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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33화 (33/135)

33화

팀의 빠른 성장의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안정적으로 전황을 지탱해주는 미카엘라, 전장 내 거의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이소연, 그리고 여차할 경우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김세율.

세 명의 존재가 일종의 안전장치처럼 작동하여,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거나 일이 꼬여버리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안도감을 팀원들에게 부여한 덕분이었다.

그 덕분에 팀은 일반적으로 우리 수준을 벗어나는 임무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다른 팀원들 역시 엄선되어 뽑혔었던 나름대로의 수재들이었기에, 그들 역시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으며, 덕분에 전체적인 팀 밸런스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 어색하기 짝이 없던 팀 분위기도 사라지고, 지금은 어느 정도 유대감이 쌓여있었다. 전투 중 간단한 상황 정도는 별다른 지시가 없어도 서로가 호흡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어느새 어엿한 하나의 팀으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누나, 그러고보니 오늘 마석도 나왔는데 오랜만에 회식 어때요? 예?”

대기하고 있는 차량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 전민호가 뜬금없이 물었다.

이번 임무는 그린급 몬스터 단독 토벌이었는데, 오랜만에 마석이 나왔던 것이다. 우리 팀의 단독 토벌이었기에 마석의 소유권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넘어왔다.

물론 그린급 몬스터의 마석 정도야 몇 백 만원, 많이 나오면 천 만원 정도 나오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 정도로도 학생들 회식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음… 그것도 나쁘지 않군. 이번 달에 남은 활동 지원비도 다 써야 되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나??”

일행의 파에서 걷고 있던 김세율은, 전민호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몸을 뒤로 돌리며 물었다.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야, 전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갈래요, 갈래!!”

다른 팀원들이 모두 참여의사를 밝히자, 김세율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은 참여여부를 묻는다기보다는 개최 허가를 바라는 듯한 시선이었다.

‘나 참, 언제까지 저러려나…….’

나에 대해서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지나치게 나를 의식했다. 이 팀을 이끄는 건 어디까지나 멘토인 그녀인데 말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녀보다 한 살 어렸고, 단 둘이 있는 상황이 아닌 한 나는 그녀를 존대했다. 그런 그녀가 나의 눈치를 보는 건 꽤나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괜히 날 의식할 필요는 없다니까.]

[하지만…]

전음을 보내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결국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좋죠, 회식. 그럼 뭘 먹을까요??”

그렇게 회식이 결정되고, 화제는 이제 회식의 식당과 메뉴를 정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각자의 의견이 갈리는지, 토의는 결론을 맺지 못하고 결국 자연스럽게 가위바위보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싸!! 그럼 오늘 회식은 감자탕인 거에요!!”

가위바위보에서 승리를 거머쥐고서 회식 메뉴 결정권을 따낸 이소연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함성을 외치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기뻐보였다.

“감자탕에 쏘오주!!”

“…술은 싫어하는데.”

“그럼 오빠는 맥주?”

“소주가 문제인 게 아니고…….”

박서준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던 때였다.

대기하고 있던 차량 앞에 서있던 남자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고개를 한 차례 숙이고서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했더니 류환이었다.

“갑작스럽게 모시게 되서 죄송하지만, 이소연님과 조원호님, 두 분은 저와 함께 따로 와주셔야겠습니다.”

우리 앞에서 멈춰선 그는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엑, 오빠랑 단 둘이요? 정말? 어디로요?”

이소연이 호들갑을 떨며 반응했다. 류환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살짝 숙여 조심스럽게 말했다.

“유선님이 찾으십니다. 급한 일이시라고.”

“…….”

류환이 진지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하자, 이소연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는 것이 보였다. 바로 다음 순간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지만, 그 잠깐 동안의 표정 변화는 분명히 있었다. 방금 전까지 들떠있던 분위기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 진지한 모습이었었다.

“아― 근데 이러면 오늘 회식은 어떻게 하죠?”

다시 뒤로 돌아 팀원들에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분위기는 평소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 변화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눈치 챌 만한, 분명하고 미묘한 온도차가 존재했다.

“저희 일 끝나면 나중에 합류할 테니까, 먼저 시작하고 있어요. 헤헤.”

“아니, 이렇게 되면 회식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에이, 그럼 제가 너무 미안해지는데요.”

이소연이 팀원들과 이야기를 정리하는 동안, 나는 류환에게 다가갔다.

“저도 불린 겁니까?”

“예, 유선님께서 조원호님도 반드시 꼭 데려오라고.”

“무슨 일인 거죠?”

“하하, 별 일은 아닙니다.”

류환은 손사래를 치면서 답했지만, 그와 동시에 조심스럽게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유선님께서는 말하지 말라 하셨지만.]

전음인가.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정보라는 뜻이었다.

[서울 도심 주변에 게이트가 새로 열리고 있습니다. 규모는… 어비스 게이트 이래로 최대 규모입니다. 어쩌면 그와 비슷한 수준일 지도 모릅니다.]

[어비스 게이트랑… 비슷한 수준이라고요?]

어비스 게이트.

가장 최초에 열렸던 게이트로, 그야말로 군단급에 비견될만한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던 게이트였다.

다행히 태평양 상공에 열렸던 덕분에, 그 군단급의 몬스터들은 비행능력을 가진 몇몇을 제외하고서는 모조리 물고기 밥 신세가 되었다지만, 어비스 게이트라는 이름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에게 똑똑히 새겨졌었다.

[예, 관리국에서 관측한 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인 게이트의 8배 이상이 넘는 수치가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미친… 지금 그게 서울 도심 주변에서 열리고 있다고?’

