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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7화 (17/135)

17화

미카엘라는 기분이 좋지 않아보였다.

“기준이 어떻건 간에, 어련히 알아서 학과장님이 뽑으셨겠지. 넌 지금 그걸 의심하는거야?”

지금 내 편을 들어주는 건가?

조금 곤란한 기분이기는 했지만, 은근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다른 녀석이었다면 의심을 안했겠지, 하지만 조원호잖아!”

녀석은 미카엘라의 기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듯 반박했다. 이번에는 감출 생각도 없는지 아예 내 이름을 언급하고 나섰다.

“조원호가 어때서?”

“엄청나게 많은 에테르를 갖고 있으면서도 약해빠졌잖아! 그러면서 훈련에는 참가하지도 않고, 노력도 안하고!!”

녀석은 나를 한 번 흘겨본 다음 외쳤다.

녀석의 말에 잠깐 동안의 침묵이 맴돌았다.

약해빠졌다니, 너무하네. 그래도 평균은 하고 있는데.

“그래, 이 녀석은 가진 힘에 비해 능력은 허접해. 그러면서 훈련에도 참가하지 않지.”

미카엘라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원호가 노력하지 않는 건 아냐. 이거 하나만은 장담할게. 원호가 너보다는 이 팀에 어울리는 녀석일걸??”

“뭐, 뭐라고??”

녀석이 발끈하며 일어날 때였다.

쾅!!

망치로 뭔가를 내리친 듯한 소리가 앞쪽에서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유선이 교탁에 주먹을 내리찍은 모습 그대로 멈춰있었다.

주먹과 맞닿아있는 부분이 마치 둔기에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찌그러지고 깨져있었다.

“너희들, 지금 장난 하냐?”

유선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의 무게감에, 녀석은 일어서려하던 자세 그대로 굳어 다시 앉지도 못한 채로 서있었다.

사람이 화났을 때 나타나는 모습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불처럼 뜨거워지거나,

혹은 얼음처럼 차가워지거나.

유선은 지금 나조차도 섬짓할 정도의 한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살기만 없었을 뿐이지 사람 하나 정도는 잡고도 남을 기세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서있던 류환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지금 내가 앞에서 말하고 있잖아. 근데 왜 떠들어? 여기가 니네 집 안방이야?”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흥분했나봅니다.”

미카엘라는 약간 긴장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너는.”

“…예?”

그리고 녀석은 아직도 엉거주춤한 상태로 그 자리에 서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살기만 안 실렸을 뿐이지 그녀가 뿜어낸 한기는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미카엘라의 모습이 비정상적인 거였다.

“너는 사과 안 하냐고.”

“아, 아아, 죄, 죄송합니다!!”

녀석은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 사과를 한 다음, 허겁지겁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왠지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후…….”

잠시 동안의 소란을 강제로 진압하고 나서, 유선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 니들 상대로 화내봤자 뭐하겠냐. 의미 없고 부질없다.”

“어른스럽지도 않지요.”

류환이 한마디 덧붙이자, 유선은 죽일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류환은 애써 그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일단 하던 일부터 끝내자고. 우선 질문에 대한 답변부터.”

유선이 질문했던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리고 누구를 생각하며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대충 알겠다. 하지만, 조금 싸가지가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냐? 내가 어련히 알아서 뽑았겠지.”

“죄송합니다…….”

사실 하급자에게 저런 내용의 질문을 받고 기분 나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신의 기준에 의심을 품고, 자신의 결정에 토를 다는 거였으니까.

더군다나 저 양반 성격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한편으로는 상급자의 면전에서, 그것도 학생이 교수한테 저런 질문을 던질 정도로 나의 행실이 개판이었다는 뜻이기도 했기에 조금 쓴웃음이 나왔다.

“질문에 답을 하자면, 뽑은 기준에는 현재의 능력뿐 아니라,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잠재력도 포함되어있다.”

유선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팀은 즉시 실전에 투입되는 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교육의 연장선에 해당되는 실습 팀이다. 답변이 됐냐?”

“…예, 교수님.”

질문했던 녀석은 아직 불만이 남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더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별다른 반응 없이 유선의 말에 수긍했다.

만약 여기서 이야기를 더 끌고 나간다면 유선에게 개기는 모양새가 될 텐데, 그렇게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던 것이다.

다른 두 명은 유선의 말에 납득을 했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지각했던 소녀는 관심이 없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그 후, 유선은 중요한 일이 있다며 류환에게 나머지를 부탁하고(떠넘기고) 밖으로 나갔다.(도망쳤다.)

결국 홀로 남은 류환이 설명회의 마무리를 맡게 되었다. 그는 간단한 질의응답시간을 가진 후, 앞으로의 스케줄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여러분들은 어디까지나 초보자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실전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현재, 여러분들이 상대할 수 있을만한 몬스터를 포획하기 위해 3학년 선배들이 요새도시에 파견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류환은 화이트보드에 적힌 내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이 몬스터를 포획, 확보하고 연락을 보내오면, 연락을 받은 우리들을 나간다. 이런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여기까지 질문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포획 여부에 따라서 오랫동안 실습에 나가지 못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안경을 쓰고 있는 녀석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조용히 앉아있던 두 녀석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빠른 준비를 위해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고, 실제로 이미 포획이 완료되어 이틀 뒤에 실습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니, 그런 최선은 다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진심으로.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기대에 가득 찬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마치 이틀 뒤에 소풍날이 잡혔다는 말을 들은 어린이들 같았다.

