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140화 (140/158)

# 140

“너…… 사, 살아 있었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타드델린의 중얼거림에 하이룬은 입을 살짝 움직이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 거의 죽었었지.”

“그, 그런데 어떻게…….”

“에들렌이 다른 나의 생명력들을 조금씩 잘라서 넣었어.”

“에들렌이…….”

하이룬의 말에 타드델린은 가장 먼저 의심이 들었다. 도대체 그녀석이 무슨 목적으로 이런 행동을 한단 말인가.

혹시 하이룬의 몸에 마법이라도 설치라도 한 것이 아닌가?

에들렌에 대한 불신과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하이룬의 모습에 타드델린은 당혹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콰앙!!

그러는 사이 타드델린을 뒤쫓아 온 흑월이 벽을 부수며 나타났다. 그 모습에 검을 내렸던 타드델린은 곧장 자세를 잡으며 흑월을 경계했다.

순식간에 방 안을 뒤덮는 살기. 그것을 감은 눈으로 바라보던 하이룬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타드델린.”

그 부름에 타드델린의 몸을 움찔거리며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하이룬이 두 눈을 감은 채로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검을 거둬.”

“뭐…… 하지만…….”

“싸울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해. 네가 검을 거두면, 그 사람도 거둘 거야.”

“…….”

하이룬의 거듭된 말에 타드델린은 마지못해 검을 내렸다.

그러자 흑월도 상황을 살펴보다 검을 내리며 적의를 거둬들였다.

방안에 사라진 살기에 하이룬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메이룬.”

“네……하이룬 님.”

하이룬의 부름에 메이룬은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몰라도 그녀의 두 눈에는 메이룬의 상태가 확실하게 보였다.

이미 바닥나버린 몸 안에 생명력을 억지로 채워 넣고 가둔 것이 바로 지금의 하이룬이었다.

본래라면 이렇게 하더라도 살릴 수 없었겠지만, 그녀 자신들의 생명력을 잘라 넣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순간 동안 단지 숨을 쉬고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이 느껴진다.

거기다 이 방법 자체가 그리 오래가지 못할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니?”

그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음에도 하이룬은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모습에 메이룬은 울컥하는 감정을 참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메이룬은 여태까지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나갔다.

협회와 군대간의 싸움, 그 사이에 나타난 마왕. 그 말을 조용히 듣던 하이룬이 입을 열었다.

“마왕의 소환을 유지하고 있는 힘이 뭔지 알 수 있을까?”

“그건…….”

하이룬의 물음에 메이룬은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회장과 메이룬이 탑의 위로 올라왔을 때, 이미 중앙의 하이룬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진 뒤였다.

그래서 회장은 그녀가 핵이라고 생각하며 공간마법을 통해 남은 하이룬을 꺼냈었다.

하지만 그녀를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왕의 소환부터 차원의 기둥들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이다.

그 상황이 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나구나.”

눈앞에 있는 하이룬 자체가 저 에너지의 공급원이라는 것.

“그렇지?”

“…….”

하이룬의 물음에 메이룬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그에 하이룬은 쓰게 웃으며 자신의 심장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생명력을 괜히 채워준 건 아닌 모양이네.”

내부에 채워져 있는 생명력. 에들렌은 그것을 단순히 하이룬을 살리는 용도가 아니라 신성력의 유지를 위한 핵으로써 넣어둔 것이다.

“그……미친…….”

그 말에 타드델린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하이룬을 살렸다고 했을 때, 에들렌을 의심하면서도 무언가 자신이 생각지 못한 계획이 아닐까 아주 약간의 희망이 들었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다. 에들렌은 그저 자신뿐만 아니라 하이룬도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그 사실에 타드델린은 에들렌을 향한 살의를 숨길 수 없었다.

“너무 화내지마.”

그 흉흉한 기운에 하이룬이 조용히 말했다. 그 말에 타드델린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화를 내지 말라니! 그게 무슨…….”

“어차피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허락했었던 거니까…… 너도 그랬잖아?”

하이룬의 말에 타드델린은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이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과거에 그녀는 에들렌의 제안도, 하이룬의 수락도 모두 제지하지 않은 채 방관했었다.

이전에 에들렌이 말했던 것처럼, 결국 자신도 그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후우…… 다들 한 가지만 도와줄 수 있을까?”

“무엇입니까?”

회장의 목소리에 하이룬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마왕과 싸우고 있다는 사람을 한 번 보고 싶어.”

“하현…… 씨를 말입니까?”

“응, 가능할까?”

거리도 거리지만 하이룬은 건강이 악화되면서 시력이 상당히 나빠진 상태였다.

그런 그녀에게 하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곰곰이 고민하던 회장은 이내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타드델린 님이 허락한다면…… 가능합니다. 두 분의 시야를 제가 공유시킬 수 있을 겁니다.”

