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147화 (147/158)

# 147

“아……음…….”

하현은 어색한 표정으로 네 명을 바라봤다.

신성력에 둘러싸인 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4명. 그들 모두 익숙하기 그지없는 얼굴들이었다.

“너는 누구지?”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타드델린이었다. 허리춤의 검을 움켜잡은 그녀는 적의를 숨기지 않은 채 하현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장소가 지하계인 데다가 주변에 호르호이의 독까지 퍼져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의심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게…….”

이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곰곰이 고민하던 하현은 방금 전에 눈앞에 떠올랐던 시련을 발견했다.

‘시련수락.’

-시련을 수락하셨습니다.

알림창이 떠오르고, 하현과 마주보고 있던 오드리히가 손을 뻗어 타드델린을 말렸다.

“그만해. 그렇게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으니까.”

“……알았어.”

오드리히의 말에 타드델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의 검을 놓았다.

하지만 두 눈은 여전히 지현과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꽤 독한 독인데 괜찮은 모양이네.”

하현의 모습을 본 오드리히는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신성력의 보호 없이 버티고 있으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던 하현은 적당히 이야기하기로 했다.

“이쪽 계열에는 면역이라서요.”

“흐음…… 그런가. 저기 뒤에 있는 사람은?”

“아. 제 동료입니다.”

지현을 가리키는 말에 하현은 간단하게 소개했다. 그에 오드리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리춤에서 호르호이의 원석을 꺼내들었다.

후웅!!

원석이 살짝 빛을 내자 주변에 퍼져있던 독들이 모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살펴보던 하현이 아퀼로에게 물었다.

‘뭐인 거 같아?’

「보아하니 저 독으로 지하계와 중간계를 있는 통로를 만들어낸 것 같은데.」

조금씩 닫혀 가는 구멍과 차원독이라는 이름을 보면 딱 맞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내가 가지고 있는 호르호이의 원석으로도 가능할지 한 번 조사해봐.’

「알았어.」

하현이 아퀼로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독이 모두 거둬지고, 뒤편에 서있던 지현이 하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일단 이거 시련부터 수락할까?”

“예.”

조용히 속삭여오는 지현의 말에 하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네 명을 바라봤다.

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는 오드리히와 하이룬, 경계심 가득한 타드델린, 그리고 덤덤한 에들렌.

‘시련이 의심을 덜 받게 조정해 준 건가.’

처음에는 적의나 의심이 섞였던 눈빛들이 시련을 수락하자 모두 옅어졌다.

그렇다면 아마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동행에 문제는 없으리라.

‘일단 호르호이의 쓰임새는 벌써 찾아버렸고…… 이제 완수 조건을 찾아봐야겠네.’

지금 받은 시련은 정지 조건이지만 따라가다 보면 완수 조건으로 예상되는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현은 네 사람을 살짝 바라보다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딘지 몰라서 그런데 동행해도 괜찮을 까요?”

“흐음…… 뭐 안 될 거야 없지.”

하현의 제안에 오드리히와 하이룬은 흔쾌히 하현과 지현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타드델린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에들렌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조심해야겠네.’

타드델린의 적의야 아무렇지 않았지만 에들렌은 조금 다르다.

얼마나 괴팍하고, 술수가 영악한 녀석인지 몇 번이나 당하지 않았는가. 절대로 빈틈을 보여선 안 되리라.

“이거 그냥 따라가도 돼?”

“예, 아마 문제는 없을 거예요.”

하현과 지현은 오드리히의 일행과 살짝 거리를 벌린 채 천천히 그 뒤를 쫒아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근처로 가서 대화를 나누려고 해봐야 의심만 받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근데 저 녀석…… 계속 이쪽을 쳐다보는데.”

타드델린의 집요한 시선에 지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까보다는 옅어졌다고 하나 여전히 타드델린의 적의는 노골적인 수준이었다.

하이룬의 신성력을 백업받던 타드델린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타드델린과 지현은 비슷한 실력이었다.

지현의 성격상 수틀리는 주먹이 나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에휴, 싸워봐야 뭐해.”

하지만 이내 지현은 한숨을 내뱉으며 투덜거렸다. 막 지현을 말리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하현은 그녀의 모습에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의외네요.”

“음? 뭐가.”

“건수도 잡혔겠다. 싸우자고 달려드실 줄 알았거든요.”

“…….”

