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호르호이의 원석에 대한 사용 방법이 모두 정리됐다.”
회의실에 모인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 시선을 받은 지호는 곧장 옆에 마법진의 안에 보호되어 있는 호르호이의 원석을 향해 다가갔다.
“호르호이의 원석은 독 그 자체라고 보면 된다. 어떤 힘이 가해지냐에 따라 무한한 독을 만들어낼 수 있지.”
지호의 손가락 끝에서 나온 작은 번개가 원석을 휘감았다. 푸르스름한 빛이 원석에 머금어지고, 이내 녹색 연기를 내뿜었다.
거기에 지호가 물을 가볍게 뿌리자 연기 안에서 번개가 일렁이며 나타났다.
“이렇게 보다시피 번개를 가하는 순간 그와 관련된 독이 나타나지. 아마 오드리히 일행은 차원과 관련된 힘을 원석에 부여해 만들었을 거다”
“그 차원과 관련된 힘이 뭐지?”
흑월의 질문에 지호는 턱을 쓰다듬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낸 것이 없다. 아마 에들렌이 가진 마법 중에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
“하지만 에들렌이 차원마법을 지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
공간과 시간. 이 두 가지가 가장 난이도 높으며 최고위로 뽑히는 마법이다.
하지만 차원에 관련된 마법은 에들렌도 가설만 내세웠을 뿐, 실제로 사용된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일단 그 부분은 계속해서 연구를 할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 다른 문제가 하나 있다.”
다른 문제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모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지호가 고개를 돌려 하현을 바라보았다.
“호르호이의 쓰임새는 알아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사용할 생각이지?”
호르호이의 원석에 나오는 차원독은 틈을 열 수만 있지 틈을 닫을 수는 없었다. 그 말은 즉 이걸로 마왕의 침공을 막아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효과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마왕을 맞이하러 차원의 틈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하현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굳이 마왕을 맞이하러 간다는 말인가. 그에 하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마왕군이 어디서 나타나는지 저희가 특정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차원의 틈은 이세계 전체와 연결된 장소다. 그 말은 즉 이 협회의 건물 위에 나타날 수도 있고, 저 멀리 떨어진 섬 위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이곳으로 건너오는 마왕군이라는 그 존재 자체 때문입니다.”
“마왕군의 존재?”
“예, 마왕군이 이 땅으로 내려오면, 아마 높은 확률로 곧장 세계의 멸망이 진행될 겁니다.”
여태까지 마왕군이 건너오면 세계가 멸망하다는 것이 그들에 의해 세계가 지배당할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마왕군은 이제 페젤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후까지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들이죠.”
마왕군이 이세계에 강림하는 순간 멸망한 페젤론의 모든 것이 이곳으로 건너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두 개의 차원이 엉키고, 부서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게 대체 무슨…….”
“마왕이 중간계로 건너오면서부터 세계가 멸망했었죠. 그건 단순히 두 세계를 잇는 통로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거기서 나온 마족들 자체가 마계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마계에만 한정되었던 멸망이 마족들에 의해 옮겨졌고, 그것이 페젤론 전체에 멸망까지 번졌다.
이 모든 것이 본래라면 불가능했을 일으킨 마왕의 존재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번 던전의 정보를 보지 못했더라면 몰랐겠지…….’
단순히 정복전쟁이 아니자 알아낼 수 있었던 사실. 하현의 설명에 회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차원의 틈에서 승부를 내야한다는 뜻이군요.”
페젤론을 멸망시킨 최강, 최악의 군대. 아무리 지금 협회의 병력이 강해졌다고 해도 전면전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는 수준이다.
하현의 말에 라젤린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희들이 시련만 사용할 수 있었다면…….”
페젤론의 군대가 시련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개의 차원이 지나치게 융합해 버린 특수한 지역에다가 하이룬의 신성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지금 만들어지는 병력은 이전에 군대처럼 시련을 통한 성장이 불가능한 것이다.
조금 침울해지는 분위기에 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지나간 일로 아쉬워할 시간은 없습니다.”
하현은 주변의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마왕은 제가 죽입니다.”
이번 전쟁에 있을 최대의 변수. 그 변수를 차단하는 것이 바로 하현이 생각한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마왕군을 상대하는데 전력을 다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회의는 끝이 났다.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위해 흩어졌고, 하현은 곧장 수련장을 향했다.
‘우선, 권부터 갈고닦아야 돼.’
지금 건너오는 마왕이라면 이미 권을 완벽하게 마스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와 대등하게 겨루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권에 익숙해져야 했다.
‘오늘부터 모든 시간을 수련에 투자한다.’
어차피 굶다가 아사할 일도 없고, 졸려서 졸도할 일도 없다. 그렇다면 굳이 그 두 가지에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으리라. 슈트로 갈아입은 하현은 자세를 잡았다.
