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150화 (150/158)

# 150

32.최후의 전쟁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하현은 남은 방어구를 모두 착용했다. 레전드급 상자에서 만들어진 최고급 방어구들. 그것들이 전신에 빈틈없이 감쌌다.

솔직히 말하면 영 불편했지만 스탯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무장을 끝마친 흑월이 하현을 바라보았다.

“준비 다됐나?”

“예, 다 됐습니다.”

아이템의 상태와 컨디션 모두 문제없다.

자리에서 일어난 하현은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곧 있으면 모든 것을 건 전쟁이 시작된다.

완전히 무장된 자신의 모습을 보니 새삼스럽게 그 사실이 확연히 와 닿았다.

“긴장했나?”

하현의 표정을 본 흑월이 물었다. 그에 하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긴장되네요.”

이번 싸움만큼은 긴장될 수밖에 없다. 이 결과에 따라 수만 명이 죽는가, 아니면 세계가 멸망하는가가 결정되는데 긴장이 안 될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불간섭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고 해도 쉽사리 가라앉을 정도가 아니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그러면 더 실수를 하는 법이니까.”

말투를 가볍게 풀어낸 흑월이 하현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하현은 허를 찔린 표정을 짓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예, 흑, 아니, 지영 씨도 긴장하지 마세요.”

하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흑월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다소 담담한 척은 했지만 그녀도 아주 조금 긴장한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윽…….”

그 손길에 늘 무표정함을 유지하던 흑월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을 토닥여주는 하현을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어 보였다.

“가자.”

“예.”

두 사람이 문밖으로 나서자 드넓은 혼돈대륙 초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질서정연하게 서있는 수만 명의 병력이 펼쳐져 있었다.

서로 종족도 달랐고 과거에 깊은 원한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이미 사라져 버린 과거의 인연을 모두 잊었다.

마왕의 죽음이라는, 한 가지의 목적을 위해서.

「앞에 다모였어. 얼른 와.」

‘응.’

아퀼로의 말에 하현은 속으로 대답하며 걸음을 옮겼다. 하현의 존재를 깨달은 이들의 눈이 모두 모여들었다.

마왕을 죽이겠다고 공헌한 사내.

‘뭐야 별거 없잖아?’

‘저런 녀석이 마왕을 잡겠다고?’

이야기로 들은 것과 다른 모습에 몇몇 이의 눈동자에 의심이 떠올랐다.

전쟁이 끝나고 합류한 이들은 하현의 활약상을 보지 못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광경이었다.

하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의도적으로 불간섭의 효능을 살짝 풀었다.

쿠우우웅!!!

‘……!!’

‘……!!’

그와 동시에 하현을 깔보던 이들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혔다.

드래곤을 마주한 것보다 더욱 강렬하게 느껴져 오는 압도적인 존재감.

그제야 그들은 하현이 마왕을 죽이겠다고 공헌한 사내임을 인정할 수 있었다.

‘나도 강해지긴 한 모양이네…….’

순식간에 변해린 분위기에 하현은 자신이 새삼 얼마나 강해졌는지 체감하며 힘을 거둬들였다.

병사들의 앞에는 회장을 비롯한 협회의 주력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준비는 다 끝났나.”

“예, 다 했어요.”

지호의 물음에 하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마법진의 중앙에는 호르호이의 원석이 놓여있었고, 그 주변으로 마법사들과 드래곤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 마법진이 차원의 틈으로 향하는 통로를 만들어낼 것이고, 인류와 마왕군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기둥을 제거할 수 없게 된 순간 중간은 없어. 둘 중 한쪽은 전멸해야 한다.’

이쪽으로 향해오는 마왕과 마왕군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페젤론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등에 지고 오는 일종의 폭탄 같은 존재였다.

페젤론에서 전쟁과 달리 이번에는 절대 화합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인류가 패배해 두 차원이 멸망하든, 마왕군이 패배해 인류가 살아남든. 두 개의 선택지밖에 없는 것이다.

“가볍게 연설이라도 하시겠습니까?”

회장이 하현에게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연설이 마냥 허례의식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별거 아닌 말 한마디가 사기를 끌어올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전쟁이 전멸전인 만큼 사기는 중요했다. 하지만 하현은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음…… 그런 재주는 별로 없는데…….”

“이전에 마왕을 물리치겠다고 단언하던 수준이면 충분할 거예요. 그때 깊은 감명을 받은 이들이 많았었으니까요.”

라젤린의 말에 하현은 목을 매만지며 몸을 돌렸다.

하현의 몸 주변으로 푸른색 빛이 일렁였고, 눈앞에 거대한 단상이 갑작스럽게 생겨났다.