하현의 말에 지현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너는 내가 뭐 싸움에 미친놈처럼 보이냐?”

“아…… 음. 아니죠…….”

“뭐 하냐, 너 지금?”

시선을 슬쩍 피하는 하현의 모습에 지현이 어깨를 붙잡으며 눈가를 씰룩거렸다.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 오드리히 일행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그렇게 한나절이 지났다고 생각됐을 때, 앞서 걸어가던 오드리히가 다가왔다.

“여기서 간단하게 휴식을 취할게. 힘을 좀 비축해야 해서.”

“네, 알겠습니다.”

야영이 결정되고, 적당한 장소에 자리 잡았다. 하현과 지현은 이번에도 살짝 거리를 벌려 철저하게 의심받을 일들을 차단했다.

“저 녀석들한테 캐낼 정보 같은 건 없어? 꽤 중요한 녀석들이잖아.”

계속해서 거리를 두는 하현의 모습에 지현은 의아한 듯이 물었다.

오드리히라면 몰라도 저 세 명은 바깥에서 일을 키운 장본인들 아닌가.

“음…… 그게요.”

지현의 물음에 하현은 살짝 귀를 기울였다.

“저 녀석들 역시 의심…….”

“그만하라니까 타드델린. 너는 의심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맞아. 초면에 너무 모나게 행동하니까 다들 타드델린을 무서워하는 거라구.”

“아니…… 으음…….”

오드리히와 하이룬의 말에 타드델린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들렌이 피식 웃었다.

“그만해라. 어차피 가르쳐줘도 모를 녀석이다. 갓난아기에게 검을 휘둘러보라고 하면 가능하겠나.”

“……잘도 지껄이는구나. 빌어먹을 놈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타드델린과 에들렌의 모습에 오드리히와 하이룬은 웃으면서 그들을 말렸다.

진심으로 다투는 것이 아닌 친근감을 보이는 투닥 거림.

그 이야기들을 들은 하현은 피식 웃었다.

“달라요.”

“음?”

“비슷해 보여도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에요.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어요.”

“흐음…….”

하현의 대답에 네 사람을 흘끔 바라본 지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오드리히의 일행은 불침번을 서가며 수면을 취하기 시작했다.

“지현 씨는 좀 주무세요. 저는 특성 때문에 하나도 안 피곤하거든요.”

“흐음…… 알았어.”

하현의 제안에 지현은 잠깐 고민하다가 바닥에 누웠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야, 자는 거 아니지?”

누워있던 지현이 말을 걸어왔다.

“예, 불침번인데 당연하죠.”

“흐음……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몸을 돌린 지현은 누운 채로 하현을 올려다보았다. 사뭇 진지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내가 싸움에 미친 듯이 달려드는 거 말이야. 별로 안 좋게 보이냐?”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하현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곰곰이 고민하던 하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보기는 안 좋죠.”

“왜?”

“그거야…… 자기 목숨을 내던지듯이 싸우니까요.”

여태까지의 싸움에서도,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에서의 싸움에서도 지현은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듯이 싸우는 경우가 많았었다.

물론 그것을 마냥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다만 너무 과할 뿐이야.’

전투를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 지현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지현은 매번 목숨을 내걸며 즐거운 척 하며 달려갔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차마 말릴 수는 없었지만, 볼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긴 했었다.

“흐음…….”

그 대답에 지현은 잠시 동안 하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돌렸다. 나름의 답이 되었을까 라고 생각했을 때.

“예전에 40명쯤 되는 대규모 던전 공략대가 있었어.”

지현이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나름대로 실력도 있었고, 채비도 잘 갖춰진 소규모 길드였어. 근데 진짜 개엿 같은 던전의 함정에 빠져서 말이야 딱 두 명만 살아남았어.”

“…….”

무슨 이야기인지 하현은 어렴풋이 눈치 챘다. 분명 과거에 지호와 지현은 같은 길드의 출신이었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번 이야기의 생존자가 두 명.

그렇다면 이게 누구의 이야기인지는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 사건을 계기로 두 명은 다른 생각을 품었지. 한 사람은 더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을 떠올리고는 상황을 언제나 냉정하게 보며 살릴 수 있는 사람만 살려야 한다고 했었지.”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법. 아마 그것이 지호가 선택한 방법이리라.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하현이 물었다.

“다른 사람은요?”

