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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3화 (3/135)

3화

“고생하셨습니다. 유선님.”

문 밖에는 검은 슈트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조용히 서있었다.

그는 꽤나 길게 기른 머리를 뒤로 묶어내려 꽁지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슈트 특유의 딱딱한 분위기와 묘하게 어우러져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유들유들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하, 괜히 한다 그랬네, 진짜. 원래 이 시간은 눈도 안 떴을 시간이란 말이다.”

유선은 짜증스럽게 불평을 내뱉는 동시에 입고 있던 블라우저를 벗은 후, 거의 던지다시피 남자에게 옷을 건넸다.

충분히 기분이 상할만한 행동이었지만, 남자는 그것에 익숙하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던져진 옷을 받아들었다. 남자는 살짝 고개를 숙여 혹시 더러워진 부분이 있는지 확인까지 했다.

남자가 겉옷을 받아들자마자 유선은 복도를 걷기 시작했고, 남자는 그녀에게서 한 걸음 정도 떨어져서 조용히 따라 걸었다.

신기하게도 남자의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게 제가 그냥 면접관들에게 맡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굳이 직접 나서셔서―”

“네가 직접 올린 녀석이 어떤 놈인지 너무 궁금해서 그랬다.”

“아, 예…….”

“뭐, 생각보다 흥미로운 녀석이기는 했어.”

생각보다 귀찮기도 했지만 말이야. 유선이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자세한 건 좀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저 녀석은 확실히 수상해. 네 능력에 저항했다는 것도 거짓말은 아니었나봐?”

“그 건에 관해서는 사실대로 보고했다고 누누이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야, 환아. 솔직히 다른 놈도 아니고 네가 그러면 대체 몇 명이나 믿겠냐? 위에 놈들도 그냥 자존심이나 세워주자면서 그냥 대충 눈감아주는 분위기더만.”

“하아…….”

환이라 불린 남자, 류환은 억울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확실히, 저 꼬맹이는 뭔가 있어.”

유선은 방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겉모습은 그냥 평범한 녀석이었다. 딱히 눈에 띄는 특징 같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선 에테르가 감지되지 않았다. 조금도 말이다.

에스퍼들은 각성했을 때보다 각성하지 못했을 때가 더욱 감지하기가 쉽다.

에테르를 관리 하지 못해 그 주위에 조금씩 새어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년에게서는 조금의 에테르도 느껴지지 않았다.

에테르 보유자가 아닐 리는 없었다. 만약 아니었다면 면접실은 찾아오지도 못하게 되어있으니까.

생각해볼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

가지고 있는 에테르가 감지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적거나, 자신을 상대로 에테르를 감춘 경우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말이다.

전자와 후자 모두 믿기 힘든 경우였다.

‘그리고 그 자식, 자기가 에스퍼라는 말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원호는 에스퍼 활동은커녕 능력을 사용한 적도 없었다. 잠재자라는 뜻이었다.

잠재자는 자신이 에스퍼라는 사실을 들으면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혼란에 빠져버려서 차근차근 설명해줘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자기가 적당히 말해준 설명에도 곧바로 납득해버렸다.

아니, 의문을 가지기는 했다. ‘헌터학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정작 자신이 에스퍼라는 말에는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환, 나한테 감지당하지 않을 정도로 에테르를 감출 자신이 있어?”

“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군요. 성공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류환은 자신감이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은밀행동에 관해서만큼은 자신과 견줄 헌터를 찾기 힘들다는 것에 그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저번 주 토요일에 몰래 나갔다 온 거 말하는 거면 바로 들통 났는데. 말만 안했을 뿐이지.”

“…딱히 그걸 생각하면서 말한 것은 아닙…니다만…….”

긴장으로 걸음이 느려지면서 표정이 굳어지는 환을 흘깃 바라보고서 유선은 미소를 지었다.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일까.

그가 거물인지, 아니면 거물인 척하는 피라미인지는 어차피 곧 판별이 날 것이다.

헌터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 않다. 그것이 짧은 학생시절에만 한정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 * *

“으아, 피곤하다.”

