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4화 (4/135)

4화

“뭐야, 조원호 아니야?”

“어디 가는 거야?”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지나가던 녀석들 중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누구였더라.’

나는 기억을 더듬어 가다가 그 중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수업에서 얼핏 본 기억이 있었다.

전공 수업이었으니 같은 과의 동기일 것이다. 아마 주위에 있는 녀석들도 마찬가지겠지.

“수업 끝나서 도서관 가려고 그러지.”

“…도서관?”

한 명이 의아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우리 과에서 도서관에 다니는 것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교양수업도 듣잖아. 이번 주까지 과제도 있거든.”

“오! 역시나 엘리트! 훈련할 필요도 없나보구만?”

한 녀석이 까불거리듯 말하자, 옆에 있던 녀석이 팔꿈치로 살짝 건드리며 이를 제제했다. 그나마 기억에 얼굴이 남아있던 녀석이었다.

“그래, 교양과목도 중요하지. 우린 가볼게. 열심히 해.”

그렇게 말을 마친 녀석은 일행을 끌고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큭큭, 야, 교양수업이랜다. 정신 나간 거 아니냐, 진짜?”

“넌 그 깝치는 성격 좀 어떻게 하면 안 되냐?”

거리가 좀 멀어지자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들려왔다. 목소리가 방금 전 까불대던 그 녀석이었다.

나는 잠시 정신을 집중시키고, 손가락으로 술식을 발동시켜 염동력을 사용했다.

염동력이 나의 전문 분야는 아니었지만, 신발 끈을 엉키게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잠시 후 사람 하나가 자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1학기가 시작되고 시간이 흘러, 이제 거의 3월 말에 다다르고 있었다.

학교 분위기는 내가 기대하던 것과 조금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이곳에 모인 녀석들은 죄다 헌터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놈들 뿐이었다.

뭐, 학과명부터가 헌터학과였으니 그게 당연할 것이다. 헌터가 될 생각도 없는데 여기에 들어온 내가 이질적인 것이다.

그래도 좀 더 정상적인 분위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덕분에 기대하고 있던 평범한 대학생활은 전부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오순도순한 엠티나 동기들과의 술자리 같은 건 전부 다 나가리였고, 그 대신에 남겨진 현실은 견제와 질투가 난무하는 치열한 경쟁과 땀 냄새 나는 훈련들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교양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과 수업시간 외 훈련은 자율적인 참여로 실시된다는 것 정도일까.

‘그놈의 엘리트 소리는 언제까지 하려고 그러나.’

엘리트는 나의 작은 실수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다.

그래, 작은 실수였다.

헌터학과에는 헌터가 되고 싶어 안달난 놈들만 있다는 걸 깨닫고 난 이후, 나의 계획은 그냥 조용하게 학교를 다니는 것으로 바뀌었다.

동기들과 사이좋게 친목질을 하며 캠퍼스라이프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관심을 끌어봤자 내 꿈에서 한 발자국씩 멀어지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우수한 헌터에 가까워지는 거였고, 친구 하나를 사귀면 미래의 헌터 친구가 하나 늘어날 뿐이었다.

따라서 제적당하지 않고 졸업할 수 있는 만큼의 성적만을 따면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학교생활을 해나가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하아, 그 때 조심만 했어도, 진짜.’

학기 초에 실시했던 에테르 측정에서 난 작은 실수를 범했고, 그 실수는 모든 계획을 박살내놓았다.

개강 첫 날에는 신입생들의 신체검사와 에테르 측정이 있었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이 측정은 평가에도 들어가는 측정이었으며, 때문에 공정성을 위해서 8개의 검사실에서 개인별로 실시가 되었다.

주변 녀석들은 어떻게든 에테르 측정량을 늘려보겠다고 별의별 궁리를 다하고 있었지만, 이미 조용히 지내기로 결정했던 나에게는 관심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묵묵히 내 차례를 기다렸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해 평범한, 아니 중간 이하의 결과를 내는 것뿐이었다.

