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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9화 (19/135)

19화

“여, 여기가 요새도시인가…….”

한참동안 주위를 둘러보던 이세형이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금 멍청하게 보이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마치 수학여행으로 서울에 처음 온 고등학생들 같은 모습!!

주변의 모습은 마치 도시 속 번화가 같았다.

마천루는 아니었지만 나름 높은 빌딩들이 곳곳에 세워져있었고, 그 밑으로 상가 건물들이 늘어서있었다. 개중에는 눈에 익은 프랜차이즈 간판들도 몇몇 보였다.

다만 이곳에는 우리를 제외한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건물들도 군데군데 부서지거나 무너져있는 상태였고, 그 사이로는 두꺼운 철판들이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요새도시는 게이트 주변에 지어진 방어시설을 말했다.

게이트가 열렸던 초창기, 소환된 몬스터들은 군대를 무시한 채 도시를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당연히 민간에서의 피해가 다발적으로 발생하게 됐다.

몬스터들의 목적은 모르겠지만, 그들은 집요하게, 계속해서 도시를 습격했다.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토벌에 성공한다면 다행이지만, 놓쳐서 시가지에 몬스터가 진입할 경우, 아무런 피해 없이 몬스터를 잡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부는 몬스터들이 흩어지지 못하도록 게이트에서 막아내려고 했지만, 군대를 무시하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려하는 몬스터들을 전부 토벌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는 곧 민간의 치명적인 피해로 이어졌다.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요새도시였다.

정부는 게이트를 둘러싸고 도시와 매우 흡사한 형태로 요새를 쌓아올렸다.

얼핏 봤을 때 요새도시는 그냥 단순한 시가지처럼 보였지만, 요새도시의 건물들은 몬스터의 공격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재료와 전략적인 설계로 지어졌다.

요새도시의 건물들은 때로는 방벽, 때로는 참호가 되었으며, 때로는 몬스터들을 붙잡아두는 미로가 되었다.

게다가 몬스터들은 요새도시를 실제 도시라고 인식하는지, 예전처럼 곧바로 흩어지지 않고 일정 시간동안 그 주변에 머물렀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요새도시가 가짜임을 알아차리고 이동했지만, 헌터들이 출동할 시간을 끌어주기에는 충분했다.

그 결과 몬스터 탐색과 토벌이 훨씬 수월해진 것은 물론이고, 민간의 피해도 급격히 감소했다. 한국처럼 헌터 숫자가 안정적으로 확보된 곳은 예전처럼 사회기능이 복구되었을 정도였다.

‘몬스터들이 도시를 찾아 흩어진다면, 게이트에다가 도시를 세우면 되잖아?’

한 공학자의 장난스러운 한 마디 말에서 시작된 요새도시 계획은, 몬스터들을 쫓는 것에만 급급했었던 상황을 단숨에 뒤집은 위대한 성과였다.

“흠흠, 다들 집중하도록 하자!! 우린 게이트 주변에 있는 거니까.”

구경에 정신이 팔려있는 팀원들에게 미카엘라가 말했다.

그러는 본인도 방금 전까지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관광을 즐기던 한 명이었다.

“하하, 괜찮아. 이 주변은 그다지 위험한 곳이 아니니까. 게이트에 가까울수록 위험, 멀어질수록 안전. 이건 상식이라고?”

같이 온 3학년 선배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실습의 인솔자이자, 단기간에 몬스터를 포획하여 이틀 만에 실습을 잡히게 만든 주범으로, 이름은 김주언이었다.

“게이트에 근접하면 몬스터가 소환되는 횟수도 잦아지고, 그 등급도 높아지지.”

김주언이 게이트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는 외곽이야. 갑자기 몬스터가 소환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나와 봤자 잔챙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김주언은 말을 마치고서 등에 매고 있던 창을 휘둘렀다. 어줍잖은 자기과시였다.

“여차하면 이걸로 콱!! 하하, 어때?”

“아, 예. 뭐, 멋있네요?”

이쪽의 시큰둥한 반응에 김이 샜는지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는 인솔자라해도 그리 신용이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간간히 보이는 저런 모습은 듬직하다기보다는 허세를 부리는 느낌이 강했고, 실제로도 그다지 강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호위역을 맡기에는 영 불안하다고나 할까.

객관적으로 봤을 때, 3년간 얻은 경험에서 나오는 판단력을 배제한다면 차라리 이쪽의 미카엘라가 더 강할 것이다.

‘하긴, 진짜 호위역은 뒤쪽에 있는 녀석이겠지.’

아까부터 뒤쪽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과, 강력한 에테르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느껴지는 정도로만 파악해도 미카엘라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을 양이었다.

유선이나 크리스 정도는 아니겠지만, 상당히 강력한 녀석임에는 틀림없었다.

왜 저런 실력자가 1학년 호위 같은 자질구레한 일을 맡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아, 도착했어. 저거야.”

멈춰 선 김주언이 가리키는 곳에는 붉은 슬라임이 있었다.

슬라임은 푸른 에테르막 안에 갇혀있었는데, 그가 허공에 손을 가볍게 휘젓자 막이 걷히면서 밖으로 풀려나왔다.

“저 녀석은 화이트 급의 엘더 슬라임(Elder Slime). 노컬러인 일반 슬라임보다 강한 녀석이지만, 지금은 약화되어있는 상태라 괜찮아.”

슬라임인가.

하긴 교육이나 훈련용으로 쓰기에 슬라임만한 몬스터도 없다.

