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그쪽이 가까운 시일 내로 찾아오라고 먼저 말하지 않았었나?”
“그렇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이건 너무 가까운 시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냐??”
나는 빠르게 복귀를 해야 했기에,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에게 ‘1학년 조원호를 가까운 시일 내로 찾아오라’라는 말을 남긴 뒤 자리를 피했다.
아니, 어쩌면 혼란스러웠던 나머지 조금이라도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을 뿐일지도.
어쨌거나 그녀는 나를 찾아왔다.
지나치게 빨리, 그것도 이상한 시간에 이상한 장소로 왔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음… 그것도 그렇군.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아크가 찾아오라고 한 건데 시간을 늦게 지체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그리고 낮에는 시간 내기도 애매하고,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하기도 힘들지.”
김세율은 여전히 당당한 모습으로 그렇게 말했다. 고작 고블린을 상대로 벌벌 떨며 비명을 지르던 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틀린 말은 또 아닌 것 같구만.”
일단은 이 상황을 정리하고, 이야기를 진행시키기로 했다. 나는 들고 있던 봉지에서 베타 500을 한 병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아, 고맙네.”
“됐어, 뭐 별거라고.”
애초에 미카엘라한테 선물 받은 거라서 생색내기도 좀 그랬다.
“일단, 그대에게는 사과를 먼저 해야할 것 같군.”
“사과??”
물을 마시고서 침대 위에 걸터앉는 내게 그녀가 말했다.
“어제, 나 때문에 기분이 좀 안 좋아보이던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 앞머리 쪽에 시선을 옮겼다.
“아하.”
확실히, 그 때는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딱히 그녀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의 전격을 정면으로 얻어맞아버렸다던가, 실제로 앞머리가 홀랑 타버려 탄 냄새가 한동안 풍겨왔다던가,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나를 아크라는 이름으로 불렀을 때.
한동안 애써 잊고 지냈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다시금 쏟아져 나왔다. 마치 아무렇게나 쑤셔 박아놓고서 잠가 뒀었던 옷장의 문을 누군가 열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아마 오늘의 악몽도 그 연장선이었겠지.
“…뭐 그런 것보다는, 일단 그쪽 이야기라도 좀 들어보자고.”
하지만 쏟아져 나왔던 후회와 절망들은 진정되어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내게 남은 것은 아스트레아에 대한 약간의 그리움과, 나와 비슷한 입장이었던 전우에 대한 호기심뿐.
어쨌거나 그녀는,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오고 나서 처음으로 만난 이세계 귀환자이자 같은 용사출신이었으니까.
* * *
“어… 음. 화, 환영한다. 용사들이여.”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
로스릭 왕국의 국왕은 100명의 용사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이세계에 갑자기 소환된 김세율이 들은 첫마디였다.
“하, 하하하. 솔직히 놀랐긴 했다만, 그래도 이런 경사가 어디 있겠는가!! 용사가 무려 100명이라니!! 선조 영령들께서 우리를 보살피는 것이 분명하오!!!”
국왕은 애써 태연한 척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아직 불안해하는 목소리로 그들이 불려온 세계의 이름이 아스트레아라는 것과, 이 왕국의 이름이 로스릭 왕국이라는 것. 그리고 현재 로스릭 왕국이 마물들의 침공으로 풍전등화 상태라는 사실을 말해줬다.
마물들의 침공이 수도 바로 앞까지 들이닥친 로스릭 왕국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설 정도로만 전해 내려오던 용사 소환을 결심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왕국의 흥망을 결정지을 용사 소환식이 거행되었고, 자그마치 100명이나 되는 용사들이 소환되었다.
왕국은 100명이나 되는 용사가 소환된 상황을 조금도 대비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런 가능성을 염두해둔 적도 없었다.
전설 속의 용사들은 1명이 기본이며, 많아봤자 4~5명 정도가 고작이었던 것이다.
로스릭 왕국의 국왕이 그토록 당황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소환을 진행했던 대주교는 갑작스럽게 피를 한 바가지 쏟아내더니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밀려들어오는 마나를 코어가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이 상황에 대해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법했던 유일한 인간이자 소환자는 그렇게 죽어버렸다.
100명의 용사들은 모두 지구에서 소환되었다.
헌터 출신의 몇몇 소수를 제외하면, 그들은 모두 싸움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던 일반 민간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용사로 소환되면서 이세계에서 마나로 부르는 에너지, 즉 에테르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하루 만에 각성 능력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성장 속도로 그들은 며칠 사이에 웬만한 프로 헌터 수준에 도달했다.
왕국은 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로 갑작스럽게 100명이나 되는 용사를 받아들이게 되었으나, 최선을 다해 용사들을 지원했다.
멸망을 앞에 두고 있던 왕국은 장비도, 인력도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남은 자원들을 아낌없이 모두 용사들에게 투자했다. 그들이 마지막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 수도의 코앞인 펠로스 평원에서 마물들과의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에 임하기 전까지는 모두가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은 예전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강해진 것이다. 민간인들은 프로 헌터급으로, C급 헌터는 B급 헌터 수준으로.
용사들은 며칠 만에 엄청난 급성장을 보였다.
어쩌면, 어쩌면.
모두가 승리에 대한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몇몇은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들을 맘껏 발휘하고 싶어 전투를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김세율 역시 전투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녀는 원래부터 헌터로 활동하던 에스퍼였다.
작년에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해서 반년 만에 단숨에 B급 헌터까지 올라선 화제의 루키.
