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같이 들어간다라…….”
지현과 하현의 말에 오드리히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런 제안을 해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답을 망설이고 있을 때.
“절대 안 된다.”
상황을 지켜보던 타드델린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너희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등을 맡길 수 있지? 헛소리하지 말고 이곳에 남아라.”
“음…… 아무래도 이건 조금 그렇지.”
타드델린의 말에 오드리히도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보자면 동행은 절대로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하현은 시련의 백업을 믿으며 질러보기로 했다.
“마왕을 쓰러뜨리는 것이 당신들만의 역할은 아닙니다.”
카앙!!!
하현의 입에서 마왕이라는 이름이 나옴과 동시에 타드델린의 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뽑아졌다. 군더더기라고는 없는 깔끔한 발검.
“……!”
하지만 그 검은 하현의 옆에 있던 지현의 손에 정확하게 붙잡혔다. 검을 꾹 눌러 잡은 지현은 눈을 번뜩이며 타드델린을 노려보았다.
“손이 그렇게 쉽게 나가면 안 되지…… 안 그래?”
지현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타드델린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목 바로 앞에서 멈출 생각이기는 했지만 발검 자체는 전력을 다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잡아채다니,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타드델린, 그만해!”
타드델린의 발검을 막지 못했던 오드리히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검을 움켜쥔 그녀의 팔을 아래로 내렸다.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분명 함부로 검을 휘두르지 말라고 했잖아!”
그 경솔한 손길에 오드리히는 진심으로 분노한 듯했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는지 타드델린도 언성을 높였다.
“너는 지금 저 녀석들이 정상으로 보여?! 애초에 우리가 마왕과 싸우러 온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라고!”
“검으로 위협한다고 해서 해결 될 상황은 아니었어!”
“어…… 음…….”
험악해지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하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적당히 넘어 가려나 했더니 일이 커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련은 도대체 뭘 하는 거야?’
분명 수락하는 즉시 동행할 수 있게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현이 곤란함에 쩔쩔매고 있을 때, 여태까지 상황을 방관하던 에들렌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데리고 가지.”
무덤덤한 한마디. 그 말에 타드델린과 오드리히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말로?”
“굳이 안 데리고 갈 이유가 있나? 너나 하이룬이나 전성기에 비하면 상당히 약해져 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
“으음…….”
에들렌의 대답에 오드리히는 진지하게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지금 자신들만으로는 마왕의 상대로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눈앞의 이 두 명이 합류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리라.
“그걸 지금 말이라…….”
“나는 괜찮을 것 같아.”
넘어갈 것 같은 분위기에 타드델린이 막 소리치려 할 때, 하이룬이 에들렌의 의견에 덧붙였다.
그 예상치 못한 상황에 타드델린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이룬!”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 저 두 사람은 네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까.”
“아니…… 하지만…….”
하이룬은 타드델린은 타이르며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적당히 소강되어갈 때, 에들렌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 네가 그렇다면 다수결로 결정하면 되겠군. 나와 하이룬은 찬성이다. 오드리히 네 선택을 말해라.”
“나는…….”
에들렌의 말에 오드리히는 하현과 지현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찬성이야.”
“오드리히!”
타드델린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오드리히는 단호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다수결에 따른 거야. 다수결일 때는 반드시 따르겠다고 약속했었지?”
“…….”
오드리히의 말에 타드델린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하지만 저 녀석들이 이상한 짓을 하면 그때는 말리지 마.”
“그래그래. 알았어.”
최종적으로 동행이 결정되고, 하현과 지현은 오드리히의 일행을 따라 외성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안을 지키는 악마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기에 빠른 걸음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안쪽으로 한참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에들렌이 뒤로 빠져나와 하현과 지현에게 다가왔다.
“법칙이냐?”
당혹스러울 정도로 단도직입적인 질문. 그에 하현은 살짝 놀랐지만 이내 에들렌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종류.”
“흐음…… 확실히 이번 마왕은 너무 중심에서 어긋나 버렸지.”
하현의 긍정에 에들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수긍했다.
에들렌은 하현과 지현을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력한 마왕에 대항하기 위해 나타난 세계의 법칙이라고 착각한 듯했다.
확실히 하현이나 지현 같은 실력자가 뜬금없이 지하계에 등장한다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으리라.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해라. 자칫 잘못하면…… 세계가 멸망해 버릴지도 모르니.”
짤막하게 이야기한 에들렌은 그대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본 하현은 조용히 속으로 속삭였다.
‘이거 문제는 없으려나? 마왕과 벌써 싸우기에는 조금 위험한데.’
「문제 될 건 없을 거야. 시련 내용도 그랬으니까.」
하현과 지현이 받은 시련의 내용은 마왕은 만나는 부분까지, 마왕을 쓰러뜨리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거기다 난이도도 S였으니 아마 큰 문제는 절대로 없으리라.