“후우…….”
숨을 고르고 천천히 주먹을 내지른다. 처음 시작에는 딱히 고정된 형태가 없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움직임들이 흐름을 만들어가며 공간에 얽혀든다.
후우웅-
그렇게 공간이 멈추면, 그 정지된 공간속에 만들어둔 길을 본다. 그리고 그 길을 타고 주먹을 내질러, 시간을 가른다.
파앙!!!
주먹에서 터져 나온 충격파에 수련실이 뒤흔들렸다. 충격파만으로 이 정도 위력을 나온 것은 어마어마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지만, 하현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소리가 나왔어.’
권은 절대적인 필살기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제압해야 하고, 깨닫지 못한 채 죽여야 한다. 하지만 방금 전 하현의 주먹은 그렇지 못했다.
마왕까지 갈 필요 없이 SS급 수준만 되더라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만큼 형편없었다.
‘이대로 안 돼…….’
하현은 입술을 씹었다. 이대로라면 안 된다. 천천히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주먹을 휘두른다. 또 다시 소리가 터져 나왔고, 하현은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그렇게 끊임없이 주먹이 휘둘러지고, 시간이 지나자 피로와 공복, 수면욕이 일어났다. 하지만 계속해서 주먹을 휘두르자 그것들도 잊혀져 갔다.
‘조금 더.’
이대로 계속해서 휘두른다면 분명 나아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하현은 끊임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조금 더…….’
하지만 몇 번이나 반복해도 움직임은 나아지지 않는다. 공간은 느슨해지고 시간은 늘어만 간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하현의 주먹은 더욱 무뎌져 갔다.
그 모습에 하현은 초조함을 느끼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반드시 강해져야만 한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몸은 말을 듣지 않는 것인가.
‘안 돼!’
가라앉았던 피로와 공복감, 수면욕이 다시금 올라왔다. 그에 주먹은 더더욱 뭉개져만 갔고, 하현의 자세가 완전히 풀려갔다. 바로 그때.
“그만해라.”
뒤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에 하현은 처음으로 주먹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무식하기는…….”
그곳에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강철이 서 있었다.
“허억…… 허억…….”
“쯧.”
거친 숨을 몰아 내쉬는 하현의 모습에 강철은 혀를 차며 무언가를 던졌다. 반사적으로 잡아낸 하현은 그것이 빵과 마실 것임을 알아차렸다.
“일단 먹어라. 이야기는 그 다음이야.”
“……예.”
하현은 강철이 시키는 대로 수련장에 주저앉은 다음 빵과 마실 것을 먹었다. 공복감이 사라졌고, 피로와 수면욕도 조금 사그라들었다.
얼추 음식이 모두 줄어갔을 때, 강철이 입을 열었다.
“네가 얼마나 여기 있었는지 자각하고 있냐?”
“아뇨.”
강철의 말에 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완전히 집중한 상태였으니 한 며칠은 지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3시간이다.”
하지만 강철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현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었다. 그 믿을 수 없는 시간에 하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바라보았다.
“……예?”
“네가 주먹을 휘두른 지 고작 3시간밖에 안됐다고.”
강철의 말에 하현은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정신을 집중하며 온힘을 다해 휘둘렀는데 고작 3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집중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에 강철은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으니 아무리 주먹을 휘둘러도 집중될 리가 없지.”
“……그렇게 티가 났습니까?”
나름대로 동요를 숨긴다고 숨겼는데 모두 보였다는 것인가. 하현의 말에 강철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세 명이 눈치챘었지. 보기만 해도 알아챘는지 나보고 충고 좀 해달라고 하더군.”
“세 명이요?”
“에잇 됐다. 일어서.”
구체적인 숫자에 하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강철은 대답을 얼버무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에 하현은 곰곰이 바라보다가 손을 맞잡고 일어섰다.
“잠시 나가서 공기 좀 쐬고, 마음이 정리되면 다시 와라. 지금 정신머리는 뭘 해도 안 될 테니까.”
“…….”
“내가 이제 너보다 약할지는 몰라도 훨씬 오랜 시간동안 단련해 왔다. 그런 상태에서 하는 단련은 아무 도움이 안 돼. 그러니 일단 머릿속부터 정리해라.”
“예…….”
강철의 말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은 무엇을 해도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다.
충고대로 수련장을 나온 하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방어전환으로 경계로 들어섰다.
그리고 4인의 결사대 던전이 있었던 무인도에 내려섰다. 바깥은 시간이 지나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고, 무인도는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했다.
“후우…….”
한숨을 내쉰 하현은 곧장 걸음을 옮겨 바닷가 근처의 바위 위에 앉았다. 그러자 하현의 옆에 푸른색 입자가 모이더니 이내 아퀼로의 모습이 나타났다.
