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3화 (13/135)

13화

“저기, 전 아직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1학년인데요?”

“그래서 뭐.”

“아니, 그런 건 고학년 선배님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네 아름다운 전통, 장유유서에 맞는 이치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 제안을 거부하기 위해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변명이자 명분이었다.

“정말 번거로운 녀석이네.”

유선은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저기, 요 앞에 분명 ‘건물 내 지정된 장소 외 흡연금지’라는 경고문이…….”

“뭐 이 자식아. 여기가 바로 그 지정된 장소다.”

담배 냄새를 맡기 싫었던 나의 작은 반항을 가볍게 꺾어버린 후,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들이마셨다.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서, 2학년과 3학년에는 이미 실습동아리가 있고, 둘 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그 중 몇 명은 1학년 때부터 활동해온 녀석들이지. 양보고 나발이고 원래 1학년들도 하는 거야.”

유선은 귀찮음이 듬뿍 담긴 특유의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도 말했듯 헌터의 숫자는 언제나 모자라다. 우린 조금이라도 많은 헌터를, 조금이라도 빠르게 육성시켜야 해. 비록 1학년이더라도 다른 녀석들보다 뛰어난 녀석이 있으면 최대한 집중적으로 키운다. 이게 실습 동아리의 목적이다.”

“저, 그럼 대놓고 형평성에 문제가 있지 않나요? 그래도 교육 시설인데…….”

“수준 딸리는 녀석들 데리고 다녀봤자 역효과만 생겨. 교육의 형평성 같은 건 필요도 없고 챙겨줄 여유도 없어.”

현직 교수라는 작자가 담배를 비벼 끄면서 별 거 아니라는 듯 현대 교육철학을 부정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좋아요. 일단 1학년이 실습 동아리에 참여하는 이유는 알겠습니다.”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근데 왜 저죠?”

소수의 엘리트를 집중적으로 키우는 것도 좋다. 이제 겨우 에스퍼가 된 1학년 중에서도 싹이 보이는 놈들은 따로 키우겠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러나 대체 왜, 어째서 내가 거기에 끼어든단 말인가?

크리스가 몰래 꼬바르기라도 하지 않은 이상 내가 그곳에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말씀대로라면 엘리트들을 모아 따로 정예팀을 꾸리시겠다는 건데, 최근 제 성적만 보셔도 아겠지만 저는 엘리트와 거리가 먼 사람인데요.”

나의 성적은 평균 밑을 맴돌았다. 나보다 성적이 훌륭한 녀석들이야 차고 넘쳤다.

별명이야 엘리트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꼼의 표현이었다.

“만약 제가 실습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면, 저보다 더 뛰어난 동기들의 자리를 뺏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저에 대한 말이 많은데, 그런 말까지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 지금 데이터 상의 나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세금 도둑놈이었다.

가지고 있는 에테르만 많은 쓸모없는 잉여인간.

그게 바로 나였다.

“너, 측정된 에테르가 미카엘라 바로 다음이지 않냐? 미카엘라 오기 전까지는 1등이었고.”

유선이 장난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말을 제가 직접 하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잠시 뜸을 들인 후, 분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많은 에테르를 갖고도 사용할 줄 모르는 한심한 놈이 접니다. 그런 제가 제대로 된 역할을 맡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남의 발목이나 잡을 게 뻔합니다!!”

재능만 있을 뿐 자신감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한심한 인간의 모습이 여기 있었다.

겨우 남아있던 일말의 기대도 훌훌 털어버릴 듯한 훌륭한 모습이었다.

자기 자식 놈일지라도 뺨 한 대 후려치고 싶을 만큼 한심한 모습!!

하지만 반대 편에 앉아있는 유선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한 쪽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잠깐 딴소리 좀 하자. 최근에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말이야.”

그녀는 이쪽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면접날에 있었던 일인데 말이야. 내가 상당히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거기서 내가 한 일은 사람을 구분하는 거였어. 누가 들어오면, 저놈은 쓸 만하다. 혹은 병신이다. 이렇게 말이야.”

“아, 예…….”

느닷없이 시작된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치게 되었다.

