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와아아아!!!”
마법을 막아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것은 살아남았다는 환희, 그리고 이 결과를 만들어내준 아민에 대한 찬사였다.
“아…… 하하핫.”
그 수만 명의 찬사 앞에 아민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주도적으로 저 마법을 막아냈으니 아마 어마어마한 보상과 칭호가 생겼으리라.
아퀼로의 밖으로 나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하현은 몸을 슬쩍 돌렸다.
‘방어전환. 민첩.’
하현의 몸이 경계의 틈에 녹아들었고, 한 건물의 앞에 도착했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은 곧장 바깥으로 나와 방어전환을 해제했다.
‘여기란 말이지…….’
눈앞의 건물을 바라본 하현이 중얼거렸다. 마법이 사라지고 난 뒤 하현에게 바로 날아왔던 메시지.
거기에는 에들렌이 자신의 위치를 적어뒀었다.
‘혼자서 온 게 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겠지.’
에들렌이 보내온 메시지에는 혼자서 오지 않으면 많은 사상자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SS급 토벌자들이 설마 다칠까 싶었지만, 조심해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들렌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차원에서 온 걸 알고 있다…… 이건 가볍게 넘길 만한 게 아니야.’
여태까지 그 누구도 하현이 가진 힘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캔슬러라고 불리는 자들이 가지는 힘은 정말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들렌은 다른 차원에서 왔다고, 그렇게 콕 집어서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하현의 힘에 대한 원천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거기다 마왕과 나의 관계도 알고 있다고 했어. 이래저래 혼자서 가는 게 더 낫지.’
우선은 그 이야기를 알아낸 다음 에들렌을 죽인다.
그리고 남은 차원의 기둥을 없애는 것으로 수천 년간 계속되어 왔던 이 사태를 깔끔하게 끝내고 말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하현은 건물의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겨갔다.
‘저쪽인가.’
실험실로 보이는 구역을 넘어서자 은은한 신성력이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하현은 그 안에 에들렌이 있음을 직감하고 곧장 안쪽으로 향했다.
‘이건…….’
들어서자 바로 보이는 것은 두 개의 기둥이었다.
황금색의 찬란한 빛을 머금으며 하늘 위로 솟아올라 있는 거대한 기둥.
그 모습을 보고 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차원의 기둥……?”
여태까지 물리쳤던 차원의 기둥들에게서 은근히 느껴졌던 기운.
그것이 눈앞의 기둥에서도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름답지 않나?”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하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기둥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에들렌이 서있었다.
“타드델린이 생각해냈다고는 믿을 수조차 없는 작품이지.”
“……이게 뭐지?”
하현은 덤덤하게 물으며 적의를 조금 내보였다.
지금 당장 마음만 먹는다면 에들렌의 목을 박살낼 수도 있다. 에들렌 본인도 알고 있을 테지만, 그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본래라면 사라져야 했을 차원의 기둥을 신성력을 이용해 다시 고정시켜 둔 것이다. 덕분에 아직까지 차원의 틈을 굳건하게 떠받치고 있지.”
“뭐…….”
차원의 틈을 떠받치고 있다. 그 말은 즉 마왕이 지나올 통로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 사실에 하현의 전신에서 살의가 터져 나왔다.
이 두 개의 기둥을 부수지 않으면 마왕의 강림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대단하군.”
그 살의를 느낀 에들렌은 고개를 돌려 하현을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 안에 누군가를 죽이는 데 무덤덤해지다니. 그쪽 세계도 우리와 같이 살인이 흔한 세계였나 보군.”
“……!”
그 말에 움켜쥐던 하현의 주먹이 펴졌다. 눈앞의 차원의 기둥은 당장 없애야 할 만큼 위험한 물건이다.
하지만 에들렌이 알고 있는 이야기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현은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에들렌을 바라보았다.
“네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알아도 좋지만, 모른다고 해서 손해 보는 건 없어. 말해줄 거라면 당장 말하고, 아니라면 그냥 죽어라.”
여기까지가 하현이 양보할 수 있는 마지막 선이었다. 진심이 묻어나오는 말에 에들렌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나도 딱히 이야기를 숨길 생각은 없다. 그러니 한 가지 확실히 말해주면 좋겠군.”