「모두한테 잘 보여야지.」

아퀼로의 말에 하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단상 위로 올라섰다. 수만의 병력이 한 눈에 보이고, 그들의 시선 또한 또렷하게 느껴졌다.

‘할 말이라…….’

지금 이들의 사기를 이끌기 위해서는 어떤 말이 필요할까. 곰곰이 머리를 굴려 봐도 좀처럼 하현의 머리 안에서 좋은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에이. 뭘 말하던 어때.’

한참 고민하던 하현은 부질없음을 깨닫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놈들에게 패배하면 저희들은 모두 죽습니다.”

하현의 말에 모두가 술렁였다. 다짜고짜 죽는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다니. 하지만 하현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배신하고 그들의 편이 되어도 죽고, 살기 위해 도망쳐도 그들이 이곳에 오면 결국 죽을 겁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하현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인류에게 선택지는 오직 마왕과 싸우는 것뿐, 다른 선택지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맞서 싸운다면 원수에게 칼을 꽂을 수 있습니다. 얼굴에 침이라도 뱉을 수 있고, 부상이라도 입힌다면 다른 이들이 대신해서 죽여줄 겁니다.”

그렇기에 하현은 그저 사실만을 고했다. 어느 쪽이 더 이득인지, 그것을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싸우십시오. 고통스러워도 이를 악물고 눈앞의 적에게 달려드십시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최대의 복수입니다.”

연설을 끝낸 하현은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우렁찬 함성 소리도,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모두의 눈에 강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조금 다른 방법이었지만, 사기는 충분히 끌어올려진 듯했다.

돌아오는 하현을 본 라젤린은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현 씨는 늘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내시네요.”

“뭐 그냥 아무 말이나 해봤을 뿐이에요.”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인 하현은 고개를 돌려 지호를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하죠.”

하현의 말에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사들과 라젤린에게 눈길을 보냈다.

각자의 자리에 선 마법사들이 조금씩 마나를 한곳으로 집중시키기 시작했고, 라젤린이 거기에 신성력을 보탰다.

“아퀼로.”

「알았어.」

모습을 드러낸 아퀼로가 마나와 신성력, 두 개의 힘이 서로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조정해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회장과 지호, 아민이 다른 마법을 준비하며 대기했다.

우우웅!!

두 개의 힘이 맞물리며 어느 정도 커졌을 때, 세 사람의 공간마법이 있는 힘껏 그 공간을 비틀었다.

마나와 신성력, 두 개의 힘이 하나로 합쳐지고 은빛의 힘이 나타났다.

‘이게 차원과 관련된 힘일 줄은 생각도 못했지…….’

타드델린이 몇 번이고 사용했었던 힘. 이것이 바로 차원의 속성을 띠고 있는 힘이었던 것이다.

‘운이 안 좋았다면 불간섭도 뚫렸을 수도 있었겠지.’

차원의 힘에 불간섭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더 강력한 힘이었기 때문이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간다.”

지호의 신호와 동시에 차원의 힘이 호르호이의 원석에 스며들어 갔다.

강렬한 은빛이 감돌더니 이내 녹색 연기를 흘러나왔고, 마법진의 안쪽을 가득 채웠다.

후우웅!!

마법진으로부터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고, 그에 반응하듯 독들이 하늘로 떠올라 차원을 녹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색 공간.

그 너머에 아주 희미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건가…….’

아직 눈에 다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있지만, 하현은 알 수 있었다. 저것이 바로 멸망한 페젤론과 마왕군이라는 것을.

“확장시켜라!”

차원독에 의해 구멍은 더더욱 넓어졌고, 이윽고 수만의 대군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문으로 만들어졌다.

그 선두에 서게 된 하현은 뒤를 살짝 바라보고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갑니다.”

하현의 발이 차원의 틈을 향해 내딛어졌다. 발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지만, 하현의 몸은 아무런 문제없이 바로섰다.

그렇게 다시 한 걸음, 또 한 걸음. 하현은 앞장서서 차원의 틈 안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 모습에 다른 이들도 망설임 없이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역시 아직 거리는 남아 있구나.’

마왕군은 눈에 아주 희미하게 보일만큼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아마 기다리면 이 주, 마주 걸어간다면 일주일은 걸려야 마주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려줄 시간은 없다. 하현은 저장고에서 이번에 얻었던 마왕의 수정을 바라보았다.

마왕의 수정(???)

내구도 무한

마왕의 모든 것이 담긴 결정체다. 가공은 불가능하며 마왕과의 공명에만 사용가능하다.

-가공할 수 없습니다.

-아이템을 소유하고 있을 시 마왕과 공명할 수 있습니다. 특정 조건을 만족할 때마다 마왕이 지닌 힘과 기억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마왕의 힘을 가질 수 있는 무궁무진한 아이템. 하지만 이미 마왕의 기억을 물려받은 하현에게는 그다지 쓰임새가 없는 그저 그런 아이템이었다.