시신경의 공간을 아주 약간만 비틀어서 서로 연결시킨다. 다만 아주 섬세한 조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타드델린이 몸을 맡기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그건…….”

“지금의 너라면 뭔가 하려고하는 순간 바로 반응할 수 있잖아? 부탁할게.”

“…….”

하이룬의 말에 타드델린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회장은 타드델린의 손과 하이룬의 목을 잡았다. 두 사람의 신경이 뒤바뀌고, 하이룬의 눈앞으로 타드델린이 바라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빠악!!

뇌진탕의 증세가 모두 사라진 마왕과 하현은 서로 주먹을 휘두르며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앞과 달리 마왕은 하현의 공격을 맞아주지 않았고, 그 결과 압도적인 방향으로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휘두른 주먹은 빗겨 나가고, 마왕의 주먹이 전신을 난타한다.

그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하현은 기죽는 것 없이 계속해서 싸웠다.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정말…… 비슷하구나.’

그 모습을 바라본 하이룬은 정신이 드는 와중에 희미하게 들려왔던 에들렌의 목소리를 떠올랐다.

‘오드리히를 대신할, 아니 더 대단한 영웅을 찾았다. 너는 그를 완전하게 만들기 위한 발판이 되어야해.’

자신을 희생시키겠다고 말했지만, 하이룬은 딱히 그를 증오하지 않았다.

죽어 가던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며 신성력을 빼가라고 허락했던 것도, 페젤론의 기억으로 소환한 다른 시간대의 자신들을 설득한 것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었다.

오드리히가 지키려고 했던 세계를 대신해서라도 지키고 싶어 골랐던,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으로 인한 선택.

‘그건…… 잘못됐던 거겠지.’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고 말았다. 하이룬은 하현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마법이 풀리고, 다시 눈앞에 칠흑 같은 어둠이 되돌아왔다.

하지만 눈앞에는 아직 방금 전가지 보았던 빛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 흔적에 하이룬은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 됐어.”

“하이룬…….”

달관한 것 같은 목소리. 그에 타드델린은 불길함을 느끼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그만하자. 우리가 틀렸다는 거 알잖아?”

“……그만해.”

하이룬의 말에 타드델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마저 그렇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죽여서는 안 돼.”

하지만 하이룬은 그런 타드델린의 바람을 무시한 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미 죽었잖아.”

“아냐……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 같다고, 그렇게 느낄 뿐이야.”

하이룬은 안타까운 표정을 타드델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불타는 고향숲 속에서 오드리히에게 구해졌고, 최후까지 그의 뜻을 받들며 마족들과 싸웠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도 오드리히가 지키려 했던 페젤론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하지만 과연 오드리히가 살아 있었다면 자신들의 행동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까.

하이룬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에들렌 했던 말이 사실이야.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영웅이야.”

“안 돼…… 더 이상은…….”

끝나 버린 세계를 되살리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그저 침략자, 마치 마왕과 다름없는 존재다. 그에 대항하고 있는 저들이야말로 영웅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하이룬은 그 사실을 타드델린에게 그대로 고했다. 왜냐면 그녀도 마음속으로는 이미 깨달았을 테니.

“오드리히도 살아 있었다면 분명 이들을…….”

푸욱!!

섬뜩한 소리가 탑의 안에 울려 퍼졌다. 흑월의 검이 움직이기 전에, 메이룬과 회장의 마법이 발동되기 전에 타드델린의 검이 뻗어졌다.

‘정말 대단해!’

오드리히보다도 더 빠르다며 하이룬이 칭찬해 주던 그 검술이 하이룬의 심장을 찔렀다.

“아…….”

푸확!!!

짧은 단말마.

옆으로 그어진 검날이 하이룬의 심장을 완전히 갈랐다. 겉뿐만이 아니라 생명력을 담고 있는, 신성력의 주도권을 빼앗으면서.

“하, 하이룬 님!!!”

메이룬이 놀라며 소리친 순간, 회장의 마법과 흑월의 검이 타드델린을 향해 쇄도했다.

텅!!

하지만 그 두 개의 공격은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신성력에 그대로 막혔다.

신성력의 제어권을 손에 얻은 타드델린은 마왕을 향했던 힘도, 차원의 기둥을 향했던 힘도 모두 남김없이 자신을 향해 빨아들였다.

쿠구구구궁!!!

단지 힘을 뿜어내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진동한다. 역대 최강이라 불렸던 하이룬의 신성력.

그것을 수십 개나 중복하여 받아낸 타드델린의 힘은 한계를 뛰어넘었다.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신성력은 육체라는 개념을 지우고 그 안을 오로지 신성력으로 가득 채웠다.

