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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6화 (16/135)

16화

실습 동아리라니

“217호… 여기인가.”

원호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펴보면서 혹시나 환각 마법이 걸려있지는 않은가 확인했다. 유선에게 면접실의 실체에 대한 사실을 듣고 난 이후 생긴 일종의 습관이었다.

오늘은 실습동아리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미카엘라가 말했듯이 나를 제외한 멤버들은 이미 모두 정해져있던 상태였고, 덕분에 나는 가입을 신청한 다음날부터 곧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 뭐야. 우리 과 엘리트 아니야??”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먼저 와서 앉아있던 녀석 중 하나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아니, 인사라기 보단 약간 비꼬는 느낌의 어조였다.

깐족거리는 녀석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후, 강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다른 녀석들은 굳이 나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모두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봤지만,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내가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뭐, 사실 동기들 얼굴 외울 정도로 내가 주변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다른 녀석들은 모두 나를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어떡하겠는가, 옛말에 콩 뿌린데 콩 나고 팥 뿌린데 팥 난다고 하였다.

나는 다른 녀석들이 부러워할만한 에테르를 가지고 있으면서 실력은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진지하게 헌터를 목표로 하고 있는 녀석들은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콩을 뿌려서 지금 콩이 나오고 있는 것인데 누굴 탓하겠는가.

다만, 이곳에 모여 있는 녀석들은 모두 좋건 싫건 한동안, 혹은 4년 동안 함께하게 될 전우들이었다.

그 사실이 꽤나 끔찍하게 와 닿았다.

‘차라리 혼자 활동하게 해줘…….’

여태동안 이런 시선들은 무시하거나 피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젠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실제로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몇 번이나 딴 길로 새보려고 했으나, 그 때마다 기아스의 경고가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실습동아리에 성실하게 참여해라’라는 지시를 들어버린 이상, 나는 이 동아리 활동에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안 도망가고 잘 왔네.”

이곳에서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얼굴이자, 보고 싶지 않지만 앞으로 더 자주 보게 될 사람이었다. 바로 미카엘라였다.

“오늘부터는 좀 열심히 살아볼까~ 해서 말이야.”

나는 그녀에게 대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옆에 앉았다.

어찌됐거나 나는 앞으로 이 동아리 활동에 무조건 임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망가져있는 나의 이미지와 팀원들과의 인간관계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미카엘라를 제외한 다른 녀석들은 나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했다.

아무리 나라지만 섣불리 다가가면 마음에 기스 한 두개 정도는 날 것 같았기에, 일단 나에 대한 적대심도 없고, 익숙하기도 한 미카엘라와 먼저 원만한 관계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 잠깐. 뭘 자연스럽게 옆에 앉고 난리야?”

미카엘라가 당황하며 말했다.

“내가 어디에 앉든, 누구 옆에 앉든 그건 내 자유 아니냐?”

“아니, 이,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거 아니야!”

“오해?”

다른 녀석이면 모를까 이 녀석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까 어이가 없었다.

“난리 났네. 어제까지만 해도 갑자기 내 옆에 앉아서 수업 듣던 녀석이 누군데.”

그리고 어제도 한밤중에 찾아와 케이크 먹고 간 녀석이 누군데.

“하아? 그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잖아!”

“나도 지금 그런 의미가 아닌데.”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잖아!!”

“어제 네가 한 것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오해할 수 있었잖아.”

“아니― 핫.”

손가락으로 이쪽을 가리키면서 기세 좋게 쏴붙이려던 그녀는,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는지 묘한 감탄사를 내뱉고서 말을 멈췄다.

잠시 후, 미카엘라의 얼굴에 붉은빛이 서서히 올라오더니,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책상으로 숙였다.

“…….”

꼴을 보아하니 타인의 시선 같은 건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서 그딴 만행들을 저질러왔었나 보군.

하긴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녀석이었다면 그 시간대에 남자 기숙사에 찾아오는 일은 절대로 없었겠지.

“으아아…….”

미카엘라는 머리를 박은 채 비명에 가까운 한탄소리를 내뱉었다.

“저기,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난 정말 그런 의미로 네 옆에 앉았던 게 아니었…어.”

한참 동안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던 미카엘라가 살짝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그렇게 말했다.

얼굴이 새빨간 게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아 보였다.

“알아”

“그, 어제도, 그리고 그 전에도…….”

“알아, 안다고.”

“우으…….”

그리고 미카엘라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미카엘라는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만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다른 말 상대를 찾아보려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다시 한 번 나를 못마땅히 여기는 시선들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불만이라는 듯한 시선이었다.

‘허허, 꽤나 장기전이 될 법하구만.’

내가 콩을 심기는 많이 심었나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냥 한가로이 시간을 때우는 거였고, 다른 3명도 서로 딱히 친한 건 아닌지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며 각자 알아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이기로 했던 약속 시간에서 30분이 흘렀다.

‘이 양반은 또 왜 안와.’

오늘 모임은 단순히 얼굴이나 익히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었다.

유선이 직접 참가해서 앞으로의 활동 내용과 계획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일종의 설명회였다.

하지만 정작 유선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학생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여섯 명이 모여야 하는데 이 안에 있는 학생은 5명뿐이었다.

“오, 벌써 다 모여 있었냐.”

양반은 못되는지, 그 때 유선이 앞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벌써는 무슨…….’

아마 이 안의 모두가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 미카엘라만 빼고.

