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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9화 (9/135)

9화

“…저 녀석들 뭐하는 거지?”

류환이 원호와 미카엘라를 미행한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하루가 지난 후부터 미행하기 시작했으니 훈련이 시작 된지는 사흘 째였다.

하지만 저들은 목적지에 도달하기는커녕 목적지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이 MT의 기간을 넉넉히 5일 동안으로 잡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각성도 못한, 그리고 서바이벌 경험도 떨어지는 녀석들을 배려한 기간이었다.

저 둘이 출발한 곳이 목적지점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중간한 녀석도 마음먹고 밤을 새워 걷는다면 하루 반나절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불과했다.

애초에 이 MT는 전원 클리어를 목적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 실력 있는 녀석들은 이미 목적지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부터 올라오기 시작한 통과자 명단은 이미 10명을 넘기고 있었다.

길이라도 헤매는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나침반을 줍지 못했거나 잃어버렸다면 모르겠지만, 저 둘은 확실히 나침반을 가지고 있었다. 나침반을 들고서 길을 찾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대신 그럴 때마다 그들은 목적지 방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건…!!”

류환은 뭔가를 깨달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산 속 데이트로군.”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린 법!

역경이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출장이 누군가에게는 휴가가 될 수 있듯이, 저 둘에게 지금 이 훈련은 달달한 연애의 현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 저 둘이 목적지를 향하지 않고 뱅뱅 도는 것도 둘만의 시간을 최대한 오래 이어가기 위해 일부러 오래 걸리는 동선을 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해보니 저 둘의 실력 정도라면 지금 이 정도는 훈련이 아니라 동네 뒷산에 캠핑하러 온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지켜본 이틀 동안 저 둘이 잘 곳을 찾지 못하거나 끼니를 거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나보다 낫지.’

류환은 품속에서 오늘 분의 육포를 꺼내 씹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던 그는 챙겨왔던 식량이 떨어져, 여유분으로 가져왔던 육포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그마저도 양이 모자라 정해진 양을 지키면서 아껴먹어야 했다.

게다가 저 둘은 지금 데이트를 즐기는 중이지 않은가! 류환은 유독 옆구리가 시려오는 것을 느꼈다.

‘청춘이구나, 청춘이야.’

류환은 자료를 열고서, X표가 쳐져있는 ‘사이가 안 좋음’ 옆에 ‘사이가 아주 좋음’이라고 정정해두었다. 조금 거친 글씨였다.

“아아, 외롭고 배고프고 짜증난다!!”

커플은 때로 그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큰 타격을 입힌다. 그것을 새삼스레 깨닫는 류환이었다.

자료를 덮은 류환은 서러움을 달래기 위해 다시 나뭇가지 위에 누우며 핸드폰을 꺼냈지만, 배터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을 뿐이었다. 가지고 왔던 보조배터리도 바닥이 나 게임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돌아가고 싶다.”

류환은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고, 깍지 낀 손을 베고 누우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렇게나 눈치를 보고 다녔던 상사의 얼굴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일은 하기 싫지만.”

* * *

이 녀석과 동행을 한 지도 벌써 이틀이 지났다.

“야아아!!! 이제 그만하고 좀 가자!!”

“가고 있잖아.”

“아니, 그거 말고. 목적지로 좀 가자고!”

그리고 미카엘라는 당초의 목적대로 열심히 주위를 뱅글뱅글 맴돌고 있었다. 솔직히 하루 정도 지나면 그냥 포기하고서 목적지로 가자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눈치를 보다 못한 내가 말을 꺼내봤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녀는 오히려 처음 출발했을 때보다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숫자가 적기는 했지만, 우리가 도와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블린이나 코볼트 같은 하급 몬스터에게 쫓기는 녀석들도 있었고, 버섯을 잘못 주워 먹고 골골대던 녀석도 있었다. 미카엘라는 그런 녀석들이 보일 때마다 도왔고,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착한 건지, 바보인 건지.’

어쩌면 둘 다일지도.

그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미카엘라에게는 그 정도는 간단하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자신을 망가트리면서까지 하는 선행은 멍청한 짓이지만, 자신에게 남아도는 여유를 베푸는 선행은 나쁘지 않다.

‘그래도 이 정도했으면 목적지로 출발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잠도 잘 자고 끼니도 잘 때우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산에서의 야숙생활이 쾌적할 리가 없다.

실제로 삼일 동안의 산행으로 입고 있던 옷은 몇 군데 찢어졌으며, 몸에서는 땀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미카엘라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헌터 생활을 하게 되면 땀 냄새 정도야 임무 때마다 기본 옵션으로 달고 다닌다지만, 미카엘라는 이제 갓 20대가 된 여자아이가 아닌가. 이런 일에 민감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미카엘라, 아직까지 이 주변에 남아있는 녀석은 거의 없을 거야.”

실제로 오늘 내내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짧았다. 몬스터만 없다면 민간인들도 이틀이면 도착할 수 있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다못해 이런 외각에서 헤매고 있는 녀석은 없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두고 싶잖아?”

앞장서서 걷던 미카엘라는, 이쪽을 뒤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표정에 피곤함이나 불쾌함 같은 건 조금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말 그대로 헛걸음이었다.

