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141화 (141/158)

# 141

‘잘하는 건지 모르겠군.’

하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쥐었다. 절대적인 방어력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적의 공격과 방어를 모두 박살 낼 수 있는 압도적인 공격력!

공방전환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유용한 방법인 것이다.

“……뭔가 달라졌군.”

하현을 바라본 마왕이 중얼거렸다. 단지 분위기만 변한 것 같았지만, 그 변화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었다.

그 변화가 자신에게 기회가 될 수 있고, 목숨의 위협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둘 다 인가.’

방금 전보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을 보아 방어력에 손상이 있다.

하지만 자세 자체가 공격적으로 변한 것이 뭔가 비장의 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이번만큼은 그렇게 가볍게 넘길 수 없으리라. 마왕은 자신의 감을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그리고 막 자세를 취하려던 순간

치지직!!

그의 몸이 마치 노이즈처럼 뒤흔들렸다. 그 갑작스러운 모습에 하현의 두 눈이 커졌다.

“저건…….”

방금 전에 에뤼쿠스가 사라지기 직전에 보였던 현상.

소환을 유지해 주던 신성력이 끊어지면서 마왕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놔두면 끝인 건가?’

제대로 싸울 필요도 없이 마왕이 이대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현이 생각했을 때.

“흐읍!!”

파앙!!

기합소리와 함께 흐릿해지던 마왕의 몸이 다시 선명하게 변했다.

그 모습에 하현은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떻게…….”

“몸을 유지하는 힘이 사라져 간다면, 내가 그 힘을 충당하면 될 일이지.”

에뤼쿠스의 경우는 시련의 힘이 존재를 지우려 했지만, 마왕의 경우는 단순히 소환이 해제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힘을 이용해 소환을 유지한다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다소 힘은 줄었지만, 그다지 큰 타격은 없을 것 같군.”

“……너무 얕보는 거 아닌가?”

마왕의 말에 하현은 덤덤하게 대답하며 자세를 잡았다. 스킬의 유지 시간이 있었기에 이제 더 이상 수다를 떨 여유는 없었다.

‘속공으로 결판낸다.’

각오를 다진 하현이 바닥을 박차려던 순간. 마왕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불간섭을 해제했으니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 아닌가. 힘이 깎여 봐야 30%니 내가 당연히 더 유리하지.”

“……아?”

마왕의 말에 하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저자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인가? 하현은 순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가 불간섭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불간섭?”

하현의 말에 마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한 말을 되새김질하고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아니…… 이건…….”

자신이 한 말에 어리둥절해하는 마왕의 모습은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았지만, 방금 전 내뱉은 말 때문에 단순한 장난이 될 수 없었다.

‘방금 그건…… 아퀼로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정확하게 말할 수 없어.’

하현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다른 이들에게 불간섭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마왕은 방금 전에 이곳에 소환된 상태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마왕이 자신의 스킬에 대해서 저렇게 자세하게 알 수 있을 수 있는가. 하현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르겠군.”

한참 고민하던 마왕이 얼굴을 찌푸렸다. 여태까지 무덤덤하거나 미소만 지어보였던 마왕의 얼굴에 처음으로 불쾌감이 드러났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

마왕은 그렇게 일축하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하현도 당혹스러운 머리를 진정시키고 자세를 다잡았다.

‘진정하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마왕을 쓰러뜨려야한다는 것이고, 자신이 강해질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단 것이다.

그러니 지금 생각할 것은 오직 하나.

콰앙!!

마왕을 죽이는 것이다.

***

콰아앙!!!

탑의 천장이 폭발하고, 그 안에서 너덜너덜해진 흑월의 모습이 떠올랐다.

“큭!”

입가에 터져 나오는 피와 감각이 옅어지는 몸에 흑월은 망설임 없이 강기를 전신에 꽂아 넣었다.

강렬하게 느껴지는 통증과 흐려지려는 의식.

흑월은 입술을 꽉 깨물어 정신을 일깨우고 자신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후웅!!

황금색 섬광이 먼지를 꿰뚫고 거리를 압축하며 흑월을 노려봤다.

텅하니 비어 있는 동공은 시체를 보는 듯했지만, 그 몸에서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살의가 보였다.

〔죽인다.〕

덤덤한 한 마디.

