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2화 (2/135)

2화

헌터학과라고

“예? 뭐라구요?”

“귓구멍이라도 막혔냐? 조원호, 헌터학과 합격이라고.”

합격.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명문대, 조은대학교의 면접실 안에서 그녀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그토록 듣기 원했던 말이기는 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수험생들이 꿈에서도 바라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 증거로 지금 심장 박동이 2배 정도는 빨라져 있었다.

하지만 합격 앞에 붙은 말이 조금 거슬렸다.

내가 희망했던 학과는 경제학과였다.

헌터학과? 그런 과가 있는 줄은 몰랐고, 있다고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애초에 면접 자리에서 바로 합격 통보를 해주고 있는 지금 상황이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애당초 면접실 내의 분위기가 내 상상과는 너무 달랐다.

면접실이라 하면 뭔가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가 있을 것 같았는데, 나와 마주보고 앉아있는 잿빛머리의 여자는 턱을 괸 채로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셔츠는 단추가 두 개쯤 풀려있어 윗가슴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서 면접관다운 부분은 오로지 검정색 블라우저에 매달린 ‘조은대학교 면접관 유선’ 명찰 뿐이었다.

“저, 합격이라는 말은 기쁘지만, 전 그런 학과에 신청했던 적이 없는데요.”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내가 헌터학과에 실수로라도 신청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그만큼 헌터가 되는 것을 꺼려했으니까.

침착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귀찮다는 듯 머리를 몇 번 긁더니 앞에 놓인 서류를 들고 읽기 시작했다.

“에, 그러니까. 조원호. 21세. 검정고시 합격. 대학 수학능력시험 등급…은 넘어가자고. 필요도 없고, 딱히 불러줄만한 점수도 아니구만.”

그 말에 괜히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남에게 보여줄 만한 점수는 확실히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부 제끼고서, 에스퍼 적성 오케이. 그러니까 합격 오케이. 너도 이제 오케이?”

읽고 난 서류들을 가볍게 내던진 그녀는, 펼쳐진 서류들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으면서 간단한 이야기라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물론 나는 오케이가 아니었다.

“저, 혹시나 해서 묻지만, 헌터학과가 뭘 배우는 학과인가요?”

“네가 혹시나 했던 그 내용 그대로일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 혹시나가 혹시 아닐 수도 있잖습니까.”

“거 귀찮은 꼬맹이네. 말 그대로 헌터를 양성하는 학과다.”

그녀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이 사람은 사실 면접관이 아니고 연기자인 건 아닐까?’

여기서 진지해지거나 얼빠진 대답을 하면, 그 순간 저 벽이 허물어지면서 카메라가 나타나는 거다. ‘짜잔! 몰래카메라였습니다!’ ‘하하, 조원호 씨, 헌터학과 같은 게 진짜 있을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책상 밑으로 핸드폰을 꺼내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면접일은 오늘, 즉 1월 7일. 시간은 11시부터. 위치는 S3동에 107호. 몇 번이나 확인했고 전화로 확인까지 받았었다. 날짜와 시간, 위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가슴에 달린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도 분명히 ‘조은대학교 면접관’이라 적혀있었다.

만약 이게 장난이라면 학교 측에서 주최하는 수준의 장난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어디 굴러다니는 대학도 아니고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학인 조은대가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케이? 안 오케이?”

“오케… 아니, 아니아니 안 오케이!”

나도 모르게 그 당당한 분위기에 휩쓸려 대답할 뻔 했다.

“뭐야, 사내새끼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냐?”

“아니,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정도는 설명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방금 해줬잖아.”

“…진심입니까?”

쯧.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라.”

유선은 혀를 차더니 다시 턱을 괴고서 말하기 시작했다.

“7년 전, 어비스 게이트가 열린 이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게이트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모르진 않겠지?”

“아, 예, 뭐. 상식이니까요.”

어비스 게이트는 태평양 상공에 나타났던 거대한 게이트를 말했다.

가장 처음 열린 게이트이자 가장 거대한 규모였던 어비스 게이트에서는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 무리가 나타났지만, 소수만을 제외하고 모두 바다에 빠져죽는, 마치 삼류 코미디 같은 결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 이후, 내륙에서도 게이트들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변화를 맞이했다.

“몬스터들을 토벌하는 건 국가들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고, 이를 위해 각 국가는 실력 있는 헌터들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상황이야. 하지만 정작 에스퍼 숫자는 한정되어 있지.”

