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내 대답에 이소연은 잠시 동안 벙 찐 표정을 지었다.
“…제정신이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소연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숙련된 옵저버처럼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이제 뭘 하면 되지?”
어느새 김주언을 내려놓고 돌아온 박서준이 내게 물었다.
“넌 타이밍을 봐서 조금씩 공격을 시도하다가, 위험하겠다 싶으면 바로 자리를 이탈하도록 해. 그리고 만약 다른 몬스터가 이쪽으로 온다면, 방해가 되지 않도록 따로 처리해.”
요새도시 내부라고 해도 이곳은 외곽, 몬스터가 나타나더라도 박서준이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만 나타날 것이다.
“알았다.”
박서준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사라졌다.
[통신망이랑 인터페이스 활성화 끝났어요. 각자 체크하고 이상 있으면 말해주세요. 없어도 말해주고요.]
이소연의 무전이었다.
이소연의 무전을 듣고 시스템을 가동시키자, 시야에 그녀가 분석한 데이터들이 나타났다.
데이터들은 시야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장자리 부분에서 반투명한 상태로 떠다니고 있었다.
거기에는 이 주변 2km내 지형지물에 대한 간략한 약도와 몬스터들의 위치, 그리고 각 팀원들의 위치에다가 간략하게나마 에테르 잔량 수준까지 나와 있었으며, 현재 팀의 타깃인 슬라임 자이언트에 대한 내용도 곁들여져있었다.
“…이게 무슨―”
전투에서 아군과의 소통을 보조하는 배틀필드 네트워크 시스템.
이것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 옵저버의 가장 큰 역할이자 팀에 옵저버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였고, 또한 옵저버가 전투 자체에는 도움이 되기가 힘든 원인이었다.
이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헌터들은 무겁고 불편하던 무전기를 지참할 필요가 없어졌고, 또한 옵저버들은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팀원들과 실시간으로 간편하게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상세하게 나올 줄이야…….’
말로만 들어봤을 뿐이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수준이었다. 이건 거의 맵핵 수준이 아닌가.
[대답들 안 하십니까~??]
[박서준 이상 무.]
[이건 대체… 아, 이세형이다. 문제없다.]
[미카엘라, 이상 없어.]
[조원호, 이상 없음.]
그리고 마지막.
[전민호, 훕, 후으… 문, 문제 없어.]
“…너, 괜찮겠어?”
“날 뭘로 보는 거야. 아, 아무 문제없다고.”
전민호는 이곳까지 자력으로 걸어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상당히 불안한 상태였다.
다리는 서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떨리고 있었고, 계속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더듬고 있었다. 누가봐도 패닉 상태였다.
그는 허세와 자존심만으로 가까스로 버티는 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니, 오히려 서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상황이었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죽음의 문턱 앞에 다녀온 것이다.
평소라면 이대로 그를 후퇴시키고,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휴식을 시켜야했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저걸 잡기 위해선 네 도움이 필요해.”
하지만, 지금은 이 녀석의 힘이 필요했다.
느닷없이 첫 실전치고는 가혹한 상황에 부딪힌 초보자이자 방금 전까지 죽음의 문턱 앞에서 기어 다녔던 녀석에게는 잔인한 처사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이 없으면 저 괴물을 잡을 수 없었다.
“…할 수 있겠어?”
그 말에 그는 모욕이라도 받은 것처럼 표정을 찡그렸다.
“다, 당연, 당연하,”
하지만 그의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 그는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떨고 있었다.
빠드득.
잔뜩 구겨진 표정 속에서 이빨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분하다는 듯 굳게 입을 다물더니, 자신의 뺨을 두 대 내리치고서 크게 심호흡을 들이쉬었다. 그의 눈의 떨림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당연하지! 내, 내가 꼴사납게 도망이라도 칠까봐?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재수없기만 한 놈인 줄 알았는데.’
