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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34화 (34/135)

34화

밖에서 봤던 인상과 달리, 회의실 안의 공간은 상당히 넓었다.

그리고 회의실 한 가운데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거대한 테이블이 놓여있었는데, 그걸 보면 누구나 ‘아, 여긴 회의실이구나.’라고 생각할 법한 그런 물건이었다. 지나치게 큰 테이블이라는 뜻이었다.

“…….”

그리고 그 회의실 안에는 굉장히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회의실의 면적은 상당히 넓어 탁 트였다는 표현과도 어울릴 정도였지만, 마치 독방에라도 갇혀있는 듯한 답답한 공기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에서 최상위권에 속해있는 헌터들이었다. 각자의 자리에는 간략한 명패가 놓여 있었는데, 개중에는 유명 용병대나 유명 헌터팀의 리더들도 간간히 보였다.

두란 용병대를 이끌고 있는 헌터 질풍검 진호연.

팔란의 감시자들의 리더로 유명한 청랑 김어수.

시가지에 나타났던 키메라를 홀로 마무리 지은 일로 유명한 은둔자 최태환.

전 세계적에 에스퍼 강국으로 소문난 대한민국의 헌터들 중에서도 특히나 이름을 떨치고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멤버 라인만 보더라도 꽤 엄격하게 거르고 걸러서 모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쟁쟁한 멤버들 사이에 이소연이 앉아있었다.

나는 그녀의 앞에 놓인 명패를 읽었다.

‘이블아이… 아마 S급 9위의 이명이었지. 뛰어난 건 알고 있었지만, S급 헌터였나.’

현재 14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S급 헌터들.

헌터들은 에스퍼들 중에서도 전투로 단련된 프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S급 헌터들은 그 헌터들 중에서도 인간을 초월했다는 평가를 받는, 명실상부한 괴물들을 말했다.

A급 헌터까지는 일정 수준의 승급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격만 갖춰지면 누구나 승급할 수 있지만, S급 헌터는 헌터 협회에서 판단하여 선정할 뿐, 별다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협회의 S급 헌터 선정 기준에 대하여 토를 달지 않는다. 누가 봐도 납득을 할만한, 그런 녀석들만이 S급 헌터로 선정되어 왔기에.

그리고 이소연의 앞에 놓여있는 명패는, 그녀 또한 그 괴물들 중에 한 명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턱을 괸 채로 멍하니 정면의 창가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평소 그녀의 모습과 달리 차가운 느낌이 드는 모습이었다.

잠깐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얼굴에 얼핏 반가워하는 기색이 떠올랐는데,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후, 니들은 나 없으면 말도 못하냐?”

회의실 안에 들어선 유선은, 그 무겁게 깔린 공기를 보고서 한 마디 했다.

“유선. 자네가 불러서 모인 자리잖나. 주최자가 오질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끼리 시작할 수 있겠는가?”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남자가 인상에 어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쯧… 거 할 말은 없구만.”

혀를 찬 유선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회의실 가장 안쪽의 상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리가 비어있었는데, 그곳에는 ‘스노우 화이트 유선’이라 적힌 명패가 놓여져있었다. 그리고 유선은 당연하다는 듯 그 자리에 앉았다.

스노우 화이트 역시 S급 헌터의 이명들 중 하나였다. 그것도 S급 2위의.

하지만 유선은 첫 만남 때부터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었고, ‘아마 S급 정도는 되지 않을까’라고 평소 생각해왔기에, 소연이의 정체를 알았을 때와 달리 별 놀라움은 없었다. 오히려 ‘역시 그랬군.’ 정도의 느낌이랄까.

“뭐 일단 이런 급한 상황에서 늦은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유선은 보기 드물게 고개까지 숙였다. 다른 사람들도 보기 드문 광경이었는지 살짝 놀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각설하고. 지금 상황 모르는 사람 손들어.”

유선은 자리에 앉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방금 전까지 고개를 숙였던 사람이 보일만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녀에 한해서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이는 행동이었다.

“없군. 그럼 구체적인 상황 설명으로 바로 넘어가도록 한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걸 확인한 유선이 곧바로 회의를 진행시켰다.

“이번에 열리는 게이트는 서울 외곽 제 7구역 바깥쪽에서 관측되고 있다. 시가지와의 거리는 대략 9km정도 떨어져있고, 따라서 데드라인까지의 거리 역시 9km라고 보면 된다.”

유선의 말하는 도중 테이블 한 가운데에 서울 외곽지역의 간략한 지도가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지도의 바깥부분 쪽에는 크게 찍힌 붉은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부터 서울 시가지까지 붉은 선이 천천히 그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구석에 앉아있는 류환이 노트북을 만지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 그가 홀로그램을 조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게이트가 심상치 않는 놈이라는 건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관리국에서 보내온 데이터로는 일반적인 게이트의 8배 이상의 출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구만. 뭐 이정도면… 조금만 더 보태면 어비스 게이트랑도 비벼볼만한 수준이네.”

그녀가 어비스 게이트라는 말을 언급하자, 몇몇 사람들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안 그래도 경직되어 있던 회의실 내부의 분위기가 더욱 굳은 느낌이었다.

“게이트의 위치도, 규모도 전부 상상을 초월하는 또라이 같은 상황이다. 평소였으면 튀고 싶은 놈은 튀고, 남고 싶은 놈은 남으라고 하겠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그럴 수가 없군.”

