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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0화 (10/135)

10화

“미스터 호!!”

미카엘라는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놀란 마음을 추스리기가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서 사람 하나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훈련의 일종인가? 아니면 훈련 일정이 초과되어 아직 도착하지 못한 사람들을 소환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만 여기 남아있는 것을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그 때 그곳으로 류환이 다가왔다.

소리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그의 모습에 미카엘라는 경계를 취하며 뒤로 물러섰다.

서둘러 움직이는 바람에 류환의 불가시의 마법이 해제되어 있었지만, 지금 류환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지간한 상황은 ‘이거 시말서 감인데?’라고하며 웃어넘기는 그였지만, 지금 그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대답하세요. 당신은 누구죠?”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린 미카엘라가 품속에 숨겨뒀던 단검을 뽑아들며 물었다.

검을 뽑는 순간 에테르가 활성화되며 강화된 검신이 은은한 황금빛을 띄고 있었다. 그녀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평소에도 무기를 갖고 다니는 건가.’

류환은 새삼 그녀에게 감탄했다.

이 훈련은 갑작스러운 소환으로 시작되었다. 여기서 무기가 나왔다는 것은, 평소에도 비상시를 대비해 무기를 지참하고 다닌다는 이야기였다.

영국의 레지스터 가문 출신이라더니, 과연 그랬다.

게다가 그녀는 이번 훈련 내내 검을 뽑은 적이 없었다. 그 불편하고 제한된 상황에서도 말이다.

“진정하십시오.”

류환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학과에서 파견된 안전요원입니다.”

사실 안전요원이 아니라 감시원이긴 했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의심을 접지 않았고, 결국 류환이 신분증까지 보여주고 나서야 비로소 검을 거두었다.

“우선… 이 일에 대해 뭔가 이상을 느끼신 적은 없으십니까?”

“잠시만요.”

미카엘라는 대답에 여유를 둔 뒤, 방금 전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하지만 딱히 짐작이 가는 부분은 없었다.

“짚이는 구석은 없어요. 그냥 말 그대로 갑자기.”

미카엘라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

만약 다른 풋내기 신입생의 말이었다면 그냥 참고하는 수준에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미카엘라의 말은 믿을만했다. 잠시 동안이나마 그녀를 관찰했었던 류환은 그렇게 판단하고서 몇 가지 가능성을 배제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강제소환이나 텔레포트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아. 그렇다고 공간의 왜곡이 보이는 것도 아니야.’

류환은 조원호가 사라진 부분을 조심스레 더듬었다. 하지만 짐작 가는 부분이 없었다.

자신의 탐지능력은 S급 헌터를 포함하더라도 꿀리지 않는 수준이다.

자랑이나 허세가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류환은 설령 크리스가 움직인 흔적이라 할지라도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이건… 아공간 결계가 아닐까요?”

그 때 옆에 있던 미카엘라가 조심스럽게 말을 던졌다. 그녀 역시 그가 사라진 흔적을 별도로 찾아보던 중이었다.

“아공간 결계?”

“저희 가문이 결계 쪽에는 조금 관련이 있거든요. 주변에 결계 특유의 공간왜곡은 보이지 않지만, 아공간 결계라면 이동이 끝난 순간 왜곡도 사라지니까요.”

넌지시 제시된 새로운 가능성에 류환은 생각의 폭을 넓혔다.

아공간 결계라.

확실히 아공간 결계라면 사람 하나가 사라지고 나서도 이토록 깔끔하게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은 것이 설명이 된다.

하지만 대체 누가?

아공간 결계는 현실의 차원과 연결된 또 다른 차원을 일부분 만들어 내야하는, 창조의 영역에 다다른 마법이다.

당연히 최상급 수준의 마법이고, 공간계열 마법에 관련된 특성이 없다면 이론조차 이해할 수 없다. 사용할 수 있다하더라도 엄청난 에테르가 소모된다.

아무리 조원호가 특이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신입생에 불과하다.

설령 그에게 모종의 비밀이 있을 것이라 예측한 인물이 있다하더라도, 고작 한 명을 어떻게 해보려고 아공간 결계까지 동원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아공간 결계까지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공간 결계 말고는 답이 없었다.

류환은 마치 객관식에 1번은 답이 아닌 것 같은데 나머지 4개는 절대로 답이 아닌 상황에 직면한 기분이었다.

결국 그는 1번을 답으로 가정하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님, 저 류환입니다만…]

크리스에게는 자기가 와있다는 것이 비밀로 되어 있었다. 괜히 남의 일에 개입한다는 말이 나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불가시의 마법은 조원호에게서 숨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크리스에게서 숨기 위함이기도 했다.

[응, 알고 있어. 유선 때문에 이번에 고생 좀 많이 했네?]

[…역시 알고 계셨습니까.]

