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나는 왜 쉴 수가 없어
“몬스터를 토벌하는 건 언제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동반합니다. 때문에 헌터들은 4~7명으로 구성된 팀을 꾸려서 활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또한 그게 훨씬 안전하기도합니다. 물론 혼자 활동하는 헌터들도 있지만, 한계는 뚜렷하며―”
강단에 선 남자가 PPT를 띄워놓고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적당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꽤나 매력적으로 들리기는 했지만, 동시에 그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졸게 만드는 마성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지금 헌터학과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아무리 이 학과의 녀석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피는 걸 한심하게 여기며, 그 시간에 차라리 훈련장에서 덤벨 한 번 더 드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놈들이라지만 그래도 이론 수업은 존재했다.
물론 헌터학과라고 해도 수업은 상당히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그 내용이 평범하지 않았을 뿐, 전체적인 모습 자체는 그냥 일반적인 대학교 수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론 수업은 언제나 졸린 법!
4할의 학생은 엎어져 자고 있었고, 3할의 학생은 어떻게든 버텨보려 하지만 한국과 꿈나라의 국경을 쉴 새 없이 넘나들고 있는 중이었다.
깨어있는 것은 3할 밖에 되지 않았고,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그 중에서도 3할, 즉 전체의 1할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그 4할의 학생에 포함되어 있었다. 헌터 이론을 배울 시간에 차라리 누워서 수면을 보충하는 것이 나의 미래 계획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미스터 호, 졸지 말랬지?”
하지만 저 1할 안에 들어가는 대표적 인물이자 내 계획을 깨트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녀석이 옆에 앉아서 나의 꿈나라행 출국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달리 있겠는가. 미카엘라였다.
항상 맨 앞에만 앉아 있다가 갑자기 오늘 내 옆에 앉은 미카엘라는 내가 졸거나 딴 짓을 못하도록 방해를 했다. 그것도 딱 잠에 들려고 하는 그 절묘한 타이밍에.
만약 내가 무시하고 다시 잠에 들려고 하면, 그녀는 폭력을 행사했다.
퍽.
“어억…….”
그래, 지금처럼.
주먹에 가볍게 얻어맞은 왼쪽 늑골에서 둔탁한 타격음이 작게 울렸고, 그와 동시에 고통이 솟구쳐 올라왔다.
이 년은 여기가 급소 중 하나라는 걸 알고 때리는 걸까.
“미친, 야. 너 진짜.”
“쉿.”
밀려오는 고통에 울컥해 한 마디 쏴붙이려 했으나, 내가 냈던 소리가 꽤 컸는지 교수와 주변의 학생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카엘라는 옆에서 시치미를 뚝 땐 체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의 부조리함에 몸이 떨려왔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참아야지.
“하하, 다들 MT를 다녀온 피로가 아직 남아있나 보군요.”
결국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교수가 말했다.
엠티가 끝난 지 4일이 지났다.
목요일 날 복귀한 24학번 학생들의 휴식을 위해 금요일의 모든 수업이 휴강되었고, 학생들에게는 금토일 3일 동안의 휴일이 주어졌다.
사실, 산 속에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헤매고 다닐 때에는 수업이 그리웠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애당초 학생의 본분이 무엇인가! 공부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산 속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바에는, 차라리 대학생답게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싶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물론 그런 생각들은 갓 전역한 수많은 복학생들이 증명해왔듯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것도 불과 수업 시작 후 10분 만에!!
주변의 다른 녀석들도 웬 일인지 졸지 않고 수업을 듣나 했더니, 모두 나처럼 10~20분 만에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눈을 감으면서 말이다.
“그러면 우리 오늘은 영상자료나 볼까요?”
영상자료라는 말에 졸고 있던 학생들이 고개를 일으켰다. 물론 엎어져 자고 있는 4할의 학생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폐관수련에 들어갔기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반응에 너털웃음을 작게 터트린 교수님은 컴퓨터 앞으로 걸어갔다.
수업 시간 중 나오는 동영상은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집에서 보면 그토록 재미없던 다큐멘터리가 학교에서 보면 왜 이렇게 재미있게 느껴지는지!
그리고 헌터학과에서 틀어주는 영상들은 대부분 학과명에 어울리는 영상들이었다.
즉, 헌터들의 몬스터 토벌 영상들이었다.
게다가 언론에서 나오는 수위가 조절되거나 편집된 영상들이 아니라, 헌터들의 부상이나 사망자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공개 영상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수위가 높은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줘도 되나 싶었지만, 정작 그 학생 놈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새삼 여기 모인 놈들이 정상적인 놈들은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자, 그럼 아까 말씀 드렸던 팀으로 구성된 헌터들의 토벌과 역할 분담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영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가 틀어준 영상은 웨어울프를 토벌하는 영상이었다.
2.5m에 달하는 몸집에 온몸을 감싸고 있는 터질 듯한 근육, 강철도 물어뜯기에 충분한 날카로운 송곳니.
거기에 엄청난 속도와 탄력적인 움직임으로 웨어울프는 옐로급 중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로 꼽힌다.
