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31화 (31/135)

31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벌써? 거리가 멀어서 영향이 덜 한 건가?’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엔 오우거의 모습이 여기서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녀석은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입안의 이빨까지도 보일 정도였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내가 원하던 바이긴 했지만, 오우거가 나타난 순간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하고 각오를 마쳤던 나로서는 솔직히 조금 허무하기도 했다.

“이 정도라면…….”

이런 내 생각을 알 리가 없는 그녀는, 잠시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시선의 정면에는 이제 막 이쪽 세계로 넘어 온 오우거가 등을 보인 채 서있었다.

“…좋아.”

그리고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올려, 에테르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의 손에는 거대한 번개의 창이 형성되었다. 저번에도 본 적이 있는 마법으로, 슬라임 자이언트의 거의 반쪽을 날려버렸던 라이트닝 스피어였다.

라이트닝 스피어가 완성되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걸 오우거를 향해 집어던졌다.

그녀의 손을 떠난 번개의 창은, 대기를 찢는 듯한 폭발적인 굉음을 터트리며 쏜살같이 날아가 오우거의 어깨에 내리꽂혔다.

“우우워어어어어억!!”

“맞았다!! 맞았네, 아크!!”

“그래, 맞았다, 맞았어. 아주 난리가 났구만 그래…….”

그녀는 환한 표정으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마치 인형 뽑기에서 원하는 인형을 단 한 번 만에 뽑아낸 여고생 같은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광경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지.’

김세율의 라이트닝 스피어에 얻어맞은 오우거는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져있었다. 그리고 마법이 직격으로 꽂혔던 오른쪽 어깨는, 어깻죽지까지 통째로 터져나가 핏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몸통에 맞았으면, 아마 한 번에 죽었겠지.’

어깨는 전투력 약화나 생포를 노리지 않는 한 메리트가 없는 부위다. 지금 상황에서는 빗겨 맞은 상황이라고 봐도 좋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오우거는 치명상을 입어버렸다. 아마 몸체에 맞았다면 코어까지도 일격에 터져버렸을 것이다.

하긴 저번 전투에서는 질기기로 소문난 슬라임 자이언트의 반쪽을 거의 날려버렸던 마법이었다. 그 엄청난 거리에서 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리 전격계열 마법의 사정거리가 긴 편이라 하더라도, 거리가 멀어질수록 마법의 위력이 감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표적과의 거리가 50m도 되지 않는 지금, 저 정도 위력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우우워어어어!!!”

한 쪽 팔이 가슴부분까지 통째로 뜯겨나간 오우거는, 다시 일어나더니 분노에 가득 찬 포효를 내뱉었다. 다만 그건 위협이라기보다는 발악에 가깝게 느껴졌다.

포효를 내뱉은 오우거는, 몸체를 살짝 숙인 채 우리가 있는 건물을 향해서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건물 채로 들이받을 심산인 것 같았다.

“…읏.”

그 모습을 직접 바라보고 있던 김세율은 흠칫 놀라며 한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표정에는 다시 두려움이 살짝 올라와있었다.

정면으로 맞서는 건 아직 버거운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에테르를 활성화 시킬 때였다.

“…아니다, 아크.”

한 손을 내밀어 나를 제지한 그녀가 다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내가 건드린 사냥감이다. 내가 마무리 하도록 하지.”

그녀는 나지막이, 마치 선언이라도 하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의 자신은 사냥감이 아니라, 한 명의 헌터라고.

그녀는 에테르를 담아낸 손을 뻗어 전격을 내뿜었다.

시전 과정도 없는, 단순히 에테르에 속성을 담아 방출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오우거의 돌진은 기세가 꺾여버렸다.

“크우욱… 그어어어!!”

그럼에도 오우거는 다시 한 번 고함을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움츠러들면서도 침착하게 다시 한 번 라이트닝 스피어를 준비했다.

빠르게 시전 되어 그녀의 손에 형성된 라이트닝 스피어는, 방금 전의 것보다는 작지만 더욱 선명하고, 더욱 예리하게 보였다. 창보다는 차라리 암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흡!!”

짧은 기합을 내뱉으며, 그녀는 달려드는 오우거의 코어를 향해 완성된 번개의 단창을 내던졌다.

쉬칵!!