「이왕 완수 조건이 이런 거 마왕이나 잘 봐둬. 시기를 보면 거의 완전체에 가까운 마왕일 테니까.」
‘음. 알았어.’
아퀼로에게 대답한 하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외성은 지하계의 거의 끝부분에 위치한 장소로 관문 없이 게르바가 머무르는 방과 이어지는 유일한 곳이었다.
‘게르바라…… 그러면 이 시간대가 바로 그때인가.’
과거 지하계를 완수하며 봤던 마왕의 침입, 아마 상황을 보면 지금이 그 시기인 듯했다. 거기까지 떠올리자 하현은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다.
오드리히 일행이 마왕과 싸운 것이 게르바와 만나기 전인가 아니면 게르바와 싸운 이후인 것인가. 그것이 떠오른 것이다.
‘전자라면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정말 끔찍한데.’
당시 게르바의 앞에 도착한 마왕은 누가 봐도 한계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런데도 만약 그 이후에 이 네 명과 싸워 이겼다면? 상상만으로 오싹했다.
쿠웅!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건물의 안쪽에서 거대한 파동이 느껴졌다. 거기에 실려 있는 막대한 신성력과 마기의 파편에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가자!”
힘의 여파를 느낀 오드리히가 소리쳤다. 가공할 힘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건 기회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달려가는 네 명의 모습에 하현과 지현 또한 속도를 높였다.
“이거 싸워야 하나?”
“시련대로라면 아마 싸울 일은 없을 거예요.”
싸울 일은 없다. 하지만 이 파동에 하현은 왠지 모를 불길함이 느껴졌다.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쿠우웅!!
다시 한 번 더 강력한 파동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몸이 뒤흔들릴 만큼 막대한 힘이었다. 그 위력에 지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거…… 레벨이 낮았으면 위험했겠는데.”
파동과 동시에 발동된 혈화광권에 지현이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은 그제야 깨달았다. S급이라는 난이도는 누구와 싸우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앞의 싸움에서 터져 나오는 충격파를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S급이라는 난이도를 받은 것이다.
‘괴랄한 던전이군……’
연달아서 터져 나오는 충격파를 해소하며 계속 달리자 하현의 눈앞으로 익숙한 문이 보였다. 그에 오드리히는 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에들렌!”
“알았다.”
오드리히의 외침과 동시에 에들렌의 주변으로 강력한 마법들이 생성되더니 곧장 앞을 가로막은 문을 향해 쇄도했다.
콰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문이 박살났고, 난장판이 되어있는 게르바의 방 안으로 오드리히 일행이 난입했다.
그러자 오드리히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게르바의 눈이 커졌다.
“이런……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더 왔군그래.”
“…….”
격렬하게 펼쳐지던 게르바와 마왕의 싸움이 잠시 멈췄다. 주먹을 거둬들인 마왕이 천천히 뒤로 돌아보려 할 때.
“이쪽!”
“어, 어?!”
하현은 잽싸게 기둥의 뒤로 지현과 함께 숨었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지현이 당황하며 바라보았지만 하현은 신경 쓰지 않고 아퀼로에게 소리쳤다.
‘아퀼로, 기척을 숨겨줘!’
「알았어.」
하현의 생각을 읽은 아퀼로는 곧장 은폐장을 사용하여 두 사람의 기척을 지워 버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두 사람이 사라지고, 게르바와 마왕, 오드리히 일행만 남게 되었다.
“흐음? 분명 여섯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아닌 모양이군.”
“뭐?”
게르바의 말에 타드델린은 놀란 표정으로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하현과 지현의 모습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거봐! 내가 수상하다고…….”
“녀석들은 세계의 법칙이다. 사라졌다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지.”
타드델린의 말을 자른 에들렌이 담담하게 말했다. 세계의 법칙인 두 사람이 사라졌다.
그 말은 즉 자신들의 선에서 정리가 가능해진 것이라고, 에들렌은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흐음…… 그런데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말해줄 수 있나? 나를 죽이러 온 거라면 잠시 뒤로 미뤄줬으면 좋겠는데.”
게르바는 성검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물었다. 오드리히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기에 상당히 이질적인 광경이었지만, 분위기 자체가 달랐기에 구분하기는 쉬웠다.
그 질문에 오드리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왕의 죽음.”
오드리히가 말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무감정한 목소리. 그 차가운 목소리에 뒤돌아본 마왕이 입을 열었다.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군.”
“……나도 그래.”
그 담담한 대화에 하현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일까. 그 의아함에 아퀼로가 대신해서 대답해 주었다.
