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엠티는 이런 게 아닐텐데
일은 저녁에 일어났다.
“…하?”
그 곳에는 미카엘라가 팔짱을 낀 채로 벽에 등을 기대고 서있었다.
물론 미카엘라가 언제 어디에 서있건 간에 그건 그녀의 자유였다.
그건 누군가가 간섭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은 남자 기숙사의 복도이자 내 방 방문 앞이었다. 이건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내가 그녀를 보자마자 이곳이 남자 기숙사가 맞는지, 그리고 여기가 4층이 맞는지 확인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곳은 남자기숙사이자 4층이었고, 그녀가 서있는 곳은 내 방, 412호 앞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정신을 차리자 나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아니, 이래서는 안 된다.
이곳은 엄연히 나의 영역이고, 그녀는 침입자다.
대의는 나에게 있었다.
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
내가 복도에 들어서자, 그녀가 이쪽을 돌아봤다.
“미스터 호. 너무 늦잖아.”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녀는 힐책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마치 자기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늦게 온 너는 나한테 잘못을 빌어야한다는 듯한 느낌의 말투였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상당히 어이가 없었다.
내가 늦건 말건 대체 그쪽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추우니까 빨리 문이나 좀 열어. 언제까지 밖에서 레이디를 기다리게 할 생각이야?”
‘지랄이 났다, 증말로.’
레이디라는 말을 실제로 하는 사람은 처음 봤고, 자기 입으로 자기를 레이디라고 말하는 여자도 처음 봤다.
내 손발은 견디질 못하는데 정작 그런 말을 꺼낸 당사자는 떳떳하다는 것이 상당히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대체 왜 네가, 지금 이 시간에 내 방 앞에 있는 거지? 미카엘라?”
뭔가 타이밍을 놓친 질문이었지만 저쪽으로 넘어간 주도권을 되찾아오려면 필요한 질문이었다.
“할 말이 있으니까 온 게 당연하지.”
미카엘라가 한 쪽 눈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이 시간에 남자 기숙사로 여자가 할 말이 있어서 온 게 당연한 일이라고?”
대낮에 찾아왔어도 소문이 날까 말까한 상황인데, 지금 시간은 밤 10시였다.
“조장이 문제가 있는 조원을 찾아오겠다는 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
“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네 머리통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뭐? 하, 나라고 여기까지 오고 싶었는지 알아? 네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쳐들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런 일이라면 적당히 내일 다시―”
슥, 스슥.
그 때 바로 옆에 있는 문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작아서 놓치기 쉬운 소리였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분명하게 들려왔다. 411호였다.
순간적으로 느껴진 불길한 예감에 모든 신경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신발 깔창이 바닥을 비비면서 나는 소리.
그 소리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소리였다.
이 시간에 편의점이라도 가려는 것일까.
딱히 문제가 있는 행동은 아니다. 야밤에 야식 좀 사러 나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우리 기숙사에는 통금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하필 지금인 게 문제다. 식은땀 한 줄기가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옆집에 사는 게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기숙사는 헌터학과 전용 건물이다. 당연히 옆집 사람도 헌터학과 사람일 것이다. 이 광경에 대한 소문이 나기에는 충분한 조건이었다.
미카엘라는 그만큼 과에서 유명한 녀석이었으니까.
‘오…….’
새하얘진 머릿속은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몸은 거의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우선 문 앞에서 팔짱을 끼고서 길을 막고 있는 미카엘라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약간 놀란 것처럼 보이는 그녀를 살짝 밀어낸 후, 도어락을 열고서 급하게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마이…….’
―삐리릭.
도어락의 알림음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활짝 열어 제꼈다. 옆방에서 잠금장치가 풀리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나에게는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길게 느껴졌다.
큰 걸음으로 먼저 방 안에 한 발을 들이밀고서, 어리둥절해 하는 그녀의 팔목을 잡아챘다.
“미친, 야, 이게 갑자기 무슨―”
갑작스런 접촉에 당황하며 소리치는 것을 무시한 채 그녀를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잡힌 팔목을 축으로 한 바퀴 돌아간 그녀는 발이라도 헛디뎠는지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갓―!!’
넘어지는 그녀 쪽으로 다시 한걸음을 내딛으면서, 팔목을 잡았던 왼손을 그녀 쪽으로 뻗었다. 다행히 허리를 감싸 쥐고 그녀를 받쳐 드는 데 성공했다.
철컥.
하지만 이 작은 묘기를 자축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겠다는 듯이, 옆방의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을 닫기 위해 오른손을 내밀어봤지만 닿을 리가 없었다. 문은 거의 90도로 활짝 열려 복도까지 나가있는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긴급 수단으로 급하게 에테르를 활성화시켰다.
