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같은 처지, 다른 상황
“후후, 그러고 나서 한 몇 년 동안은 몬스터와 싸우기는커녕 사람들과 말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지.”
김세율은 조금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아스틴 제국 수도에서 살아왔다고?”
“그래, 수도 내 서점에서 운 좋게 일할 기회가 생긴 덕분에 말이지.”
“서점? 혹시 그 광장 분수대 주변에 있는 곳?”
“맞아!! 어떻게 알았지? 그거 참 신기한 일이군.”
방금 전까지 우울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주제에, 그녀는 갑자기 반가워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면서 말했다.
‘뭐, 거기 점원이 이쁘다고 소문이 났던 적이 있었으니까.’
주점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모으다보면, 그런 잡다한 정보도 으레 귀에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예전에 오며가며 들었던 소문이 문득 떠올라 말해봤을 뿐이었는데, 그게 정답이었을 줄이야.
더군다나 그 서점은 마나나 전투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서점이었다.
용사가 스크롤 상점도 아니고, 마법서점도 아닌 일반 서점에서 점원을 보고 있었다니!!
그것도 한 때 천재 에스퍼로 이름을 날리던 김세율이!!!
나는 상당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야 헌터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다만, 과거에는 나 역시 또래 녀석들처럼 헌터를 동경하며 지내던, 영웅을 동경하며 지내던 남자애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김세율은 떠오르는 신성으로 주목을 한 몸에 받던 헌터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헌터 중에 한 명이었다. 팬들도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저 외모도 한 몫 했었지.’
나는 당시 학교에서 그녀의 활약보다는 그녀의 외모가 더 자주 화제에 올랐던 것을 떠올렸다.
예전의 나는 지금과 달리 유명인에 대한 호기심과 헌터에 대한 동경심이 남들 못지않았기에, 로스릭 왕국에서 훈련을 받던 시절에도 어떻게든 그녀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펠로스 평원 전투와 로스릭 왕국의 멸망 이후, 그녀가 살아있다거나 그녀를 본 적이 있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 세계에 적응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용사는 두 손 안에도 꼽히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기에 그녀 역시 어딘가에서 소리 소문 없이 죽었겠구나, 정도로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가끔 다른 용사들과 만나 그녀에 대한 얘기가 나와도, ‘그런 사람도 있었나.’ ‘그런 사람도 있었지.’라는 정도로 언급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이걸로 생존자는 5명이 되는 건가.’
나, 마왕 살해자 아크.
아스틴 제국 새벽의 기사단장, 레온하르트.
보이지 않는 손, 애던.
울프 용병대의 블러드 울프, 로크.
원래 내가 알고 있었던, 아스트레아의 마지막 생존자들.
귀환한 이후로는 얼굴도 본 적이 없었지만, 아스트레아에 있을 때는 마지막까지 사무적으로나마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그리고 오늘 그 생존자 명단에 분수대 서점 인기 점원 김세율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근데… 지금 그 말투도 그 때 입에 붙은 건가?”
“아, 그렇지. 아무래도 그 쪽에서 20년을 지냈으니 말이야. 입에 붙어버렸어.”
그녀는 곤란스러워하는 눈치로 조심스럽게 이쪽을 바라봤다.
“…혹시 그대가 보기에도 많이 이상한가?”
“뭐, 지금 시대에서, 그것도 20대가 할 만한 말투는 확실히 아닌 것 같지?”
“역시 그렇겠지. 주변에서도 언제나 그 지적이 들어온다. 하아. 고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만…….”
그 이후로도 대화는 이어졌다.
“그럼, 몬스터에 대한 트라우마는 그 때 이후로 계속 남아있는 거야?”
“그렇지, 다행히 제국 수도는 안전해서 별 다른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
김세율은 말하던 도중 실언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가렸다.
“음, 그… 미안하군.”
그녀는 약간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을 보이다, 이내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어? 갑자기 왜?”
“그대가 마왕을 죽이고 세상을 구하는 동안, 서점에서 잡일이나 하고 있던 것을 당당하게 말하고 있따니 말이야.”
“아니,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런 일로 그녀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나를 도와준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어쩌다 부분적인 목적이 서로 맞아서 힘을 합치거나 도움을 받은 적은 있어도, 마왕을 죽이겠다는 나의 목표 자체에 본격적으로 협조한 사람이나 세력은 없었다.
그 세계, 아스트레아에서 나는 제국으로부터 받던 재정적 지원을 제외하면 완전히 고립된 채로 홀로 싸워왔다. 어쩌다가 로크의 도움을 받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제국의 부탁을 들어주고 받게 된 일종의 대가였으며, 로크는 용병인 그에게 내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서 고용했던 것일 뿐이었다.
그럼 같은 용사들끼리는 서로 돕고 살았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살아남은 용사들 사이의 유대감이라는 건 별 게 아니었다.
남은 생존자들끼리 계속해서 연락을 취하고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해타산적인 만남으로 정보의 교환이나 거래의 목적이 더 컸다. 생존자들끼리의 정다운 모임이나 유대감 같은 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긴, 그런 녀석들이라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지도.’
초반부, 용사라는 허명에 눈이 멀어 대가없는 선행을 베풀고 다니던 녀석들은 전부 나자빠졌다. 약삭빠른 이세계인들에게 그런 용사들은, 그저 이용해먹기 좋은 호구에 불과했다.
심지어 용사들마저 다른 용사들을 이용해먹는 상황이었다.
만약 나도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뭣도 모르는 채로 잔뜩 이용만 당하다가 어디 시골구석에서 비명횡사했으리라.
살아남는 동안 그렇게 바뀌게 된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일까.