“근데 말이야. 한 놈의 에테르가 하나도 안 보이지 뭐냐?”

“…에스퍼가 아니었나보죠?”

나의 대답에 그녀의 미소가 살짝 짙어진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었어. 거기에 올 수 있는 건 에스퍼 뿐이거든. 왜냐면, 거긴 S3동 5층에 있는 107호였으니까. 에테르를 보유한 에스퍼가 아니라면 절대 올 수 없는 곳이야.”

“…예?”

그럴 리가 있나.

다른 날은 몰라도, 그 날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학교 정문에 들어선 순간부터 S3동까지 안내판이 줄줄이 늘어서있었다.

한글을 모르지 않는 이상, 아니 화살표 방향을 알아볼 수만 있다면 찾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S3동에 도착하면, ‘107호는 5층에 있습니다.’라고 적힌 대문짝만한 현수막이 정면에 걸려있었다. 이 안내문은 엘리베이터 앞에 하나 더 붙어있었다.

물론 107호가 5층에 있다는 건 비상식적인 상황이다. 그래도 문맹이나 장님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런 거 치고는 찾아가기 너무 쉬웠던 것 같은데요.”

“그건 네가 에스퍼이기 때문이지.”

유선이 말했다.

“네가 그 날 봤던 모든 안내판은, 에테르 보유자만 볼 수 있게 되어있는 일종의 환각이야. 그리고 조은대에는 S3동이 없다. 면접실이 있던 건물은 원래 N7동이야.”

유선은 마치 수수께끼의 정답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말했다.

“에테르가 없다면 안내판도 볼 수가 없고, 어쩌다 찾아온다고 해도 거기가 S3동이라는 걸 알 수가 없지. 그리고 진짜 107호에는 기억제거를 위한 암시능력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즉, 그 날 면접실에 도착한 사람은 모두 에스퍼인 거야.”

“…….”

미친. 어쩐지 107호가 5층에 가있더라니.

‘잠깐, 그럼 지금 이 이야기…….’

“아까 얘기로 다시 돌아와서, 이 녀석이 에스퍼인 건 확실해. 근데 에테르가 조금도 보이지 않아? 이런 경우는 둘밖에 없어.”

유선은 손가락 두개를 피면서 말했다.

“우선 상대방의 에테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적을 때. 멀쩡히 살아있는 놈이 이러는 건 본적이 없지만, 이론상 에테르 양이 20Et 이하라면 가능하긴 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불길한 예감이, 아니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지금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바로 에테르를 감추는 거지. 근데 말이야. 내 입으로 하는 소리지만 나는 에스퍼 중에서도 꽤나 급이 높은 사람이에요. 그런 내 앞에서 에테르를 완벽히 감춰낸다? 그것도 초보자가? 그건 불가능해. 이건 자만도 아니고 허풍도 아니야.”

유선은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불은 아직 붙이지 않았다.

“후자가 불가능하다면 전자인 건가?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지. 검사를 해보니 그놈은 에테르가 부족하기는커녕 다른 놈들의 3배는 가지고 있었으니까.”

유선은 담배를 문 채로 씨익 웃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놈은 에테르 미달도 아니고 에테르를 사용할 능력이 부족한 초보자도 아니야. 내 앞에서 에테르를 완벽하게 감춰낼 수 있을 정도의 숙련자다. 그렇지? 조원호 학생.”

그녀는 말을 마치고서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고요하게 깔린 침묵 속에서 담배가 타들어가는 소리만 조심스럽게 울려 퍼졌다.

그녀의 숨과 함께 담배가 타들어가고, 이윽고 숨과 함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가 담배 한 개비를 거의 다 피우는 동안 침묵은 계속 되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당황스러웠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여태까지 만들어온 ‘한심한 천재’이미지도, 나름 해답이라고 생각했던 계획들도, 전부.

아니, 그냥 면접실에 들어갔던 그 순간부터 이미 모든 게 엉켜있었다.

“하아아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덕분에 조금은 진정하고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은 언제부터 하신 겁니까?”

“실마리를 잡은 건 면접실에서. 확신을 가진 건 1학년 테스트 결과를 보고 나서.”