“마왕 때문에 그러는 거지?”
아퀼로의 말에 하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아퀼로는 한숨을 내쉬며 옆에 앉았다.
“마왕이 자기라도 신경 안 쓴다며?”
“뭐…… 그랬었지.”
아퀼로의 물음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4인의 결사대 던전을 완수하면서 마왕에 대한 마음이 누그러지거나 싸울 수 없게 된 것까지는 아니다.
“근데 조금 걸리네.”
다만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돌아오는 것이 아닌,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오는 마왕의 존재가.
“흐음…… 뭐 조금 그렇긴 하지.”
아퀼로는 하현과 거의 일심동체였기에 무엇이 고민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마왕은 무슨 목적으로 이곳을 향해 건너오는 것일까.
마왕군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 할 수도 있고, 단순히 던전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세계를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려고 할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일까…….’
만일 전자라면, 아무런 망설임이 없어진다. 하지만 후자라면? 그 생각이 하현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퀼로가 입을 열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이 너라고 생각해서 더 불편하지?”
“……조금은.”
애초에 마왕이 생긴 원인도 자신의 탓이 아닌가. 그런데 그저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마왕을 세계를 위해 죽여야 한다니. 마음이 무겁지 않다면 이상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말이야.”
그 대답에 아퀼로는 조용히 하현을 바라보다가 어깨에 턱을 걸쳤다. 그리고 그대로 하현의 볼을 손가락으로 툭 찔렀다.
“너는 바보야.”
“어, 어?”
갑작스러운 아퀼로의 말에 하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볼을 쿡쿡 찌르며 아퀼로는 하현을 바라보았다.
“마왕의 탄생에도, 네가 이곳으로 건너온 것에도 네 의사는 없었어. 근데 왜 네가 이 상황에 대해서 불편함을, 죄책감을 느껴야하는데?”
“…….”
아퀼로의 말에 하현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에 건너오면서 하현은 단 한 번도 전이에 대해 불행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비루하던 인생을 살다가 이곳으로 건너오면서 새로운 기회를 잡지 않았는가.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마왕에 대한 죄책감에 머리가 더 복잡해졌었다.
“네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알아. 마왕이 마계에서 했을 고생과 비교한다면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하지만 너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안 돼.”
그러나 그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아퀼로는 그렇게 단언했다.
“너는 누구보다 노력해왔어. 평화로운 세계에서 편하게 살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불간섭에 의해 거의 느끼지 못했다고 해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고.”
만약 하현이 조금이라도 사리사욕에 취해 쉬었더라면, 조금이라도 단련을 게을리 했었다면 세상은 진작 멸망했었을 것이다.
그것만큼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멋대로 네 자신을 비겁하다고, 마왕에게 잔인했다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을 가지지 마.”
볼을 쿡쿡 찌르던 아퀼로는 하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에 하현은 혼란스럽던 머리가 조금씩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지금 나는 흔들릴 상황이 아니야.’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은가.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마왕을 죽여야 한다. 그가 어떤 목적을 가지던, 그것은 변할 수 없다.
“고마워, 아퀼로. 네 덕분이야.”
하현은 아퀼로에게 머리를 맡긴 채 조용히 속삭였다. 그에 아퀼로는 피식 웃으며 머리를 툭툭 쳤다.
“그런 달짝지근한 대사는 나 말고 다른 애들한테나 해라.”
“……왜?”
달짝지근한 대사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왜 다른 사람한테 해야 하는 건가. 하현이 의아하게 여기자 아퀼로는 씩 웃었다.
“너랑 나는 한 몸이니까. 무슨 일이 있던 간에 결국 내가 1순위라는 거지.”
“……?”
“아직은 몰라도 돼, 인마!”
어리둥절해하는 하현의 모습에 아퀼로는 피식 웃으며 하현의 몸을 앞으로 밀쳤다. 그에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아퀼로는 바위 위에 앉은 채 하현을 바라보았다.
“다시 해봐.”
“…….”
“이번에는 다를 거야.”
아퀼로의 말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먹을 쥐었다. 머릿속에는 아직 온갖 잡념이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자세를 잡아갈 때마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이 깨끗이 씻겨나갔다.
‘간다.’
휘둘러지는 주먹에는 어떠한 소리도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공간이 멈췄고, 내지른 주먹은 시간을 가르며 앞으로 뻗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 일련의 동작 속에 어떠한 소리도, 전조도 없었다. 휘둘러지던 공격 속에서 어느 순간 내질러져있는 정권.
그것이 권의 정수였다.
“……됐다.”
아직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엉망진창이었던 것에 비하면 전혀 다른 수준이었다.
“꼭 이겨.”
멍하니 서있는 하현의 모습에 아퀼로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에 하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