대략 두 달이 넘게 억눌러져있던 회로가 억지로 깨어나면서 약간의 고통과 함께 에테르의 기운이 몸에 감도는 것이 느껴졌다.
‘손이 닿지 않는다면!!’
내민 오른손으로 에테르를 방출시킴과 동시에 문고리를 감싸 쥐는 에테르의 형상을 이미지 했다.
염동력 계열은 주특기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해냈는지 에테르를 통해서 뭔가가 잡힌 감각이 전해져왔다.
그 즉시 뻗어나간 에테르를 회수함과 동시에 오른손을 힘껏 뒤로 당겼다.
콰앙!!!
문은 부서질 듯한 소리를 격하게 울리면서 닫혔다.
그러자 서로 타이밍이라도 맞춘 것처럼 옆방의 문이 열렸다. 기숙사의 방음처리는 상당히 잘 되어있었기에 그 소리는 상당히 작게 들렸지만, 한껏 예민해져있던 청각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후… 해낸 건가.’
닫힌 문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몸은 아직도 긴장되어있는 상태였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다.’
미카엘라는 유학생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모았을 텐데, 성적이면 성적, 외모면 외모, 모두 과에서 탑으로 꼽히는 그야말로 화제의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 시간에 누군가를 찾아 남자 기숙사 방 앞까지 왔다?
그런 소문이 퍼진다면, 원치도 않는 스캔들과 함께 엄청난 관심이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나의 계획을 송두리 째로 박살낼 만한 위기가 다시 한 번 닥쳐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근데 뭔가를 잊어버린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왼쪽 팔이 뻐근했다. 그래, 마치 뭐라도 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선을 천천히 왼쪽으로 돌리자,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에메랄드빛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
잠깐 동안의 침묵. 그녀는 경악에 질린 표정과 살짝 붉어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현관의 불이 꺼졌다.
“꺄아아아악―!!”
어두운 방 안에서 황금빛 에테르를 두른 주먹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미카엘라, 잠깐!!”
빠각.
아, 부서졌다.
뭔가 부셔지면 안 될 것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점차 의식이 희미해져갔다.
“잠깐, 야. 일어나. 어라? 호. 원호! 조원호!!!”
미카엘라가 내 어깨를 붙잡고서 흔들며 뭐라 외치고 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의식을 붙잡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하여간에… 여긴… 대체 왜 와가지고…….’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 * *
“그러니까, 평균만 하면 다야? 네가 아무리 평균이라 해도 조원들보다 낮으면 그건 그냥 낮은 거에요. 그리고 말이야. 훈련이 네 개인 훈련만 있는 줄 알아? 조원들끼리 호흡은 맞춰봐야 될 거 아냐!”
“아고고, 아이고 머리야―. 미안한데, 큰소리로 말하지 좀 말아줄래? 누군가가 박살낸 머리통이 자꾸 울려서 말이야.”
“큭…….”
미카엘라는 의자에 앉은 채 불만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카엘라는 할 말이 있어서 왔다지만, 나에게 강력한 거부권을 제공해버렸다.
그녀는 분하다는 듯 입술만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침대에 누워서, 아픈 시늉을 하면서 그녀가 사온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었다.
시원한 게 마시고 싶다는 나의 부탁에 그녀가 편의점에서 직접 사온 복숭아 홍차 맛 아이스 티였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밤 11시 정도였다.
지끈거리는 두통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상태였고, 미카엘라는 침대 옆의 바닥에 앉아 안절부절못한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내가 눈을 뜨자, 안색이 밝아지며 눈물을 글썽이는 꽤나 귀여운 표정을 지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그 정나미 떨어지는 표정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시침 때는 표정으로 ‘지금만큼은 특별히 들어줄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봐’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힘이 빠진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똑똑히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시원한 게 마시고 싶다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쿨럭, 으음… 달달한, 쿨럭, 시원하고, 크흠… 달달한 거.”
냉장고에 넣어놨던 물을 꺼내오고 있는 그녀에게 대놓고 눈치를 주자, 그녀는 나를 죽일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내가 머리를 쥐어 싸매며 골골대자 미카엘라는 그런 나의 꼴을 보고서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나간 틈을 타서 에테르를 활성화 시키고 몸 상태를 확인했다.
가벼운 뇌진탕 증세가 있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어지러움은 뇌진탕 때문이었다. 그래도 적당히 시간만 지나면 회복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리고 두개골에는 꽤나 두껍고 선명하게 금이 가있었다.
과연, 쓰러지기 전에 들렸던 빠각 소리는 내 두개골이 깨져나가는 소리였던가.
사람을 상대로 에테르를 두르고 주먹을 휘두르다니.
나였으니 망정이지 이건 명백한 살인미수였다.
살인미수면 합의를 보더라도 징역에 처해지는 중범죄가 아닌가. 정신이 나간 년인게 틀림없었다.