모든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었던 천재 에스퍼가 바로 그녀였다.
한동안 정체되어있었던 능력과 에테르가, 고작 이 며칠 사이에 급성장을 이뤄냈다.
이정도면 A급도, 아니, A급의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어쩌면 S급까지도.
자신의 엄청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은 그녀만이 갖고 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정도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지, 그 곳에 모인 용사들에게는 모두 그런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모두가 용사라는 칭호에 취해있었다.
새로 얻은 힘에 취해있었다.
이 힘으로 위기에 처한 왕국을 구하고 이세계에서 영웅이 된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읽어봤을, 그리고 한 번 쯤은 꿈꿔봤을 그런 이야기.
모두가 비슷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전투는 참패였다.
전투의 극 초반부는 수월하게 진행되었고, 아군의 기세 역시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쏟아지며 밀고 들어오는 마물들의 공세는 그런 어줍잖은 기세 정도는 간단히 꺾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폭력이었다.
100명이나 되는 용사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용사라고 부르기엔 너무 약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100명이나 되는 용사들이 소환되면서 원래는 한 명의 용사에게 집중되었어야 할 마나가 100명에게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사들은 그들 자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강해졌지만, 그것은 용사라고 불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강해졌다고 하더라도, 그들 대부분이 며칠 전까지 민간인이었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전략도, 전술도 몰랐다. 전장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직감도 없었다. 아군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냉정한 태도를 유지할 정신력조차 없었다.
전투 중 얼 타면서 허둥대는 것은 양반이었다.
패닉상태에 빠진 채 도망가는 자가 속출했고, 피아식별도 하지 못한 채로 마구잡이로 공격을 퍼붓던 녀석도 있었다.
대부분의 용사들은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를 수가 없는 상태였다.
용사들의 활약을 기대하면서 진형을 구성했었던 왕국군의 사기는 단숨에 곤두박질쳐 바닥을 쳤고, 왕국군은 순식간에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헌터, 혹은 에스퍼 출신이었던 용사들은 그나마 용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만한 전력은 결코 되지 못했다.
전투의 결과는 왕국군의 깔끔한 전멸과, 거의 모든 전력을 펠로스 평원 전투에서 상실해버린 왕국 수도의 함락, 그리고 멸망이었다.
용사들 역시 대부분이 그 전투에서 죽어버렸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용사는 절반이 채 되지 못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았던 용사들은 졸지에 부랑자 신세가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산적으로 전락해버린 용사, 홀로 떠돌다 맞닥뜨린 마물에게 목숨을 잃은 용사, 산길을 헤메이다 지쳐 쓰러져 죽은 용사.
그리고 김세율은, 그녀는 펠로스 평원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전장의 한복판에 있었던 그녀는 도망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 있던 오우거의 시체 밑에 비집고 들어가 행여 숨소리가 새어 나갈까봐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며 벌벌 떨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무척이나 역겹고 꼴사나운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도저히 체면 같은 걸 떠올릴 상황이 아니었다.
천재 에스퍼라 불리며 정예 헌터팀과 함께 토벌에 임해왔던 그녀에게, 이런 처절한 전장은 너무나도 낯선 공간이었다.
원래 세계에서 헌터로 활동하던 그녀는, 말 그대로 사냥꾼이였지 사냥감이 아니었다. 팀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화려하게 전격을 내리꽂는 피니셔, 그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그녀는 사냥꾼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발버둥치는 사냥감에 불과했다.
그녀는 다른 용사들에 비하면 큰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전격을 뿜어낼 때마다 거대한 몬스터가 쓰러졌고, 한 개 무리가 꼬꾸라졌다.
그러나 엄청난 물량의 폭력 앞에서 그녀의 활약 정도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야말로 미약한 반항에 불과했다.
A급을 뛰어넘어? S급도 넘볼 수 있어? 그게 어쨌단 말인가. 자신은 무력한 존재에 불과했다.
자신이 살아남은 것은 그저 이쪽을 향해 오우거가 쓰러졌고, 갈라진 오우거의 복부가 비집고 들어가기 적당한 크기로 벌어져있었기 때문일 뿐이었다.
아드득, 찌익, 찌직.
오우거의 시체에 숨어있는 동안, 그녀의 주변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물들이 시체를 파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점이 뼈채로 함께 씹히는 소리, 살갗이 물어 뜯겨 찢어지는 소리, 내장을 파먹는 소리.
그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그녀는 패닉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존엄성, 죽은 전우들에 대한 동정심,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주변에 인간들의 시체가 전부 먹히고 나면, 자신이 숨어있는 이 오우거의 시체 역시 먹혀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자기 자신도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과하게 될 것이기에.
여기에 숨어들어온 지 며칠이 지났을까.
이곳에서는 시간 개념을 알 수가 없었다. 알 방법도 없었고, 그런 걸 고민하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주변에 널려있는 오우거의 내장들이 점점 지독한 썩은 내를 풍기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리라고 으레 짐작할 뿐이었다.
자신은 몰랐지만, 그녀는 자그마치 6일 동안을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그녀가 오우거의 시체에 묻힌 채로 6번째 아침을 맞던 날, 아스틴 제국의 조사단이 도착했다. 시체 파먹는 소리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그제야 용기를 내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녀는 썩어가는 내장을 온몸에 뒤집어 쓴 채로 기어 나와, 6일 만에 햇빛을 볼 수 있었다.
이미 그녀의 마음은 꺾여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