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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8화 (18/135)

18화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이 상황을 꺼려하는 기색은 여전했지만, 분위기에 떠밀려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박서준. 에테르는 3200Et. 멀리서 때리는 것보다는 붙어서 싸우는 걸 선호한다. 뭐, 사실 그것밖에 할 줄 모르지만 말이야.”

미카엘라의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각성 능력은 블링크(Blink). 10m정도 거리를 단숨에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박서준은 비교적 조용히 있었던 두 녀석 중 한 명이었다.

중간 이상의 키에, 잘 다듬어진 체격이 옷태 너머로 드러나고 있었다. 주위를 살피는 눈매는 날카로우면서도 차분한 인상을 남겼다.

첫 인상은 조용하고 차분한 범생이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보다는 좀 더 예리한 느낌이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날붙이 같은 이상이랄까.

“내 차례인가.”

다음 차례는 나한테 은근히 시비를 걸었던 그 녀석이었다.

“나는 전민호. 에테르는 3784Et !! 과에서 사실상 2위라고 할 수 있는 남자지.”

그는 자기 가슴을 가볍게 치면서 말했다.

이 녀석에 대해서는 내 멋대로 재수없는 녀석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해는 아닐 것 같았다.

“각성 능력은 발화(發火). 이름처럼 단순히 불만 붙이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화염계열 마법의 시전과정을 단축시키고 그 위력도 단숨에 끌어올려주는 능력이다. 에테르만 높은 누구와 달리 능력도 뛰어나지.”

전민호는 이쪽을 넌지시 바라보며 말했다.

‘원소계열, 그것도 발화 능력자인가…….’

잘난 척 말하는 꼴은 조금, 아니 심히 거슬렸지만, 원소계열 능력자의 화력은 상당히 강력하다. 때로는 마법사라고도 불리는 에스퍼 부류였다.

게다가 발화 능력은 캐스팅 단축과 규모 증폭의, 연사력도 빠른데 위력까지 상승하는 능력이다. 딜러로써 이만큼 이상적인 능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입만 저따위로 안 털었으면 좀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실제로 다른 녀석들이 전민호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리 곱지 않았다.

정작 본인은 자신의 능력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는 줄 아는 것 같았지만.

“나인가. 나는 이세형. 에테르는 2900Et. 아까 앞에서 누가 붙어 싸우는 걸 선호한다고 말했었는데, 나는 원거리에서의 공격을 선호한다. 다행히 밸런스가 맞는군.”

이번 차례는 안경을 쓰고 있는 녀석이었다. 비교적 조용했던 두 녀석 중 박서준을 제외한 나머지 한 명이었다.

“각성 능력은 일발필중(一發必中). 내가 노린 것은 반드시 명중시킨다. 쏘든, 던지든, 굴리든 말이야. 막을 수는 있어도 피할 수는 없다. 그게 나의 능력이다.”

일발필중. 필중의 능력.

필중의 능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반드시 상대를 맞춘다.’는 조건이 축복, 혹은 저주로써 발현되는 형태로써, 물리적 법칙을 벗어난 마법, 혹은 신성의 영역이기에 ‘막는 것’조차 불가능한 권능에 가까운 능력.

그리고 표적의 움직임이라는 한정된 영역 내에서 가까운 미래를 본능적으로 읽어내는 미래시(未來視)의 능력.

이것도 뛰어난 능력인 것은 사실이지만, 전자에 비하자면 그냥 사기 수준으로 잘 쏠 뿐이지 실력 차에 따라 피하는 것도 가능했다.

막을 수는 있다고 했으니 아마도 후자이리라.

하긴,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이 권능 수준의 능력을 가졌을 리도 없었다.

“자, 그럼 다음은―”

차례는 저지차림의 소녀, 이소연에게 넘어갔다.

“이소연?”

“아, 예?”

이소연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는데, 미카엘라가 그녀를 부르고 나서야 자기 차례임을 깨달은 듯했다.

“아… 벌써 제 차례인 건가요. 전 이소연이에요!! 취미는 게임이고, 최근 하고 있는 게임은 오버X치 입니다!! 사실 여기 오기 전에도 말이죠―”

“그 쪽 취미 같은 건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주제에 맞는 소개를 해줬으면 하는데.”

이세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경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일침이었다.

“아, 주제에 맞는 소개라면, 어떤 걸…?”

“앞에 사람들이 했던 양식을 그대로 따르면 되지 않나.”

그러자 이소연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 그… 죄송한데, 저 집중을 안 하고 들어서 다른 분들이 어떻게 하셨는지 잘 모르겠는데요오…….”

찌릿.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이소연에게 집중됐다.

어이가 없다거나 짜증이 섞인 눈빛. 그들의 시선의 공통점은 모두 소녀에 대한 질책이 담겨있다는 점이었다.

“윽, 표정들이 왜 다… 저 그래도 여러분들의 능력에 대한 부분은 다 알고… 아니, 다 들었어요!!”

이소연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햇다.

“일단 거기 있는 오빠는 최대 12m 거리의 블링크!! 그리고 안경 오빠는 일발필중! 재수 없는 오빠는 발화 능력!! 금발 언니는 에어리얼 쉴드!!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어, 어라라?”