아르바이트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3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이게 다 이제 내일부턴 못 볼 테니 오늘은 마감까지 찍고 나간다며 기어코 가게에 남았던 아저씨들의 술주정 덕분이었다.

곱창집에서 마감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먼저 마치고, 바닥에 놓인 박스를 피해서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삐이걱.

침대가 흔들리며 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차싶어 화들짝 일어났다가, 그냥 다시 몸을 눕혔다.

어차피 내일부터는 내 방이 아니었다. 그 때까지만 부서지지 않는다면 상관이 없다.

처음 입주했을 때부터 이랬으니 내 책임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안 부수고 사용한 게 신기한 일이었다.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방 안의 짐들을 전부 박스 안에 정리해뒀다. 방에 남은 것들은 마지막 밤을 지내고 내일 씻는 데 필요한 것들뿐이었다.

짐들은 작은 박스 2개에 전부 정리되었다. 조금 빡세게 집어넣는다면 사물함 하나에도 전부 들어갈 듯한 양이었다.

조촐한 이삿짐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복잡해졌지만, 덕분에 내일 이사가 좀 편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좀 풀렸다.

방 안은 처음 입주했을 때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얼룩진 벽지와 군데군데 틈이 벌어진 바닥 때문에 그다지 깨끗하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방 안에 만성적으로 퍼져있는 곰팡이 냄새도 그런 인상에 한몫했다.

“헌터학과인가…….”

그 면접이 끝난 지 2주가 지났다.

조은대 헌터학과. 무슨 목적으로 세워졌는지는 분명했지만 뭘 배울 지는 짐작이 안가는 학과명이었다.

‘느닷없이 헌터라니, 무슨 영화 주인공이냐고.’

언젠가 이런 트러블이 생길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최대한 숨기긴 했지만 에테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건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감지 당했음을 느낀 적도 꽤 있었으니까.

하지만 대학 면접에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찌됐건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대학 생활이다.’

그토록 바라왔었던 대학생활이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나의 궁극적인 장래 목표에 있어서, 대학에 들어가는 건 꿈을 이루는 첫 걸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캠퍼스 라이프.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렐 것 같은, 낭만이 가득 담긴 말이지 않은가.

게다가 내일부터는 기숙사 생활이었다. 헌터학과 용으로 새로 지어진 기숙사는 완성된 지 2년이 겨우 지난 신축건물이었다.

당연히 침대도 새 것이고, 벽지도 바닥도 새 것이다.

침대가 부서질까봐 조심스레 몸을 눕히던 생활도, 곰팡이와의 전쟁도, 얼룩진 벽지도 울퉁불퉁한 바닥도 모두 안녕이었다.

“하아…….”

그럼에도 가슴 속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꿈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생을 사는 거였다.

헌터라는 존재는 내가 지향하는 목표의 완전 정반대에 속한 것이었다. 자석의 S극과 N극 같은 느낌이다. 결코 양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잠깐. S극과 N극이면 서로 붙는 거였나?’

…아무렴 어때.

벌써 새벽 4시였다. 내일을 위해서라면 잠에 들어야할 시간이었다. 착한 아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정석 빌드다.

더군다나 내일은 이사도 해야 되지 않는가.

비록 박스 2개짜리 조촐한 이삿짐이기는 했지만, 이런저런 절차들을 밟다보면 피곤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오늘은 빨리 잠들기로 하고, 원호는 이불 속에 몸을 집어넣고서 주변에 간단한 보온의 술식과 안티 디텍팅을 걸어두었다.

“그러고 보니…….”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면접을 봤었던 그 면접실이 떠올랐다.

면접실은 S3동 107호였다. 하지만 그 107호는 107호답지 않은 곳에 있었다.

“대체 왜 107호를 5층에 갖다 놓은 거야.”

물론 S3동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107호는 5층에 있다는 안내문이 대문짝만하게 붙어있기는 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107호는 1층에 달아놓는 게 이치에 맞지 않겠는가.

거기서 수업이라도 듣는 녀석들은 참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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