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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32화 (32/135)

32화

재앙의 징조

서울의 게이트 관리국 제 7구역 모니터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모니터가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관계자가 아니면 대체 어디에 쓰이는 지도 모를 법한 복잡한 기계장치들이 늘어서있었다.

그리고 그 기계장치 중 하나에 웬 구둣발이 통째로 올라와있었다.

“흐아암…….”

게이트 관리국의 서울지부 제 7구역 담당관인 영수는, 스위치들을 피해 적당한 곳에 발을 올려놓고서 의자에 거의 눕다시피 기댄 상태로 하품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근무태만이라고 지적을 하더라도 뭐라 할 말이 없는 근무태도였지만, 그에게는 이런 식으로 있어도 괜찮다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이곳의 의자는 너무 불편하다.

둘째, 어차피 이곳에서 근무하는 건 자기 혼자 뿐이다.

셋째, 너무 평화로웠다.

그가 모니터링 하는 7구역은 요새도시가 아니라 서울 인근의 구역이다.

그의 역할은 혹시라도 요새도시를 빠져나와 배회하는 몬스터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것과, 주변에 혹시라도 새로운 게이트가 나타날 낌새는 보이지 않는지 확인하는 거였다.

한 때는 그도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적이 있었다. 게이트가 곳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하고, 아직 요새도시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기의 일이다.

그 때는 그도 모니터와 수화기에서 눈과 귀를 땔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자신이 한 눈 판 사이에 몬스터 하나가 지나가버리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그만큼 대처가 미흡했다.

인원도 한참 모자랐기에 잠은 이틀 밤을 새고서 잠시 눈을 붙이는 수준의 쪽잠이 전부였고, 피곤에 찌들어 코피를 쏟아내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약간의 요령을 피울 수 있는 기회는 많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게으른 인간이었지만, 그래도 무책임한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새도시가 지어지고 난 후에는,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몬스터들은 요새도시에 발이 묶여, 그곳을 벗어나기 전에 거의 대부분이 토벌되었다. 몬스터들이 도시 주변까지 다가오는 일은 극히 드물어졌고, 도시 안까지 뚫고 들어오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어졌다.

최근에는 더 이상 게이트도 열리지 않게 되었다. 국내에 새로운 게이트가 열린 건 1년 전에 대전에서 열렸던 게 마지막이었고, 전 세계적으로는 7개월 전에 이태리 플로렌스에 열린 게이트가 마지막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한 명의 월급 루팡이 탄생한 것이지.’

영수는 옆에 놓아둔 도넛 케이스에서 도넛 하나를 꺼내며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 때 그가 앉아있던 의자를 누군가 휙 잡아당겼다.

의자에 거의 누워있다시피 기대고 있었던 영수는 화들짝 놀라며 엉거주춤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넘어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이, 지부장님. 깜짝 놀랐잖습니까.”

“너, 이러고 있는 거 한 번만 더 걸리면 내가 진지하게 호봉 까버린다고 말했지?”

자세를 추스린 영수가 능청맞게 웃으며 말하자, 지부장이라 불린 남자는 표정을 살짝 찌푸린 채로 삿대질을 했다. 하지만 그 삿대질은 경멸과 비난의 느낌보다는 친근한 사이의 장난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에이, 전에도 말했지 않습니까. 제가 이러고 있는 게 다 세상이 평화롭게 돌아간다는 증거라고요.”

“그건 그거고, 네 근무 태도는 근무 태도지. 무슨 궤변으로 합리화를 하고 앉았어? 세상 평화로우니까 어디 실업자 한 번 돼볼래?”

“그럴 생각도 없으시면서.”

“내가 못할 것 같아?”

하지만 말과는 달리, 지부장은 영수의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고서는 기계 위에 놓여있던 도넛 케이스에서 도넛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자기 방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아, 그거 제가 아침에 일찍 줄서서 산 건데요.”

“그래서 뭐.”

“그거 하루에 50개 한정 판매인 거라구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임마.”