그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하찮고도 꼴사나운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때로 그것은 용기나 이상 같은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때도 있었다.
“…좋아, 그럼 지금 이세형이 있는 위치로 이동해줘. 나한테 생각이 있어.”
“후우… 좋아, 어디지?”
이세형은 벌써 목표지점에 도착하여 이쪽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전민호는 떨리고 있는 다리를 감추려는 듯 뛰어가기 시작했다.
* * *
[포인트 A3, 3시 방향에 적 출현이에요.]
[박서준, 수신 완료.]
무전이 끝남과 동시에 박서준이 블링크로 사라졌다.
전투는 생각보다 길어져 벌써 20분을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누적 피해량은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지만, 슬라임 자이언트의 재생력은 그 피해량을 가뿐히 뛰어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쪽의 피로만 쌓여가고 있었다.
특히 블링크를 남발하면서 움직이고 있는 박서준과, 계속해서 탱킹을 맡고 있는 미카엘라는 지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미카엘라에게는 내가 간략한 버프들과 함께 에테르를 계속해서 공급해주고 있기는 했지만, 선명했던 그녀의 황금빛 에테르는 전투가 길어짐에 따라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우리끼리라도―]
[아니, 안 돼. 만약 실패하면 어그로가 튀어서 전멸당할 뿐이야. 기다려야 해.]
재생력을 뚫지 못하는 자잘한 공격들은 아무런 피해도 입힐 수 없다.
그렇다고 핵을 노리고 공격들을 퍼부었다가 실패한다면 단번에 어그로가 튀어버린다. 그리고 이 녀석들의 화력만으로는 실패할 것이 뻔했다.
미카엘라가 탱킹을 하고 있는 것도 기적 같은 상황이었다.
다른 녀석들이 슬라임 자이언트의 공격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그로가 튀는 건 최대한 피해야만했다.
그렇다면, 단 한 번의 일격에 모든 걸 걸어야했다.
‘우리는, 엄호사격을 기다린다.’
이것이 내가 짠 계획의 핵심.
현재 우리가 가진 최고의 전력은 후방에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누군가였다.
그가 쏘아낸 라이트닝 스피어는 핵까지 파괴하지는 못했으나, 슬라임 자이언트의 몸통을 거의 절반 정도 날려버렸었다.
그의 다음 공격이 다시 한 번 그 정도 피해를 낼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힐 것은 명백했다.
그럼 그때까지 힘을 아껴두었던 전민호가 핵이 드러날 때까지 마법을 쏟아 붓는다.
그리고 핵이 노출되면, 이세형의 저격으로 단숨에 핵을 파괴한다.
이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엄호사격은 20분 째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소연, 후방 쪽에 별다른 반응은 없어?]
[몇 번이고 말하지만, 잔챙이 몬스터 몇 마리 빼고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어요.]
‘은신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이소연의 탐색결과와는 반대로 그 누군가의 기운은 오히려 아까보다 더욱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 기운이 상당히 불안정하게 날뛰고 있는 중이었기에 뭔가 준비라도 하고 있는 줄 알았지만, 단순히 그 상태가 계속해서 지속될 뿐이었다.
뭔가 이상이라도 생긴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 후방 쪽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이소연의 말대로 잔챙이 몬스터 몇 마리가 돌아다니는 게 감지된 것이 전부였다. 저 정도 실력자가 동요할 만한 상황은 전혀 없었다.
투쾅!!
슬라임 자이언트의 주먹이 다시 한 번 땅을 울렸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듯 어색하기만 했던 움직임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는 꽤나 능숙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미카엘라는 이제 패링만으로는 탱킹이 버거운지 패링과 동시에 몸을 조금씩 피하면서 슬라임 자이언트의 공격에 버티고 있었다.
[조원호!!]
보채지 않아도 알고 있다.
더 이상 늦어지면 미카엘라가 버티기 힘들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뭐라도 해볼 수 있는 타이밍마저 놓치게 된다.