하긴, S급 헌터인 크리스한테까지 들키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렇게까지 오만하지 않다.

물론 나무 위에 드러눕거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한다거나 하지 않고 진지하게 임했다면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유선만 모르고 있으면 되는 사실이다.

[다름이 아니고, 학생 하나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아공간 결계로 의심이 갑니다만…]

[아하, 뭔 이야기인지는 알겠어. 수사의뢰, 뭐 그런 느낌인가?]

[수사의뢰라니, 마치 사망자가 이미 발생한 것만 같은 느낌이잖습니까. 구출의뢰로 해주십쇼.]

류환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조원호가 능력을 감추고 있는 실력자라 할지라도, 아공간 결계를 열 정도의 강자를 이겨낼 수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책임 문제를 떠나서, 그는 최소 A급 헌터쯤은 될 수 있는 재목으로 보였다. 고작 이런 곳에서 잃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였다.

[뭐, 결론부터 말하면 아공간 결계가 맞아. 그리고 진입 준비는 이미 진행되고 있어. 날 뭘로 보는 거야, 환?]

[…예, 그랬죠. 제가 괜한 참견을 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훈련장은 크리스의 결계로 덮인, 말하자면 그녀의 영역이다. 자신의 영역 안에서 발생한 공간이동을 눈감아줄 정도로 크리스는 느슨하지 않았다.

전음을 마친 류환은 이쪽을 바라보던 미카엘라와 눈이 마주쳤다.

“일단 이 일은 어떻게든 해결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치는 취해야겠지요.”

이런 상황에서도 훈련을 강행시킬 만큼 류환은 강심장이 아니었다.

현재 상황에 대해 유선에게 보고를 올린 류환은, 잠시 후 지금 당장 훈련을 중지시키고 나머지 인원들을 대피시키라는 지시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목적지에 크리스가 설치해뒀던 워프게이트를 통하여 추가적으로 요원들이 파견되었다. 아직 남아있는 인원들이 대피하는 건 30분이면 충분하리라.

“그럼 미카엘라 씨,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요.”

미카엘라는 조원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본 채로 가만히 서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함께 다니던 동료를 두고 갈 성격이 되지 못했다.

딱히 그에 대한 호감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단지 그런 성격인 것이다. 착하다면 착한 것이고, 멍청하다면 멍청한.

‘그래, 자기 연인을 두고 맘 편히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자기 멋대로 세운 가설을 사실로 여기고 있던 류환은 자기 멋대로 그 행동을 해석하고 이해해버렸다.

“그럼 잠시만입니다.”

정말 심각한 상황이 터지지 않는 이상 그녀 하나 정도는 들고 튈 자신이 있었기에, 류환은 그녀의 억지를 조금은 들어주기로 했다. 옆구리가 조금 시려오기는 했지만.

* * *

방금 전 무작정 내리찍고 보던 모습과 달리, 미노타우르스는 할버드를 이쪽으로 겨눈 채 조심스럽게 거리를 재고 있었다.

“야, 안 들어오냐? 누가 걸어줬는지는 몰라도, 광화랑 블러드러스트 값은 해야지?”

앞으로 뻗었던 검을 다시 거두며 이쪽의 빈틈을 훤히 보여줘도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쥐고 있던 할버드를 꼭 쥔 채로 더욱 뒷걸음질을 칠뿐이었다.

“너랑 날 불러낸 놈은 네가 날 죽이길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러고 있으면 쓰나. 기껏 아공간 결계까지 펼쳐준 상황인데.”

“쿠으으으…….”

그럼에도 녀석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왠지 그 울음소리마저도 조심스러운 느낌으로 바뀌어있었다.

“뭐, 네가 오지 않는다면…….”

때마침 닫혀있었던 에테르 회로들이 전부 개방되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의 원호는 새끼손가락 끝까지라도 자유롭게 에테르를 순환시킬 수 있는 상태였다.

오른손에서만 나타났던 에테르의 기운이 그의 전신을 가볍게 맴돌고 있었다.

“내가 가야지, 어떻게 하겠냐.”

땅을 박차 앞으로 내딛으며 원호는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뛰어올랐다.

미노타우르스는 긴장된 상태로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그가 달려드는 것을 볼 수는 없었다. 그는 말 그대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일보(一步), 초가속.

이보(二步), 대면(對面).

그리고, 삼보(三步)에 일섬.

“크어억!!”

그가 스쳐지나가자, 미노타우르스의 팔뚝에서는 굵은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단 세 걸음.

갑자기 사라진 그는 순식간에 미노타우르스의 눈앞까지 다가가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미노타우르스를 지나 그 뒤에 있었다. 모두 세 걸음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처음 원호가 도발했을 때, 만약 그 때 달려들었다면 미노타우르스에게도 승산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어린아이가 어른을 상대로 싸워서 이길 수 있을 정도의 확률에 불과했지만, 그 확률은 분명히 제로가 아니었다.

