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그러는 당신은 누군데요?”
원호는 까칠한 목소리로 답했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지만, 그게 상대의 이름을 묻는 경우는 다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대에게 이름을 물을 때는 먼저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예의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이런 아공간 결계 안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에게 살갑게 자기소개를 할 정도로 원호는 멍청하지 않았다.
“헤에, 되게 까칠하네??”
크리스는 가볍게 쥐고 있던 대낫을 고쳐 잡으면서 말했다.
상대가 사람이었기에 다짜고짜 선제공격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저 남자가 적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범상치 않았다. 이 남자는 긴장을 놔도 좋을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저기 누워있는 미노타우르스의 시체 또한 그녀의 판단에 확신을 보탰다.
“저는 크리스. S급 6위의 독일 소속 헌터에요. 이제 그 쪽 이름을 들을 차례인 것 같은데요?”
“조원호. 헌터는 아니다.”
그의 대답에 크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갸웃거리는 이유도 알 지 못한 채, 원호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그 S급 헌터인 분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지?”
“아니, 별 건 아니고요, 제가 지금 일 하나를 맡고 있는 중이라.”
크리스는 턱을 짚은 채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는 친구 부탁으로 훈련 하나를 감독하고 있었는데, 아니 글쎄 누가 훈련장 안에서 결계를 펼친 것 아니겠어요? 게다가 학생 하나가 거기로 빨려 들어가 가지고, 에휴.”
원호는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일단 위치는 알아냈는데, 이게 또 아공간 결계라서. 한참 동안 머리 터지게 추적해서 찾아왔는데, 정작 그 학생은 지나치게 멀쩡하네요. 대체 뭔 일인지.”
“…그 학생 이름이 어떻게?”
“조원호라고 하는데요. 그러고 보니 그 쪽 이름이랑 같네요?”
“…잘못 들으신 것 같습니다. 제 이름은 조언오입니다.”
“흐으음??”
원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그럼 조언오씨는 조원호가 아니신 건가요?? 헌터학과 학생도 아니고?”
“헌터학과요? 하하, 그런 학과도 있습니까? 저도 한 번 다녀보고 싶군요!”
원호는 뒤늦게 에테르를 감춰보려다가, 그게 더 수상하게 보일 거라는 걸 깨닫고 그냥 이대로 냅두기로 했다.
아니, 사실 지금의 자신과 학교에서의 자신은 괴리감이 상당히 컸다. 오히려 그냥 에테르를 풀풀 뿜어내고 있는 것이 의심을 덜 사는 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크리스는 핸드폰으로 사진 한 장을 띄우더니, 자신과 사진을 번갈아가며 살펴봤다. 불길한 행동이자 망조였다.
“그렇지만, 제가 찾는 학생 조원호랑 조언오 씨가 굉장히 닮았는데요?”
크리스는 핸드폰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제 얼굴이 좀 흔한 얼굴이죠. 아는 사람 중에도 한 31명 정도는 있습니다.”
“와, 31명? 정말로요?”
원호는 크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녀는 이미 확신을 갖고 있었다. 지금 자신에게 묻는 것도 확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장단을 맞춰주는 것뿐이리라.
그냥 두어라, 갈 곳으로 흘러갈 지어니.
언젠가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원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맞습니다. 제가 조원호입니다. 조은대학교 헌터학과 학생 조원호입니다. 아공간 결계에 납치된 것도 조원호구요, 저기 소대가리 잡아놓은 것도 조원호입니다. 됐습니까?”
“그리고 여기 주변 숲들까지 초토화 시켜놓은 것도 조원호구요!!”
“아, 예. 그걸 빼놨네요. 거 참 뒤지게 감사합니다.”
원호는 그냥 포기했다.
핑계를 대거나 연기를 해서 때울 수 있는 수준은 이미 지나도 한참 지났다.
이곳은 아공간 결계였고, 여기 있던 것은 자신과 저 소대가리밖에 없었다. 그리고 레드급 몬스터인 소대가리는 누군가에 의해 죽어있었다. 대체 누가 죽였겠는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은 조금도 감출 생각이 없이 마음껏 에테르를 뿜어내고 있었고, 크리스는 그걸 생생하게 현재진행형으로 목격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녀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위협을 목적으로 보다 노골적으로 기운을 드러내기까지 했었다.
이래놓고서 ‘저는 평범한 헌터학과 학생입니다~’라고 하면, 대체 몇 명이나 믿어주겠는가?
‘안 되려면 뭘 해도 안 되는구나…….’