“아니, 다 모인 건 아니구만. 하여간, 요즘 놈들은 시간을 제대로 지키는 법이 없어요.”

‘딱히 그 쪽이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린 법 아니겠는가.

인간이여, 자신을 돌이켜볼지니.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그 때 한 소녀가 뒷문으로 들어오며 큰소리로 인사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명랑함이 느껴지는 밝은 목소리였다.

그 소녀는 꽤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끝부분에 살짝 웨이브가 들어간 연갈색 단발머리가 잘 어울려 섬세하면서도 활기찬 인상을 건네고 있었다.

어디 고급 저택에서 사는 아가씨라고 해도 믿을만한 외모였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복장은 그 외모와 정 반대였다.

그녀는 손등까지 내려오는 큼직한 저지를 입고 있었고, 적당히 주워 입은 게 분명한 청바지는 마치 한 몸인것 마냥 자연스러웠다. 편의성의 끝을 추구하는 듯한 복장이었다.

“하, 넌 진짜…….”

“이소연입니다, 교수님.”

“그래, 누가 뭐래냐? 바빠 죽을 것 같은 나보다 늦게 온 이유나 말해.”

전혀 바쁠 일이 없어 보이는 유선이 말했다.

왠지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약간의 친밀함이 느껴졌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

“하하, 그게, 잠깐 PC방…이 아니라, 마트에 살 게 있어서 좀 나갔다 왔는데요,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1시 50분이더라고요.”

참고로 지금 시간은 2시 32분, 약속 시간은 2시였다.

“그래서?”

“그래서 저도 돌아오려고 했는데, 아니 글쎄 이놈의 버스가 주황불마다 계속 멈춰서잖아요!!”

그녀는 진심으로 분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통수칙을 준수하는 모범기사님들이 들으면 땅을 칠 소리였다.

“그래서 늦었습니다.”

이소연은 순진함과 장난 끼가 반쯤 섞인 듯한 얼굴로 당당하게 말했다.

‘녀석, 끝장났군.’

오래본 건 아니지만, 내가 본 유선은 저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듣고 그냥 넘어갈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이소연의 변명은 정상참작은커녕 집행유예도 받기 힘든,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았을 법한 변명이었다.

“하, 뭐 그래. 일단 자리에 앉아라. 다음부터는 늦지 말고. 경고다.”

하지만 유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냥 넘어갔다.

“감사합니다아”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집행유예를 따낸 소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 들어와, 강의실 중간 쯤 자리에 앉았다.

‘…뭐지?’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 이미 다 들었겠지만, 이 실습 동아리는 싹수가 괜찮은 녀석들을 모아놓고 눈높이 교육을 시켜서 빠르게 성장시킨다, 는 목적을 가진 동아리다.”

유선이 교탁에 가볍게 몸을 기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새 나타난 양복차림의 남자가 화이트보드에 유선의 말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적기 시작했다. MT에서 만났던 감시원, 류환이었다.

‘역시, 유선 쪽 사람이었구만…….’

그도 나처럼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겠지.

동질감과 함께 측은함이 느껴졌다.

“적절한 실력을 갖추고 실전에 투입되기 시작하는 건 평균적으로 2학년 중반부터다. 뭐, 평균이라고 해봤자 학과가 운영된 지 이제 겨우 3년째지만 말이야.”

유선은 한 번 혀를 차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뛰어난 놈들은 있기 마련이지. 평균을 훨씬 웃도는 녀석들이 있단 말이야. 예를 들어 저기 있는 미카엘라 정도라면 지금도 옐로급 토벌에서 탱커를 맡을 수 있다.”

느닷없는 지목에도 미카엘라는 그 말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아직도 홍조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어쩌면 속으로는 부끄러워하는 걸지도.

“여기 모인 너희들은 모두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평균을 웃도는 뛰어난 녀석들이다. 너희들은 앞으로 기존 수업과 함께 별도의 교육을 함께 받을 거다. 때로는 단순한 선행학습으로 끝날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실습과 실전으로 구성될 거다.”

“교수님, 그 실습은 여기 있는 사람들과 팀으로 활동하는 겁니까?”

도중에 한 녀석이 질문했다. 나한테 깐족거렸었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방금 거는 질문 아니냐? 해.”

녀석은 잠시 뜸을 들인다음, 내 쪽을 슬쩍 쳐다보고서 입을 열었다.

“이 팀을 뽑은 기준을 알고 싶습니다.”

잠시 동안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질문한 녀석은 나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다분히 그 의도가 엿보이고 있었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뽑았기에 저 녀석이 이곳에 있는가.

녀석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녀석은 이쪽의 눈치를 살짝살짝 살피면서도 묘하게 당당한 모습이었다.

다른 두 명 역시 굳이 말은 없었지만, 그 질문에 대해서는 동조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

질문을 받은 유선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킥킥킥.]

그녀는 웃음을 참고서 전음으로 웃고 있었다!!

표정이 진지했던 것은 그저 웃음을 참느라 그랬던 것뿐이었다.

[전음으로 웃는 건 또 뭡니까?]

[아니, 웃기잖아. 애들이 너 많이 미워하나봐?]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큭큭,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신용이 없냐.]

[이럴 시간 있으면 이 분위기나 어떻게 처리해주세요.]

[알았다, 그래.]

그 전음을 마지막으로, 유선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진지한 목소리로 한 마디 하려던 순간이었다.

“기준이라면, 강한 사람들로 알아서 뽑지 않았겠어?”

옆에 앉아있던 미카엘라가 언짢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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