슬라임 계열은 에테르가 담기지 않은 공격에 완벽한 내성을 갖고 있으며, 에테르로 공격을 하더라도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면 오히려 에테르를 흡수해 증식해버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

때문에 가끔은 대처법을 모르는 초행자가 마구잡이로 공격하다 슬라임 수가 순식간에 불어나버리는 재앙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숙련자들에게는 잔챙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초보자들도 대처법을 익히고 신중하게만 행동하면 별 문제없이 상대할 수 있다.

오히려 슬라임의 특징을 이용하면, 한 마리만 잡아와도 필요한 만큼 그 숫자를 얼마든지 불릴 수 있었고, 여차한 경우에는 적당한 기술로 한 번에 싹 다 지져버리면 끝이었기에 훈련용으로 아주 적절한 녀석이었다.

‘무엇보다, 저건 뚜드려 패고 몇 놈을 죽여도 죄책감이 딱히 없지.’

인간은 짐승에게는 물론, 혐오하던 벌레에게조차도 때로 동정심을 발휘하는 존재다.

상대가 추악하고 포악한 오크라고 할지라도, 묶어놓고 과녁으로 쓰다보면 변태가 아닌 이상 어느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슬라임은…….’

슬라임은 생물이라기보다는 동글동글한 젤리 같은 느낌이다.

만약 슬라임에게 동정심이 생긴다면 그건 성인군자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침대 위에 사는 진드기에게도 동정심을 발휘할 녀석이다.

“한 마리뿐입니까?”

“아, 걱정하지마. 지금은 한 마리지만―”

이세형의 질문에 답한 김주언은 두 손가락에 에테르를 모으더니, 슬라임을 향해 가볍게 선을 그었다.

슬라임은 가볍게 두 조각으로 갈라졌고, 이윽고 그 조각들은 각자 원래 크기대로 불어나 슬라임 두 마리가 되었다.

그렇게 두 차례 더 반복하자 슬라임은 단숨에 여덟 마리로 늘어났다.

“이렇게 핵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무한대로 증식시킬 수 있지. 원래 실전에서는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짓이지만, 이렇게 응용할 수도 있다고.”

김주언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하자, 팀원들은 저마다 반응을 보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지금부터 이 슬라임을 상대로 몬스터들이 갖고 있는 에테르막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실제로 잡아보도록 해.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지는 마라.”

김주언은 팀원들에게 각각 한 마리씩 슬라임을 맡겼고, 남은 두 마리는 김주언이 다시 에테르막으로 가둬뒀다.

이후로는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훈련을 하게 되었다.

이세형과 박서준, 그리고 미카엘라는 각자의 방식대로 슬라임을 잡아내고 있었다.

이세형의 무기는 활이었다.

그는 먼저 가볍게 쏜 화살로 슬라임을 둘로 나눈 후, 에테르를 담은 신중한 일격으로 핵을 꿰뚫었다. 핵이 꿰뚫린 슬라임은 마치 둔기에 맞은 듯이 터져나갔다.

박서준의 무기는 단검이었다.

그는 투박한 모양의 대거를 양손에 한 자루씩 쥐고 있었는데, 일반적인 길이보다 반 뼘 정도가 더 긴 대거였다.

그의 주변에는 슬라임의 숫자가 단숨에 늘어났다가 다시 줄어드는 것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마치 솜씨좋은 정육업자가 깔끔하게 도축을 해내는 듯한 모습이 꽤나 화려했다.

미카엘라는 요전에 봤었던 황금빛의 에테르를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다.

선명하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검은 가차 없이 슬라임들을 베어냈는데, 그 기세는 슬라임을 상대로 하기에는 지나친 낭비처럼 보였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쓴다, 인가.’

하지만 이건 마치 닭을 잡으려는 데 어디서 전기톱을 들고 와서 휘두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이, 너희들은 슬라임 더 필요 없는 거냐??”

김주언이 우리 쪽을 보고 말했다.

우리는 나와 이소연을 가리키는 것으로, 우리는 뒤쪽에 빠져 그늘에 앉아 쉬고있는 중이었다.

“아, 저는 서포터라서요. 하하하. 경험삼아 한 마리 잡아본 것만으로 괜찮지 않을까요? 지금은 에테르를 다루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전 기본이 더 급한 상황이라서.”

“저는 옵저버입니다!! 지금도 이 주변을 관찰하면서 연습하는 중입니다!!”

물론 우리 둘 모두 그딴 건 하고 있지 않았다.

내가 슬라임 상대로 연습을 해봤자 어디다가 쓰겠는가.

애초에 유선이 나에게 부탁한 역할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일종의 안전요원 같은 느낌이었다. 실전이나 긴급상황에서는 움직여야겠지만, 이런 애들 교육에까지 참가할 의리는 없었다.

옆에 앉아있는 이소연은 대놓고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이 녀석은 슬라임 따위로는 성이 차지 않는 지 드래곤을 잡고 있었다. 물론 휴대폰 화면 속에서.

그런 상황에서 옵저버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프로 헌터 정도 수준은 될 것이다.

‘아니, 업무 중에 게임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실격이구만.’

김주언은 잠시 이쪽을 바라보다 그냥 포기했는지 고개를 돌렸다.

훌륭하십니다, 선생. 그럼요, 똥은 피하는 게 상책입지요, 암요.

왠지 이번 일은 꿀을 빨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들었었다.

“너 뭐하는 거야?”

그 때, 고개를 돌리고 주변을 살피던 김주언의 시선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그는 격한 리액션을 보이며 등에 맨 창을 쥐었다.

“시험해보고 싶은 마법이 있어서요.”

거기에는 전민호가 있었고, 그 앞에는 수없이 많은 슬라임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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