만에 하나에 불과하더라도 분명히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원호가 봉인시켜뒀던 모든 회로가 개방되고,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게 된 순간부터 그가 질 확률은, 아니 저 괴물이 단 일격이라도 성공시킬 수 있는 확률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쯧, 감각이 무뎌지기는 했네.”

검을 쥐었던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던 원호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는 방금 전의 일격으로 팔 하나를 잘라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날이 무딘 건지 깊이가 얕았던 건지, 녀석의 팔뚝을 반쯤 갈라놓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쿠…워어억!!”

수비적인 자세를 취해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음을 그제야 깨달은 미노타우르스가 뒤늦게 할버드를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여전히 무식한 힘으로 휘둘러지는 할버드는, 궤적 안에 놓여있는 나무들을 마치 수수깡처럼 절단내버리며 쇄도해왔다.

하지만 두 팔이 멀쩡할 때도 통하지 않았던 일격을, 한 쪽 팔이 반쯤 잘려나가 있는 상황에서 원호가 허용할 리가 없었다.

원호는 그 묵직한 일격을 자세와 허리를 낮추는 것만으로 가볍게 피해냈다.

거대한 할버드가 자기 머리 위를 지나가는 걸 확인한 직후, 그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가 도약과 함께 베어올린 검에 잘려나간 미노타우르스의 오른쪽 뿔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음머어어어!!”

“이제야 좀 소답게 우네.”

뿔이 달린 몬스터들은 대부분 그 뿔이 마력의 근원이거나 저장소인 경우가 많았다.

또한 미노타우르스에게 뿔은 단순히 힘의 근원을 떠나서 종족의 명예, 긍지를 상징하는 부위이기도 했다.

“머어어어어어어어!!!”

고통과 치욕, 그 두 가지가 담긴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미노타우르스는 할버드를 고쳐 쥐고서 원호가 뛰어오른 하늘을 쳐다봤다.

분노에 가득 찬 덕분인지 그 눈은 흉흉한 붉은빛으로 다시 물들어있었다.

하지만 하늘로 뛰어오른 원호는 그걸 지켜볼 정도로 느긋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뛰어오른 것은 뿔을 잘라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뿔을 잘라냈던 것은 그냥 눈앞에 보이는 걸 처리해 둔 것에 불과했다.

그는 자신의 머리 위로 보호막을 펼쳐내었다. 다만 그건 방어의 용도가 아니었다.

몸을 거꾸로 뒤집은 그는, 보호막을 발판 삼아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다시 한 번 도약했다.

자기 머리 위로 내리꽂히는 백색의 섬광.

고개를 들어 올린 미노타우르스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서걱.

저 무식하게 커다란 괴물을 끝장내는 소리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깔끔한 소리와 함께, 미노타우르스의 머리는 두 쪽으로 갈라졌다.

시끄럽게 고함을 질러대던 방금 전의 모습과 달리 괴물의 최후는 지나치게 깔끔하고 또한 조용했다.

죽기 직전까지 꽉 쥐고 있었던 할버드와 함께, 그 거대한 몸통은 천천히 허물어졌다.

“아.”

머리통을 깔끔하게 둘로 갈라놓은 원호는 멋지게 착지를 끝마치면서, 조금 멍청하게 보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곱게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했었는데.”

불과 몇 분 전에 말했던 것과 달리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버렸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몸에 습관처럼 배어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펼친 일이었다.

“아무렴 어떠냐.”

그의 기분은 지금 상당히 좋았다. 오랜만에 힘을 발휘해서일까, 쌓여있던 스트레스도, 울적함도 모두 사라져있었다.

원호는 잠시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반년 정도만의 일이었다. 닫혀있던 회로들까지 열리면서 몸 전체가 깨어나는 기분이 상당히 상쾌했다.

“흡!”

흘러넘치던 에테르를 아낌없이 오른발에 밀어 넣고, 땅을 힘껏 내리찍음과 동시에 온몸으로 에테르를 방출시켰다.

“하, 오랜만에 괜찮은 기분인걸.”

오랜만에 마음껏 에테르를 뿜어내는 기분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상쾌했다.

그 충격의 여파로 이 일대의 숲이 초토화되었지만, 이곳은 아공간이었다.

여기서 숲을 파괴하든 땅을 파서 내핵에 도착하든 원래 차원에는 조금도 영향이 가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 결계가 내핵까지 구현해놨을 리는 없겠지만.

“어라라?”

그 때였다.

처음 듣는 여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 것은.

“누구시죠, 당신?”

화들짝 놀란 원호가 뒤돌아보자, 큰 대낫을 들고 있는 은발의 여자, 크리스가 그렇게 물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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