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153화 (153/158)

# 153

빠악!!

두 주먹이 교차하며 서로의 몸통을 후려갈겼다. 포식자의 얼굴이 틀어지며 입가에 피가 흘렀고, 정권을 빗겨 맞은 강철의 늑골이 부서졌다.

한 번의 교환. 하지만 누가 더 손해인지는 극렬하게 갈렸다.

“쿨럭!!”

강철의 입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입안이 찢어진 것이 아닌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른 피.

내상을 입었다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지만.

“퉤.”

강철은 묵묵하게 입에 고인 피를 내뱉으며 자세를 다잡았다.

“대단하군.”

틀어진 얼굴을 똑바로 한 포식자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설마 이 정도로 해낼 줄이야. 솔직히 말하면 감탄스럽다.”

몸이 성한 곳 없는 강철과 곳곳에 잔잔한 타박상만 입은 포식자.

단순히 상황만 보면 그것은 조롱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포식자의 말에는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나태한 인간이 이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은 분명 수많은 고난을 거쳐 왔다는 뜻이겠지.”

마족들이 다른 종족들보다도 월등하게 강할 수 있는 이유는 마계라는 장소 자체가 그랬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사라지고,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이 망가진다.

생명체가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세계였기에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풍요로웠고, 살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됐다.

그런 인간이 자신에 필적할 만큼 강해졌다는 것은 자신들 못지않은 노력을 했다는 뜻이리라.

“……그런가.”

포식자의 말에 강철은 피식 웃었다. 비꼬는 거라면 한마디 해주겠지만 진심이 담긴 한마디에 빈정거릴 만큼 여유가 넘치지는 않았다.

‘그나마 멀쩡한 곳은 두 팔뿐인가.’

다른 몸보다 압도적으로 단단한 두 팔.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졌던 신체였지만 그것도 지금은 공격을 견뎌내기만 할 뿐, 포식자에게 치명상을 주지는 못했다.

‘대력타로는 부족하다는 거겠지.’

대력난탄과 이중격타를 비롯한 다른 스킬들을 쓸 수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모두 봉인된 상태였다.

포식자와 초 근접해서 싸우고 있었기에 다른 이들보다 제약되는 마나가 훨씬 더 심했기 때문이다.

‘이것 참 곤란하군.’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이 일대에 거대한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은 느꼈다.

뭔지는 모르지만 대개 이런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법사의 마법, 즉 마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나를 봉인하고 있는 눈앞의 이 포식자를 쓰러뜨려야만 했다.

‘힘들지.’

압도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극복할 수 있을 실력 차도 아니다.

오히려 가능하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주기에 절망감을 안겨주는, 그런 미묘한 힘의 차이.

아마 이대로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면 바깥에서 일어난 이변이 협회의 병력을 잡아먹고 마리라.

“압박감을 느끼나?”

강철을 바라보던 포식자가 입을 열었다.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너의 동료들이 죽겠지. 지금 이렇게 주먹을 멈추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몇 십, 몇 백 명씩 죽어간다.”

덤덤하게 이야기한 포식자가 강철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가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입장에서는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굳건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어차피 적들은 죽어나갈 테고, 이런 유리한 상황에서 죽는 얼간이들에게 슬픔을 느껴줄 만큼 유약한 성격도 아니었다.

“그런 무력한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그렇기에 포식자는 눈앞의 경이로운 인간에 대해서 궁금했다. 자신의 무력함으로 인해 모두를 잃고 있는 그의 마음이 과연 어떨지.

“…….”

포식자의 물음에 강철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이 질문의 의도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아마 그런 것에 궁금할 수 있을 만큼 지금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리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조용히 중얼거린 강철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모습을 본 포식자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세를 취했다.

“대답해줄 마음은 없다는 뜻이군.”

그 질문에 강철은 침묵으로 답했다. 그것으로 아주 잠깐의 휴식이자 대화가 끝났다.

쿠웅!!

내딛어졌던 발이 지면을 강하게 찍어 누른다. 둘의 주먹이 움직이고, 일대의 공간이 일순간 마비되었다.

콰과과광!!!

빗겨나간 주먹이 맞부딪친 땅을 박살내고 공기를 찢어발긴다.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박살 나며, 피가 튄다. 그럼에도 강철의 두 발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아직 두 팔은, 두 발은 건제했기 때문이다.

콰아아앙!!!

서로 내지른 두 주먹이 맞부딪쳐 격돌했다. 대력타가 실린 주먹과 온힘을 다해 내지른 정권.

빠각-

그 격돌 앞에 부서진 것은 강철의 주먹이었다.

‘이런.’

그렇게 자신 있었던 한 팔마저 정면에서 무너졌다.