그렇기에 하현은 이것을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아퀼로.’

「……좋아. 간다.」

쿠구구궁!!!

아퀼로의 대답과 동시에 하현의 옆으로 거대한 공간이 열리며 기계용 상태의 아퀼로가 나타났다.

하현의 손에 있던 마왕의 수정은 공중으로 떠올라 아퀼로의 손에 쥐어졌다.

키이이잉-

마왕의 수정이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거기서 나온 힘의 파동이 하현을 비롯한 모든 이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끌린다.’

이 힘에 반응하는 것은 이쪽뿐만이 아니었다.

저 멀리 떨어진 마왕군 또한 이 힘에 반응하며 똑같은 파동이 일어났다. 그렇게 두 개의 파동이 차원의 틈에서 맞닿았고.

후웅!!

두 집단의 거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좁혀졌다.

‘저건…… 대단하군.’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에는 마왕의 군대가 모두의 눈에 똑바로 보일 정도로 좁혀졌다.

종류를 알 수 없는 수십 수백 종류의 괴물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들을 지휘하는 마족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위압감 넘쳤지만, 더욱 무시무시한 것은 그들의 주변으로 펼쳐진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페젤론을 안고 오는 게 설마 이런 모양일 줄이야.’

마왕군의 주변에는 수십, 수백 개의 다양한 풍경들이 흩어져 있었다.

어떤 병단은 화산지대의 위에 선채 걸어오고 있었고, 어떤 병단은 광활한 사막지대의 위에서 오고 있었다.

바다도, 하늘도, 페젤론에 존재했던 모든 장소들을 등에 업은 채 이곳을 향해 건너오는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페젤론 그 자체였다.

“이거…… 기껏 짜온 전략이 꼬이게 되었군요.”

그 모습을 살펴본 민철이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군대가 맞부딪치는 순간 저 뒤틀려져 있는 공간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에 짰던 대형이나 작전들이 대부분 사용할 수 없게 되리라.

“저 녀석들처럼 병단을 나누는 수밖에 없겠군.”

마왕군을 바라본 지호가 중얼거렸다. 다행히도 아직 거리는 남아 있었다. 기존의 대형을 조금만 수정하면 어느 정도 대응은 가능하리라.

협회의 병력이 빠르게 재편성되어 갔고, 그 속에서 하현은 선두에 선채 마왕군을 바라보았다.

‘……저기군.’

마왕군의 가장 뒤편, 그 어떤 병단보다도 거대하고 황폐한 세계를 등에 업은 한 사내가 있었다.

천천히 이곳을 향해 걸어오는 그 사내의 모습에 하현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왕!’

저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공간을 꿰뚫고, 쉴 새 없이 싸워야 할 것이다.

하현은 마음을 굳게 먹고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 순간.

“자자. 같이 갑시다.”

지현이 하현의 어깨를 잡았다.

“예, 예?”

그 갑작스러운 손길과 말에 하현은 놀란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저기까지 가다가 붙잡히거나 그러면 전략적으로 손해잖아? 우리가 쾌속하게 모셔다 줄게.”

“마왕이 갑자기 어디로 이동할지 모르니까 만약을 위해 저도 함께 갈게요!”

“나도 간다.”

지현을 뒤따라 아민과 흑월 또한 하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철은 머리를 긁적였다.

“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만 일단은 같이 가마. 누구를 지휘할 능력은 없으니.”

합류하겠다는 네 명의 모습에 하현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불간섭인 자신이라면 몰라도 이들은 자칫 잘못하면 다칠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지.’

하지만 이내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두 이미 죽음을 각오를 하고 있다.

지금은 승률을 좀 더 높일 수 있는, 최선의 작전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나도 같이 가고 싶지만 딱 거기까지 능률이 좋다. 후방은 맡겨두고 가라.”

“꼭 살아 돌아오십시오.”

「제대로 하고 와.」

지호와 민철, 아퀼로는 뒤에 남기로 했다. 누군가는 병력을 이끌어야만 하니 당연한 것이었다.

“……즐거웠어요.”

“늘 도움만 받았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같이 용암에나 들어가지. 로드.]

라젤린과 회장, 브라스마티는 담담하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전쟁이 어느 형태로 끝나든, 그들에게는 이것이 마지막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각각의 인사와 이야기에 하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씩 웃어보였다.

“끝나고 회식이나 한 번 해요.”

그 말에 모두가 벙 찐 표정을 하다가 이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소를 지은 하현은 몸을 돌리고 자신들을 향해 오는 마왕군들을 바라보았다.

“갑니다.”

인류의 모든 것이 걸린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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