「오드리히는 과거 마왕과의 싸움에서 강신화를 사용한 적이 있었어. 마왕과 대등하게 싸웠지만, 결국에는 패배해서 몸 안에 남아 있던 죽음의 힘이 발작하면서 타락했었던 거지.」
마왕은 그 이후로 큰 부상을 입고 잠시 긴 휴식을 취하게 되었고, 그 사이 타락한 오드리히는 하나의 전략병기처럼 쓰였었다.
하지만 마왕이 복귀할 쯤에 오드리히는 모습을 다시 감춰 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이 다시 마주보게 된 것이다.
“보아하니 이제 강신화는 사용할 수 없나보군.”
뚜득.
목을 매만진 마왕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마왕이 유일하게 두려웠던 자, 그것이 바로 지금 게르바가 취하고 있는 강신화 상태의 오드리히였다.
하지만 지금의 오드리히는 그 힘을 사용할 수 없었다. 몸 안 깊숙이 뿌리내린 죽음의 힘과 깎여 버린 육체가 더 이상 그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뭐……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해도 이제 의미는 없었겠지만.”
오만하지만, 그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과거에 비하면 마왕은 더 믿을 수 없는 수준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마왕의 모습에 오드리히는 입술을 씹으며 검을 움켜잡았다.
“꼭 그렇게 싸워야겠어?”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군.”
“아무런 의미도 없는 파괴를 언제까지 할 셈이냐?”
아무런 의미도 없는 파괴. 그 말에 하현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왕은 마족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옥한 토지를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족들이 계속해서 원하고 있으니 해야겠지.”
“너희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들은 얼마든지 평화로워 질 수 있다. 그런데 왜 끝없는 전쟁을 원하는 거지?”
하지만 오드리히와 마왕의 대화는 기존에 알려진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비옥한 토지를 노리고 일어난 정복전쟁. 그 실상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마계는 멸망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척박했고, 최후에 최후까지 우리들을 버렸지.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마왕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는 딱히 이 이야기에 대해서 감정을 이입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사실처럼 느껴졌다.
“그냥 법칙이었던 거지. 너희들이 끝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다시 번성하는 삽질을 반복하고 있었을 때, 그 여파를 우리가 대신해서 받았던 것이다.”
마왕의 말에 게르바를 제외한 모두의 두 눈이 커졌다. 도대체 저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설마…… 마계 자체가 다른 세계들을 위한 관리자였다는 소리인가?」
다른 세계들이 몇 번이고 살아날 수 있도록, 오직 멸망하기 위해서만 존재했던 세상.
마왕과 마족들은 그 법칙 속에서 탈출한 생존자이자, 이질적인 자들이었다.
“우리들의 본질을 깨달았을 때 결심했었다. 우리가 받았던 고통을 돌려주자고, 모든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말자고 말이다.”
“다 같이 죽는 게 너희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선택이냐?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이!?”
믿을 수 없다는 오드리히의 물음에 마왕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게 그들의 바람이니까.”
마족들의 복수에 대해서 마왕은 조금도 감정을 이입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마계에 떨어지고, 악착같이 살아남으면서 강해지다 보니 세력이 커졌을 뿐이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여러 가지를 망각하면서 그는 그저 하나의 존재로 거듭났다.
강해지고, 마족들의 뜻을 대변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마왕이었다.
-시련이 완수되었습니다.
알림창과 함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마왕에게 이미 최하현이라는 인격은 죽은 지 오래구나.’
마계에서 갓 올라왔던 마왕이 왜 자신을 못 알아봤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 사실에 하현은 씁쓸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 말은 즉 이곳을 건너오는 마왕은 그냥 마족들의 대리인이다. 자신이 마계로 보내 버린, 불행한 인간 최하현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하현의 앞으로 마지막에 보았던 그 다음 순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니겠군.”
마왕의 말에 오드리히의 두 눈이 커졌다. 여태까지 마왕은 늘 무덤덤한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에 흥미가 없다는 듯이.
하지만 지금 마왕의 두 눈에는 의지가 가득 차 있었다. 마족들의 의지를 대행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목적을 가진 살아 있는 사람처럼!
“이거…… 관문을 바꿀걸 그랬어.”
그 모습을 본 게르바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신의 트라우마와 마주 보는 관문.
그것이 설마 마왕의 각성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본인도 생각지 못했다.
그 오묘한 분위기 속에 마왕이 두 손을 움켜쥐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열의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
“내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너희들 모두를 죽이겠다!”
-던전 완수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눈앞의 영상이 끝나고, 하현과 지현의 몸이 바깥에 나타났다. 사라져가는 포탈과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창. 하지만 하현은 멍한 표정으로 방금 전 외침을 되새겼다.
‘마왕은…… 다시 기억해냈어.’
마왕은 오랜 세월에 기억이 풍화되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었었다. 하지만 게르바의 관문을 통해 기억해낸 것이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자신의 세상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이세계로 되돌아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마족의 대리인인 마왕으로서가 아닌.
인간 최하현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