한 순간에 무뎌진 공격과 방어. 그리고 그 틈을 타 포식자의 주먹이 강철의 몸을 노리며 쇄도해왔다.

예지를 통해 선명하게 보이는 공격로. 허초는 없고 하나같이 우직한 정면 공격.

하지만 그 압도적인 힘과 속도에 도저히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우드득-

“커억!!”

늑골을 향해 정면으로 주먹이 들어왔다. 갈비뼈가 부서지고 내장이 진탕한다.

즉사는 아니었지만, 더 이상 전투를 지속시킬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공격.

입가에서 뿜어져 나온 피와 무심하게 바라보는 포식의 눈동자. 그리고 뒤이어 다시 휘둘러져오는 포식자의 주먹이 선명하게 보였다.

‘주마등…… 인가.’

몇 번의 싸움 끝에 이제는 익숙한 경험. 강철의 눈앞으로 여러 광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가족들과 즐거운 한때, 그리고 갈기갈기 찢겨져있는 그들의 시체.

삶의 의미가 송두리째 빼앗긴 악몽. 매번 발작처럼 봐왔던 광경이 지나가고, 하현의 모습이 나타났다.

무의미하게 보내던 날들이 그 순간을 기점으로 변해간다.

다시 토벌자로서 활동했고, 다른 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과거의 속죄를 하듯이, 그렇게 다시 한 번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파앙!!!

“……!”

내질러진 포식자의 주먹이 강철의 머리 옆을 스친다. 절대로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격이었지만, 아주 간산히 피해냈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무력한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지.”

강철의 말에 또 한 번 휘둘러지려던 포식자의 주먹이 멈췄다. 망신창이로 변한 늙은 인간은 피투성인 채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조금 이기적일지는 모르지만…… 후회는 하지 않게 되었지.”

사리사욕을 위해 날뛰고 자신의 본분을 잊어 가족을 잃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설령 죽거나 실패해도, 거기에 대한 후회가 없을 만큼.

“그게 다인가? 후회하지 않는 것이?”

생각한 것보다 싱거운 대답에 포식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 반응에 강철은 씩 웃으며 자세를 다잡았다.

“한 가지 더 있긴 하지…….”

계속해서 흘린 피에 이제 굳건한 두 다리도 흔들린다. 한쪽 팔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고, 나머지 한 팔에도 조금씩 감각이 사라져 간다.

두 팔과 두 발은 더 이상 건제하지 않다.

“후회하지 않는 김에…… 자신이 맡은 역할도 이루고 죽자고.”

그럼에도 강철의 두 발은 굳건히 몸을 지탱했고, 두 팔은 포식자를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그 처절하고, 강인한 모습 앞에 포식자의 두 눈이 커졌다.

“……그렇군.”

이제 더 이상 나눌 대화는 사라졌다. 상대에 대한 경외심과 투쟁심을 담아 포식자는 전력을 다해 자세를 잡았다.

이글거리는 두 눈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렇다면 나 또한 내 역할을 다하겠다!!”

공기가 팽배하게 당겨진다. 흐릿해져가는 강철의 시야 속에 포식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보임에도 피할 수 없는 경로들.

만전의 상태에서도 막을 수 없을 전력을 다한 일격.

그 공격 앞에 강철의 한 가지 광경을 떠올렸다. 몇 번이고 옆에서 보았던 최강의 일격.

‘처음부터 끝까지 네게 이끌리기만 하는구나.’

자조적으로 웃은 강철의 주먹이 천천히 움직였다. 수백 년의 시간이 녹아있는 그 일격을 완벽하게 따라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단지 흉내를 낼 뿐이다.

“……?!”

수백 년의 시간을 한 주먹에 담아냈듯이, 수십 년간 갈고닦아온 자신의 모든 것을 이 일격에 담아낸다.

두 주먹이 다시 한 번 서로를 향해 맞부딪치고.

콰득!!

포식자의 주먹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다.

“인간!!!”

고통과 기합이 뒤섞인 외침과 동시에 포식자의 반대 팔이 무서운 속도로 휘둘러졌다. 한쪽 팔이 부서진 강철에게는 치명적인 사각.

“……?!”

하지만 그 주먹은 이전에 강철이 만들어둔 기류에 묶였다. 아주 찰나에 가까운 짧은 시간이었지만.

푸욱!!!

강철의 주먹이 그의 심장을 꿰뚫기에는 충분했다.

“커헉!!”

포식자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 피를 정면으로 맞으면서 강철은 포식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군. 정말 네가…… 인간이란 말인가…….”