시종일관 미소를 짓던 에들렌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하현을 바라보았다.
“너는 정말 다른 차원의 인간인가?”
“……그래.”
가정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한 질문. 그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른 차원에서 온 인간이 맞아.”
“……큭!”
그 대답에 에들렌은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필사적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 없이 웃는 그 모습은 비웃음보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뭐가…….’
그 모습이 상당히 불쾌했지만 하현은 잠시 기다렸다. 잠시 후, 웃음이 멎은 에들렌이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실례했군. 그렇게 확실하게 대답해주니 기쁨을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 이제 이야기나해.”
“그래, 우선 말하자면…… 마왕의 존재겠지. 마계를 제패하고 다른 세계를 침공해 끝내 페젤론을 멸망시킨 사내. ‘매우 강했다’라고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내였지만, 사실 그 존재는 매우 이질적이기 그지없었다.”
“이질적이라고?”
“그래, 정확히 말하면 그가 보인 활약상이 본인과 너무나도 동떨어져 보인다는 거지.”
마왕은 정확히 구분 짓자면 강력한 무투가였다.
그가 펼치는 공격들은 하나같이 마법이 아닐까 싶을 만큼 어마어마했지만, 그 본질은 결국 무술이었다.
“그런 마왕이 직접 마계와 중간계를 있는, 그것도 대군이 안정적으로 건너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냈었다. 그걸로 페젤론을 침공해 왔지. 뭔가 이상하지 않나?”
에들렌의 말에 하현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다니, 도대체 무엇이 이상하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을 곱씹은 하현은 이내 한 가지를 떠올렸다.
“무투가인 마왕이…… 그 통로를 어떻게 만들었느냐?”
“그래, 바로 그거다.”
마왕의 힘이라면 통로 자체의 입구를 찢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군이 지나갈 정도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통로를 만들어내는 것은 마법사나 가능한 일이었다.
“마왕이 마법사일 가능성은 없느냐? 그건 또 아니었지. 마왕은 마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거든. 그렇다면 마왕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일으켜낼 수 있었을까.”
미소를 지은 에들렌이 하현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그런 만능적인 힘을 알고 있지 않나?”
“……시련.”
스스로 대답하면서도 하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왕이 시련을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도저히 믿기지는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 말고도 마땅한 대답이 없었다.
“그래, 나도 이번에 깨달은 거지만 한 가지 더 증거라고 할 큰 사건이 있었다. 바로 세계수의 수호자인 에뤼쿠스의 실종이다.”
세계수의 힘을 받들어 중간계 전체를 수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였던 에뤼쿠스.
어느 날 그런 존재가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졌었다.
“그건 그리 가벼운 일이 아니었지. 중간계를 수호하는 관리자의 일부가 사라졌던 것이니.”
각 세계에는 그 세계를 지키는 관리자가 존재한다. 천계의 경우에는 권위의 대천사 아멤론이었고, 지하계의 경우는 게르바가 그 역할을 맡았었다.
그리고 중간계에는 다섯 색의 대표와 세계수가 그 관리자의 역할을 맡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힘이었던 에뤼쿠스가 갑자기 사라졌던 것이다.
“거기까지라면 내 망상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에뤼쿠스가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또 하나의 이변이 생겼다. 타락할 리가 없었던 천계의 관리자, 아멤론이 타락한 것이었지.”
절대로 타락할 수가 없었던 존재가 타락했다. 이건 누군가의 개입이 없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하현은 너무 커져 가는 이야기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믿겨지나? 뭐 아멤론의 타락도 컸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의 결과야. 바로 그의 타락으로 인해 세계수가 클리페우스의 손에 사라졌다는 거지.”
이전에는 에들렌도 이 사건들의 배경에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멸망에 대한 징조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되살아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었다.
“참 신기하지 않나? 사라질 수가 없는 에뤼쿠스가 사라지고, 타락할리 없는 천사가 타락해 세계수가 없어졌다. 그렇게 중간계를 보호해 주는 큰 틀이 사라지고, 마왕이 나타났지.”
“…….”
하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절대로 이뤄질 수가 없을 일들.
그것을 다른 방법으로라도 이룰 수 있는 힘은 하현이 알기에 시련 하나뿐이었다.