몬스터에게는 통상의 무기가 통하지 않았다. 에테르가 담긴 공격만이 몬스터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고, 에테르를 다룰 수 있는 건 에스퍼뿐이었다. 그렇기에 에스퍼만이 헌터가 될 수 있었다.

물론 통상의 무기들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몬스터들은 모두 에테르로 이뤄진 얇은 막을 갖고 있었고, 기존의 병기로 이 막을 뚫기 위해선 최소 대대규모의 화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정도는 삼류 헌터라도 쉽게 해낼 수 있는 거였다.

초창기 시절, 국내 육군 8개 사단이 5일에 걸친 작전에도 불구하고 옐로급 몬스터 토벌에 실패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몬스터는 단 한 명의 헌터에게 목이 날아갔다. 물론 그 헌터가 헌터 중에서도 터무니없이 강한 경우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국가에서는 몬스터의 출현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헌터들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징병이나 다름없는 형태로 헌터들을 끌어 모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헌터들이 다른 국가에 떠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헌터들에 대한 대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헌터들의 지위와 여건은 오늘날까지 수직상승해, 초창기에 거의 징병되다시피 끌려갔던 헌터들은 이제 사회적 동경과 선망의 된 것이다.

“헌터는 많을수록 좋아. 하지만 에스퍼 숫자는 한정적이고, 자기가 에테르 보유자인지도 모르고 사는 잠재자도 은근히 많아요.”

그녀는 말하던 도중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 물고선 불을 붙였다.

잠깐 동안의 고요한 침묵 속에서 담배만 조용히 타들어가다, 긴 한숨 소리와 함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학교 내부는 금연 아니었나?

“후… 그리고 잠재자 중에서 뒤늦게 자기가 에스퍼인걸 깨닫는 놈들이 문제지. 대개 자기 능력에 각성도 못한 채 헌터가 되겠답시고 뛰어드는데, 이런 놈들은 거의 다 첫 전투에서 갈려나가 버린단 말이야.”

그녀의 얼굴이 조금 구겨졌다.

“이런 놈들은 어쩌다 살아남아도 헌터로 남는 놈이 거의 없어요. PTSD 안 걸리면 그나마 다행이지. 국가적 손실을 떠나서 개인의 인생까지도 망가져버린단 말이야.”

나는 얼떨결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작게 미소 지었다.

알아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그냥 단순한 리액션을 취했을 뿐이었다.

“대충 알겠냐? 민간인 사이에 묻혀있는 에스퍼들을 찾아내 헌터로 키우고, 갈려나갈 예정인 초보 헌터들을 1인분은 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설립된 것이 요 헌터학과다, 이 말씀이야. 이제 오케이?”

그녀는 들고 있는 담배로 이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오, 오케이.”

“그럼 입학도, 오케이?”

“아니, 잠깐만요. 아까도 말했는데 전 그런 학과 신청한 적이 없거든요?”

이야기가 제멋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느끼고, 그걸 막기 위해 다급하게 외쳤다.

“설명했잖아. 에스퍼들 찾고 있다고.”

“그래서요?”

“이거 완전 빡통 대가리일세. 그래서 네가 여기 와 있다고.”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겐 면접을 보러오라는 통지가 왔었다. 하지만 그건,

‘신청 원서가 통과됐으니 면접을 보러 와라’가 아니라.

‘너 에스퍼로구나? 그럼 헌터일 한 번 배워볼래?’였던 것이다.

내가 낸 원서는 이 일과 조금도 관계가 없었다.

“저기,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제가 넣었던 원서는 어떻게 된 거죠?”

“엉? 아, 너 이 학교에 원서 넣었었냐?”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던 그녀가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알… 아냐, 그러고 보니… 다른 과 면접은 저번 주에 다 끝났다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그녀는 신경질 적으로 말하다 문득 뭔가를 떠올리고서 말해줬다.

‘아, 역시나.’

어쩐지 면접일이 일반적인 면접 시기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싶었다.

하긴 그런 성적으로 이런 명문대에 붙을 리가 없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말에 혹시나 해서 와봤지만, 기적이란 것이 그리 흔한 녀석은 아니니까.

결국은 또 재수인가…

원서를 넣었던 다른 대학들로부터는 이미 불합격 통보가 나와 있었다.