자신의 부서진 주먹과 꿰뚫린 심장에 포식자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떻게 인간이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몇 번이고 자문했지만, 만족스러울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후우웅-

포식자의 몸에 새겨진 문신들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퍼져있던 마나 무효화가 점점 풀려갔고, 정지된 마나들이 다시금 움직였다.

‘끝났군…….’

이걸로 자신이 해야 할 모든 목표를 완수했다. 강철이 그렇게 안도한 순간.

꽈아악!

포식자가 심장을 관통 당한 채로 강철을 붙잡았다.

“뭐…….”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강철의 두 눈이 커질 때, 하늘의 위로 거대한 기운들이 느껴졌다. 이곳을 향해 쏘아지는 수백, 수천 개의 마법.

“나를 죽임으로서…… 네 역할을 완수했겠지. 나의 패배임을 인정하마.”

포식자는 끊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 또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너를 함께 데려가겠다.”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 같은 숨을 연명하며 포식자는 강철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꽉 안았다.

그 상황 속에 강철은 그를 떼어내기 위해 발버둥치려다 이내 깨달았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끝인가…….’

강철은 고개를 들어 마법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오리라고 생각했던 죽음이 선명하게 자신의 면전까지 다가왔다. 그 절망적일 지도 모를 상황 속에서.

“핫…….”

강철은 후회 없는 미소를 지었다.

***

“마나 무효화가 풀렸어요!!”

괴조의 몸을 얼려버린 아민이 크게 소리쳤다. 그에 하현은 흑월과 지현의 엄호를 믿으며 곧장 방어전환을 사용했다.

“아민 씨!”

하현과 아민의 손이 맞잡아지고, 일대의 공간이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꽝꽝 얼어 떨어져 내리는 괴조들을 무시하고 아민은 곧장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차원마법이 아닌 고도의 공간마법…… 그렇다면!”

아민의 두 눈이 번뜩이며 막대한 마나가 주변으로 소용돌이쳤다. 수백 개의 공간을 감싸듯이 펼쳐진 수백 개의 마법진.

그 마법진 하나하나가 공간들을 하나씩 붙잡고 강제로 벌려가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에 마왕군의 마법사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다해 저항하려했지만.

“흐으읍!!!”

쿠구궁!!

아민과 하현이 발휘하는 무한한 마나와 마법 앞에 결국 제어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공간에 대한 제어권을 강탈했어요! 어떻게 할까요?”

이제 저 공간들을 아민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부가 현재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움직여야할지 하현의 입장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합쳐!!」

그때, 고민하던 하현의 머리 안쪽으로 아퀼로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어차피 우리는 섬세한 컨트롤을 할 수 없어. 마왕한테 가는 길을 방해라도 받지 않도록 차라리 모든 공간을 하나로 합쳐버려!」

공간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것을 되돌리고 조종하기에 많은 힘이 들 것이다.

아퀼로의 뜻을 알아차린 하현은 아민에게 소리쳤다.

“모조리 합쳐 버려요!”

“예!!”

후우우웅!!!

기합과 동시에 페젤론의 공간에 마법진들이 또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끝없이 늘어나는 마법진들은 공간들을 단순히 붙잡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옭아맸고.

“발동!”

아민의 신호와 동시에 그 많은 공간들을 하나로 합쳐 버렸다.

마치 혼돈대륙과 같이 수십 가지의 공간들이 하나로 합쳐진 괴상망측한 세계.

그 안에서 흩어졌던 마왕군과 협회의 병력이 다시 완전한 상태로 마주쳤다.

「모두 한쪽으로 모여라!!!!」

콰가가각!!

아퀼로의 포효에 공간이 쩌렁쩌렁 울렸다. 모든 세계가 합쳐졌다. 그 말은 즉 바다나 화산지대 또한 같은 공간속에 있다는 뜻이었다.

[오랜만이군.]

화산지대에 선 브라스마티는 충만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권능에 미소를 지었다.

몇 번이고 가려고 했지만 닿지 않았던 공간. 하지만 드디어 닿게 되었다.

색의 대표인 아퀼로와 브라스마티의 각성으로 불리하게만 돌아가던 전장의 분위기가 일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너는 마왕한테 가!」

아퀼로의 외침에 하현은 고개를 돌려보았다. 수백 개의 공간이 합쳤지만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합쳐지지 않은 채 홀로 존재하는 공간.

그 공간을 내려다본 하현이 중얼거렸다.

‘선생님을 부탁해.’

「발견하는 즉시 보호할 테니 걱정하지 마.」

색의 대표인 아퀼로가 전력으로 보호한다면 어떤 부상을 입었든 안전하리라.

그 대답에 하현의 안도하며 마왕이 기다리고 있을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온힘을 다해 그곳을 향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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