코어에 정확히 내리꽂힌 라이트닝 스피어는, 깔끔한 관통음과 함께 오우거의 몸통을 꿰뚫고서 그 너머의 땅바닥에 내리꽂혔다.

“쿠…워어억…….”

코어를 파괴당한 오우거는 남아있는 손으로 허망하게 관통당한 그 구멍을 천천히 더듬다가, 이윽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정말로 해냈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블린을 앞에 두고 벌벌 떨던 사람이 홀로 오우거를 토벌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본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후으읍… 후우…….”

하지만 정작 그 본인은 가슴을 쥔 채로 몸을 숙이고서 호흡을 애써 가다듬고 있었다. 가슴을 쥐고 있는 그녀의 두 팔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반쯤은 환희로, 그리고 반쯤은 두려움으로 차있는 떨림이었다.

“후우… 하, 하하하. 어떤가.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네만.”

그녀는 겨우 호흡을 진정시킨 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뒤로 돌아 나를 바라보며 태연한 척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그 어깨를 두드려줬다.

“잘했어.”

그것이 천재 에스퍼, 기린아 김세율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 * *

유선은 대략적인 전달사항을 모두 끝마치자, 적당히 알아서 마무리하라는 말을 남긴 후 자리를 떴다. 저번처럼 말이다.

그리고 자리에 남게 된 류환이 질문을 받았지만, 저번과 다르게 다들 그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갑자기 생겨나게 된 멘토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컸던 것이다.

“하하, 그럼 저는 자리를 피해 드릴 테니, 여러분끼리 이야기들 나누십쇼.”

사람 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류환 역시 자리를 나섰고, 우리들은 예전처럼 미카엘라를 중심으로 모여 앉았다. 약간 어색했던 저번과 달리 조금 자연스러워진 움직임이었다.

“그럼 일단, 중요한 일부터 정리를 해보도록 하죠.”

지난번처럼 둘러앉은 상태에서, 미카엘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아주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가 말을 이었다.

“미카엘라가 내 방에서 밤을 보내다는 건, 거짓말이다. 사실이 아니야!!”

그리고 아까부터 나를 안절부절 못하게 해왔던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분명 그녀가 말한 중요한 일도 이것이리라. 이 오해를 풀지 못한다면 오늘 밤 잠자기는 다 글러먹었으니까.

“무, 무슨…….”

하지만 미카엘라는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려던 게 이게 아니었나?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에겐 지금 이게 가장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는 건 변하지 않기에!!

“음, 역시 오해일 뿐이었나.”

“아냐, 이런 건 양 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해.”

“그, 그쵸? 이거 다 오해죠 오빠?”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같이 밤을 보내다니?”

“조, 조용!!!”

다른 사람들이 모두 웅성거리고 있는 것을 미카엘라의 외침이 끊어냈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이 있지.”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밌는 이야기인 것 같군.”

“언니, 딱 말해요. 잤어요? 잔 거에요?”

“조용하라니까아아아아!!”

콰앙! 우지직.

“…….”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뭔가가 찌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두 손이 책상을 내리찍은 모습 그대로 멈춰있었고, 책상은 두 손으로 내리 찍힌 가운데를 중심으로 깨져서 두 조각이 나있었다.

“억…….”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잊은 채로 가만히 그 광경을 바로보고 있었다.

“이게… 사람이 부술 수 있는 재질인가?”

나는 내가 앉은 책상을 조심스럽게 만지면서 말했다. 그녀가 부순 책상과 동일한 제품이었다.

책상은 세미나실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꽤 두꺼운 책상이었다.

내 말에 미카엘라의 얼굴이 더 이상 빨개질 수 없을 것 같은 정도로 빨개졌다. 그녀는 두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렸다.

“헉.”

그리고 나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나는 그녀가 또다시 에테르를 둘러 내리쳤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황금주먹은 이미 내 두개골을 깨부수는 걸로 그 위력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난 그녀의 두 손이 황금빛으로 물들어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손은 평소 상태와 같았다. 별다른 신체강화의 기운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역시… 그녀는 괴물인 것인가…….’

에테르의 별다른 보조도 없이, 거의 자신의 완력만으로 책상을 송판 부수듯 깨트린 것이다.

“…미안합니다.”

미카엘라는 수줍은 목소리로 말한 후, 말없이 일어나 부서진 책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멍하니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무런 말없이 일어나 함께 뒷정리를 돕기 시작했다.