하지만 영상에서 웨어울프에 맞서고 있는 은발의 헌터는 그 왜소한 몸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밀리지 않는 수준급의 공방을 보여주고 있었다.
웨어울프의 갑작스런 돌진을 피해낸 은발머리는 능숙한 발놀림으로 오른쪽으로 크게 한 발 내딛으며 돌진을 피해냈다.
직후 은발머리는 무방비 상태인 웨어울프의 왼쪽 어깻죽지에 검을 내리쳤다.
꽤나 깊숙이 들어간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고, 이는 웨어울프를 분노하게 만들기 충분한 상처였다.
워우우우우!!!
분노에 찬 울음을 내뱉은 웨어울프가 곧바로 달려들었다.
직격이었다.
온몸의 탄력을 살려서 갑작스레 코앞에서 덮쳐오는 이 일격은 방금 전의 돌격과 달리 간단한 움직임만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웨어울프의 발톱이 달려드는 그 짧은 순간, 은발머리의 헌터가 손을 내밀자 웨어울프와 그의 사이에 하얀빛의 장막이 형성되었다.
웨어울프의 일격은 장막을 꿰뚫지 못한 채 허무하게 가로막혔다.
그 때, 화면 밖에서 웨어울프를 향한 얼음과 불의 화살들이 쏟아졌다.
얼음과 불로 이루어진 작은 화살들은 웨어울프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그리고 확실하게 웨어울프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웨어울프는 그 자잘한 공격들을 무시한 채 은발머리에게 달려들었다.
둘의 아슬아슬한 공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웨어울프가 강하게 들어오면 은발머리는 잽싸게 피한 후 반격을 집어넣었다. 빠르게 속공으로 몰아치면 잽싸게 펼쳐지는 하얀빛의 장막이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엄청난 배짱과 순발력이구만.’
큰 공격은 피하고 속공은 막는다.
말로는 간단하고 당연한 소리다. 하지만 그걸 바탕으로 실전에서 움직이는 것은 다르다.
실제로 실전에서 탱커 포지션을 맡은 인원은 대개 공격을 포기하고, 몬스터의 시선을 끄는 것과 수비에만 집중한다.
가장 위험하고, 또한 가장 신중해야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은발머리는 과감한 회피와 순발력으로 공격과 수비를 능수능란하게 행하고 있었다. 탱커 포지션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능력이었다.
둘의 흐름을 깨트린 것은 하나의 화염구였다.
웨어울프의 머리통만한 크기의 그 화염구는 웨어울프가 잠시 거리를 벌리고 물러난 때를 노리고 들어왔다.
화염구는 뒤쪽을 무시하고 있었던 웨어울프의 뒤통수에 직격으로 꽂혔고, 영상 너머로도 진동이 전해질 정도의 폭음이 울려퍼지면서 순식간에 화면이 연기와 먼지로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웨어울프는 쓰러지지 않았다.
점점 걷혀가는 연기 너머로 웨어울프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이고 있었다.
서서히 연기가 걷히고, 그 곳에는 온몸에 화상을 입은 웨어울프가 나타났다.
괴물은 분노에 가득 찬 시선으로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의 화염구가 날아왔던 방향이었다.
뒤돌아선 웨어울프가 적대감의 표시로 이빨을 드러낼 때였다.
[개새끼주제에, 지금 누구한테 등을 보여?]
어느새 다가온 은발머리가 텅 비어있는 그 등짝에 검을 박아 넣었다.
검은 웨어울프의 심장을 꿰뚫고서 반대편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꿰뚫은 검을 비틀자, 검에서 하얀빛의 에테르가 터져 나오면서 웨어울프의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다.
그 일격에 웨어울프는 재생해볼 틈도 없이 그대로 쓰러졌고, 은발머리의 헌터는 피에 절은 검을 털어냈다.
“오오…….”
어느새 대부분의 학생들이 잠에서 일어나 영상을 보고 있었다.
확실히 그 웨어울프 토벌 영상은 상당히 훌륭했다. 헌터들에게 별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감탄을 했을 정도로.
그 뒤로도 3~4개의 영상이 이어졌지만, 처음 것 만한 이펙트를 가진 영상은 없었다.
영상에 관심을 보이며 일어났던 학생들이 다시 졸기 시작할 정도로!
그리고 이 영상에 대한 레포트를 다음 수업까지 제출하라는 교수의 말과 함께 수업은 마무리 되었다.
* * *
“아악!! 느닷없이 레포트라니!”
“갑자기 동영상 틀어준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갑자기 생긴 레포트 과제에 충격에 휩싸인 교실 한 가운데에서, 나는 수업이 끝나기 전부터 미리 챙겨놨던 가방을 들고서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을 나섰다.
미카엘라는 수업이 끝난 후에야 가방을 싸기 시작하는 모범생이었다. 따라서 도망치려면 지금이 제격이었다.
MT때문에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미카엘라는 나를 훈련시키지 못해 안달이 난 녀석이었다.