신체검사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사실 신체검사는 굳이 낮게 받을 필요도 없었다. 키와 몸무게가 헌터 적성에 영향을 줘봤자 얼마나 주겠는가.

내가 집중해야할 것은 오직 에테르 측정뿐이었다. 만약 너무 낮게 나온다면 오히려 의심을 받을 테고, 다른 의미로 주목을 받는다.

열등생이 특별관리를 받는 건 흔한 일이다.

너무 높게 나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에테르를 감추되 다른 녀석들의 평균수치보다 조금 낮은 정도.

딱 이정도가 적당했다.

이미 한참 전에 주변 녀석들의 전체적 수준에 대한 분석이 끝났고, 적당한 평균 수준도 이미 계산이 끝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에테르 측정기가 혈압 측정기와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에테르 측정기는 적당한 병원 대기실에서 흔히들 찾아볼 수 있는 혈압 측정기와 똑같이 생겼었다.

심지어 손을 팔뚝까지 집어넣고, 측정하는 동안 움직이거나 크게 숨을 쉬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까지도 똑같았다.

신체 검사가 끝나고, 순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기계 앞에 앉았을 때, 난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의심도 없이 팔뚝을 집어넣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측정되는 혈압 수치를 바라보고 있던 의사 양반의 눈빛과 반응이 점차 격렬해지는 것을 보고나서야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끝나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이번 년도 신입생 중 최고의 유망주가 되어있었다.

측정된 에테르는 5142 Et. 다른 녀석들의 평균값이 대략 1400 Et 정도였음을 생각하면, 대략 3배 정도의 수치가 나온 것이다. 이것도 급하게나마 억제시켜서 나온 결과였다.

측정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원래 이런 비밀일수록 빨리 퍼져나기 마련이었다. 결국 고작 이틀 만에 거의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한 수업에서 교수가 ‘이번 신입생중에 에테르 수치 5천을 넘겼다는 게 누구냐’라고 묻는 것으로 아예 확인사살까지 끝나버렸다.

“뭐야, 미스터 호잖아? 또 도서관 가는 거?”

또 다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이번에는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몇 번이고 말하는데 나는 조 씨야. 정 미스터라고 불러야겠다면 미스터 조라고 불러라.”

“질문에 대답이나 해. 또 훈련 빼먹고 도서관 가는 거야?”

그 익숙한 목소리가 다짜고짜 시비를 걸어왔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 이 녀석은 만나면 십장팔구 시비부터 걸어왔으니 다짜고짜는 아닐 지도 모르겠다.

“하아…….”

딱히 얼굴을 쳐다보고 싶진 않았기에, 그냥 계속 바닥을 내려다본 채로 말했다. 귀찮다는 생각이 벌써부터 샘솟기 시작했다.

“어째서 훈련에 참가하지 않는 게 잘못이라는 것처럼 말하는 걸까? 내가 알기로 수업 외의 훈련은 자율인데 말이야. 안 그래? 미카엘라.”

“자율이라고 해도 그 쪽 때문에 다른 조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 당연히 참가해야 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누군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난 조장으로써 뒤떨어지는 조원을 훈련에 참가시킬 의무가 있단 말이야.”

‘그딴 병신 같은 의무는 대체 누가 부여한 의무인데.’

결국 고개를 들어 올리자,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금발의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선명한 금발은 햇빛을 받아서인지 평소보다 더욱 빛을 내고 있었다.

이쪽을 내려다보는 에메랄드빛 눈동자에는 깊이가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눈매 때문에 오히려 까칠하다는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어디선가 귀족 같은 분위기가 있었지만, 그건 곱게 자란 귀족 영애의 것이 아니라, 자긍심으로 다져진 굳센 여기사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요약하자면 까탈스러운 녀석이었다.

전필 수업에서 내가 속해있는 A조의 조장이자, 진짜배기 엘리트로써 과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미카엘라는 그 당당한 모습으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말이야, 아직 학생이라지만 한 명의 헌터로써 부끄럽지도 않냐? 적어도 1인분은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될 거 아니야! 이 세금 도둑놈 자식아.”