하지만 지원사격 없이 핵을 파괴할 방법은 없었다.
게다가 지금 상황에선 도망치기도 쉽지 않았다.
도망이든 공격이든 어줍잖게 시도했다가는 팀이 전멸의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럼 결국 뒷수습은 내가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우에는 내가 슬라임 자이언트를 파괴하는 모습을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주게 된다.
그런 사태는 절대로 피하고 싶었다.
애초에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저런 녀석을 상대로 이 개고생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소연, 너 에테르 공급은 가능해?]
[예? 아, 그 정도야 당연히 가능하죠.]
[그럼 내 대신 미카엘라에게 에테르 공급 좀 부탁할게. 그리 오래는 안 걸릴 거야.]
무전을 마치자마자 나는 곧바로 자리를 이탈하여 후방으로 달렸다.
뒤로 돌자, 뒤 쪽 건물 옥상에서 활을 당기고 있던 이세형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다시 사격 준비에 집중했다.
[엑? 지금 어디 가요?]
[잠시 뒤쪽 좀 확인하고 올게. 만약 지원사격이 날아오면, 내 지시가 없더라도 아까 말했던 대로 좀 해줘.]
[흐, 그렇게 갑자기…]
[일단은 알았다. 조원호.]
내가 직접 나서지 않고 이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른 헌터들이 이곳에 도착하든가,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 일을 진행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조신호를 보내고 20분이 지났음에도 지원은커녕 응답해오는 사람도 없었다. 이제 와서 다른 헌터의 지원을 기대하는 건 지나친 낙관론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뒤에서 쓸데없이 에테르 기운만 뿜어내고 있는 의문의 헌터에게 직접 찾아가 뭐가 문제인지 알아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팀원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에테르를 활성화시키고 신체를 강화시켰다.
온몸에 흘러 다니기 시작한 에테르의 감각을 느끼며, 곧바로 눈앞의 건물 위로 뛰어올랐다.
여유부릴 시간은 없었다.
미카엘라의 탱킹은 슬슬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이소연이 서포터의 역할까지 함께하고 있는 만큼, 옵저버로써의 시야는 점차 좁아지기 마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팀의 목이 조여진다. 이른바 타임어택이라는 뜻이었다.
‘그건 그렇고…….’
사실, 직접 찾아간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했었다.
하지만 실행까지 꽤나 망설였던 이유는, 내가 자리를 이탈하는 걸 다른 녀석들은 도망치는 거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단순히 욕을 먹는 게 문제가 아니다.
잘못하면 팀의 사기가 단번에 바닥으로 떨어지고, 서로에 대한 불신이 싹틀 수도 있는 오해인 것이다.
제대로 돌아가는 팀도 생사를 넘나들 실전 상황에서, 서로를 믿지도 못하는 팀이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부 분열은 팀의 전멸을 의미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팀을 믿어야한다. 헌터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서로에 대한 의심을 접는 것은 힘든 일이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다.
그렇게 쌓인 의심은 작은 오해 하나에도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려, 단숨에 팀을 붕괴시킨다.
그러나 내가 전장을 이탈했을 때, 아무도 그런 의심을 입에 담지 않았다.
사실 한두 명 정도는 ‘도망치는 거 아니냐.’라는 투의 말을 꺼낼 줄 알았다.
그만큼 상황은 좋지 않았고, 게다가 처음 실전을 겪는 풋내기들이었으니까.
의심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내 행동은 그런 의심을 품기에 충분했다. 그런 생각을 갖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녀석들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알고 있던 것이다. 그런 말을 뱉어봤자 팀의 사기를 깎아낼 뿐이라는 것을. 여기선 나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생각보다 좋은 팀…이라는 건가.’
나 혼자서만 대충하고 있다는 생각에 괜한 죄책감이 밀려올 때였다.
먼 곳에서 희미하게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 헌터가 있는 방향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