그 뒤로 쏟아져 나오는 수십 개의 황금색 칼날에 흑월이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카카칵!!!

수십, 수백 번의 공방이 눈 깜짝할 사이에 오갔다. 치명상은 모두 피해냈지만,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졌던 갑옷들이 완전히 박살 났다.

“커헉!”

체력도 거의 한 번에 소모되었고, 전신의 근육과 생명력이 한계까지 치달았다.

반면 덤벼든 타드델린은 부상은커녕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흑월을 바라보며 살의를 내고 있었다.

‘죽는다.’

본능이 경고해 왔다.

다시 한 번 충돌한 순간 버티고 할 것도 없이 전신이 난도질되어 죽을 것이라고. 당장 이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어떻게?’

하지만 방법이 없다.

타드델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신성력의 칼날이 일대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고, 지금 찰나의 순간에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죽는다. 판단이 틀려도 죽는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흑월의 머리가 어지럽게 엉켜 갔다.

후웅!!

그리고 그 사이에 한계점을 넘어섰다.

카앙!!!

수십 개의 칼날이 흑월이 있던 자리를 꿰뚫었다.

그곳을 바라보던 타드델린은 덤덤하게 바라보다가 칼날들을 치웠다. 하지만 그 장소에 흑월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눈앞에서 사라진 흑월의 모습은 탑의 안에서 나타났다.

“괜찮으십니까?”

“……그다지.”

“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만신창이가 된 흑월의 모습에 라젤린이 신성마법을 사용해 상처를 치료해 나갔다.

여기저기 찢긴 치료되는 것을 본 흑월은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떻게 된 거지?”

“공간 마법으로 주변을 왜곡시켜 뒀습니다. 본래라면 불가능할 방법이었겠지만…… 행운이 겹친 모양이더군요.”

타드델린은 신성력의 힘을 빌려 세계의 법칙으로 변했다.

그 과정에서 막강한 힘과 함께 불사를 얻었지만, 약간의 약점이라고 할 것이 생겼다.

타드델린이 자신에게 새긴 법칙은 ‘이세계의 인간들의 말살.’이었다.

즉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회장이나 메이룬에 대한 것에는 다소 주의가 옅어진 것이다.

“이것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겁니다. 빠르게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만약 타드델린이 장소를 옮겨 전쟁터로 향한다면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다.

이세계의 인간이 포함돼 있는 세력이라고 해봐야 협회의 병력뿐이었고, 저 힘이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참살당하리라.

회장의 말을 곰곰이 들으며 생각에 빠져 있던 흑월이 입을 열었다.

“……상자.”

“예?”

“보상 상자가 필요해.”

흑월은 인벤토리에서 두 개의 상자들을 꺼내들었다. 여태까지 차원의 기둥급 괴물들을 잡으면서 예비용으로 아껴 뒀던 SS급 상자였다.

“그걸로 뭘…….”

“아이템을 만들고 싸운다.”

덤덤하게 대답한 흑월은 곧장 상자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망설임 없는 모습에 회장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설마 타드델린 님과 맞서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하현과의 사냥으로 흑월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아마 레벨이 500 중반을 넘겨 페젤론에서도, 이곳에서도 적수가 없을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수준이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세계의 법칙이 되어버린 타드델린은 같은 세계의 법칙이 아니고서야 절대로 죽일 수 없는 강자다.

“그런가? 내가 보기엔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던데.”

“그게 무슨…….”

“녀석을 좀 더 자세히 봐라. 강력하지만, 생각만큼 견고하지는 않다.”

흑월의 말에 회장은 공중에 떠 있는 타드델린을 바라보았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신성력은 다시 봐도 전율이 일어났다.

하지만 딱 하나, 그녀의 가슴에 미묘한 갈라짐이 있었다.

“저건…….”

“아마 신성력을 공급하는 핵이겠지. 강력하지만, 결국 불완전한 상태라는 거다.”

세계의 법칙은 강력한 힘을 지님과 동시에 불멸의 존재다. 그것은 타드델린에게도 적용되었지만, 하이룬에게서 빼앗았던 핵이 되는 심장이 부서지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평범한 엘프가 강제적으로 세계의 법칙이 되어 생긴 일종의 약점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딸깍-

상자가 열리고, 그 안으로부터 검은색 갑옷이 흑월의 앞으로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흑월이 낀 장비와 비슷해 보였지만, 겉으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명백히 달랐다.