게이트가 열리는 건, 어디 멀찍한 강원도 시골구석에 작은 게이트 하나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재앙이 될 수도 있는 큰 사건이다. 게이트가 열리고 난 직후에는 몬스터들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게 역대급 규모로 서울 인근에서 열린다는 것은, 대재앙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부를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도심 주변 대충 어디 정도입니까?]

[서울 외곽 7구역 바깥부분 쪽입니다. 9km정도 떨어져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급하게 부를 만도 하구만.’

자칫 잘못하면 순식간에 서울이 초토화 되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그건, 대한민국의 끝을 의미했다.

게이트 오픈 이후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빠르게 안정기에 들어선 국가였지만, 대부분의 국가적 기능은 모두 서울에 집중되어있는 상태였다. 서울이 마비된다는 건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끝이었다.

아마 유선이 나와 이소연을 부른 것은, 핵심 전력이라고 볼 수 있는, 혹은 될 수 있는 인물들을 모아놓고 이번 일에 대한 작전을 논의하려는 것이리라.

‘일단은… 가보도록 할까.’

나는 우선 류환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런 공개적인 자리는 피하는 게 좋았다. 더군다나 나름 실력 있는 헌터들이 모이는 자리일 테니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잘못하면 이 나라 자체가 망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공무원이 되기도 전에 나라가 망해버린다니, 그런 삼류 코미디 같은 상황은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근데 장소는 어디죠?”

“일단 탑승하시죠. 시간이 없습니다. 질문들은 가면서 설명 드리도록 하죠.”

류환의 재촉에 이소연과 나는 별도로 준비되어있던 차량에 탑승했다.

* * *

“아, 왔냐?”

“…….”

유선은 맥주 캔 하나를 손에 든 채로 노트북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어디로 가나 했더니, 결국 도착한 곳은 유선의 교수실이었다.

류환은 이소연을 따로 데리고 가면서, 나에게는 이곳으로 가라고 했다.

“뭐 늦게 오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굴더니, 그렇게 심각한 것도 아닌가 보네요?”

“엄청 심각한데?”

들고 있던 맥주캔을 단숨에 비운 유선은, 빈 캔을 쓰레기통으로 집어던졌다. 깔끔하게 포물선을 그린 맥주캔은 완벽한 3점 슛처럼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는 이미 진행 중이다. 난 널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조금 퀭해보였다.

“왜요?”

“네가 회의장에 들어가려면 내 비서자격으로 같이 들어가야 하니까. 뭐, 네가 이번 일에 관심이 없고 작전에 참여할 의사도 전혀 없다면 상관없겠지만,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기왕 작전에 참여하게 된 거, 여기서 어떤 얘기들이 오고 갔는지 정도는 확인해두는 게 좋지 않겠어?

그녀는 나를 지나치며 내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서는,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녀도 급하기는 한지 조금 빠른 걸음이었다.

“소연이는 회의장으로 바로 간 건가요?”

“소연이?”

“이소연이요.”

“아아, 이소연.”

유선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자기가 부른 사람 이름을 헷갈리다니, 묘한 반응이었다.

“그래, 이소연은 류환한테 바로 회의장으로 데려가라고 했어. 걔는… 뭐 너도 눈치 챘겠지만 내 도움 없이도 회의에 참가할 자격이 충분하니까.”

“…그거 그렇게 대놓고 말해도 돼요?”

“뭐가?”

“소연이, 나름 비밀로 하고서 우리 팀에 붙여놨던 거 아니냐고요.”

나중에 따로 추궁하려고 했었던 내용이었는데, 유선이 간단하게 풀어놔버렸다.

“솔직히 넌 이미 눈치 깠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걔 말 들어보니까 대충했다 뿐이지 지 능력은 거의 다 보여줬던데? 넌 그게 평범한 옵저버 수준이라고 생각하냐? 까놓고 말해 그러고도 눈치를 못 챘으면 그게 병신이지.”

“그렇긴 했죠…….”

사실 이소연이 보여 온 활약들은 자기 정체를 감출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 그리고 이거 쓰고 있어라. 그나마 얼굴 덜 팔릴 테니까.”

“이건… 선글라스네요?”

그녀가 건넨 것은 꽤나 알이 큰 선글라스였다.

알도 크고 코팅도 상당히 진하게 되어있어 안쪽이 보이지 않는 물건이었다. 확실히 얼굴의 상당부분을 가려줄 것 같았다.

“네 힘이 뽀록나면 내 기아스가 터져버리니깐 말이야. 어쨌거나 조심해라.”

그녀는 살짝 고개를 뒤로 돌려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저 양반 입장에서도 나름 도박인 건가…….’

솔직히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녀가 내가 힘을 감추고 있다는 걸 폭로해서라도 써먹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일단은 그 의심을 접어두기로 하고, 나는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서 복도를 조금 더 걷자, 양 옆에 보디가드 같은 사람 둘이 문 양옆에 서있는 곳이 나왔다.

“아, 유선님. 오셨습니까.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쯧, 먼저 회의 진행해놓고 있으라니까.”

유선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런데 뒤에 계신 분은…?”

“아, 내 비서다. 나랑 같이 들여보내.”

“하지만 외부인은 출입이―”

“내가 책임진다. 아니면, 네가 내 잡심부름까지 도맡아서 할래?”

“…그냥 들어가십쇼.”

그녀가 억지를 부리는 게 처음은 아닌지, 그들은 순순히 비켜나면서 문을 열었다.

그들이 문을 열어주자, 유선은 당당한 걸음으로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뒤를 쫓아 조심스럽게 걸었다. 최대한 비서처럼 보이도록 의식하면서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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