그 사실을 떠올리고서는 코웃음을 쳤다.
“하, 별 걸 가지고 질투를 다 하는구만. 나이 값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토벌군이 퇴각한 거지 새벽의 기사단이 패한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하지만 토벌군이 퇴각하면서 기사단도 물러난 게 사실이잖아?”
“애초에 그런 걸로 분해할 거면 내가 제안했을 때 따라오던가. 어이가 없군. 나에게 불평을 하고 싶다면 간부급 마족 목이라도 하나 따오고서 해달라고 전해라.”
“나라도 따라와 줬잖냐.”
“너도 돈 받고 따라온 거잖아.”
뭐, 그것도 그렇지. 로크가 중얼거렸다.
딱히 이어질 말은 없었기에 대화는 거기서 끊어졌다. 평소 로크는 대화가 끊어지려하면 어떻게든 계속해서 이어가는 성격이었지만, 그 또한 입을 다물었다.
로크가 입을 다물자, 다시 신전 내부에 침묵이 깔렸다.
그 침묵을 별다른 용건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 원호는 정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로크가 서있는 방향이었다.
“계약은 전부 이행됐다. 그럼 여기서 이만.”
로크를 지나치기 직전, 잠시 멈춰선 원호는 그렇게 말한 후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찰박. 찰박.
끈적한 핏물 위를 걷는 소리만이 신전 내에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어이, 아크.”
그리고 그 발자국 소리가 8번 정도 더 울렸을 때, 로크가 원호를 불러 세웠다.
원호는 그에게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발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너는 대체, 무엇 때문에 싸우는 거냐?”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달리 장난 끼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목소리에 담긴 건 진지한 호기심뿐이었다.
“나와 애던은 돈 때문에 싸운다. 레온하르트는 제국을 위해 싸운다. 하지만 그건 결국…….”
로크는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가, 뭔가를 결심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자기 합리화 수단에 불과하겠지. ‘마왕을 죽인다.’라는, 말도 안 되는 압박에서 눈을 돌리기 위한.”
아스트레아라는 살벌하고 낯선 세계에서, 용사들은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런 상황에서 마왕이라는 존재를 물리치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그렇기에 로크는 일부러 외면했다.
돈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이 세계가 더 마음에 들어서 집에 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 말들로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마왕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맞서기엔 자신의 목숨이 소중했기에.
이런 낯선 세계의 반쪽짜리 용사의 삶이라고해도 죽음이라는 건 너무나도 두려웠다.
살아남는다. 결국은 그게 로크의 가장 큰 목표였다.
그렇기에 그는 이 세계에서 강해질 수 있었지만, 그렇기에 마왕과 싸우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아크는 벌써 두 명의 마왕을 죽였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니드호그마저 죽여 버렸다. 그것도 혈혈단신의 몸으로.
단 한명의 인간이 해내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한 업적이었다.
감히 추측할 수는 없겠지만, 그건 분명 힘겹고도 처절한 길이었으리라.
로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를, 그리고 그 강함을.
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강하게 만드는가. 그는 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처절한 길을 택하는 것인가.
“너는 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거냐?”
그는 그것을 묻고 있었다.
“하.”
원호는 가볍게 웃음을 내뱉었다. 비웃음같이도 들릴, 그런 웃음이었다.
“당연하잖아.”
그리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답했다.
“마왕을 죽이기 위해서다.”
지나치게 단순한, 그리고 그렇기에 터무니없는 한 마디.
그 한 마디를 내뱉고서 원호는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래, 나는 마왕을 죽인다.
나의 속죄를 위해, 선생님을 위해. 그리고 선생님에게 속죄하기 위해.
그게 단순한 가능성중 하나에 불과할 지라도.
나는 그저.
나는 그저,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을 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