설마 이 아공간 결계 안쪽까지 학교 관계자가 찾아올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원호는 행운의 여신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로 바닥에 내리 꽂아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 원호 옆에서 크리스는 뭐가 좋은지 내내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야, 너 왜 웃어. 죽고 싶어?”
원호에게서는 포기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막가자는 것!
그럼에도 크리스는 싱글벙글 미소 짓고 있었다.
“아니, 그냥 웃기잖아요.”
“웃지마!!”
“푸하하하!!”
웃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패면 그건 정당방위인가?
평소였다면 미친놈이라는 한 마디로 일축했을 원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지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있었다.
“하하, 아하하, 후우… 근데요.”
“뭐.”
한참을 웃다가 슬슬 멎어가던 그녀는, 원호를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이젠 그냥 바닥에 앉아서 에테르나 가다듬고 있던 원호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답했다.
“힘은 숨기려고 하면서 헌터학과는 왜 다니는 거예요?”
“…안 알려줘.”
힘을 감추려고 하는 것 정도는 크리스에게 그리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헌터는 대중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직업이 편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무단으로 이탈하여 능력과 신분을 감춘 채로 도망다니는 도망자도 있었고, 은퇴 조건을 최대한 빨리 달성하고 은퇴해서 은거생활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자신이 에스퍼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힘을 감추고 다니는 민간인들도 있었다. 헌터라는 직업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은 생각만큼 적지 않다.
하지만 헌터학과에 다니면서 힘을 숨기는 사람이라니, 크리스가 웃은 건 그녀의 질문에 대한 원호의 반응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모순이 너무 웃겼던 탓도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터무니없이 강력한 실력자이지 않은가. 혼자서 미노타우르스를 상대할 수 있는 헌터는 A급 상위권의 헌터 중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상처 없이 잡아야한다는 조건이 달린다면 더더욱.
헌터교육기관이 생긴 지 오래 지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경우가 다시 있을 수 있을까.
“거 참 단호하시네. 알려주면 안돼요?”
“안 알려준다니까.”
딱히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원호는 더 말해주기가 싫었다.
‘대학교에 다니고 싶어서’라고 말하면, 저 여자는 또 한참 동안을 웃어제낄 것이 아닌가.
이건 저 여자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다시 한 번 그랬다간 정말 한 대 쥐어 팰지도 몰랐으니까.
“음… 그럼 이건 어때요!!”
크리스는 검지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헌터학과 다니는 이유 말해주고, 말 놓게 해주면 이번 일은 둘만의 비밀로 묻어드릴게요!”
뭐라고!
이젠 다 포기하고서 어디로 이민을 가야 잘 갔다고 소문이 날 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원호에게 그것은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걸 들켜버려서는 거래에서 우위를 가져올 수 없다. 그렇기에 원호는 최대한 평소처럼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하기로 했다.
“으흠, 흠. 그, 그건 이쪽이 손해 보는 장사인 것 같은 데~?”
“싫으면 말고요. 저 그만 돌아가면 되죠?”
크리스가 미련 없이 단호하게 돌아섰다.
“저기 있는 미노타우르스 꽃등심까지 얹어 드릴 테니까 멈춰주세요!”
“줘도 안 먹거든요?”
엄청난 속도로 게이트를 완성시키고 나가려는 크리스를 원호는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원호는 약속대로 크리스에게 자초지종을 말해야했다.
“아하하하! 그렇지, 공부해서 대학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하하하하!”
사실대로 말하니 아니나 다를까 크리스는 한참동안이나 웃어제꼈고, 반말이 곁들여져 한층 더 강도가 심해졌기에 원호의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상당했다.
“적당히 웃자…….”
저 녀석을 때려죽이면 입막음과 스트레스 해소가 동시에 달성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까지 원호가 떠올렸을 때쯤에야 그녀의 웃음이 멎었다.
“하하, 후… 근데 원호야. 너 이 마석은 어떻게 할 거야?”
반말 적응 한 번 상당히 빠른 년일세. 원호는 새삼 감탄했다.
그녀의 손에는 방금 꺼낸 마석이 들려있었다. 레드급부터는 100%로 무조건 마석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하긴, 그냥 둬야지.”
“뭐??”
레드급 몬스터의 마석은 최소한 6억부터 시작한다. 세금이나 수수료를 모두 뗀다고 하더라도 4억은 나온다. 그는 지금 그걸 버리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대체 왜? 너 사실 재벌 2세라던가 뭐 그런 거야?”
“아니, 나도 돈 좋아해. 하지만 어쩌겠냐, 팔 데가 없는데.”