어느 쪽이건 간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전통적인 용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만이 살아남았다.
‘그건 그렇고, 아예 아무것도 안 한 채로 수도에서 조용히 점원 생활인가…….’
용사임을 숨기고 얌전히 지내면, 가늘고 길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과 실천은 언제나 다르기 마련인 법.
원래 소환되었을 용사의 기준에는 한참 못 미치는 반쪽짜리 용사들이라 하더라도, 그 능력은 웬만한 왕국의 근위기사들보다도 뛰어난 실력이었다.
마왕군과 마물들의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 혼란한 상황에서는, 어딜 가더라도 괜찮은 자리 하나 해먹기에는 충분한 실력인 것이다.
그런 능력들을 가지고서 얌전하게 평민생활이나 하라고 했을 때,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 그것도 철저하게 신분이 나뉘는 신분사회인 중세에서 고달픈 평민 생활을 말이다.
현대로 치자면 사법고시 합격해놓고 든든한 라인까지 구해놓은 상황에서 산 속으로 들어가 도 닦는답시고 야만인 생활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몬스터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평민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오히려 그렇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런데 말이야. 뭣 좀 물어봐도 될까?”
“아, 물론이지. 아크.”
허윽.
숨통이 막힐 것 같은 그 호칭에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다.
“…아크라고 부르지 말아줘.”
“그럼 뭐라고 부르지?”
“내 이름은 조원호다.”
“흠, 알았다. 그럼 원호라고 부르면 되겠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호칭이다.”
아스트레아에서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도 그 만화 주인공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면 나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단숨에 주변의 관심을 끌어 모으게 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그 이전에 내 손발이 더 이 상 오그라들 수 없을 때까지 오그라들어버릴 것이다.
“원래 용건으로 돌아와서, 너는 대체 왜 헌터학과에 있는 거지?”
그녀가 강력한 에스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눈앞에 몬스터만 나타나도 패닉상태에 빠져버리는, 아주 심각한 PTSD 증상 환자이기도 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녀 역시 나만큼이나 헌터학과에서 이질적인 존재인 것이다.
“아크, 그대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원호.”
“아, 그래. 원호. 네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소환되기 이전부터 헌터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성실하게 나의 물음에 대답했다.
이세계에서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고 귀환했을 때, 원래 세계의 시간은 조금도 흐르지 않은 상태였다.
문제는 그녀가 소환되기 직전, 요새도시에 몬스터를 토벌하기 위해 파견을 나가있던 상태였다는 것이다.
몬스터를 피해 일부러 20여년의 세월을 수도에서 숨어 지내왔던 그녀가 졸지에 다짜고짜 몬스터들 한 가운데에 갇혀버린 꼴이 된 것이다.
그녀는 다시 패닉에 빠졌다. 아마 내가 발견했었던 그 때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리라.
그녀가 패닉에 빠지자, 그녀의 팀원들은 곤란에 빠졌고, 결국 제대로 된 전투도 치르지 못한 채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에게 트라우마가 여전히, 아직까지도 남아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됐고, 이후 말없이 외부와의 연락을 모두 끊은 채로 은둔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뭐, 돈은 그 전에 모아뒀던 게 꽤 있었으니 별 문제는 없었지.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혹시 조은대 면접??”
“그래, 맞았다.”
하지만 일종의 낚시나 마찬가지였던 나와 달리, 그녀의 편지는 설득을 위한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고 한다. ‘뭔가 사정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다시 헌터가 될 수 있도록, 천천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지 않겠느냐’, 라고.
“꽤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지. 나도 이 거지같은 트라우마에는 진절머리가 나있었으니까. 하지만, 부끄럽게도 어쩔 수가 없더군.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눈앞에 몬스터가 나타나면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어.”
그녀는 진심으로 부끄러워하는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
“그래서 장거리 저격을 익힌 거로구만.”
“그렇지. 다행히 내 특기는 전격계열이었으니까. 전격계열 마법은 사정거리가 멀고 그 속도가 워낙 빠르기에, 원소계열 중에서도 특히 장거리 전에 유용한 속성이지.”
사실 그녀의 공격은 저격이라기보다는 포격에 가까운 느낌이었지. 나는 슬라임 자이언트의 반쪽이 단번에 날아가던 광경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전투에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몬스터를 앞에 두면 패닉상태에 빠져버리기 때문에 본격적인 토벌에는 나설 수는 없지. 그래서 임무는 최대한 피해왔는데 말이야. 요즘은 은근히 눈치를 주는 분위기 때문에 저번 같은 자잘한 임무라도 나가고 있네.”
“눈치?”
“그대 정도나 되는 사람 앞에서 말하긴 부끄럽지만, 용사로 소환되었던 덕분에 나도 꽤나 수준급의 경지에 올랐으니까. 학교 측도 나에게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 짐작은 하고 기다려줬지만, 그래도 학년 중 최고 수준의 학생이 쉬고 있는 게 탐탁치 않을만하지.”
김세율은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하긴, 학교는 봉사집단이 아니다. 이들이 김세율을 부른 건 그녀의 재활훈련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헌터활동 복귀를 위한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김세율이 못마땅하게 보일 것이다.
‘잠깐, 그렇다면?’
순간적으로 뭔가 괜찮은 계획이 떠올랐다.
“세율, 학교 측은 너한테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지?”
“모른다. 뭔가 사정이 있어서 헌터 활동을 그만뒀다는 건 알지만, 그게 트라우마라는 건 모른다. 아마 적당히 슬럼프 정도로 알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한테 생각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나는 떠올린 계획을 그녀에게 말해줬다.
그녀뿐만 아니라 나의 학교생활 역시 편해질 수 있는 계획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