혼자 투덜거리면서 활성화 시킨 에테르를 회복에 집중시키면서 휴식에 들어갔다.
그 결과, 누워서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는 지금은 회복이 거의 다 끝난 상태였다.
오히려 활성화 시켜뒀던 에테르 덕분에 평소보다 기분이 좋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런 사정을 미카엘라에게 말해줄 이유는 없었다.
이 외교적 명분과 우위를 이용하여 미카엘라, 너를 찍소리도 못하고 돌아가게 해주마.
여자 기숙사로 쓸쓸하게 돌아가는 밤길에서 너의 경솔했던 폭력을 반성하도록 하여라.
“후우… 오늘은 어쩔 수 없네. 아픈 놈 쉬지도 못하게 방해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고.”
그리고 네가 아프게 만든 장본인이고 말이야.
그래, 빨리 돌아가라, 냉큼 가라. 돌아가서 발 씻고서 잠이나 자라.
‘잠깐.’
오늘은?
그 단어에는 미래에 대한 예고성 암시가 담겨있었다.
“내일 다시 올 테니까, 그 때까지 몸조리 잘해라. 그러고 보니 내일 수업은 빠지게 되나?”
아니, 수업을 빠지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 생각한다.
결석을 공결처리 하기 위해서는 진단서가 필요하다. 헌터학과도 다르지는 않겠지.
하지만 내 몸은 이미 회복이 끝난 상태였고, 고로 진단서를 끊을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통탄을 금치 못하겠지만 나의 실수였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아니, 그보다.
“내일 또 온다고? 어째서?”
나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키면서 물었다.
방금 전까지 골골대던 환자가 할만한 동작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말은 연기하고 있던 지금 상황도 다 잊어버릴 정도로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그걸 못했으니, 내일 다시 오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잘 알아들었어. 요컨대 자율훈련 째지 말고서 참가하라는 거 아니야?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 답은 당연히 No다.”
“그럼 그건 또 그것대로 다시 와야겠네.”
“어째서지?”
“네 대답이 No니까.”
“…혹시나 해서 묻는데, 그 장소는?”
“당연히 여기지.”
여기, 바로 이 곳. 남자 기숙사 412호.
미카엘라는 방바닥을 가리키며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크아아아악!!”
그 당당함에 짜증이 터져 나왔다.
이 녀석에게는 수치심이 없는 건가?
복도에서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한데, 내일 다시 오겠다고?
누구 수명 깎아 먹을 일 있냐?
“야, 왜 굳이 내 방까지 찾아오겠다는 거야? 강의실에서 만났을 때 말하면 되잖아? 하다못해 어디 카페라도 가면 되는 거 아니야?”
“흐음―”
미카엘라는 불길한 목소리를 내면서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네가 훈련에 참가할 때까지 여기로 와야겠네.”
미카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 비슷했던 눈높이는 내가 일방적으로 올려다봐야하는 모양이 되었다.
“…뭐라고?”
“네가 훈련에 참가하지 않는 날에는, 무조건 내가 네 방에 쳐들어온다고요.”
“대체 무슨 천재지변이 일어나야 그런 결론이 나올 수가 있어.”
“그냥 그걸 네가 가장 싫어할 거 같으니까.”
그녀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가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었다.
“…잠깐만, 그건 진짜 죽어도 싫어.”
“그럼 훈련 나오면 되겠네.”
“그것도 싫어.”
“맘대로 해라. 난 선택지를 줄 뿐이야. 선택은 알아서 해.”
그 말을 남기고 미카엘라는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아니, 걸어가려고 했었다.
“미카엘라?”
현관 쪽으로 향하던 미카엘라는, 느닷없이 사라졌다.
물론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당시의 내가 그녀에게 사실상 협박을 당했으며, 그녀에 대한 앙심을 품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나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공간이동?”
눈앞에서 사라지는 방법은 투명화나 미러 이미지도 있었지만,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텔레포트나 블링크를 사용했을 리가 없었다. 천재라고 해봤자 아직 풋내기인 녀석이 그런 고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누군가가 강제 소환한 건가?”
그 때 머릿속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타인의 공간마법에 저항했을 때 느껴지는 반응이었다.
“강제 소환이구만.”
수준을 봐서는 꽤나 상위권 에스퍼가 사용한 듯 했다. 과연, 미카엘라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할 만한 위력이었다.
‘문제는 내가 이걸 어떻게 대처하냐는 건데…….’
감지망을 넓혀 살펴보니, 신입생들을 상대로 강제 소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말인 즉슨,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나 역시 저항하지 못한 채 소환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 뻔했지만, 여기서 강제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내 능력을 증명해버리는 꼴이나 다름이 없었다.
‘쯧, 그래 뭐… 험한 꼴이야 당하겠어.’
그리고 나는 강제 소환에 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