그런 상급품의 마석이기에, 국가나 협회가 운영하는 시장에서만 거래가 진행되며, 마석의 출처에 대한 조사 역시 엄격하게 진행된다.
옐로나 그린급 몬스터의 마석 정도라면 암시장에 헐값으로라도 팔 수 있지만, 레드급 이상은 암시장에서도 물건을 받지 않았다. 괜히 걸렸다가는 판이 뒤집혀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 마석을 팔려면 원호 자신이 레드급 몬스터를 혼자 때려잡았음을 보고하고 증명해야만했으며, 그건 원호가 원하는 바가 결코 아니었다.
“흐음… 그러면 우리의 만남을 기념하는 의미로, 이건 내가 팔아줄게! 판매가 전액 양도에, 수수료 1%로!!”
거래소 수수료 1%는 S급 헌터들의 특권 중 하나였다.
다른 헌터들은 10~20%에 해당되는 수수료를 거래소가 챙겨갔지만, S급 헌터는 상급, 때로는 최상급 마석까지도 공급하는 VIP중의 VIP였기에 이런 특권이 부여되었다.
“…아니, 괜찮아. 정말 생각 없어.”
“어? 진짜로? 너 정말 재벌 2세니?”
물론 원호가 재벌 2세는 아니었기에 당연히 구미가 땡기는 제안이었다.
미노타우르스, 그중에서도 저 정도 상위개체라면 10억 정도는 족히 나오지 않겠는가!!
수수료도 거의 거저로 준다고 했으니 세금을 때도 7~8억은 간단하게 나올 것이다.
하지만 저 정도 금액이면 사람 하나의 인생이 뒤바뀌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푼돈처럼 다뤄질 수도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이라는 숫자에 담긴 무게감이 가벼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 무게감은 평범하게 살고 싶은 자신의 인생관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원호는 크리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며칠 뒤, 원호는 돈을 받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
* * *
크리스의 손을 잡자, 크리스는 반대쪽 손을 내밀어 공간의 왜곡을 찢고서 게이트를 열었다.
그 간단한 과정을 보면 오해할 수도 있지만, 아공간 결계의 공간왜곡을 찢어내 게이트를 여는 것은 원래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역시나 범상치 않은 녀석이야…….’
물론 혼자서 돌아가려했어도 돌아갈 수는 있었지만, 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다. S급 헌터라는 놈들은 다 이 정도 수준은 된다는 건가?
그리고 차원의 틈이 열렸을 때,
“아.”
“어.”
차원의 틈이 열리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것은 미카엘라였다.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고도 진지했는데, 나를 본 순간 고개를 돌리더니 잠시 한숨을 내쉬고서 다시 평소처럼 돌아왔다.
“흥, 역시 자기 몸 하나 간수하는 건 잘하네!”
평소처럼 까칠하게 굴었다는 뜻이다.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고민하는 사이에, 크리스는 미카엘라의 옆에 서있던 양복차림의 남자에게 손을 살살 흔들더니 텔레포트로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가벼운 인사로 그녀를 마중한 남자는, 그 다음 나에게 가볍게 목을 숙여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조원호 씨, 저는 본부에서 파견된 류환이라고 합니다.”
“아, 그 감시…….”
훈련 중 미카엘라를 쫓아다녔던 그 녀석이다.
눈앞의 류환이라는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에테르의 기운이 그 감시원과 상당부분 비슷했기에, 순간적으로 이 남자가 그 감시원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예?”
“아뇨, 감사하다구요, 예. 감사. 하하하.”
아공간에서 잠시나마 막나가기로 했던 영향이 남은 것일까.
생각 없이 말하다가 기껏 크리스의 웃음소리까지 버텨가며 지켜낸 인생을 다시 한 번 송두리째 날려먹을 뻔했다.
자연스러웠던 임기응변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나는 류환을 따라 미카엘라와 함께 산을 내려갔다. 워프게이트는 이미 닫혔기에 별도로 준비된 차량을 타고 움직여야했다.
“아, 너 땀 냄새나.”
“…너도 오지게 나거든?”
다행히 크리스는 약속을 지켜, 아공간 결계 안에는 그냥 나 하나만 덩그러니 앉아있었던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훈련은 도중에 중지가 되었고, 나와 미카엘라는 따로 귀환을 했기 때문에 내가 미카엘라와 함께 동행 했던 사실 역시 류환을 포함한 셋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되었다.
24년 신입생 환영 MT는 그렇게 끝이 났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