“신성력과 상극인 아이템만 둘러서 싸우면 되는 거다.”

흑월은 망설임 없이 갑옷을 착용했다. 단지 착용한 것만으로도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하이룬은 조금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무슨 갑옷인가요?”

“타락한 오드리히의 갑옷.”

“……예?”

깜짝 놀란 메이룬의 모습을 흘끔 본 흑월은 다른 상자들도 열어 묵묵하게 장비를 맞춰 갔다.

“상자 없나?”

“아…… 자, 잠시만요.”

메이룬은 자신의 인벤토리 안에 담겨져 있는 모든 상자들을 꺼냈다.

차원의 기둥을 잡으면서 하현에게 받아 둔 것들이었는데 자신에게는 필요 없다 생각해 아껴 둔 것이었다.

“레전드급 하나와 유니크급 두 개인가…… 충분하겠군.”

흑월은 다시 한 번 상자들을 개봉했고, 그 안에서 나온 장비들을 모두 착용했다.

거의 걸레짝으로 변했던 흑월의 장비가 발끝부터 전부 새롭게 갖춰졌다.

당연하게도 그 색은 하나같이 검은색을 띄고 있는 장비들이었다.

“그거…… 정말 괜찮은 건가요?”

장비를 바라본 메이룬이 불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거의 대부분이 레전드급 장비였기에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졌다.

하지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장비들끼리의 부가효과라도 난 것인지 흑월의 몸에는 검은 기운이 짙게 맺혀 있었고, 메이룬의 내부에 있는 신성력과 자연스럽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적당히 조건이 갖춰져서 괜찮다. 레벨이 낮았다면 조금 위험했을지도 모르겠군.”

이전과 다르게 검은 기운을 강하게 흘러내리는 마검을 바라본 흑월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작게 잡아도 1.5배는 강해졌군.’

비슷한 효과를 지닌 아이템들을 끼며 부가효과가 난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자신도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모든 세팅을 마친 흑월은 고개를 돌려 타드델린을 바라보았다.

“이제 됐다. 마법을 해제해라.”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회장의 물음에 흑월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다. 그리고 설령 있더라도, 여기서 저 녀석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흑월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 회장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멍하니 서있는 타드델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변의 공간을 왜곡하던 마법을 해제했다.

콰앙!!!

그와 동시에 흑월과 타드델린의 몸이 움직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를 향해 도약한 둘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카카카캉!!

순식간에 주변을 휘감는 검풍. 방금 전까지는 타드델린이 압도적인 양상으로 펼쳐졌다면, 이번에는 서로 거의 대등할 정도로 검이 맞부딪쳤다.

‘속도에서 대응할 수 있지만…… 아직은 버겁군.’

이대로 단순히 검술로만 부딪쳐서는 아까와 같은 꼴을 반복할 것이다.

흑월은 검을 움켜쥐고 태세를 바꿨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주변으로 검은 기류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

그 압도적인 기류 앞에 타드델린이 본능적으로 몸을 빼냈다. 아주 살짝 닿았던 신성력의 검이 검은 기운, 죽음의 힘에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흑월의 죽음의 힘 또한 깎여 나가기는 했지만, 그 피해는 서로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흑월은 단순히 힘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타드델린인 힘이 곧 몸이었기 때문이다.

‘해볼 만하다.’

어중간하게 강력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약점.

그곳에서 흑월은 승기를 찾아냈다. 비록 필승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생긴 것이다.

〔…….〕

타드델린은 검게 물들어가는 신성력의 검을 보다가 단숨에 잘라냈다.

오염은 일시적, 시간이 지나면 곧장 회복될 뿐이다. 그러니 쉴 틈도 없이 몰아쳐야 한다.

쿠우우웅!!

흑월의 몸 주변으로 막대한 죽음의 힘이 터져 나왔고, 타드델린의 몸에서 그에 대항하듯 막대한 신성력을 내뿜었다. 서로를 담담하게 바라본 둘의 입이 열렸다.

〔죽인다.〕

“죽이겠다.”

빛과 어둠이 다시 한 번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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