오늘은 수업 시간에 굳이 내 옆에 앉기까지 했던 걸 보니 내가 훈련장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해서 날 쫓아다닐 듯한 기세였다.
그녀가 쫓아다니는 걸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훈련에 참가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다면 어쩌겠는가. 도망이라도 쳐야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마지막 수업, 즉 이 수업이 끝나는 순간 미카엘라를 따돌리기로 결심하고 계획을 세웠다.
“오, 꼬맹이. 마침 잘됐다. 잠깐 좀 보자.”
그러나 복도로 나가 방향을 꺾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고개를 돌리자, 잿빛머리에 꽤나 키가 큰 여자가 이쪽을 보고 이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에, 그러니까…….”
“유선이다. 면접 때 보지 않았냐?”
“아.”
뒤늦게 생갂났다.
면접 중에 자기가 귀찮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며 담배까지 피워댔던 그 면접관이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을 왜 바로 기억해내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이펙트를 보여준 사람이었다.
“이제 기억나네요. 그런데 저는 갑자기 무슨 일로?”
“어련히 일이 있으니까 보자는 거 아니겠냐. 닥치고 좀 따라오면 안 되겠냐?”
“죄송한데 제가 지금 급한 일이 좀 있…….”
말을 얼버무리고 빠져나가려던 와중에, 갑자기 느껴진 시선에 뒤를 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강의실을 나온 미카엘라가 네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지는 않군요. 안 될게 뭐 있겠습니까. 지금 가시죠.”
“좋아, 따라와.”
유선은 바로 뒤로 돌아 걷기 시작했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나는 확실하게 귀찮아질 상황보다는, 귀찮을 지도 모를 상황을 택했다.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뒤를 돌아볼 배짱은 없었기에 유선의 등만을 바라본 채 조용히 걸었다.
* * *
유선의 교수실은 생각보다 상당히 깔끔했다.
다만, 이 깔끔함은 잘 관리된 정리정돈에서 나오는 깔끔함이 아니라 채운게 없어 그냥 텅 비어있는 공간에서 나오는 깔끔함이었다.
업무용 책상과 사무실 의자, 그리고 손님 대접용 테이블과 간단한 의자 4개가 가구의 전부였다.
책장이 있기는 했지만… 책 한 권도 꽂혀있지 않은 채 방치되어있는 저것을 과연 책장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깔끔하다 못해 앙상하게 보이는 수준이었다.
업무용 책상 구석에는 ‘학과장 유선’이라 적힌 명패가 놓여있었고, 한 가운데에는 노트북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꽤나 두툼한 두게를 가진 것이 딱 봐도 게이밍 노트북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재떨이가 놓여있었다.
평소 이 공간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 지, 그리고 저 여자가 이곳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지 단번에 알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게 진정한 세금 도둑놈이 아닐까. 아니, 년이라고 해야 되나?’
내가 다른 교수실을 찾아갔던 적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모습이 이상적, 혹은 정상적인 모습과는 심각할 정도로 차이가 있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서있지 말고 아무데나 앉아. 무슨 벌이라도 서는 놈 마냥 가만히 서있냐?”
냉장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유선은 두 개의 음료수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하이X켄의 상징인 별이 그려진 500ml 캔.
눈앞에 놓인 음료수는 다름 아닌 캔 맥주였다.
“저기, 이건 무슨…?”
“맥주잖아. 아, 혹시 너 미성년자냐? 그래도 그냥 마셔.”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이곳의 평소 일과에 대한 방금 전 추측이 더욱 확실해짐과 더불어 이 사람의 평소 행실이 대충 어떤 느낌일지 파악 되는 순간이었다.
유선은 자리에 앉자마자 맥주 캔을 잡더니 능숙한 솜씨로 캔을 땄다.
맥주 캔을 따는데 능숙한 솜씨가 어디 따로 있겠냐만은, 한 손도 아니고 두 손가락만으로 가볍게 캔을 따낸다면 그건 능숙한 솜씨라고 불릴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그녀는 맥주 거품이 살짝 올라오는 캔을 들고 그대로 시원하게 들이켰다.
“크흐~~”
“저기, 그래서 제가 여기 온 이유가 뭐죠?”
이대로 있으면 해가 질 때쯤에나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아 먼저 말을 던졌다.
“아, 별건 아니고. 실습 동아리라는 게 있는데 말이야. 거기 가입해라.”
“…무슨 동아리요?”
“실습 동아리.”
실습이라. 중고딩 때도 해본 적이 있었지.
요리, 재봉, 컴퓨터 문서 작성 등 다양한 실습들이 있었다.
몇 가지를 제외한다면, 실습들은 모두 일반 수업보다 즐거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글로 배우던 무언가를 직접 체험해본다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허나, 여기서 말하는 실습은─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뭘 실습 한다는 거죠?”
“헌터학과에서 대체 뭘 실습할 것 같냐? 이야~ 그거 나도 궁금하네.”
“…아, 예. 그렇겠죠.”
역시나.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여기서 말하는 실습은 몬스터를 때려잡는 실습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