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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25화 (25/135)

25화

“선, 생님…?”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작은 목소리.

하지만 그 작은 소리를 들었는지, 그녀의 고개가 이쪽으로 서서히 기울었다. 핏물에 얼룩진 철가면이 이쪽을 바라봤다.

“선생님!!!”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그녀를 향해 달렸다. 정신없이 뛰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달리던 도중 몬스터의 시체를 밟고 넘어졌지만,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그녀에게 달려 나갈 뿐이었다.

“미친놈… 좀 천천히 와라. 누가 죽기라도, 쿨럭. 죽기라도 한 대냐?”

그녀에게 거의 다가갔을 무렵, 철가면 너머로 그녀가 말했다.

“오다가 자빠지기나 하고 말이야. 쪽팔린 줄 알아야지. 큭큭, 쿨럭.”

그녀는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있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깨져버린 건틀릿 사이로 맨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는 그 손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

“예, 그러게요. 덕분에 옷도 다 버렸네요. 하하… 이거 어제 세탁한 건데.”

“어차피 내 갑옷도 고쳐야하니까, 그 때 네 옷도 새 걸로 같이 사자.”

잔금이 간 적은 있었어도, 찌그러지거나 부서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그녀의 갑옷이 군데군데 깨지고 떨어져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깨져나간 부분 중 하나를 거대한 창이 꿰뚫고 있었다.

꿰뚫린 상처에서 솟아오르는 핏물이 창대를 타고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핏물은 곧 방울로 떨어지며 바닥에 작은 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거 비싼 거라 어디서 구하지도 못한다면서요. 수리도 못 맡기는 거 아니에요?”

“야, 그래도 이 꼴이 났으면, 후우… 다른 걸로 땜질이라도 해야 써먹지 않겠냐. 그래, 미스릴 정도면 쓸 만하겠네. 여기 마족 시체들 뒤지다보면 칼도 몇 자루 나올 테고. 쿨럭, 쿨럭.”

그녀는 가볍게 웃음을 짓다가 터져 나오는 기침에 말을 멈췄다.

철가면 밑으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아― 이런 시발. 마족들은 다 죽여 놓고서 정작 오우거 한 놈을 못 잡아가지고 기어코 가슴팍에 구멍 하나를 뚫어버리네.”

그녀의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아까부터 치료마법을 걸고 있었지만, 내 치료능력은 어디까지나 응급처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기아스의 능력강화를 받고 있음에도 그녀를 치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야, 너 회복 마법은 더 안 익힐 거냐? 나중에 후회할 텐데.’

‘뭘 모르시네요, 선생님. 남자는 공격!! 그리고 용사가 무슨 회복 마법입니까. 그런 건 급할 때 쓸 수 있을 정도만 할 줄 알면 돼요.’

갑자기 떠오르는 옛 기억에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자신은 그녀의 죽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아니, 아직. 아직이다.

「나는 그녀를 치료할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치료해낸다.」

「나는 그녀를 치료한다.」

나는 계속해서 기아스를 덮어씌웠다.

기아스가 중첩될수록 코어가 뒤틀려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 대신 조금씩 회복량이 늘어가고 있었다. 희미했던 녹색 불빛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조금씩 커져가는 녹색 불빛은 작은 희망처럼 느껴졌다.

그녀를 구할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 그것만으로도 나는 구원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 어느새 해는 완전히 저물어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탓일까,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이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너 상단은 어쩌고서 여기에 온 거냐.”

“아스틴 대로에서 제국 순찰대한테 붙여주고 왔어요. 저랑 있는 것보다 그게 더 안전하겠죠.”

“그러냐…….”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회복마법의 불빛만이 은은하게 주위를 비추고 있었다.

“오늘은, 별이 많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혹시라도 네가 상단을 버리고서 나에게 온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을 했어.”

그녀의 목소리는 힘이 빠져있었지만, 선명한 발음으로 들려왔다.

“혹시 나 때문에 네 뜻을 꺾어버린 걸까, 하고 말이야. 어줍잖게 용사 흉내를 내는 네 모습은 꼴사나웠지만, 그래도 옛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동경할 만한 모습이었으니까…….”

그녀의 말에 죄책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나의 거짓말은, 그녀를 안심시킬 수 있었다고.

“누구나 한 번쯤은 동경했을… 내가 되고 싶어 했던, 하지만 결국은 포기했었던. 그런 모습, 그런 이상… 나는 결국, 그런 너를 데리고 다니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었던 걸지도.”

“아뇨, 선생님은 절대로―!!”

그녀는 반대편 손으로 나의 볼을 쓰다듬었다.

맨손이 드러난 반대편과 달리, 아직 멀쩡하게 남아있던 건틀렛의 차가운 감촉이 볼을 어루만졌다.

후훗, 그녀는 짧게 웃었다.

“하지만 그 길은 끝없이 펼쳐진 가시밭길이자 언젠가 깨져버릴 모순의 길. 도중에 꺾여버렸던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네가 생각하던 모습과는 많이 다를지도 몰라.”

볼을 쓰다듬던 건틀렛의 차가운 감촉은 점점,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래서 나는… 네가 올곧게 나아가길 바라는 것 이상으로, 네가 그냥 평범하게 살아갔으면 하는구나.”

감싸 쥐고 있던 그녀의 손이 점점 더 차가워졌다. 창대를 타고 흘러내리던 핏물도 점차 말라붙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싫었다. 너무나도 싫었다.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싫어도 그녀의 죽음을 직감적으로 느껴버리고 만다.

“그래, 그냥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말이야.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나는 결국 그러지 못했으니까, 너는…….”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나의 볼을 쓰다듬던 그녀의 손길은 힘없이 늘어졌다.