자기네 나라 세금도 아니면서 별 걱정을 다한다.

“아, 그러니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네가? 알아서? 웃기시네.”

“항상 평균은 하고 있잖아.”

“아, 그러세요? 5000 Et를 넘기는 에테르를 가지고 겨우 평균 밑에 맴도는 걸 진심으로 평균은 한다고 말하는 거야? 넌 그냥 게을러빠진 거야. 지금 우리 조에서 네가 제일 뒤떨어진다고, 자존심도 없―”

회심의 팩트폭격인 듯했지만, 나에게 별 타격은 없었다. 그거야말로 내가 원하던 결과였으니까.

오히려 ‘넌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격이었다.

“아, 버스 왔다. 그럼 내일 보자, 미카엘라!”

때마침 도착한 버스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쏟아지는 잔소리를 뒤로한 채 버스를 향해 발을 옮겼다.

“야, 호!”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등 뒤를 붙잡았지만 당연히 무시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요금이 체크되는 알림이 들리고, 잠시 후 버스 문이 닫혔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버스 안까지 쫓아올 생각은 없는 듯 했다.

나는 일부러 그녀를 피해 차도 쪽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아까 서있던 그 자리에서 이쪽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왜 이토록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조별 활동이나 모의 전투에서 딱히 발목을 잡았던 기억은 없었다. 그리고 설령 조에서 크게 모자란 녀석이 있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쪼아대는 조장은 없었다.

저 녀석만 유독 저랬다.

빌어먹을 완벽주의자 같으니라고.

네 인생 피곤하게 사는 건 상관없는데 남의 인생까지 피곤하게 만들지는 말란 말이다.

‘뭐, 그래도 저 녀석 덕분에 살았지…….’

하지만 그녀의 존재가 나에게 방해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작은 실수 하나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학교의 이목이 집중되었을 때, ‘적당히 낮은 수준만 유지하자’는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결국 나는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능한 천재가 되기로 결심했다.

갖고 있는 에테르는 넘쳐나지만, 능력이 뒷 받쳐주지 않아 오히려 다른 녀석들보다 뒤떨어지는 천재.

요컨대 하드웨어는 쩔어주지만 소프트웨어가 맛이 간 느낌이었다.

그러나 내게 몰려있었던 기대와 관심들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기에, 이 계획은 오히려 나에 대한 압박들을 늘어나게 하는 결과만 가져왔다.

심지어 학기 초에는 반강제적으로 자율 훈련도 참가해야만 했었다.

그 때 내 계획을 완성시켜 준 것은 영국에서 온 한 명의 유학생이었다.

개강하고 2주 정도가 지났을 무렵 편입해온 그 유학생은, 에테르 측정 결과 5100대보다 높은 5700대의 Et를 기록했다. 그리고 에스퍼 능력 또한 월등히 뛰어났다.

영국에서 대대로 내려온 퇴마가문의 일원이라는 그 녀석은, 그야말로 천재라고 불릴만한 에스퍼였다.

그 녀석이 바로 미카엘라였다.

타인이 봤을 때 내가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를 병아리라고 한다면, 그녀는 이미 알을 깨고 나온 것도 모자라 이미 싹수까지 보이고 있는 천재인 것이다.

잠재력만 뛰어난 예비 천재는 진짜 천재의 등장에 비로소 관심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생긴 별명이 (구)엘리트.

집중되었던 교수들의 관심이 실망으로, 동기들의 질투와 부러움은 안도와 비웃음으로 바뀌면서, 어느새 이런 별명이 달라붙게 되었다.

‘생각대로 잘 풀려나가고 있어.’

잠재능력만 뛰어난 천재. 혹은 한물 간 엘리트.

나에게는 무능한데 노력도 안하는 녀석이라는 이미지가 생겼고, 덕분에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대로 제적당하지 않을 정도의 성적만 유지한다면, 내 계획은 성공이었다.

‘이게 바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는 것이지.’

나는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구를 참으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출퇴근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차도가 텅텅 비어있어 버스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