“자기가 강해져서 모두 구한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노력해서 모두를 구해내겠다는, 사실상 이상론에 불과한 이야기. 그것이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바보 같냐?”

여태까지 몇 년이고 자신을 떠받쳐왔던 가치관에 대해서 지현이 물어왔다. 그에 대해서 존중해줘야 할까, 아니면 있는 그대로 평가해야 할까.

“바보 같아요.”

거기에 하현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좋게 말해서 자기희생이지 결국 자살이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소중하고 자신의 목숨은 소중하지 않는다는 태도는 좋지 않아요.”

“너도 네 목숨을 걸고 싸운 적 많았잖아?”

누가 봐도 자살행위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싸움. 하현은 그 안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었다. 지현이 보기에 그 행동은 자신과도 비슷해 보였었다.

“그건 다르죠.”

하지만 하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는 제가 아니면 모두 죽었을 테니까요. 다른 사람과 협력해서도 해결이 가능했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그 방법을 사용했을 거예요.”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이 넓은 세계 속에서 혼자 남게 된다. 하현은 그런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달려들었을 뿐, 마냥 다른 사람들을 살리겠다는 숭고한 목적이 아니었다.

“…….”

하현의 대답에 지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 때, 다시금 대답이 들려왔다.

“나도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렵더라고.”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대답. 그 고민에 대해서 뭐라고 딱 잘라 이야기해줄 수 있을 만큼 자신은 뛰어나지 않다.

“저를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그렇기에 하현은 단정 짓지 않고 부탁하기로 했다.

“이 사태가 끝나고 나서도 저는 지현 씨와 만나고 싶어요. 가끔 몸이 쑤시면 대련도 하고, 다 같이 모여서 술도 먹으면서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그러냐.”

“네, 그러니까 서로 기댈 수 있으면 기대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움직이셨으면 해요. 목숨을 내던지며 무리하지 않고요.”

하현의 말에 지현은 또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잠들었구나 라고 생각했을 때.

“알았어.”

지현의 짧은 대답이 들려왔다.

***

“여기까지일 것 같네.”

거대한 성 앞에 도착하자 오드리히가 말해왔다.

“이 안에는 우리가 어떻게 보호해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야. 미안하지만 안에서부터 동행은 힘들겠어.”

-시련이 완수되었습니다.

-4인의 결사대 던전이 정지됩니다.

알림창과 동시에 조금 떨어진 곳에 나갈 수 있는 포탈이 생겨났다. 그것을 힐끔 본 하현은 오드리히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주변에 있으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 그럴 걱정은 없어. 이 성 안에 사는 건 강력한 악마거든. 위험이 될 법한 하급 악마들은 안 나타날 거야. 그리고…….”

하현과 지현을 바라본 오드리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그런 녀석들이 너희들을 해할 수 있을 리도 없잖아?”

“…….”

시련의 보조가 풀리고 네 사람의 이지는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아마 여기서 수상쩍은 행동을 하며 더 접근하려고 하면 무슨 사단이 날지 모른다.

‘아퀼로, 어쩌지?’

던전 완수의 실마리는 아직까지 잡히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 섣불리 행동하면 분명 뭔가 일이 터지고 말 것이다.

「흐음…… 그냥 나와서 페널티를 받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레벨다운 페널티가 다소 아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받을 것은 아니다.

호르호이의 쓰임새를 찾아내는 것 치고는 꽤 싼값이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라면…….」

“같이 들어가지.”

아퀼로가 막 말을 하려던 찰나, 뒤에서 구경하던 지현이 입을 열었다.

“……뭐?”

“너희들도 어차피 여기 평생 사는 거 아니잖아? 같이 들어가서 일 끝나면 같이 돌아가자고.”

당황하는 오드리히의 물음에 지현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하현이 깜짝 놀라며 바라봤을 때.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새로운 결사대]

오드리히와 그의 동료들은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게르바의 외성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들과 함께 마왕을 만나십시오.

난이도 : S

보상 : 던전 완수

-시련을 수락하는 즉시 밖으로 나가는 포탈이 사라집니다.

두 사람의 앞으로 새로운 시련창이 나타났다. 그 알림창에 하현이 놀란 표정으로 지현을 바라볼 때, 지현은 씩 웃으며 작게 속삭였다.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다 같이 하라며.”

그 말에 하현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시련 수락.’

-시련을 수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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