“그럴 놈들은 애초에 이 자리에 모이지 않았을 겁니다.”

유선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하자, 한 사람이 힘찬 목소리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팔란의 감시자들의 리더로 알려진 청랑 김어수였다.

팔란의 감시자들은 초창기에 민병대부터 시작해서 현재 프로 헌터 활동까지 이어나가고 있는, 나름 유서 깊고 뜻 깊은 집단이었다.

“저희 팔란의 감시자들은 전 인원이 목숨 바쳐 서울을 지켜낼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김어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당당하게 말했다. 조직의 명성에 어울리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발언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와 생각이 다른 것일까, 아니면 좀 더 신중하게 판단을 내리려는 것일까. 어느 쪽이건 그들은 서로 분위기를 살필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김어수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마 자신의 의견에 다른 사람들도 동조하며 열혈적인 분위기가 되리라고 판단했었던 것이리라.

“그래, 목숨까지 바치는 건 이쪽에서 사양하겠지만 어쨌든 알았다.”

보다 못 한 유선이 그에게 불친절하게나마 답을 해줬고, 그는 그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진호연,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데 말이야.”

“…끄응.”

유선이 한 사람을 지목하면서 물었다. 서로 눈치를 보고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최근의 활약으로 이름을 날린 두란 용병대의 질풍검 진호연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끄는 두란 용병대는 어디까지나 용병대입니다. 한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더 좋은 제안을 해오는 곳이 장땡이란 말입니다.”

진호연은 약간 주눅이 들어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그리고 어제, 저희 쪽에 거래 제의를 보내온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세부적인 사항은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만, 별 메리트가 없는 곳들은 제외하더라도 5개나 됩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강한 에스퍼가 많기로 유명한 나라였다. 대한민국이 빠르게 안정기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요새도시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빠르게 도입한 것도 있었지만, 헌터들의 수준 자체가 전체적으로 높았던 이유도 있던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국가들은 대한민국의 이름난 헌터들을 빼오기 위해서 언제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번 사태는 오히려 헌터들을 스카웃 할 기회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내 참. 이번 게이트 사태 방치해 둬봤자 자기네들도 좋을 거 하나 없을 텐데. 하여간 거지같은 놈들.”

유선이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 쪽에 붙겠다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거야? 그래서 다 벙어리처럼 앉아있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그녀가 약간의 조소를 띤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하자, 진호연이 급하게 받아쳤다.

“그런 단순한 제안에 넘어갈 사람들이었으면 지금까지 한국에 남아있지도 않았을 테죠. 애초에 이 자리에 모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말입니다. 다들 이 나라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남아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다만…….”

“다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사태는 너무 위험합니다. 만약 이번 방어 작전이 실패한다면, 저희 측은 헌터들 중에서도 최정예들을 잃게 되겠지요.”

진호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뱉었지만, 그러면서도 유선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나름대로 용기를 다진 모양이었다. 조용히 앉아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의 말에 동조하는지 흘낏흘낏 눈길을 보냈다.

‘목숨이 아깝다는 거구만.’

빙빙 돌려 말하고 있었지만, 결국 진호연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간단했다.

이번 작전이 과연 승리를 거둘 수 있겠느냐.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냐. 작전이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생존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느냐.

그는 이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나섰을 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걸 딱히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번 사태의 규모는 도망친다고 해서 겁쟁이로 치부할 정도로 만만한 상황이 아니다.

어비스 게이트 이래로 최대 규모라고들 말했지만, 인류는 그 어비스 게이트도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었다.

거기서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는지도 알 수 없었고, 그 몬스터들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토벌하려 했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뤘어야 했을 지도 알 수 없었다.

즉, 사실상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측정할 수 없는 미지의 재앙이자 사상 최악의 사태인 것이다.

유선은 잠시 한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진호연을 노려보았다. 그녀가 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 할 리가 없었고, 그녀의 성격상 그걸 좋게 볼 리도 없었다. 진호연의 안색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하.”

하지만 정작 목소리는 유선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나왔다.

그 때까지도 멍하니 창가만 바라보고 있던 이소연이 입을 열었다.

“그냥 무서우면 무섭다고 하시죠. 하기 싫으면 문 열고 조용히 나가시고. 저기 친절하게 비상구라고도 적혀있네.”

이소연이 문 위에 달려있는 초록빛 등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등에는 비상구라고 적혀있었다.

“…조금 말이 심한 것 같군. 이블아이.”

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말했다. 약간 기분이 상한 어조였다.

“말이 심하다고요? 지금 상황이 더 심각하지. 평소에는 헌터랍시고 나름 대접 받으면서 살아오셨을 분들이, 정작 필요할 때가 되서 모아놓으니까 서로 눈치만 보고 있잖아?”

“말을 삼가도록 해요, 이블아이!! 당신 따위가―”

그녀가 비아냥거리듯이 말하자, 그녀의 정면에 앉아있던 중년의 여자가 책상을 치면서 말했다. 꽤나 성격이 불같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혀가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 따위가, 뭐요?”

정면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이 불에 타는 듯 파랗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말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드리워져있었다.

“다음으로 입에 담을 말은 신중하게 고르는 게 좋을 거에요, 언니.”

“아, 아…….”

“후우.”

유선이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굳어있던 여자는 그제야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네가 눈을 때야 말을 입에 담기라도 하지, 미친년아.”

유선이 핀잔을 주듯 말하자, 이소연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미지와 상당히 다른 모습에 나는 한동안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나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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