“마왕이 이 세계에 살던 사람이고…… 페젤론에 건너가서도 시련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건가?”
“바로 그거지.”
에들렌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시련이라는 존재 하나만으로도 마왕이 보인 믿을 수 없는 업적, 그리고 무시무시한 강함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자 그럼. 마왕의 정체는 과연 어떤 인간일까. 그저 우연히 너처럼 다른 세계로 건너간 한 남자였을까?”
“그건…….”
설마 자신이 알 만한 사람이 건너갔다는 말인가? 하현이 곰곰이 생각하려 했을 때, 하현의 머릿속에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네가 몇 만, 몇 억, 몇 조의 확률로 거기에 서있는지는 나도 정확히 알 수 없어. 다만 그 우연이 아무런 이유 없이 네게 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던전이 사라지기 전에 들었던 게르바의 충고.
거기에 하현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가장 믿을 수 없지만, 가장 맞아 떨어지는 한 사람.
“최하현…….”
“그래!! 바로 그거다!!”
하현의 대답에 에들렌이 크게 소리쳤다. 마치 애타게 기다려온 이야기의 결말을 듣는 것처럼, 그의 얼굴은 고양되어 있었다.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최하현, 네가 이곳에 건너오면서 이 세계에 존재했었던 최하현을 페젤론의 마계로 보내버린 것이다!”
그 말에 하현의 두 눈이 커졌다. 본래 이 세계에 살았었던 최하현이 자신 때문에 페젤론, 그것도 마계로 건너가 마왕으로 성장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가 건너오기 전에 이미 이 세계는 페젤론에 의한 침공을 받은 상태였어. 그런데 어떻게…….”
“그건 이미 그렇게 일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너는 이세계로 건너왔을 것이고, 이세계의 최하현은 페젤론으로 건너가 마왕이 되었을 거란 뜻이지.”
두 세계의 최하현이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두 세계가 일그러졌다.
그 순간 하현의 존재가 불간섭의 막을 두른 채 이세계로 넘어왔다.
본래라면 하나로 합쳐져야 했을 두 사람은 불간섭이라는 예상치 못한 힘에 한 명을 페젤론으로 날려 보냈고, 결국 그는 마왕이 되어 예정된 대로 이곳을 침공한 것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틀렸다고 부정할 수 없었다.
아까 전에 있었던 그 알 수 없는 기억의 전승은, 이 이유가 아니고서야 설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세계를 침공해 오는 마왕이 평행세계의 자신이었으며, 그렇게 만든 것이 자신의 탓이다.
그 사실에 하현은 충격을 받은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네가 생각해도 정말 엄청나다고 생각하지 않나?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영웅 최하현! 그리고 그에 대적하는 마왕의 정체는 이세계에 살았었던 최하현! 이런 가슴 떨리는 구도가 또 어디 있을까!!”
충격 받은 하현의 모습을 본 에들렌은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혼란으로 어지러웠던 세계에서 영웅이 되겠다고 이야기했던 소년.
그때 에들렌은 평생 동안 뛰지 않았던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소년이 죽은 이후로 처음으로 다시 가슴이 뛰고 있는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할 거냐. 자신으로 인해 탄생한 마왕의 존재를 받아들 일거냐? 아니면 그 존재를 무시하고 죽여 영웅으로서 남을 것이냐!”
하현은 조용히 에들렌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는 자신에 대한 큰 기대가 서려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모습을 투영하여 보는 것처럼.
‘오드리히였다면…… 전자였겠지.’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문답무용으로 검을 휘두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설득을 해보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면 아마 검을 빼들었으리라.
그렇다면 자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곰곰이 고민하던 하현은 이내 에들렌을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기둥을 부순다.”
“……뭐?”
하현의 대답에 에들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그가 원했던 대답이 아니다.
어떠한 고뇌도 없는, 그저 현실을 외면하는 방법이 아닌가.
“굳이 마왕과 맞서 싸울 이유는 없어. 남은 기둥들을 없애고 페젤론에 관한 모든 일을 끝내면 되는 거야.”
“그건…… 그건 도망이다! 네가 만들어낸 마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셈이냐!!”
에들렌의 외침에 하현은 덤덤하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여유로워 보였던 그의 모습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극단적인 사람이었군.’
