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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30화 (30/135)

30화

“메, 멘토라고 하면, 저희 활동에도 직접 참여하시는 겁니까?”

전민호가 당황함이 대놓고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를 제외하더라도, 다들 당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똑같았다. 심지어 이소연도 말이다. 뭔가 다른 이유로 당황한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예, 별다른 사정이 없는 이상, 저는 여러분의 활동에 함께 참가할 겁니다. 사실상 같은 팀 멤버가 되었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할 겁니다.”

“오오…….”

뜻밖의 새 멤버, 그것도 한 때 프로에서 엄청나게 이름을 날렸던 헌터가 자신들의 팀으로 들어온다는 말에 다들 들뜬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조용한 박서준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왜 갑자기.”

며칠 전의 실전은, 명백하게 너희의 수준을 뛰어넘은 전투였다. 정확히는 우리가 어림잡고 있던 너희의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말해야겠지. 전투 결과를 확인한 후, 우리는 너희 팀이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팀이라고 판단했다.“

뒤쪽에 서있던 유선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사실은 첫 실습에서 너희들을 인솔했던 김주언에게 맡기려고 했지만, 더 수준 높은 멘토를 붙여주는 게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녀석은 삽질도 거하게 해줬고 말이야.”

유선의 삽질이라는 말에 모두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느닷없이 첫 실전을 치뤘을 때, 후방에서 지원 포격을 해줬던 에스퍼가 바로 김세율이었다. 약간의 인연도 있고, 그녀가 너희 팀에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자 팀원들의 시선이 다시 김세율에게로 돌아갔다. 감탄과 존경이 담긴 눈빛들이었다. 김세율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뭐, 그대의 계획대로 잘 풀린 것 같군.]

그 때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직접 흘러들어왔다. 김세율의 전음이었다.

[굿이야. 아주 베리 굿.]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나 역시 그녀에게 전음으로 답했다.

* * *

‘아주 잘 풀리고 있어.’

앞에 서있는 유선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들을 살펴본 결과, 나는 일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김세율이 나를 찾아왔던 그 날 밤, 나는 그녀가 가기 전에 내가 떠올린 계획을 말해주었다.

“네가 유선에게 1학년 실습 동아리의 멘토를 맡고 싶다고 말하는 거야.”

그건 바로 김세율을 1학년 실습동아리 팀에 포함시키는 것!!

나는 유선에게 실습 동아리의 구조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인솔자 겸 약간의 교육자 역할도 할 수 있는 멘토가 팀에 합류하게 된다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실습동아리 활동 중에 어지간한 상황은 내가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과, 내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김세율은 학교 측의 눈치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필요가 있었다.

만약 김세율이 1학년 실습동아리의 멘토가 된다면, 둘 다 이득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김세율 역시 이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고, 나는 그녀에게 계획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학교 측은 언제나 뛰어난 헌터들을 영입하기 위해, 그리고 육성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김세율은 정말 아까운 인재였으리라.

과거 프로 헌터로도 활동한 전적이 있는 만큼, 능력과 경험이 최상급인건 이미 입증된 사실인데, 정작 본인은 최소한의 활동만, 그것도 수동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 몬스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학교 측은 그걸 모르기에 그저 답답하게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아까운 인재가 어느 날 갑자기 직접 뭔가를 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선다면, 그들은 그걸 거부할 리가 없었다. 반겼으면 반길 상황이지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실 계획이라고 거창하게 부를 것도 없었다.

그냥 적당한 관계자에게 김세율이 가서 멘토를 맡고 싶다고 말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네 말은 알겠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지 않은가.”

“근본적인 문제?”

“알고 있겠지만, 난 제대로 몬스터와 싸울 수가 없다.”

내가 계획을 설명하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게 가장 문제였다.

만약 전투 중에 그녀가 패닉 상태에 빠진다면, 그것도 모자라서 저번처럼 폭주해버린다면.

내가 나의 힘을 숨기고 지내듯, 그녀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감춘 채로 지내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팀원들이 지켜보는 한가운데에서 패닉상태에 빠져 비밀이 폭로될 수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비밀이 들통나는 것을 떠나서 그 주변에 있던 다른 팀원들의 목숨도 위험할 수 있었다. 저번에 내가 그녀의 폭주현장에서 멀쩡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나였기 때문이었고 그마저도 대비를 한 상태였었다.

“저번처럼 장거리에서 포격만 하면 되잖아?”

하지만 그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 정도로 내가 빡대가리는 아니다.

그녀가 여태동안 해왔듯 상당한 거리를 둔 채로 화력지원의 포지션을 잡는다면, 그 주변에 몬스터가 다가가지 못하도록 내가 신경을 조금만 써주면 되는 것이다.

저번에 내가 대처하지 못한 것은, 그녀 정도로 강력한 에스퍼가 몬스터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걸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여태동안은 내 정체를 감춰도 상관없는 임무만 맡았으니 괜찮았다. 하지만 내가 팀에 들어가면, 내가 장거리에서 포격만 고집한다는 걸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시선이 생기겠지. 게다가 멘토는 팀원들을 인솔하는 역할도 수행해야만 한다.”