“어쩌긴 뭘 어째요. 아깝다는 거죠, 뭐.”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자신도 도넛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지나치게 달지도 맹맹하지도 않은, 자기 입맛에 딱 맞는 절묘한 달콤함이 입안에 퍼졌다. 음, 역시 남 주기는 아까운데. 남자는 새삼 느꼈다.

“뭐 별다른 일은 없었냐?”

한 입 베어 문 도넛을 목으로 넘긴 후, 지부장이 말했다.

“없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여기 7구역 담당인거. 제가 오늘 제일 놀란 건 지부장님이 의자 잡아당긴 겁니다.”

7구역은 서울과 상당히 가까운 구역이었다.

서울 외곽은 원모양으로 총 8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있다. 7구역은 8구역을 제외하면 가장 가까운 영역으로, 엎어지면 서울에 닿는 가까운 구역인 것이다.

7구역에 도착하려면 당연히 1~6구역을 전부 통과해야하기에, 최근 7구역까지 몬스터가 접근하는 경우는 정말 거의 없었다.

“끄응,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랑 여훈이는 세금도둑놈들이란 말이야. 너희들 요새 4달 동안 일일보고가 싹 다 똑같은 거 알아?”

“여훈이가 어떻게 쓴지는 몰라도 제 건 당연히 알죠. 제가 쓴 거니까. ‘금일 이상 없음’. 정확하죠?”

“자랑이다, 이놈아…….”

하지만 지부장의 목소리는 딱히 책망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바쁘다는 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다. 지부장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저 녀석의 근무태도가 불량해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너 계속 놀면 요새도시 담당으로 돌려버린다.”

“엑, 제 짬에 거길 가라고요? 에이, 저 거기 가봤자 애들 민폐만 끼치는 거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래… 하긴, 거기 보내봤자 신입 애들 안 좋은 버릇만 배우겠다.”

기이이잉

그 때 갑자기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요 근래동안 들어본 일이 없던 소리였다.

“갑자기 게이트 발생이라고?”

제 7구역 담당관 영수는 입에 물려던 도넛을 집어던지다시피 내려놓은 채 몸을 일으켰다. 지부장은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그 역시 얼굴에 긴장이 가득한 상태였다. 하지만 모니터 화면들을 천천히 살펴보던 그는 이내 긴장을 풀었다.

“하하, 저기 에테르 수치를 보게. 또 센서가 오작동을 일으킨 모양이야.”

그의 말에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터무니없이 높은 에테르 수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게이트의 에테르 수치보다 8배는 넘는 수치였다.

“아… 후, 다행이네요.”

영수는 진심이 담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센서들은 게이트가 열릴 때 발생하는 특유의 에테르 집중 현상을 감지하게 되어있었지만, 때로는 에스퍼들의 에테르에도 반응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때는 이처럼 일반적인 수치를 훨씬 뛰어넘는 높은 에테르 수치가 기록되는 특징이 있었다.

극히 드문 확률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자주 발생하는 오류현상이었다.

주변에 있던 주시자 아티팩트를 그곳으로 보내두고, 영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네요. 설마 했다고요. 7구역이면 서울 시가지 코앞인데, 거기에 게이트라도 열리는 줄 알았네요.”

“그러게 말이야. 하하, 오늘 퇴근은 글렀구나, 했지 뭔가.”

지부장은 마음에도 없는 농을 던졌다. 평소 이런 농담은 잘 하지 않는 그였기에, 그만큼 놀랐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하여간 이놈의 센서, 언제 고쳐지려나 모르…겠…….”

그 순간, 지부장의 옆에 앉아있던 영수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말을 멈춘 채 조용히 이마에 손을 얹었다. 주시자와 시야를 공유할 때의 동작이었다.

잠시 후, 그의 표정은 굳다 못해 하얗게 질려버렸다.

“태, 태준이 형…….”

이마에서 손을 땐 그는, 당황한 나머지 지부장의 본명을 불렀다. 그는 심각한 상황에 처하면 상관을 본명으로 부르는 버릇이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을 그와 함께 했기에 그런 버릇을 잘 알고 있던 지부장은,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덩달아 몸이 굳어버린 그의 등줄기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영수는 왼손을 들어올려, 주먹을 꽉 쥐고서 밑으로 세게 내리쳤다.