“재, 재수 없는 오빠…?”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아직 그는 소개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것보다, 자기 능력을 소개하란 말이다!!”

전민호는 살짝 충격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고, 이세형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소연에게 말했다. 이마에 핏줄이라도 서있을 것 같은 목소리였다.

“아, 아하!! 그랬군요. 제 능력은 에어리어 에널리시스(Area Analysis)입니다. 제 주변의 움직임이나 소리를 포착해낼 수 있어요!! 옵저버로써 특화된 능력이라 할 수 있죠.”

“흐음, 그래서 딴 짓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내용은 들을 수 있었던 건가.”

미카엘라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맞아요! 그것도 능력 덕분이죠!! 하, 하하. 대단하죠??”

모두들 그녀의 말에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 박서준만 빼고 말이다. 그는 턱을 짚은 채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처럼 중요한 얘기를 할 때는 좀 더 집중하도록 해.”

미카엘라의 가시 돋힌 충고와 함께 이소연의 소개가 끝이 났다.

그리고 차례는 자연스럽게, 마지막 남은 나에게로 왔다.

“…이제 내 차례인가.”

주위를 둘러보자 유난히 주목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서준과 이세형은 유선의 설명에 납득을 한 듯, 그 이후 별다른 적대감은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긍정적인 시선도 아니었다.

그리고 전민호는 살짝 비웃음이 어린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태동안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던 이소연마저도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쓸데없는 곳에 관심이 많구만.

“왠지 다 알고 있을 것 같지만, 난 조원호. 에테르양은… 일단 5000Et 정도. 내 각성 능력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일단 내 능력은 강화 극대화(Inchant Maximize)야. 버프계열 기술들의 효율을 증가시켜준다고 하더라고.”

사실 아직 각성도 못한 컨셉으로 갈까 했었지만, 그랬다가는 불만들이 터져 나올 것이 뻔했고, 게다가 MT에서 미카엘라에게 목격당한 장면도 있었기에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그리고 이 능력은 누가 봐도 서포터의 능력이다.

즉, 적당히 후방으로 빠질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뭐, 실제로 내 능력 중 하나였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고 말이다.

알려진 나의 전투력은 평균 이하.

거기에 능력까지 서포터에 특화된 나를 전방에 세울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나는 뒤에서 눈에 띄지 않게 가끔씩 버프만 걸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포터로밖에 쓸 수 없는 능력이라는 거 아냐?”

“그보다는, 서포터에 특화된 능력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전민호가 비아냥거리는 말에 미카엘라가 맞받아쳤다.

전민호가 불만이 있는 듯한 표정으로 잠시 그녀를 바라봤지만, 마땅히 반박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주위 눈치를 살피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자, 그럼 서로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네. 능력에 대한 것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고. 다행히 포지션도 별로 겹치지 않고 말이야.”

각자의 소개가 끝나고, 미카엘라가 적절한 타이밍에 마무리 멘트를 던졌다.

“그럼 오늘은 일단 해산하고, 각자 첫 실습에 대한 준비를 갖추도록 하자.”

미카엘라가 해산이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단숨에 분위기가 풀어지며 각자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특히 이소연은 끝나는 순간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지간히 바쁜가보다.

“그리고 미스터 호, 오늘은 훈련장에 들어갈 때까지 내가 붙어 다니…….”

미카엘라는 나에게 말을 하다가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

녀석도 이제 일반적인 부끄러움이라는 게 생긴 건가!!!

“…지는 않겠지만, 훈련에 꼭 참가하도록 해.”

“참가할 거라고 생각해?”

녀석에게 부끄러움이란 게 생긴 이상, 밤중에 남자 기숙사에 찾아오는 일은 없으리라. 그 판단 하나를 믿고 그녀에게 개겨보았다.

“이건 제안이 아니야.”

미카엘라의 주먹이 황금빛 에테르에 감싸이기 시작했다.

‘제안이 아니라 협박이라는 거냐.’

왠지 데자뷰가 느껴지는 광경에, 예전에 금이 갔던 두개골이 욱신거렸다.

결국 나는 그녀의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자극해봤자 나에게 좋은 일은 없을 것이기에…

전소연은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강의실을 나섰고, 다른 녀석들도 짐을 싸는 대로 자리를 떴다.

강의실에 남은 건 천천히 짐을 싸고 있던 나와, 왠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카엘라, 그리고 아까부터 뭔가를 생각하던 박서준이었다.

“조원호,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할 때, 박서준이 말을 걸었다.

“…뭔데?”

원래는 나를 못마땅하게 보던 녀석 중 하나였기에 살짝 긴장했지만, 다행히 그런 부류의 말은 아니었다.

“내가 자기소개를 했을 때, 내 블링크 거리가 몇이라고 말했지?”

“10m정도라고 말했는데.”

블링크는 꽤나 희귀한 능력이었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확실한 거지?”

“난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확신을 담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나도 그렇게 말한 걸로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아니, 별 건 아니야. 괜히 붙잡아서 미안하군.”

박서준이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문득 호기심이 생겼지만, 별 것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강의실을 나섰다. 기다리던 미카엘라가 따라붙었다.

강의실 문을 지날 때쯤, 박서준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그럼, 이소연이 12m라고 말했던 건 단순한 우연인건가…….”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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