후우… 젊은이들이여, 자신의 땀과 열정을 좀 더 소중히 여길 지어니.

저지 차림의 소녀만이 나의 생각에 동조하는 듯 짧은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아, 잠시만.”

갑작스런 진동음에 류환은 핸드폰을 확인하고서는 통화를 시작했다.

“예, 환입니다.”

“벌써요? 아니, 그걸 다요?”

“지금요? 저 근데 아직 여기 일이―”

“아니, 그래도…….”

“아, 예, 하… 예. 알겠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통화를 마친 남자는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표정에는 방금 전까지 없었던 피곤함이 떠올라있었다.

“…저는 갑자기 심부… 아니, 급한 일이 생겨서 나가봐야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대로 해산하셔도 좋고, 남아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셔도 좋습니다. 이상입니다.”

류환은 말을 마치고서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을 나섰다.

그는 문이 닫히자마자 큰 한숨을 내쉬었는데, 복도에서 난 소리가 강의실 안에서도 들릴 정도로 큰, 거의 한탄에 가까운 한숨이었다.

분명 유선이 부른 거겠지.

류환이 아니었다면 내가 불려나갔을 지도 모른다. 오늘도 힘든 하루를 보낼 동업자 양반을 위해 잠깐 동안의 묵념을.

“그럼 저는 가볼게요! 다들 이틀 뒤에 봐요오.”

저지 차림의 소녀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깐만.”

그리고 미카엘라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뭐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요.”

“그럼 잠시 시간 좀 내줄래?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저 방에 가스밸브를 안 잠그고 나온 것 같아요.”

참고로 우리 기숙사에는 취사시설이 없었다. 당연히 가스밸브도 없다.

“꼭 필요한 일이라서 그래.”

미카엘라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윽…….”

단발머리 소녀는 결국 포기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미카엘라는 다른 녀석들도 불러 주변에 모여 앉게 했고, 팀원들은 우리가 앉아있던 자리 주변에 대충 육각형 모양으로 둘러앉게 되었다. 한 녀석이 조금 불만이 있어보이기는 했지만.

“자, 이렇게 모인 이상, 우리들은 이제 좋든 싫든 앞으로 팀이 된 거야.”

“팀인가요…….”

미카엘라의 말에, 다들 서로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는 커녕 이름조차 모르고 있어. 이건 조금, 아니 큰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아?”

“나는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만.”

안경 쓴 녀석이 딴죽을 걸었으나, 미카엘라가 쳐다보자 이내 조용해졌다.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각자 자기소개 시간을 갖는 게 좋을 것 같아. 팀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수인데, 그러려면 최소한 각자의 능력 정도는 알아야하지 않겠어?”

이에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는지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그녀의 말은 옳았다.

팀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각자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포지션에 배치되어야하고, 상황에 맞춰 서로가 서로의 보조를 맞춰줄 수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팀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마치 팀이 아니라 개개인들이 난전을 펼치고 있는 꼴이 나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서로를 방해하는 모양이 나올 지도 모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럴 경우에는 작은 실수만으로도 팀이 전멸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서로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고대 그리스 군대의 팔랑크스 마냥 신뢰와 믿음으로 굳건히 단결될 필요는 없다만, 적어도 저 녀석이 지금 저 공격을 받아낼 수 있는지, 받아낼 수 없다면 옆에 있는 녀석이 구해줄 수 있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어야한다.

애초에 지금처럼 서로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면 포지션조차도 제대로 짤 수가 없다.

“그럼,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자.”

하지만 자기소개는 하고 싶지 않았다.

팀원들끼리 서로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도 자기소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왜 굳이 자기소개라는 낯간지러운 수단을 써야 하는가? 나는 중고딩 시절 담임선생이 강제로 시키는 자기소개 시간도 너무 싫었던 사람이다.

다른 녀석들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주저하고 있었다.

“그럼 나부터 시작하도록 할게.”

하지만 미카엘라의 행동력은 그 이상이었다. 아니, 그냥 눈치가 없는 걸지도.

“나는 미카엘라 레지스터. 에테르는 현재 5800Et 정도야.”

미카엘라가 당당하게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각성 능력은 에어리얼 쉴드(Aerial Shield). 공중에 에테르로 방어막을 만들어내는 능력이야. 탱커 역할에 특화된 능력이지만, 다른 팀원을 보호하는 서포팅에도 탁월한 능력이지.”

그녀는 담백한 태도로 간단하게 말했지만, 에테르 수치도 능력도 상당히 뛰어났다. 역시 좀 재수 없어보였다.

미카엘라가 스타트를 끊고 자연스럽게 옆으로 순서를 돌리자, 결국 다 같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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