그렇게 육체가 모두 소멸하며 엘프 타드델린이 죽었다.

〔죽이겠다.〕

그리고 이세계의 인간에 대한 증오를 가진, 새로운 세계의 법칙이 탄생했다.

***

파앗!!

미묘한 단절음과 함께 마왕의 주먹이 멈췄다.

“이건……?”

자신의 주먹을 바라본 마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뭔가 이상하다. 힘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신경 곳곳이 끊어진 것처럼 반응이 느려졌다.

마치 몸을 유지하는 중요한 무언가가 무너진 것 같은 기괴한 느낌.

빠악!!

그에 마왕의 몸이 굳어 있을 때, 하현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변화를 느낀 것은 마왕뿐만이 아니다. 하현도 뭔가 변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신성력의 근원이 사라졌다.’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하현은 기세를 타고 다시 한 번 마왕의 얼굴을 후려쳤다.

하지만 이내 손을 타고온 감각에 얼굴을 찌푸렸다.

‘방어력에 변화가 없다?’

신성력의 근원이 사라졌을 텐데도 마왕의 방어력은 건재했다.

그에 하현이 당황했을 때, 정신을 차린 마왕이 다시 공격해 왔다.

후웅!!!

무시무시한 거력을 담은 마왕의 주먹이 하현의 얼굴을 스쳤다. 방금 전까지 피할 수 없었던 상황과는 정반대.

그것을 알아차린 하현의 두 눈이 번뜩였다.

‘힘은 그대로지만 반응이 느려졌어.’

힘도, 방어력도 정상이지만, 반응은 눈에 띌 정도로 느려졌다. 신성력의 공급이 끊긴 반동이 그곳에서 나타난 것이다.

‘지금!’

반응이 느린 마왕의 몸을 걷어찬 하현은 그대로 거리를 벌렸다. 탐색전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전력을 다해 마왕과 싸우는 것뿐!

“성역선포!”

이레아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빛이 마왕과 하현이 있는 장소를 꿰뚫었고, 사방으로 강력하게 퍼져 나갔다. 그 방대한 신성력에 전쟁을 치르던 이들의 시선이 잠시 옮겼다.

“화신화! 신의 축복!”

하이룬의 팬던트에 담긴 신성력이 더욱 강한 빛을 내뿜으며 하현의 몸을 감쌌고, 전신의 몸이 하얗게 타올랐다.

쾅!!

증폭해 나가는 하현의 모습에 마왕이 바닥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아직 자신에게 닿기에는 부족한 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왕은 왠지 모를 오한이 들었다.

‘이대로 놔둬선 안 된다.’

마계에서 몇백 년이고 느껴보지 못했던 생명의 위협. 마왕은 그것을 아주 오랜 만에 느낀 것이다.

“아직!”

마왕이 내지른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하현은 저장고에서 세계수의 가지를 꺼내들었다.

“파괴, 탄생!!”

강력한 지진에 주변의 땅이 갈라졌고, 그 암석을 통해 만들어진 신성골렘들이 마왕을 몸을 후려쳤다.

뒤로 날아간 마왕은 공중에서 자세를 다잡고 허공을 박차 골렘들을 모조리 박살 내며 거리를 좁혔다.

“침식! 증폭! 기만!”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하현은 할 수 있는 모든 버프들을 중첩해 나갔다.

마왕의 마기를 50% 깎았고, 자신의 힘을 증폭시키며, 속도를 훔쳐왔다.

여태까지 아껴왔던 모든 버프들을 남김없이 사용하고, 그 막대한 힘을 주먹에 담아 마왕의 얼굴을 후려쳤다.

콰아앙!!!

주변의 대기가 뒤흔들리고 마왕의 몸이 그대로 지면을 향해 처박혔다.

앞전의 공격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위력.

일반적인 몸이었다면 어느 정도 상처를 줄 수 있었겠지만, 마기와 투기를 두르면서 전력을 다하는 마왕에게는 큰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신성력이 끊어지고 약화됐음에도 지금의 힘으로는 큰 피해를 줄 수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네가 날 이길 방법은 없나보군.”

얼굴을 매만진 마왕이 씩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은 머리를 차갑게 식히며 바라보았다.

‘어설픈 각오로는 안 된다는 거겠지.’

그 압도적인 힘은 페젤론을 멸망시켰다고 하기에는 충분할 만큼 강력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며 하현은 그에 걸맞은 각오를 다잡았다.

“사자강림. 예지.”

사자들의 힘이 하현의 몸에 강림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왕의 두 눈에 흥미로움이 감돌았다.

그에 하현은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방어전환. 힘.”

하현의 몸을 절대적으로 지켜주던 불간섭이 해제되었다.

0