솔직히 크리스가 말한 건 아닌가 의심해봤었지만, 그건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제가 에테르를 감췄다는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면접과 테스트 사이에 제 에테르가 성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우, 그 잠깐 동안에 20Et에서 5000Et까지? 그거 참 대단한 성장이네.”

유선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그 다음으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할까? 어떤 말을 하더라도 뻔한 변명밖에 되지 않았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차라리 뻔뻔하게 나갈까?

역시 정신계열 마법들도 익혀뒀어야 했어.

아, 나는 어쩌자고 아무 생각 없이 면접을 보러 나갔을까. 조금만 신경 썼어도 싸구려 환각 정도는 눈치 챘을 텐데.

자퇴해버릴까.

아냐, 이 상황에서 자퇴한다고 놔줄 리가 없잖아.

냉정하게 생각해도 모자랄 판에 별의별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마지막으로 ‘해외로 튄다’가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결정됬을 쯤이었다.

“알기 쉬운 놈일세. 그렇게나 놀랄 일이냐?”

“무, 뭐, 아니 하나도 안 놀랐거든요? 완전 냉정하거든요?”

“땀이라도 닦고서 말해라. 그게 냉정한 거면 평소에는 탈수 증상으로 입원이라도 하겠네.”

유선은 서랍을 열고 티슈를 꺼냈다.

“일단 뭐, 얘기나 더 들어봐라.”

이쪽으로 건넨 티슈를 받아들자, 그녀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헌터가 되기 싫다는 거야 뭐, 면접 때부터 네가 대놓고 말했던 거지. 난 그걸 꼬드겨서 결국 여기다가 붙여놨고 말이야.”

“…무시하기엔 떡밥이 너무 먹음직스러웠죠.”

그리고 그 떡밥은 생각보다 맛이 별로였다.

“처음에는 뭐, 일단 붙여놓으면 주변 놈들 영향 좀 받을 줄 알았지. 여기 있는 놈들은 다 헌터가 되고 싶어 안달난 놈들이니까. 근데 이놈은 혼신의 힘을 다해 ‘나는 병신이오~’하면서 연기를 하고 자빠졌네. 그럼 나도 계획을 좀 바꿔야 되지 않겠냐.”

유선의 말은 계속 됐다.

“처음에는 정부쪽에 보고해볼까 했었지. 요새는 거의 사라졌지만 헌터 징병이 불가능해진 건 아니니까. 하지만 너쯤 되면 징병될 바에는 차라리 해외로 도망이라도 치겠지. 안 그러냐?”

뜨끔. 왠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묘한 기분이었다.

“그런 강경책으로는 널 잡아두기는커녕 쫓아낼 뿐이야. 그럼 뭘로 널 붙잡을 수 있을까. 답은 나와 있었지. 헌터가 되기 싫은 네가 굳이 헌터학과에 남아있는 이유는, 여기가 조은대이기 때문이야. 틀리냐?”

“…뭐,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죠.”

틀린 말은 아닌 게 아니라 그냥 정곡이었다.

“헌터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이상으로 조은대가 필요하다. 그럼 간단하지, 대학에 다니는 4년 동안, 내가 시키는 일들만 처리해줘.”

“예??”

“아, 비상식적인 일을 시키는 건 아니야. 뭐야, 그 표정은? 내가 암살 같은 거라도 시킬 것 같냐?”

대놓고 구겨진 내 표정을 본 유선이 말했다.

“내가 너한테 시킬 것들은 어디까지나 학생들한테 시킬 법한 일들뿐이다. 이 실습동아리 참가도 그 중 하나지. 이 정도는 간단하게 할 수 있잖아?”

“아니, 이 상황에서 왜 그런 제안이 나오는 거죠?”

저번에도 그랬지만 이 사람은 언제나 설명이 부족했다.

“어차피 너 헌터하라고 하면 안 할 거잖아?”

“절대로 안하죠.”

“그렇다고 강제로 시키면 튈 거잖아?”

“그야, 당연히.”

“그럼 어차피 못 써먹을 거 4년 동안이라도 써먹겠다는 거 아니겠냐.”

“아…….”

그녀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