씻지 않은 몸에서는 땀 냄새가 난다. 오랜 산행에 몸은 피곤에 찌들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어린 아이나 지을 법한 해맑은 미소를.

처음에는 이 녀석이 이러는 건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빨리 도착하는 것 정도는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연히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행동이다.

그렇기에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얄팍한 수작만으로는, 지금 시점에서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없었다.

누군가를 위해 움직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가.

나는 문득 부러움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나에게는 이제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윽…….”

에테르 코어에서 다시 통증이 느껴졌다. 이번 건 조금 컸는지 주변의 회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생각지 못한 통증에 가슴을 쥐고 잠시 멈춰서야했다.

“미스터 호?”

미카엘라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멀쩡히 뒤따라오던 녀석이 갑자기 멈춰서 골골대고 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고개를 들어 올려 그녀를 쳐다보니 표정에서 미소는 사라지고 걱정이 올라와있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내 두개골을 깨트렸을 때였다. 평소의 미카엘라와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

“그러니까 내 성은 호가 아니라 조…….”

왠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평소처럼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다.

<공간 왜곡으로 결계 안으로 이동됩니다.>

하지만 허공에 왠 메시지가 내 말을 잘라먹으며 나타났고, 나는 말을 마저 끝내지도 못한 채 이동하게 되었다.

* * *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전에 있던 곳과 똑같았다. 나무가 있던 곳에 나무가 있었고, 바위가 있던 곳에 바위가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결계로 단절된 공간이리라. 실제로 방금 전까지 앞에 있었던 미카엘라가 보이지 않았다.

‘기존 세계를 활용한 아공간 결계…인가.’

“하… 이번에도 여기인가.”

요즘 뜸했을 뿐, 여태동안 몇 번이고 겪어봤던 상황이었기에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왜 이렇게 못살게 굴어서 안달일까. 그냥 이제 좀 쉬면서 편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그리고 정면에는 거대한 거인이 하나 서있었다. 미카엘라가 있던 방향에서 10m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터질 것 같은 근육질의 몸통과 무식하리만치 커다란 할버드.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뿔이 달린 소의 머리.

마치 누가 미노타우르스가 아니라고 의심할까봐 걱정하면서 디자인한 듯한, 노골적인 모습의 미노타우르스였다.

“덩치는… 트롤 정도? 아냐, 트롤보다는 확실히 크네. 트롤이랑 오우거 사이 정도일까?”

“쿠으…….”

잠시 눈앞의 소대가리를 품평하는 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미노타우르스가 이제야 눈치 챘는지 이쪽을 바라보면서 콧김을 내뿜기 시작했다.

“쿠워어어어어!!”

그리고 바로 직후, 미노타우르스는 그 무식한 할버드로 이쪽을 내리찍었다. 그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의 참격이었다.

방금 전까지 내가 서있던 곳에는 다이너마이트라도 터진 듯한 모양으로 땅이 패어져있었다. 할버드로 내리친 참격의 흔적이라기보다는 어디서 공성추라도 가져와서 내리찍은 듯한 모습이었다.

“…야, 너 할버드 버리고 쇠몽둥이라도 들고 다니는 게 더 낫지 않겠냐? 날 상할까봐 관리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녀석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다음의 일격을 휘둘렀다. 역시나 나에게는 닿지 못하고 애꿎은 땅바닥만 두드려 팰 뿐이었다.

‘미노타우르스, 그것도 상위종인가. 거기에다가…….’

녀석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있었으며, 몸통에 새겨진 붉은 문양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광화와 블러드러스트였다.

미노타우르스는 안 그래도 상당히 강력한 축에 속했다. 종종 트롤이나 오우거와 비교되며, 대부분 트롤과 비슷한 수준의 덩치를 갖고 있지만, 그 안에 압축되어 있는 힘과 마력은 차원이 달랐다.

거기에 광화와 블러드러스트까지 더해진 녀석이라면, 낮게 봐줘도 레드급 중간 이상은 갈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나는 이쪽을 향해 내리 찍히고 있는 할버드를 손으로 쳐냈다.

손과 금속이 맞부딪쳐 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미노타우르스는 중심을 잃은 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나의 손에는 하얀빛으로 감기다 못해 넘쳐난 에테르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내가 딱히 그런 취미가 있는 건 아닌데 말이야.”

아직도 코어의 통증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꼴을 보아하니 한동안 계속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참는 것은 익숙했다.

“지금은 내가 좀 우울하고 짜증도 나있어서.”

오랜만에 각성시킨 코어에서는 에테르가 흘러넘치도록 뽑혀 나왔다. 나는 그것을 굳이 제어하지 않고서 오른손으로 집중시켰다.

오른손으로 무작정 뿜어져 나온 에테르는 조금씩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뭉툭한 막대기처럼 보이던 그것은, 이윽고 검의 형태가 되었다.

“곱게는 죽지 못할 줄 알아라.”

재정비를 마치고 이쪽을 노려보는 미노타우르스에게 완성된 검을 내뻗자, 붉게 빛나는 녀석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맺혔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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