한 가지 일에 광적으로 집착하면서 어떠한 일들도 저지를 수 있었지만, 그것이 부정되자 곧장 무너지기 시작한다.
에들렌은 그런 극단적인 존재였다.
“나는 마왕을 만든 적이 없어. 네 말대로 그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던 거지.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선택은.”
콰앙!!
말하던 도중에 갑작스럽게 하현의 몸이 뛰쳐나갔다.
에들렌이 반응하기도 전에 목을 움켜잡은 하현은 그대로 그를 벽에 처박았다.
“커헉!!”
에들렌의 입가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덤덤하게 바라본 하현이 중얼거렸다.
“희생자가 없을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야.”
“…….”
하현의 그 무덤덤한 대답에 에들렌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큭…… 크하하하!!!”
분명히 하현이라면 마왕을 스스로 죽일 것이라고, 그렇게 자신을 죽이며 고뇌할 것이라고 에들렌은 생각했다.
그것이 자신의 예상이었고, 자신이 보고 싶었던 모습이었으니까.
‘내 착각이었군.’
하지만 그런 예상과 다르게 하현은 오직 효율만을 추구했다. 이제 곧 자신은 죽고, 기둥들이 모두 사라지며 마왕은 강림할 틈도 없이 차원의 틈 속에서 죽게 되리라.
‘오드리히, 타드델린, 하이룬. 미안하지만…….’
졸려오는 목에 속으로 중얼거리던 에들렌이 피식 웃었다.
‘아니, 미안하지 않군. 내 소망만은 이뤄야겠다.’
쿠구구궁!!!
“……?!”
갑자기 떨려오는 진동에 하현은 깜짝 놀란 눈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던 두 개의 기둥이 강렬한 빛을 발하며 떨리고 있었다.
“나를 죽여도 소용없어. 이미 완성해뒀던 마법이니까.”
하현의 주먹이 머리를 박살 내기 전에 에들렌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 말에 하현이 에들렌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무슨…… 무슨 짓을 한 거냐!”
“앞에 말하지 않았나. 차원의 틈을 받칠 수 있게 되었다고. 영구적으로 말이야.”
수십 명의 하이룬을 희생해서 만들어낸 완벽한 차원의 기둥.
이 두 개의 기둥들이 하현이 차원의 틈을 닫을 수 없도록, 그리고 마왕이 이곳에 건너올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대체 무슨 짓을!!”
분노로 찬 하현의 눈을 바라본 에들렌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하현의 손을 잡아 더욱 안쪽으로 조이도록 유도했다.
“너는 마왕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어. 그게 오드리히의 뒤를 이어 새로운 영웅이 될 네 운명이다.”
목이 졸린 채 에들렌은 쉰 목소리로 계속 이야기했다. 이미 마법은 발동되었고, 자신은 죽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알려주지…….”
기둥이 완전히 사라져 가고, 자신의 의식조차 흐릿해져갈 때, 에들렌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마왕의 강림은 본래 100년도 더 먼 일이었지만, 어느 날의 기점으로 당겨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시점으로는…… 이제 한 달도 채 안 남았군.”
“뭐…….”
도대체 왜 마왕의 강림이 앞당겨졌단 말인가. 그렇게 혼자서 생각했을 때, 하현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설마…… 내가?”
“그래, 마왕 최하현과 동일 인물인 네가 바로 마왕을 이곳으로 빠르게 당기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방금 전 전투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 때문에 더 당겨졌을지도 모를 일이군.”
피식 웃은 에들렌은 차원의 틈 속으로 사라지는 기둥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 기둥을 없앨 방법은 없으리라. 차원의 틈과 기둥은 시련조차도 한정적인 영역이었으니.
하현은 이제 자신들과 같이 마왕과 싸우게 될 것이다. 그 사실에 에들렌은 조그맣게 속삭였다.
“호르호이…….”
“뭐?”
“그 원석을…… 잘 사용해라…….”
파스스슥-
어떻게 사용하냐고 묻기 전에 에들렌의 눈이 감겼다.
그와 동시에 기둥이 모습을 감추고, 빛이 사라지면서 건물의 내부에 칠흑 같은 어둠이 휩싸였다.
하현이 권능을 통해 다시 불을 밝혔을 때, 에들렌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