플라스틱이 깨져나가며, 그 밑에 가려져있던 붉은색 버튼이 눌렸다. 그와 동시에 전 지부에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오랜 시간 울린 적이 없던 긴급 경고음이었다.

“형, 오늘 퇴근하기는 글렀네요.”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는 것 치고 그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하게 굳어있었다.

그가 오늘 제일 놀란 일은 지부장이 의자를 잡아당긴 일에서 서울외곽 제 7구역에 게이트가 열린 일로 바뀌었다.

그것도 어비스 게이트 이후 최대 규모의 게이트가 말이다.

* * *

“하하, 이번에도 낙승이었구만!!”

전민호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떠들었다. 약간 오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었기에 다들 그거려니 했다. 저 녀석은 원래 저런 녀석이었기에.

게다가 이번 전투는 그의 말대로 쉽게 끝낼 수 있었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저번 모임 이후, 1학년 실습 동아리는 빠른 속도로 궤도에 올라, 지금은 실전에도 투입되고 있었다. 옐로급의 토벌에 지원팀으로 대기한다던가, 그린급 토벌에 단독으로 출동한다던가 하는 수준에서 말이다.

팀이 결성된 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을 뿐인 걸 감안한다면, 이 팀은 정말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1학년의 순위는 1위부터 5위까지 실습 동아리 인원들이 나란히 차지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꾸준히 평균을 유지하려하고 있었기에, 나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네. 요새도시 안에서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만 해.”

“뭐 그렇겠지만, 저희에겐 세율 누나랑 미카엘라가 있지 않습니까?”

김세율이 가볍게 지적을 하자, 전민호가 웃으며 받아넘겼다. 다른 녀석들도 그의 말에 수긍하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라는 쑥스러워했지만 말이다.

우리 팀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민호가 언급한 김세율과 미카엘라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거기에 덧붙여 이소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세율은 어지간한 A급 헌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딜러였으며, 미카엘라는 신참내기라고는 믿기지가 않는 실력을 가진 천재였다.

과거 슬라임 자이언트 전에서 탱커를 맡았을 때와 달리, 에테르도, 기량도 경험도 모두 늘어난 그녀는 그야말로 천재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장했다. 옐로급 수준에서는 이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무난하게 혼자서 탱킹을 담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거기에다가 옵저버 이소연.

그녀의 대해서는 처음부터 심상치 않게 느꼈었지만, 이 녀석은 역시 평범한 녀석이 아니었다.

그녀의 능력은 규격 외였다. 사실 옵저버에게 지원을 받아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배틀필드 네트워크 시스템 자체를 사용해보는 게 처음이었기에, 옵저버들의 평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최상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감지망을 최대한 펼쳐 집중해야만 겨우 알아낼 수 있을듯한 정보들이 광범위하게, 그것도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인공위성이라도 하나 띄워놓고 주변 일대를 센서로 도배라도 한 것 같은 그녀의 옵저버 능력은, 그야말로 맵핵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기 수준이었다.

‘아마 유선이 붙인 사람이겠지…….’‘

소연이는 평범한 1학년 수준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뛰어났다. 무엇보다 그녀에게서는 나와 비슷한 느낌이 났다. 설렁설렁하면서 일부러 힘을 감추고 있는 느낌말이다.

낮게 잡더라도 A급, 그것도 얼마 전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던 프로헌터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유선이 그녀를 붙인 이유도 대충 짐작이 갔다.

“오빠, 무슨 생각해요?”

“네 생각.”

“와!! 정말요? 저도 오빠 생각했어요!!”

그녀는 내 옆에 붙어서 걷기 시작했다.

팔짱만 안 꼈다 뿐이지 거의 밀착하는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진 패턴이었다.

‘뭐, 상관은 없겠지.’

그녀가 무슨 이유로 이 팀에 참여했든, 그 의도가 딱히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원래 의도 자체가 흐려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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