“선생님, 안 돼요…….”

이미 차갑게 식은 그녀의 손을 붙잡아봤지만, 그녀가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눈물 한 줄기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안 돼요, 안 됀다구요…….”

무엇이 안 된다는 것일까. 그건 나도 알지 못했다.

그저, 이 상황에 대한 거부의 표현이었을 뿐.

그러나 그런 나의 바람을 거부하듯, 그녀의 몸은 빛나는 입자로 나뉘며 허공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 아아… 아아아아!!”

이럴 수는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흩어지는 입자들을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해 손을 휘저어보았으나, 손에 잡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용사의 죽음은, 이 기괴한 현상은 몇 번이고 봐온 것이다. 이젠 익숙해졌을 터였다.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낯설게, 그리고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안 돼, 안 돼… 컥, 흐윽…….”

가슴이 답답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가슴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일까? 여태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함께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마나가 역류하며 회로가 뒤엉키기 시작했다. 기아스의 폭주였다.

나의 작은 희망이었던 기아스는 이제 나의 절망이 되어있었다.

온몸이 저려왔다. 코어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박동하고 있었다.

“헉, 커헉, 큭… 흐으윽…….”

온몸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에 몸이 허물어짐과 동시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땀과 뒤섞인 눈물이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이 눈물은 슬픔 때문에 흐르는 것일까, 고통 때문에 흐르는 것일까.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 * *

이대로 죽는 걸까.

아니, 차라리 이대로 죽고만 싶었다.

그걸로 편해질 수만 있다면. 여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러다 문득,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가야해.”

나에게는 아직 남은 기아스가 있었다. 아직 남은 사명이 있었다.

아직 그녀가 부탁한 일이 남아있었다.

밤은 어느새 끝이 나고 아침 해가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마나의 역류로 곳곳이 마비되어버린 몸은, 마치 남의 몸을 빌려 쓰는 듯한 이질감이 들었지만 어떻게든 일어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을 내딛었다.

제대로 된 걸음도 걷기 힘든 몸은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하고 쓰러지기를 반복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상적인 발걸음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걸음은 잠시 후 빠른 걸음이 되었고, 나는 어느새 달려나가고 있었다.

나에게 남은 그녀의 마지막 흔적, 나의 마지막 이정표.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 자신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하하하.”

그곳에 펼쳐진 것은 학살 뒤에 남은 현장이었다.

숲의 공터에는 산산조각 난 마차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고블린의 시체와 사람들의 시체가 서로 뒤섞여있었다. 주변을 가득 메운 피비린내는 코를 마비시킬 지경이었다.

학살 이후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진 않았는지, 내장을 파먹힌 시체에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다.

“흐흐, 흐…….”

학살의 현장은, 상단의 야영지는 아스틴 대로와 30분 거리도 채 남지 않은 곳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순찰대와 합류할 수 있었으리라.

만약 밤길을 호위해줄 사람이 있었다면, 아니, 하다못해 이곳 지리를 알려줄 안내역만이라도 있었다면.

“으아아아아―!!!”

그나마 남아있었던 기아스들이 깨져나가던 순간, 나는 그 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는, 영웅 따위는 될 수 없는 놈이라는 것을.

나의 영웅놀이는 그곳에서 끝이 났다.

* * *

“허억, 허억…….”

눈을 뜨고 일어났을 때,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끔찍한 기분이 나를 반겼다.

잠시 이곳이 어딘지 애매해 혼란스러웠다.

“꿈…이지.”

일단은 땀에 흠뻑 젖어있던 잠자리가 꽤나 불쾌하게 느껴졌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이마와 목을 훔쳐냈다. 손에 흥건하게 묻어나온 땀이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여긴, 어디지…?’

천천히 호흡을 진정시킨 후, 차근차근 주변을 살폈다.

어림잡아 네 평 정도의 공간. 침대가 있었고, 책상은 혼자 쓰기엔 꽤나 넓직한 책상이었다.

‘그리고… 형광등이 있군.’

천장에는 형광등이 매달려있었다. 누가 봐도 현대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공간이었다.

‘기숙사… 그래, 어제 실습에 대한 보고를 마치고서 곧바로 방에 돌아와 잠에 들었지.’

기억의 정리는 끝냈지만, 축축하게 젖은 침대에 다시 눕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아 의자에 앉아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어차피 방금 전의 악몽 때문에 한동안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다.

“악몽, 인가…….”

한 때는 수도 없이 꿨던 꿈.

하지만 이쪽 세계로 돌아오고 나서는 단 한 번도 꾼 적이 없었다. 그 때문일까, 오히려 애틋할 정도로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어쨌거나 그 꿈에서만큼은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으니까.

비록 그 꿈에서 얻는 것이 고통과 괴로움뿐이라 하더라도, 점차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던 그녀를 다시 한 번 생생하게 되새길 수 있었다.

이세계에 소환되었을 때, 아무것도 몰랐던 나를 2년 동안이나 데리고 다녔던 그녀.

난 그녀의 이름도, 얼굴도 몰랐다.

그녀는 자신을 좋을 대로 부르라고 말했고, 나는 멋대로 그녀를 선생님이라 불렀었다.

그녀는 항상 흑빛의 철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가면을 벗은 적이 없었다. 식사를 할 때조차도 하단부를 분리시켰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2년 동안이나 같이 지냈는데 어떻게 이름도 얼굴도 모를 수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그만큼 그녀가 철두철미했다, 라는 말밖에 해줄 수가 없었다.

“큭.”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고통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에테르가 폭주할 때의 통증이었다.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악몽 때문인지 이번 것은 특히 고통이 심했다.

그 때 망가졌던 기아스는 아직도 이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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