내가 자초지종을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한참 동안 얘기를 더 나눠봤지만, 결국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나로서는 조금 아쉬운 계획이라고 생각했기에, 좀 더 시도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휴일 중 날을 잡아, 그녀와 함께 몸을 숨긴 채로 요새도시에 찾아갔다.

요새도시의 중간 정도에 도착한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한 건물 옥상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주변에 몬스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괜히 돌아다니다가 다른 헌터팀과 조우하게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생각인가. 여기까지는 그대의 안내를 따라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만…….”

몬스터를 기다리던 도중, 그녀가 불안해하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우리 둘이서 몬스터를 보고 갈 거야.”

“뭐, 뭣?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마치 동물원에 왔으니 펭귄을 보러가자는 느낌으로 간단하게 말했지만,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다급하게 외쳤다. 이미 어느 정도 패닉상태에 빠졌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말 그대로야. 몬스터를 보러 온 거다.”

“지금 장난하는 건가? 아니, 장난이길 바란다.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진정하고, 잘 생각해봐. 지금 네 앞에 앉아있는 게 누구지?”

나는 그녀의 말을 자르고 물었다.

“…조원호지.”

“아니, 말고. 아스트레아에서 내가 누구였었지?”

“그야 마왕살해자, 아크 아닌가.”

김세율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 말대로야. 나는 마왕도 죽인 몸이다. 그 아크라고. 상당한 고위 마족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 내가 곤란을 겪을 일은 없어.”

내가 내 얼굴에 금칠을 하려니 조금, 아니 심하게 낯짝이 간지러워 미칠 것 같았지만, 용케 티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 내가, 마왕은커녕 아직 마족도 나타나지 않은 지구에서, 사람 하나도 제대로 못 지켜낼 것 같아?”

“아니, 그럴 일은… 없다고 봐야겠지.”

그녀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말이다. 아크.”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나라고 시도해보지 않았을 것 같나? 이성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봤을 때 내가 고블린에게 죽을 확률은 없다. 그대가 없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런 이성적인 판단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그냥 눈앞에 몬스터가 나타나면, 그것이 오우거이든 고블린이든 슬라임이든, 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단 말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다 못해 물기가 맺혀있어 울부짖음으로 들려왔다. 그녀는 몹시 불안해하는 모습으로 나에게 울분을 토했다.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있었다.

“!!!”

그리고 나는 그녀를 껴안았다.

“무, 무슨…….”

“진정해, 김세율.”

두 손으로 끌어안은 등 너머로 그녀의 흐느낌과 서러움이 느껴졌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들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전까지는 변태취급 당하며 한 대 얻어맞으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었긴 했지만 말이다.

“널 방치해두겠다는 게 아냐. 너 혼자 몬스터를 잡으라고 하는 것도 아냐. 그냥 단순히 나와 함께, 네가 인정했던 그 아크랑 함께 몬스터를 보고 있기만 하자는 거야.”

나는 그녀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크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만약 네가 패닉 상태에 빠져버려도, 저번처럼 나한테 전격을 내리 꽂는다고 하더라도, 난 전부 감당할 자신이 있어. 널 안전한 곳까지 데리고 갈 자신이 있어. 설령 이 앞에 나타나는 게, 마왕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야.”

“…….”

김세율은 나의 말을 듣고 있다가, 말없이 나를 마주 껴안았다.

“겁먹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 너에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나는 알 지 못하니까. 하지만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어. 나는 널 지켜낼 거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알겠다.”

“나를 믿을 수 있겠어?”

“그대를… 믿어보겠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껴안은 손에 힘을 주면서 답했다.

“뭐, 그러려면 저번처럼 뺨 때리는 것 정도는 허락해줘야겠지만 말이야.”

“…살살 부탁하도록 하지.”

껴안고 있던 손을 풀고 난 후, 내가 웃으며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 역시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자, 그럼 가볼까.”

때마침 타이밍 좋게 5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난 것이 느껴졌다.

‘아니, 갈 필요는 없겠구만…….’

몬스터가 나타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몬스터의 모습은 우리가 서있는 건물 옥상에서도 뚜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옐로급의 가장 대표적인 몬스터로 꼽히는 오우거였다.

오우거는 이제 막 공간의 균열을 찢고 나타나, 그 거대한 발을 땅에 내딛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왼손을 꼭 붙잡았다.

‘하필 오우거냐.’

오우거는 그녀가 트라우마를 갖게 된 원인인 펠로스 평원 전투에서도 상당히 많은 수가 나타났던 몬스터였다. 게다가 그녀는 오우거의 시체 속에 비집고 들어가, 6일 동안이나 지냈던 적도 있지 않은가.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면 자극했지, 결코 좋을 리가 없었다.

“…괜찮겠어?”

“괜, 괜찮다. 괜찮아.”

괜찮기는, 말도 더듬고 있구만. 내가 잡고 있는 그녀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착각하고 있음을, 다음 순간 깨달았다.

“괜찮아, 괜찮단 말이다!! 몬스터가 눈앞에 있는데도!! 아크, 신기한 일이다. 몸이 떨리지 않는다!!”

그녀는 두 손으로 내 손을 마주잡고서, 더 이상 환할 수 없을 듯한 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패닉에 빠진 듯한 낌새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제야 그게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격한 기쁨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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