“뭐, 간단히 말하자면 떨어졌다는 이야기 아니겠냐. 안타깝구만. 힘내라.”

유선은 종이컵에 담배를 비벼 끄면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한 마디로, 안타까워한다는 느낌은 요만큼도 없었다.

그 모습에 조금 짜증이 났지만, 참기로 했다. 남 일인 것은 사실이 아닌가.

“하아… 뭐, 알겠습니다. 어쨌든 전 헌터 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없던 일로 해주시죠.”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을 접기가 힘들었다. 아니, 그래도 조은대 캠퍼스 구경은 했으니 낭비까지는 아닌가.

“재학기간 동안 모든 학비 지원에 장학금 별도 지원.”

뒤돌아서 한 발자국 내딛으려는 순간, 들려온 그녀의 말에 몸이 굳어버렸다.

“거기에 헌터들이 받고 있는 복지랑 혜택들도 부분 적용. 거기에 실적을 쌓으면 포상금도 제대로 나온다.”

난 어느새 뒤로 돌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꼭 헌터가 되라는 것도 아니야. 헌터 키우려고 만든 곳이긴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가 하기 싫다면 뭐 어쩌겠냐.”

그녀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때? 원하는 과는 아니더라도, 돈 한 푼 안들이고 용돈까지 받아가면서 조은대 졸업장 딸 수 있는 기회인데.”

그녀는 조은대 졸업장이 마치 단순한 자격증들 중에 하나인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조은대 졸업에 담긴 의미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은 상당부분이 복구되었으며, 마석의 도입으로 더 나아진 부분도 생겼지만, 게이트가 열린 초창기에 대한민국은 한번 국가 붕괴 직전까지 갔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으며, 거기에는 수많은 인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에는 극심한 인재난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은대 졸업장은, 그야말로 인생의 하이패스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헌터라니…….’

저 여자는 졸업 후 꼭 헌터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런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서 그리 쉽게 놔줄 리가 없지 않겠는가?

“혹시, 전과나 다른 학교로 편입하는 건 가능합니까?”

“야, 그래도 이게 다 나랏돈 축내는 건데 그건 너무 날로 먹는다는 생각 안 드냐? 양심은 집에 두고 다니나.”

“그래서, 안 됩니까?”

“당연히 안 되지.”

역시나였다.

정말 헌터가 되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면, 편입 정도는 가능하게 해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건 이러나저러나 졸업 후 헌터로 만들 생각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강제적인 방법도 사용하려들겠지.

“졸업 후에 헌터 말고 다른 진로로 나간 사람도 있나요?”

“이 과 생긴 지 이제 겨우 2년밖에 안 돼서 말이야. 안타깝게도 2년 만에 조기졸업 해내는 천재는 없는 모양인 것 같네?”

제적당한 녀석은 좀 있지만 말이야. 유선은 비교적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직 헌터가 되지 않은 선례는 없다.

하지만, 그건 그저 학과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선례가 없다기보다는 선례라는 것 자체가 형성이 안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할 만 할 수도 있겠는데?’

이 상황은 오히려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태라고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눈앞에 앉아있는 면접관이 직접 말했다. 헌터가 되고 싶지 않다면 되지 않아도 된다고.

그녀의 위치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면접관 정도나 되는 사람이 직접 말했다는 것은 꽤나 중요한 사실이었다.

물론 그녀가 진실을 말했다는 가정 하에.

‘큭, 다시 한 번 재수냐, 아니면 위험성을 감안하고서 조은대 입학이냐…….’

다시 한 번 재수할 생각을 하니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낮에 공부하고 거의 밤을 새워서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빠듯하게 학원비와 생활비가 나왔다. 그다지 다시 하고 싶은 생활은 아니었다.

하지만 헌터가 될 수도 있다는 리스크는 피하고 싶었다. 나에게는 헌터가 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조은대 입학인데…….’

이 무슨 기가 막힌 밸런스 패치란 말인가. 아무리 양쪽을 저울질 해봐도 정답이 나오질 않았다. 이마에 땀이 맺혀 흘러내리려 할쯤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말이야.”

앞에서 조용히 손톱을 만지고 있던 그녀가 뭔가를 깜빡했다는 듯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 학과로 오면, 군대도 면제된다. 헌터 혜택이니까.”

이후 내가 입학을 결정하는 건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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