* * *

“커흠,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정리를 끝내고 다시 원래대로 모두가 자리에 앉자, 미카엘라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중요한 일부터 정리를 해보도록 하죠.”

“…….”

사태를 정리한 미카엘라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이 자리의 모두가 동시에 데자뷰 같은 것을 느낀 듯 했지만, 그걸 굳이 입 밖에 꺼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사람은 없었다.

“우선 세율 언니, 저희들의 능력이나 포지션에 대한 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대강적으로는 전부 파악하고 있다. 실제 전투하는 모습도 살펴봤었고, 너희들에 관한 서류도 제공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야.”

그러면서 김세율은 기존 팀원들을 한 명씩 지목하며 능력들과 포지션을 말했다. 딱히 정정해줄 부분 없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내 능력과 포지션을 말할 때는 살짝 미소를 띄웠지만 말이다.

“음, 이미 충분히 파악하고 계시네요. 따로 알려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저희에게 언니의 능력에 대해 말해주실 수 있나요?”

미카엘라의 말에, 다른 녀석들도 그에 동의하는 듯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눈빛에 호기심이 가득 담겨 반짝거리고 있었다. 한 때 이름을 날렸던 유명한 헌터의 능력을 듣는 것이니 당연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었다.

“흠, 뭐 대단한 건 없다. 나의 능력은 번개 정령의 가호. 전격계열 마법들이 전체적으로 상승하는, 아주 간단한 능력이다.”

김세율은 미카엘라의 요청에 가벼운 목소리로 답했다.

‘정령의 가호… 정령에게 선택받은 사람이었군. 과연 기린아라고 불릴만했구만.’

그녀는 간단한 능력이라고 설명을 얼버무렸지만, 정령의 가호라는 건 정말 사기적인 힘이었다.

효과는 그녀의 말대로 전격계열 마법이 전체적으로 강화되는 것이었지만, 저 전체적으로 상승하는 범위와 수준이 장난이 아니었다. 위력은 물론이거니와 시전 속도, 정밀도, 심지어 성장속도마저도 증가시켜버렸다.

하지만 정령이라는 건, 아스트레아처럼 신비(神秘)가 아직 남아있는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존재들이었다. 하물며 신비가 사라지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구에서야 말할 것도 없었다. 무협지에서 소위 말하는 기연(寄緣)에 가까운 능력인 것이다.

“포지션은 원거리 딜러…나 피니셔가 적당하겠지. 둘 다 병행해도 딱히 상관은 없을 것이다.”

피니셔라는 말이 나오자, 나는 조심스럽게 이세형을 쳐다봤다.

새로 들어온 팀원에게 기존에 갖고 있던 포지션을 빼앗기는 건 사람에 따라 상당히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세형은 기존에 피니셔를 맡고 있었기에, 약간 기분이 상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걱정과 달리, 그는 오히려 안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번 전투 때 피니셔 역할을 수행하면서 받은 부담감이 상당히 컸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팀에서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멘토다. 저번과 같은 긴급 상황이 아니라면 나는 어디까지나 조력자의 역할만 수행할 것이다. 본격적인 행동은 그대들이 하게 되겠지.”

이세형의 반응이라도 보았는지 김세율이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저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나서시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멘토라고 해도 내 주된 역할은 그런 갑작스런 상황들로부터 그대들을 지키는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안심입니다.”

이세형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다른 녀석들도 그의 말에 동감하고 있는 듯 했다.

저번 전투는 그만큼 그들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줬었던 것이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첫 실전을, 그것도 막막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상대와 치뤘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헌터의 길을 포기한 녀석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게 조금 놀라울 정도였다. ‘죽을 뻔했다’라는 건, 가볍게 경험으로 여기면서 넘길만한 일이 아니다.

김세율이라는 강력한 조력자가 팀에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이 큰 관심을 보였던 것은 아마 그 영향이 컸을 것이다.

“자, 다른 질문은 없는가?”

그 후로도 간단한 질문과 대답들이 오갔다. 지난번에 썼었던 마법의 이름이 무엇이냐, 2학년들은 다 그 정도 수준이냐, 헌터로 활동할 때 수입은 어느 정도였느냐, 등등.

그 날부터 김세율은 1학년 실습 동아리 팀과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